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린, '염소를 모는 여자'를 읽고 있다
초반에 환하게 터지던 감상적인 묘사체와
이런저런 작가의 심중에서 억제없이 쏟아지듯 보이던,
물감으로 따지자면 새빨간 색깔의 끈적한 느낌이..
내가 그간 생각하던 뭔가를 무너뜨리며 마음을 싸하게 했는데..
이여자의 글들, 줄곧 첫느낌만큼 강하고 어쩌면 아득한 무엇이
윤대녕의 소설들을 읽을 때와는 다른 뭔가를 느끼게 한다
안마당이 있는 가겟집 풍경..
난 이미 TY문학관에서 이휘향의 억척스런 촌부연기와
어느 꼬마탤런트의 나긋나긋 딱 맞아 떨어지는 사투리에 감탄하며
이 소설을 눈으로, 희미하게 돌아가는 옛날 필름을 끄집어내듯 보았었다
역시나 텔레비를 볼 때의 느낌이 뚜렷이 페이지마다 되살아났는데
묘하게 각색을 한 드라마나, 같지만 같지 않은 듯한 원작의 마력은
전경린, 그 여자의 프로필 사진만큼이나 예사롭지 않게 날 파고들었다
염소를 모는 여자, 그녀의 어린 아이, 박쥐우산을 쓴 사내
그들이 일렬로 서 뱅글뱅글 동네를 돌던 장면에서 난
굳어있던 입가 근육이 꿈틀하며 경련을 일으킬 정도로
심각히 몇번을 되돌아읽으며 꿈에서처럼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