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천 마량포구 기행 최 건 차
복음을 전하면서 청춘을 다 보낸 절친 동기생들이 모이는 날이다. 올여름 어지간했던 무더위도 말복이 지나자 색깔이 달라지고 나들이하기에 괜찮아 갯바람을 쏘이면 더 좋을 것 같다. 우리 중 몇은 아직도 현역이지만 거의 목회현장에서 은퇴한 40여 년 지기들로 막연한 사이들이다. 어찌들 지냈다는 사연이 궁금해 오늘 밤이 즐거울 것 같다. 우리들의 행선지는 이 나라에 성경이 맨 처음 전래되었다고 하는 곳, 충남 서천의 마량포구다. 토마스 선교사가 1866년 미국 상선 제너럴 셔먼호을 타고 대동강을 거슬러 올라가 성경을 전하면서 참수를 당한 시점보다 50년이나 앞선 곳이다.
우리나라에 성경이 최초로 전래된 곳으로 알려진 서천 마량포구는 한적하고 풍광이 아름다운 어촌이다. 아펜젤러 선교사가 서천 앞바다에서 순직하였기에 그 분의 추모 기념관도 이곳에 있다. 1816년 서해안 일대를 탐사하던 영국 해군 함장 머레이 맥스웰(Murray Maxwell) 대령은 함선 두 척(알세스트호와 리라호)을 이끌고 해안에 접근했다가 썰물로 갯벌에 얹혀 움직일 수가 없게 되었다. 머레이 함장은 이곳 마량진 참사 조대복과 비인 현감 이승렬을 알세시트호로 초대하여 서해안 탐사 과정을 설명하면서 극진하게 대접해 주었다. 그리고 함정 내부를 구경시키면서 기념으로 3권의 책을 주었는데, 크고 좋은 한 권의 책이 1611년에 발간된 초판 킹 제임스 성경이었다.
한국 기독교가 선교 100주년을 맞으면서 선교에 대한 연구와 비전이 활발해졌다. 기독교계의 각 교단과 학계에서는 서천 마량진에 전해진 그 책에 대하여 검토하고 고증하여 그 책이 1611년 발간된 킹 제임스 버전임이 확실하다고 확정 발표했다. 이에 한국 최초의 성경 전래지 기념사업회가 추진되어 2016년 9월, 마량진 포구에 성경이 전래된 200주년이 되는 해에 기념관이 문을 열었다. 이때부터 크리스천들과 일반 관광객들까지 계속 찾아들고 있다. 기념관은 마량포구가 잘 보이는 전망 좋은 언덕에 연면적 1374㎡에 지하 1층과 지상 4층의 현대식 건물로 잘 지어졌다. 기념관을 관리하는 초대관장이 우리 동기생 이병무 목사다. 매사에 성실한 이 목사는 맡은 일을 잘 수행하여 3년 임기를 3번째 연장하여 9년을 마치고, 앞으로도 계속 맡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동기생들이 격려해주고 축하하려고 이곳으로 모이게 된 것이다.
부부동반도 있어 20여 명이 모여 예배를 드리고 회의를 마쳤다. 저녁에는 금강 하구에 인접해 우리나라 3대 철새도래지로 2008년 람사르 습지(15.3㎦)로 등록된 서천 갯벌로 향했다. 숙소가 해변가였기에 해가 지기 전에 갯벌을 체험해보자며 서둘러 나섰다. 때마침 썰물로 해변에서 가까이 보이는 작은 섬까지 갈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물속에 잠겼다가 바닥을 드러낸 곳에는 갯고동이 깔려 있어 숙소에 가서 삶아 먹자며 부지런히 주워 모으는데 나는 갯고동에 대한 트라우마가 손길이 가지 않게 했다. 장항‧군산 쪽으로 무지개가 서고 해가 꼴깍 넘어가고 있어 우리는 뭍으로 나가려고 발길을 재촉하는데, 저편에서는 한 무리가 들통을 들고 손전등을 비춰대면서 들어온다. 우리처럼 겨우 갯고동은 아닌 것 같고 낙지를 잡으려는지 호기로워 보인다.
갯벌체험을 일단 마치고 우리는 숙소에 모여 다과를 하면서 휴식에 들어갔다. 사모님들이 갯고동을 씻어 삶았다며 가져와 모두가 맛있다며 까먹는다. 나는 부산에 살던 중학생 때 삶은 갯고동을 가끔 사 먹어봤다. 고깔처럼 만든 종이에 담아준 것을 사서 속살을 빼내 먹는다. 먼저 뾰족한 끝부분을 이빨로 탁 깨트린 다음 대가리 쪽을 입으로 쪽 빨면 짭쪼름한 국물에 고동살이 입안으로 쏙 들어오는 걸 먹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런 맛 때문에 1971년 여름에 인천에 갔다가 갯고동을 사서 까먹어 봤는데 맛이 좀 이상해서 버렸다. 서울 삼양동 집으로 가는데 뱃속이 뒤틀리고 아프기 시작했다. 상한 것들이 섞어 있는 줄 모르고 그런 걸 그냥 먹어 식중독으로 복통이 심했다.
아픈 배를 움켜잡고 겨우겨우 참으면서 집에 들어갔다. 어머니가 양귀비 꽃대 말린 것을 달여주어 마시니 거짓말처럼 금방 나았다. 나도 그런 추억담을 들려주며 모처럼 남자 여자가 따로 모여 즐거운 시간을 갖게 되었다. 그간에 묵혀둔 것들을 꺼내어 웃고 떠드는데 주방 쪽에서 이상한 냄새가 풍겨오고 연기가 피어오른다. 급히 가보니 누가 더 맛있게 삶는다며 인덕션에 올려놨던 냄비가 막 폭발하려는 참이어서 너무 놀라 가슴이 철렁했다. 자칫 펜션을 불태울 뻔한 사건이라. 동기생들의 맏형 격인 나는 갯고동 징크스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하다가 새벽 3시 반에 밖으로 나갔다.
드넓고 긴 해안이 고요한 침묵에 잠겨 철썩대는 파도 소리만 귓전을 때린다. 한적한 방파제 둑길을 나 홀로 30여 분 걷다가 바다와 하늘을 향해 우리나라의 현실을 알리고 우리 일행들의 안녕을 위해 기도를 하고 나니 먼동이 튼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서천 갯벌>이란 큰 표지석이 보여 여기에 왔었다는 인증 사진을 찍으려다 가슴이 뭉클해지는 감정에 사로잡혔다. 우리에게 복음을 전해준 영국인 두 분에 대한 말로 다 할 수 없는 경외함이 들어 머리를 한참 숙이고 나서 발길을 옮겼다. 2025.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