설령 법화경(法華經)을
파(破)하지 않더라도
이전(爾前)의 경(經)들을
찬탄(讚歎)함은
법화경(法華經)을 헐뜯는 것에 해당(該當)함이라,
묘락(妙樂) 가로되
「만약(萬若) 옛날을 칭탄(稱歎)하면 어찌 지금을 헐뜯음이 아니겠느뇨」문(文),
또 가로되
「발심(發心)하려고 원(願)한다 해도
편원(偏圓)을 가리지 않고
서(誓)의 경(境)을 깨닫지 못하면
미래(未來)에 법(法)을 들어도
어찌 능(能)히 방(謗)을 면(免)하리요」등(等) 운운(云云).
간효팔번초(諫曉八幡抄)
어서 586쪽
젊은날의 일기
1951년 1월 22일 (월) 쾌청 –23세-
「검(劍)이라도 부진(不進)한 사람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다. 법화경(法華經)의 검(劍)은 신심(信心)이 강성한 사람만이 소용(所用)되는 것이며, 범에 날개가 돋힌 격이니라」(〈교오전답서〉어서 1124쪽)
컨디션이 매우 나쁘다.
몸으로 한풍이 스며든다.
오후부터 출장. Y씨 댁에서 2식간 정도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열이 내리지 않는다.
저녁에 회사로 돌아갔다. 선생님으로부터 여러 가지 지도, 질책을 받았다. 머리가 아프다. 방법(謗法) 때문인가 ―.
홀로 다다미 4칸 반짜리 좁은 방에서 쉬었다.
내일도 또 추울 것이다. 몸과 마음과 함께 ―.
귀가 11시. 취침 1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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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1월 22일 (목) 흐린 후 쾌청 –25세-
따뜻한 봄볕을 느낄 수 있는 좋은 날씨.
도쓰카 시(戶塚市)로 k군과 출장. 한가로운 동해의 향기를 가슴 가득 들이마신다.
7시부터 제1부대 첫 간부회를 개최했다. 하늘을 찌르는 의기.
잠자리에 들면서 선생님의 일을 여러 가지로 생각했다.
나는 과연 선생님에게 오늘날까지 진력해 왔는가, 그렇지 않은가.
한 결 같이 성실했는가, 그렇지 않은가. 부끄럼 없는 사제의 길을 철저히 걸었는가, 그렇지 않은가.
불초(不肖)의 제자임이 부끄럽다. 아아.
2시, 펜을 놓고 눈을 감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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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년 1월 22일 (토) 쾌청 – 27세-
아침 9시, 특급 쓰바메를 타고 오사카로 향했다.
선생님과 호소이(細井) 존사 그리고 I이사, I부인부 상임위원과 나 이렇게 5명이었다.
맑고 화창한 날씨였다. 열차 안에서 어서에 대한 이야기와 그밖에 여러 가지 지도가 있었음.
오사카에서 1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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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 1월 22일 (일) 첫눈 –28세-
진눈깨비가 내렸다. 심한 추위.
11시 30분부터 최고협의회. 1시 30분부터 부대장회의.
3시부터 가마타(薄田) 지부 회관 개관식. 다망. 격류처럼 시대도 사람도 학회도 흘러간다.
K지부장의 교만함에 모두 괴로워하는 모습이다.
권위적읜 선배의 횡포를 선생님께서는 모르시는 듯하다. 아, 위험하다.
기다려라, 순수한 사람들이여. 대어본존이 엄정하게 밝혀 주실 날이 가깝다.
홀로 섰을 때 / 강한 자는 / 진정한 용자이다. (실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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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년 1월 22일 (수) 맑은 후 한때 흐림 –30세-
인생에는 삶의 방식이 세 종류 있다.
과거에 살아가는 사람, 현재에 살아가는 사람, 미래에 살아가는 사람.
학회나 사회, 정치에도 이러한 도리는 마찬가지다.
청년은 모두 미래에 살아가는 사람이다. 따라서 이사들은 현재 살아가는 사람으로 활약하면서 동시에, 미래에 살아가는 청년들을 지켜보아야만 한다.
오후부터 3월 총등산을 의제로, 청년부 수뇌와 연합으로 이사회 개최. 무려 4시간이나 걸렸다.
논의는 중요하다. 결론도 중요하다. 그러나 결론을 실행하는 것이야말로 더욱 중요하다. 이것을 실행하는 것은 누구인가.
수뇌들이여 그것을 알아야 한다.
12시가 다 되어 귀가.
도중에 포장마차에 들러 어묵을 먹었다. 사람의 맛, 서민의 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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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1월 22일 (금) 쾌청 –31세-
하네다 공항에서 오전 11시에 출발하는 JAL기를 타고 규슈로 향했다.
야메에서 강의. 아내가 홀로 조용히 배웅 나왔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노고많으셨습니다 🍀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