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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iss Of Fire
Louis Armstrong (루이 암스트롱)
재즈 역사에서 가장 큰 영향을 끼치고 중요한 위치를 점했던 루이 암스트롱(Louis Armstrong)은 뉴올리언즈 스타일로 단순한 듯 하면서도 극적인 트럼펫 연주를 보여주었을 뿐만 아니라 굵직하고 거친 목소리로 노래하며 많은 대중들의 사랑을 받아온 뮤지션이다. 그는 소규모 합주 위주의 포크 음악에서 즉흥적인 솔로 연주를 강조하는 스타일로 재즈 음악의 형태가 변화하는데 큰 공헌을 했으며, 20년대 초반에 유행했던 스타카토식 연주기법으로부터 탈피해 훨씬 부드러워진 스윙시대의 정착을 도왔다. 또한 테크닉적으로 완성도 있는 연주가 블루스적인 느낌을 줄 수 있다는 것도 자신의 연주를 통해 증명했으며, 27년부터 40년까지 모든 레코딩 앨범의 트럼펫 주자들의 스타일에 영향을 끼쳤다. 뿐만 아니라 그는 가사가 아닌 리드미컬한 음절을 사용한 스캣 싱잉(scat singing, 뜻 없는 음절을 가사로 바꾸어 즉흥적으로 노래하기)과 독특한 창법으로 빙 크로스비(Bing Crosby), 빌리 할리데이(Billie Holiday), 프랭크 시나트라(Frank Sinatra) 같은 30년대 이후의 가수들에게도 음악적인 영향력을 구사했다.
넘치는 위트와 깔끔한 매너로 관객들을 매료시키며 대중적이지 않았던 재즈를 널리 유행시키고, 많은 젊은이들이 트렘펫을 연주하도록 고무시킨 그는 소위 미국의 친선 대사(America's goodwill ambassador)라는 칭송을 받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삶에 있어 절대 어두운 부분을 발견하지 못할 것만 같은 루이에게도 어둡고 불운했던 과거는 있었다. 뉴올리언즈의 가장 가난한 지역에서 자란 그는 돈 몇 푼을 벌기 위해 거리에서 노래를 불렀고, 1912년 새해 전야를 자축하는 의미로 총을 쏘다가 체포되어 소년원에서 지내기도 했다. 거기서 코넷(cornet)을 배우게 된 그는 이후 재즈 그룹과 브라스 밴드에서 연주생활을 시작한다.
1920년대 초기 킹 올리버(King Oliver)가 이끄는 톱 클래식 재즈 오케스트라에서 활동했던 루이는 시카고를 떠나 뉴욕에 자리를 잡고 플리처 헨더슨(Fletcher Henderson)의 빅 밴드에 합류하게 된다. 당시 뉴욕 최고의 오케스트라였지만 스윙이나 즉흥곡, 블루스에는 익숙하지 않았던 이 밴드에서 발군의 연주실력을 발휘했던 루이는 이후 베시 스미스(Bessie Smith), 마 레이니(Ma Rainey)를 비롯한 여러 블루스 가수들의 세션을 맡으며 레코딩 작업을 했다. 또한 20년대 중반에는 클라리넷 연주자인 조니 도즈(Johnny Dodds), 트럼본 연주자 키드 오리(Kid Ory), 피아니스트 릴 암스트롱(Lil Armstrong), 밴조 연주자 조니 세인트 사이어(Johnny St. Cyr)와 함께 고전 클래식 음악들을 녹음하기도 했다.
27년 코넷과 비슷한 음색의 트럼펫을 연주하게 된 그는 'Cornet Chop Suey'로 동시대의 다른 트럼펫 주자들을 놀라게 했고, 스캣 싱잉을 유행시킨 'Heebies Jeebies', 'Potato Head Blues', 'Struttin' with Some Barbecue' 등을 히트시키며 솔로로서의 기반을 공고히 한다. 20년대 후반 여러 시카고 밴드들과 무대에서 연주하며 쇼맨으로서 재능을 키워간 루이는 30년대에는 스윙 빅 밴드를 이끌고 유럽 등지에서 순회공연을 하며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고 영화에 출연하기도 했다. 그러나 상업적인 성공을 구가하며 마법과도 같은 음악적 기량을 발휘하고 독특한 음색으로 절정을 이루었던 루이는 40년대 중반 이후 젊은 밥(bop, 복잡한 화음이 특징인 40년대 모던 재즈의 한 형식)음악 주자들과는 다른 사운드로 유행에 뒤지는 듯 했고, 그의 오케스트라의 인기 또한 쇠퇴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인기에 연연해하지 않고 오직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려는 생각으로 가득 찼던 루이는 스스로 사츠모(satchmo, satchelmouth의 줄임말로 입 큰 사람이라는 뜻)라는 별명을 짓고, 코미디 레파토리가 포함된 스윙곡들로 관중들에게 웃음을 선사했다. 때문에 40년대 이후 그의 음악 스타일에 획기적인 변화가 보여지진 않았지만 팬들은 여전히 그를 사랑했다.
50년대 이후 가끔씩 대규모 오케스트라나 엘라 피츠제랄드(Ella Fitzgerald) 같은 당대 최고의 재즈 보컬리스트들과 함께 녹음하며 명성을 구가했던 루이는 71년 사망하기 전까지 활발한 연주 활동을 펼치며 그 어떤 재즈 뮤지션보다도 많은 찬사를 한몸에 받아왔다. 약 반세기에 걸친 수많은 레코딩 작업을 통해 'Blueberry Hill', 'Mack the Knife', 'Hello Dolly'로 대표되는 곡들로 트럼펫 연주의 전형을 보여주며 스캣 싱잉을 구사하고, 특유의 매너로 관객들에게 웃음을 선사했던 루이 암스트롱은 사후 3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재즈계의 거장으로 남아있다.
Ella and Louis (1957)
Ella and Louis Again (1957)
Very Best of Louis Armstrong (2001)
Louis Armstrong Plays W.C Handy (1954)
Porgy & Bess (1957)
_ ☆E_prase☆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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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루이 암스트,,걸걸한 목소리... 매력있지요.. ^^*
엘라 핏츠제랄드와 루이 암스트롱 꼭 이웃집 아줌마, 아저씨 같네요...^^ 선곡 좋습니다.
지금 옆에서 듣고 있는것처럼 생동감있어 조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