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일요일, 새벽 5시가 조금 안 된 시각에 눈이 벌떡 떠졌습니다. 문득 춘천가는 기차가 곧 사라진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20일 22시 41분경에는 이미 마지막 기차가 청량리역에서 떠나간 이후입니다만... 여튼 얼른 필드(?)용 등산복장으로 꽁꽁 싸매고 이내 집을 나섰습니다.
이미 운행을 시작해서 새벽길을 가르는 1213 버스를 잡아 타고 청량리역으로 이동. 광장을 가로질러 가는 일련의 중국인 관광객들 무리 중 한 사람이 렌즈 안에 잡혀 있습니다. 중국 가서 느낀 건데 정말 중국 관광객들은 너나할것없이 꼭두새벽부터 움직이더군요-_-;
역에 도착하니 6시 8분. 이미 개찰은 시작.. 얼른 당일표를 사서 승차합니다. 여성 역무원이 무전기로 통신하던 게 보였지만 찍지 못했습니다. 아마 승객 한사람 내려간다 뭐 그런 얘기겠죠. 승차 직전에 애매하게 한 컷. (사실 파인더를 확인 못하고 감으로 날린 샷인데 의외로 괜찮게 나왔습니다.)
남춘천 가는 첫차는 텅텅 비어 있습니다.
차표인증
청량리역 저상홈 5,6번선이 경춘선 방면 일반열차 발착용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전철이 개통되더라도 여러 용도로 유지될 것입니다. 군용 입영열차라든가 기타 특수한 경우 일반열차도 편성될 테죠. 일단 경춘선 전철은 상봉역에서부터 운행합니다.
성북역을 지나가며. 전철개통을 10여 일 앞둔 이 때까지도 여전히 성북-신공덕-화랑대 구 선로를 지나고 있었습니다.
원래 경춘선은 일제시대에 건설된 사철(민영철도)이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의 제기동역 앞의 성동역에서 출발, 고려대(홍릉)-KIST-월곡-석계를 따라 성북역으로 들어간 후 다시 화랑대 방면으로 커다랗게 굴곡을 그리며 서울을 빠져나가죠.
이후 성동역 구간이 폐선되며(원래는 지하철 1호선으로 활용 계획이 있었다고 합니다. 6호선 일부가 그 계획을 이어받은 셈.) 성동역의 업무는 청량리역이 이어받게 됩니다. 그 결과, 지금의 경동시장이 크게 활성화되었죠.
화랑대역 이후로는 이설된 구간으로 계속 달린데다 날도 어두워 바깥이 보이지도 않더군요. 이설된 새 구간, 특히 마석에서 대성리 즈음까지는 숫제 터널입니다. 건질 사진도 없어 꾸벅꾸벅 졸았습니다. 눈 떠보니 가평.
가평역에는 이런 장승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이것도 이설되면 이제 못 볼 풍경이 됩니다. 가평역은 지금보다 좀 더 외곽, 남이섬 쪽으로 이설하게 됩니다.
아직까지 단선으로 운행하는 구간이 있어 가평역에서 마주오는 기차와 교행합니다.
어디서 왔는지 모를 일련의 촬영 스태프들. 열차가 정차한 사이 얼른 오디오를 따더군요. ENG를 메고 다니는 것까진 좋았는데 이상하게 제가 거기 잡힌 승객 #1이 되긴 싫어서 고개 처박고 있었습니다(....)
- 뭐랄까 찍는 사람이지 찍히는 사람은 아니다, 란 묘한 자부심과 자격지심의 사이. 정도로 해 두죠..[...]
가평역을 지나 경강철교를 건너가는 기차. 경기도와 강원도에서 한 자씩 따서 붙인 이름입니다.
이것 또한 사라질 풍경. 새 경강철교는 자라섬 위쪽을 지나가게 됩니다.
지나가다 본 월두봉. 이 산은 열차보다는 경춘가도를 따라 춘천 방면으로 갈 때의 관광 포인트가 됩니다. 특히 가을 단풍이 들었을 때, 가평에서 춘천 쪽으로 진행하면서 춘성대교로 진입할 때에 이 봉우리가 눈 앞에 갑자기 확 들어오는 게 압권이죠.
화투짝의 그림이 어디서 유래햇는지 대충 알겠군요(....)
날씨가 갑자기 추워져서 물안개가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게 눈에 그대로 보입니다.
기차는 동쪽으로 달려가고 어느 새 동이 터 옵니다. 이 구간은 아직 구 선로로 달립니다. 새로 이설되는 구간은 고가와 터널의 연속이어서 운치는 덜 할 겁니다. 이 쪽 구 선로는 나중에 정선처럼 레일바이크를 만들어 관광자원으로 쓸 거라는군요.
차창에 얼룩만 없으면 괜찮은 사진이었을 텐데... 객차 외벽은 의외로 청소를 잘 안 하죠(....)
기차는 어느 새 강촌역에 정차합니다. 간이역 주제에 시간표상의 모든 열차를 불러세우는 위엄.[....]
강촌역은 낙서와 그래피티의 천국입니다.
옛날식 역명판에도 자세히 보면 낙서로 득실 득실.
그래서, 보다 못한 코레일측에서 낙서 지우기를 포기하고, 아예 역에다가 그래피티 전문가를 초빙해서 만든 게 이 간판이래죠(....)
젊음이라는 테마로 연결되는 게 좋기는 한데, 간이역에 그래피티라..(.....)
여튼 코레일 공식 CI는 이겁니다. 코발트 블루와 프러시안 블루 사이의 애매한 색, 그리고 진한 노랑.
기차는 종착역인 남춘천역에 닿습니다. 1폼 2선의 간이역 수준...
행선판. 청량리로부터는 1시간 40분 가량 걸렸습니다. 전철이 개통되면 훨씬 짧아지겠지요.
현재 춘천역이 공사중이기 때문에 열차는 남춘천역에서 회차합니다.
기관차 방향을 돌리는 전차대(턴테이블)는 원래 춘천역에 있었는데 남춘천역에 가설해 두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마치 사당역에서 지하철 회차하듯 열차가 들어오면 이내 다른 열차가 선로를 비워주는 구조입니다.
출발신호를 기다리는 기관사
어느 새 역무원이 솜씨좋게 역명판을 뒤집어 갈아끼워놓았습니다.
차장이 발차 신호를 보내면 열차가 출발하게 됩니다.
이 날 사진의 베스트 컷 - 어느 새 떠오른 햇살이 출발하려는 열차를 아름답게 비추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차장(여객전무)분이 나직하게 읊조리는 것을 들었을 뿐이고....
"뭐 하는 거야... 젠장..."
- 수기 신호를 아무리 보내도 기관사가 기적을 울리지 않아서 결국 앞쪽으로 뛰어가시더군요;;
- 어쨌든 남춘천역에 내렸습니다. 날씨가 하필이면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매우 추워졌습니다.
호반의 도시 춘천이니 공지천이나 소양강댐이라도 가 보려 했던 예정을 급히 변경합니다.
갔다가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핫이슈... 가 아니라 꽁꽁 얼어 황태덕장이 안 부러울 것 같습니다.
무작정 시내 쪽으로 가는 버스를 잡아탑니다. 이래봬도 한때 별명이
GPS - Global Parkgoon System (....)
역전에서 보아 둔 지도로 대충 동서남북 파악하고 머릿속에서 춘천시내를 3d 스캔해서 맵을 만듭니다.
대충 타고 가다가 '중앙'이나 '명동' 같은 지명이 보일 때 내리면 되겠지요.
....물론 스마트폰이 있다면 애초에 이런 헛짓(?)을 안 해도 되겠지만(.....)
춘천 버스는 시중 은행의 현금/후불교통카드 호환이 됩니다.
법원 인근의 건물. 뭔가 고풍스럽습니다. 겨울연가에 나오는 춘천의 분위기가 그대로 묻어나옵니다.
일요일 아침, 명동 입구에서 시청/강원도청 교차로로 가는 길은 텅텅 비어 있습니다.
춘천에도 명동... 대개 명동이란 지명은 일제시대 도시에 여기저기 붙어 있던 메이지쵸(명치정)를 순화한 겁니다.
서울에는 이런 곳이 몇 군데 있는데 예컨대 원효로는 원래 모토마치(원정)였던 것을, 원효대사 이름으로 슬쩍 바꾼 것이고,
충정로도 비슷합니다. 서울 사대문 안은 을지로, 충무로, 세종로, 소공로 하는 식으로 전부 다 개명했지만요.
특히 혼마치(본정)는 일본인들이 가장 많이 살았고 또 제일 휘황찬란했던 - 심지어 오사카나 도쿄보다도 - 거리였는지라
일부러 충무공 이순신의 이름을 따서 붙인 거라고 하더군요.(그런데 왜 동상은 광화문에 있을까.)
어쨌든 춘천의 명동은 한 세기 전과는 좀 다른 의미로 일본인들이 지나다닙니다 - 바로 '겨울연가' 덕분이지요.
일본인뿐만 아니라 가끔 중국계로 보이는 관광객도 우르르 몰려다니더군요.
겨울연가는 일본에서는 후유노 소나타(겨울의 소나타), 중국에서는 직역해서
'동계연가'라고... 하는데, 왠지 동계올림픽부터 반사적으로 떠오르는 건;;
거리 중앙에는 최지우와 배용준의 핸드프린팅 동판이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이런 모양새.
핸드프린팅 조형물이 있는 곳 바로 뒤쪽, 언덕배기 뒷골목이 유명한 명동 닭갈비 골목입니다.
점심때가 되자 춘천을 찾은 외지 관광객으로 보이는 쌍쌍이(...) 커플들이 골목을 활보하기 시작합니다.
닭갈비골목 상권 지도. 여러 업체가 오밀조밀 붙어 있습니다.
이런저런 지역 볼거리도 마련되어 있다는군요. ...라지만 오늘은 추우니 패스. -_-;;
닭갈비집 중에는 압축탄을 쓰는 곳도 있는지 열심히 땔감을 고르고 있습니다. 요즘은 압축탄도 질이 괜찮지요.
인터넷에 쳐 봤을 때 많이 나오는 집인 것 같은데... 일단 저 시간대에 사람이 제일 많은 곳이더군요.
닭갈비 1인분 되냐고 물어보니까 0.5초쯤 생각하던 종업원 아줌마.(......)
하지만 이내 "아, 막국수도요" 라고 하니 급 화색. 이봐요 -_-;
...내 기필코 내년에는 쌍으로 온다-_-; 아놔
여튼 1인분도 자알 볶아줍니다. 가격은 좀 세네요. 1만원. 맛은 과연 어떨까요.
철판 위에서 점점 그럴듯한 모양새를 갖추어갑니다.
이것이 바로 춘천 닭갈비인가....! (두둥)
조리가 끝난 닭갈비. 이제부터 맛있게 먹으면 됩니다... 마는
전 일단 막국수부터 시키겠습니다. 흐흐흐
본고장 막국수는 때깔부터 다르군요. 침 넘어갑니다.
대충 찍고 먹으려니까 어느 새 주인장인 듯한 할머니 한 분이 조용히 다가와
"그렇게 섞으면 다 비벼지지 않아요." 라고 합니다.
밑에 깔린 양념까지 팍팍 무쳐 드셔야 맛있다는군요.
아래쪽 양념까지 전부 다 뒤섞어도 맛은 꽤 슴슴하군요. 함흥냉면의 강원도 버전...? 이라고 해야 하려나요.
순두부도 그렇고 전체적으로 비주얼에 비해 맵지 않습니다.
이 집만 그런 건지 아님 원래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약간 단맛도 감도네요.
어쨌든 이제 집으로 돌아갈 시간입니다. 어느 새 다시 남춘천역 맞이방.
얼마 남지 않은 경춘선 열차는 많은 매스컴의 취재 아이템이 되고 있습니다.
KBS의 카메라 기자... 아마도 춘천지역국 소속인 듯?
(저번에 보니 KBS 본사 카메라기자는 대개 ENG를 메고 다니더군요. 대략 6천만원짜리. 후덜덜)
애매한 시간에 돌아가는 것은, 이 이후로 열차가 죄다 입석뿐이라(.....)
선로에는 얼마전 내린 눈이 희끗희끗 쌓여 녹지도 않고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어느 새 남춘천역으로 미끄러지듯 들어오는 청량리발 무궁화호.
역무원인지 공익요원인지, 안전을 위해 한 걸음 물러나라고 승객들을 통제합니다.
앞머리가 이렇게 생겨서 일명 '봉고'라 불리는 디젤전기기관차.
꼭 네덜란드 국기 색깔 같네요. 이래봬도 옛날에는 특급 전용....
그런데 나중에 역에 갈 기회가 있을 때 자세히 보시면, 이렇게 생긴 놈들은 죄다 번호가
'70##'라고 붙어있습니다. (=차종에 따라 열번이 죄다 다르게 붙어 있죠.)
아까 잘 안 나온 듯해서 다시 한 번 차내에서 찍은 인증 샷. 맨 앞좌석이 딱 한 장 남아있더군요. 럭키.
땃땃한 차내에서 또 꾸벅꾸벅 졸기 시작합니다. 어느 새 김유정역을 지나는군요.
강촌 다리를 지나갑니다.
생애 마지막으로 건너게 되는 구 경강철교와 북한강.
멀리 아스라이 신 경강철교가 보입니다. 저기로는 전철이 다니겠죠. 그리고 가물에 콩 나듯
102보충대 신입병들과 1군쪽 자대배치 병력..등등을 싣고 '건설무궁화'랑 '건설새마을'도 지나다닐 겁니다.
(*'건설'자 붙은 거는 군용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군수물자는 건설화물이라고 하죠. 대략 박정희 시대의 유산.
*사실 건설화물 계통 중에서 제일 골때리는건 스뎅바디에 조그만 창문 여러 개 달린 놈.. 병원차죠.
이게 뜬단 얘기는 정말 답 없을 정도로 심각한 부상자가 후방으로 후송된단 얘깁니다.
이거 뜨는 날에는 마산역이 초긴장이었대죠. 마산통합병원도 바빠지고.. 일명 냉동육 수송차)
기찻길역 강변 마을은 이제 좀 호젓해질 것 같습니다.
성북역까지 와서 전철로 갈아타고 석계역으로 옵니다. 여기서부터는 6호선을 타고 집으로 가면 됩니다.
아마도 무궁화로서 마지막 이용하는 성북역... 이 되지 않을까 싶네요.
- 1호선 전철 안의 이 스티커도 대략 전임 정권의 유물(?)인데, 참 광고 잘 뽑아져 나왔단 생각을 했습니다.
어린이 모델 표정이 되게 매력적이지 않나요(...) (한 10년쯤 뒤에는 아역출신 연기파 배우로 나오려나....)
오세훈 현 시장의 '디자인 수도 서울' 홍보물 붙어 있는 건 모델들 표정에 묘하게 그늘이 져 있는데...
의도하진 않았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참 대비가 됩니다.
첫댓글이상하게 계속 다음까페에 블로그 사진들을 링크했다 하면 링크가 깨지는데, 실제로 링크 잘 동작합니다. (네이버와 달리 이글루스는 외부 임베디드를 막지 않습니다.) 그러니 혹시 깨진다면, 수고스럽지만 일일이 로드해서 봐주시기 바랍니다. 다음 이 자식들은 시스템을 왜이리 멍멍이판으로 짜놓았는지.;;
김유정역 바로 옆에는 보급대가 있습니다. 겨울이 되면 보급대로 한 시간 남짓 달려 물품을 수령했습니다. 김유정역 근처에는 중국집이 있는데 그곳 자장이나 짬뽕이 먹을 만 했습니다. 이번 여름엔 춘천시장기 사회인야구대회에서 3부 우승도 했습니다. 결론은 "좋아요 춘천" ㅎㅎㅎ
첫댓글 이상하게 계속 다음까페에 블로그 사진들을 링크했다 하면 링크가 깨지는데, 실제로 링크 잘 동작합니다. (네이버와 달리 이글루스는 외부 임베디드를 막지 않습니다.) 그러니 혹시 깨진다면, 수고스럽지만 일일이 로드해서 봐주시기 바랍니다. 다음 이 자식들은 시스템을 왜이리 멍멍이판으로 짜놓았는지.;;
김유정역 바로 옆에는 보급대가 있습니다. 겨울이 되면 보급대로 한 시간 남짓 달려 물품을 수령했습니다. 김유정역 근처에는 중국집이 있는데 그곳 자장이나 짬뽕이 먹을 만 했습니다. 이번 여름엔 춘천시장기 사회인야구대회에서 3부 우승도 했습니다. 결론은 "좋아요 춘천" ㅎㅎㅎ
법원인근의 건물은 천주교 춘천교구 교육원입니다. 남춘천역에서 촬영중인분은 VJ구요ㅎㅎ 아는분이 나와서 깜짝;;
앗 그렇군요. 어쩐지 고풍스러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