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를 해지했더니 수화기를 들어도 신호음이 울리지 않고,
걸어도 <없는 번호입니다> 라는 낭랑한 음성만이 되풀이된다.
통장 몇개를 정리해 없애버리고,
사용하던 카드와 보험회사들, 구독하던 잡지에 전화를 걸어 주소변경을
하고, 인터넷전용선까지 한시적 해지를 하고나니,
핸펀까지 해지를 해야하는 것이 아닐까하는 황당한 생각에까지 미치게
된다.
각종 공과금들과 셈치러야할 것들을 처리해 영수증을 한가득 손에 쥐고,
마지막으로 집 앞 성심당의 포인트 카드를 탈탈 털어 모카케익 하나를
받아내고는 당당한 '공짜'에 뿌듯한 맘이 되버렸다.
냉동실에 얼려두었던 언제 넣어두었는지 생각 안나는 식빵을 녹여서
작년 어느날 저녁 얼떨결에 선물받았던 아이스크림 케잌을 주섬주섬
발라, 어제로 마지막 배달된 200ml우유와 함께 꿀럭 소리를 내며 먹어버렸는데, 그래도 냉장고에는 먹어치워야할 먹거리들이 꽤 있다.
저녁거리로 먹어버려도 남을 듯 싶다. 버려야하나부다. 아깝지만.
이사준비를 한다고 대구행을 째고, 예전에 머물던 직장동료들과의
수다모임도 일찌감치 접고, 커다란 쓰레기봉투 예닐곱장과 주황페인트가 툽툽하게 발린 면장갑을 사들고 들왔었지만,
어제 오늘 한 일이라고는 집앞의 은행을 왔다리 갔다리 한 일과,
박찬경님 워크샵을 신청하는 메일 두통을 날린 것 뿐이다.
이제 이사하면 그만인데 멀~~ 하면서 며칠째 미뤄둔 청소 덕분에
방안에는 급기야 오솔길이 갈래갈래 나있다.
뒤꿈치를 들고 가뿐가뿐 걷지 않으면 곱게 난 오솔길들이
단한번의 날숨에 흩어질 것만 같다.
아침나절 문득 방안의 오솔길들에 새마을 운동을 일으켜야하는 때가
가까와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잠시 했다.
하지만 그 길의 자죽들이 나름대로 이쁘고 정겹기도 할 뿐더러
나의 의지로 그리되었을 뿐 아니라 그 길들이 그런 방식으로 길을 낸
사연 한자락도 참 소중한 것이지.... 싶어 조금 더 미뤄두기로 했다.
사실은 어떤 모양새와 깊이로서 길을 비우고 새로 내야하는지
도통 노하우를 쌓지 못했기 때문에 주저주저함이라는 것이 솔직하겠다.
성공적 새마을 운동의 재현이나 로마의 길 같은 신화에는 찬찬한 준비와
오랜 공들임이 필요하지 않았던가.
서둘러 우왕좌왕하기에 슐은 나이를 너무 많이 먹어버리기도 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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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슈즈를 신고 뒤꿈치를 가뿐히 들어 땅고를 추고 싶다는 생각을
한지도 벌써 두달이 되었구만.
오늘도 역시 두툼한 신발속에 이리 툭 저리 툭 비어져 나오는 망연자실 발가락 속내를 담을테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