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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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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에 발표했던 단편 <배드민턴
치는 여자>를 모태로 한 신경숙의 네번째
장편소설. 세종문화회관 옆 화원에서 꽃을 돌보는
여종업원으로 취직을 한 오산이는 한순간 온몸을
덮쳐온 격렬한 욕망에 붙잡혀 도시 한복판을
걷는다. 오산이의 기억 밑바닥엔 어린시절 미나리
군락지의 푸른 풍경이 있고, 그곳에는 푸른
반점을 지닌 친구로부터 거부당했던 상처가
봉인되어 있다. 그녀는 어느 여름날 사진기자와
운명적으로 만나게 되고...표제의 <바이올렛은>
수줍은 여인을 은유하기도 하는 보라색 꽃의
일종이다.
9월 14일(금) 오후 7시 세종문화회관에서 작가
신경숙 씨를 모시고 9월 교보 교양강좌를
실시합니다. 행사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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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셀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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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1월 1주 주간
베스트셀러 국내소설 8위
2001년 12월 5주 주간 베스트셀러 국내소설 10위
2001년 12월 4주 주간 베스트셀러 국내소설 9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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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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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부름에 응답하며
한없이 망설이는 문체. 신경숙 장편 <바이올렛>
출간
바이올렛, 가녀린 아름다움과 세계의 폭력성의
조우
이 작품에서 표제인 '바이올렛'은 다양한
상징성을 함축하고 있다. 그것은 사전의 정의대로
꽃의 일종이며, 보라색이라는 색깔을 나타내기도
하고, 수줍은 연인을 은유하기도 한다. 동시에
그것은 기표(significant)의 유기성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폭력(violence)과 연결된다.작가는 이런
다채로운 의미가 소설 속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나도록여러 삽화와 비유를 통해 긴밀하게
형상화해놓고 있다.
또한 바이올렛은 그리스 신화 속에 나오는 비극적
운명의 여인 이오와 중첩됨으로써 그 내포를
심화시키고 있다. 그리하여 서울이라는 거대
도시의 한복판, 그 익숙한 공간이 돌연 오랜
세월에 걸쳐 그 모습을 달리해가며 벌어지는
신화적 비극이 상연되는 무대로 탈바꿈한다.
따라서 바이올렛의 보랏빛은 수난의 핏자국이자
소외된 자, 억눌린 자의 멍자국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아름다운 동시에 처절하며, 애잔한 동시에
섬뜩하다.
오산이.
이 여자에게 이름을 지어준 지가 꼭 일 년이
되었다. 오산이는 내 단편 <배드민턴 치는 여자>의
분신이다. 이 여자를 바로 다시 세상에 내보내려
했는데 다른 작품에 밀려 이제야 이루었다.
빚어지지 못찬 채로 내 마음속에서 십여 년을
함께 산 셈이다. 오해 많은 세상에 이 여자를
내보내려 하니 미안해 죽겠다. 제대로 맛있는
것도 먹이지 못했고, 좋은 옷도 입히지 못했으면,
종내는 꿈과 욕망조차 바스라지게 했으니 이
여자의 어미나 되는 듯 마음이 쓰리다. 이 여자를
통과해가는 시선 속에서 이 여자가 새로
부활하기를 바랄 따름이다.
--'작가 후기'에서--
혼신의 문학만이 줄 수 있는 가슴 먹먹한 감동
그 여자, 오산이를 따라가는 내내 독자의 마음은
아슬아슬하다. 조심조심 내려가 절망의 밑바닥에
발을 딛고야 말 때까지 위태롭게 이어지는 시간은
저릿하기까지 하다. 지금이라도 광화문 네거리에
나가면 바로 만날 수 있을 것만 같은, 바로 우리
옆에 늘 존재하는 여자인 것만 같기에 그
애틋함은 더 간절해진다.
그러나 그녀 곁에 존재하는 또다른 그녀의 분신
수애나 건강한 낙원의 공간을 일구는 벙어리 화원
주인을 통해 작가는 삶의 환한 국면을 놓치지
않는다. 아마도 이들, 화원과 농원의 인물들은 늘
마지막 시선에서는 삶을 긍정하고 받아들이는
신경숙 소설의 아름다운 현실일 터이다.
작가는 이야기한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오늘 여기에 있는 나를
일깨우는 영화를 보거나 노래에 귀를 기울이거나
글을 따라 읽을 때면 새삼스럽게 역사의 지층
속에 사장된 익명의 존재들이 지녔을 슬픔이나
고독을 생각하게 된다. 뿌리깊은 소외와 단절을
겪으면서도 헤아릴 수 없는 거리와 도저한 시간을
헤치고 오늘 나를 방문해서 나의 가슴에 파문을
일으키는 것들 속에는 그들의 영혼이 스며 있다고
생각한다.
잊혀진 그들이 끊임없이 걸어오는 말에 귀
기울이고 그들이 미처 하지 못한 말들을 이끌어내
새로운 세계를 이루는 것이 영화이며 노래이며
소설이기도 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의 글쓰기는
결국 이미 사라진, 지금 있는, 앞으로 탄생할
미미한 존재들과의 쓸쓸한 조우에 불과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깊은 밤중에 읽는 몇
줄의 아름다운 문장에 마음이 흔들리듯이 누군가
내 소설 속의 하찮은 존재로 인해 이고독한 현실
속의 인간의 심연을 들여다보게 되고 바스러진
과거를 껴안게 되고 타인에게 한 발짝 다가가고
싶은 충동으로 마음이 흔들린다면 작가로서
그보다 소망스러운 일은 없겠다."
작가의 겸손한 소망이지만, 우리는 그것이 혼신의
힘으로 작품 속에 쏟아져 있음을 안다. 망설이고
더듬거리며 서서히 존재의 심연과 대면해가는
신경숙의 문체. 온몸으로 밀고 나간 단어
하나하나의 밀도가 그 가슴 먹먹한 혼신을
증명한다.
신경숙의 소설에선 처음부터 독자를 휘어잡아야
한다거나 도중에서 독자를 놓치면 어쩌나 하는
조바심이나 잔꾀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느릿느릿 사소하고 아름다운 것들, 때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것들한테까지 한눈을 팜려
소요하듯 따라가게 만단다. 짜임새 없이 마음가는
대로 쓴 것 같은데 읽고 나면 바로 그 점이 이
작가만의 구성의 묘였구나 싶어 못내 감탄을 하게
된다. 나에게 신경숙 문학의 매력은 식물이 주는
위안과도 같다. --박완서(소설가)
저자 소개
신경숙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 졸업. 1985년 중편<겨울
우화>로 [문예중앙] 신인상을 수상하며
작품활동을 시작. 소설집 ,강물이 될 때까지>,<풍금이
있던 자리>,<오래 전 집을 떠날 때>,<
딸기밭>, 장편소설<깊은 슬픔>(전2권),<외딴방>,<기차는
7시에 떠나네>, 산문집<아름다운 그늘>을
펴냈다.
1993년 한국일보문학상과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1995년 현대 문학상, 1996년 만해문학상, 1997년
동인문학상, 2000년 21세기 문학상, 2001년
이상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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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서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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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의 부담감..
'바이올렛'이란 이책을 읽기전까지도 난 무슨
카페이름정일까 하고 생각했다.
바이올렛은 '제비꽃'이란다.
'제비꽃'이란 말에 나도 호감(?)을 갖게됐다.
실은 내가 존경하는 분이 어쩌다가 흘린 말 중에
'난 제비꽃이 좋더군!' 이란 말이 생각나서라고
해도
할수없다.
우리민족의 정서는 어떤 사물이 지니는 의미에
많이 연연한다.
그리고, 그 의미에 사연이라도 붙는 날엔
그럴수밖에
없었구나..
하고 대답도 없는 상대에게 대답을 얻은듯
이해까지
하게된다.
신경숙씨의 소설을 다 읽고, 책장을 덮다보면.
독한 감기에 걸린 사람모양 아프듯 목이 메어온다.
이 '바이올렛'이란 책속의 오산이를 체험하면서
답답하고 불쌍한 그녀가 안타까웠다.
신경숙씨가 이책을 여러 경위때문일지라도 10년이란
세월이 필요했다는 부연설명도 이해가 될
정도였다.
그럼 '오산이'란 여인은 어떤 인물인가.
이책의 주인공 '오산이'은 태어났어도 부성애를
박탈당하고,
어미마져 언제 떠날지 모를 불행 밑에서 자라난다.
어린 오산이는 체념도 빠르고 이해도 깊은 착한
아이였던가.
게다가 동성친구인 서남애의 버림은 유년시절
큰충격으로
그녀의 기억세계를 지배하고 만다.
기억을 접어둔채 성장한 그녀는 도시속 화원에
들어간다.
도시적인 공간에 이질적일것 같은 화원의
식물속에서 평화를
얻은듯 보여지는 그녀는 수애라는 서남애의
대리격인
'수애'를 만난다.
말수도 적고, 늘 당당한 사람들 뒷편의
구경꾼으로
살아가는 오산이에게 동갑내기 수애는 썩 어울려
보인다.
하지만, 그녀의 아픈 유년시절 기억의 서남애는
수애를
받아주지 못하게 만든다.
그러다, 오산이의 아름다움을 발견한 어느
잡지사진기사의
발견과 고백으로 그녀는 모든 나약한 자신을 그
남자에게
매달리고 만다... 그뒤로 그녀의 체념과 절망.
죽음.
오산이란 여인의 행동과정을 저자는 속시원히
표현 해주지
않고 있다. 그녀는 그랬다.. 그녀는 그랬다..
이런식으로
읽는 독자를 멀찌감치 떨어트려 놓고선 가슴
아프게 했다.
읽는 독자를 멀찌감치 떨어트려 놓고선 가슴
아프게 했다.
넓고 높은 옥상에서 그녀를 바라보며..
'바이올렛'이란 흔하고 눈에 띄지 않는 꽃처럼
그녀를 바라보라고 하는듯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해하고 싶어서 말한다면.
가장 그녀를 힘들게 했던건 바로 어머니였다고
생각된다.
아버지한테 버림받은 나약한 아이를 향해
엄마는 자신의 인생을 위해 몇번의 가출을
시도하고,
결국 딸자식에게 마지막까지 상처를 준다.
일련의 어느 가정사보다 최악의 불행한 딸이다.
도대체 어미란 사람이 그럴수 있는가!
아무리 소설이라지만, 신경숙씨 너무한다.
아무튼. 이 책은 저자의 말대로 눈으로 보여지는,
또는
누구의 입으로 전해졌던 흐르는 이야기 속의
하나처럼 읽게
만든다. 그러니.. 당연 잊혀지기 쉬운 이야기
일것이다.
하지만, 왜 속이 상하는가.
그것은 방관자로 치부하는 저자의 속셈에 화가
나서이다.
난 이래서 탈이야.
나의 지난 기억속에.
흔한 감정의 교류였다고.
난 책임이 없으니 이정도면 적당해.
상대를 무시하고 무례하게 행동하지 않았든가.
나의 아무렇지 않은 행동으로 상대에겐 아픈
상처로
오랜시간동안, 괴로울 일들을 난 단정짓지
않았든가..
책을 덮고 새로운 고민을 껴안은 나의 부담감.
....
책을 읽읍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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