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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樂soccer 원문보기 글쓴이: 문별이
스탬포드 브릿지에 처음 돌아오는 안토니오 콘테가 첼시 고위층들 중 누구와도 마주칠 가능성은 아주 낮다. 토트넘 홋스퍼의 감독은 동쪽 스탠드에서 나와 자신의 선수들을 원정팀 라커룸으로 안내할 것이고, 문을 지키는 몇몇 익숙한 보안요원들과는 주먹인사를 나눌 것이다.
한편 홈팀의 고위층들은 경기장의 반대편에 있는 호화로운 단체 관람석 중 하나에 자리해 경기를 지켜볼 준비를 할 것이다. 아마 2017년 초여름 당시 콘테가 프리미어리그에 입성한 지 첫 시즌만에 리그 우승을 차지하고 며칠 지나 축하행사를 열었던 것처럼 말이다. 당시 손님들은 프리미어리그 트로피와 함께 사진찍을 기회를 가졌고 뷔페와 거품 속에서 콘테가 새로운 계약을 갈망하고 오랫동안 머물며 모두가 '미래에 대한 똑같은 관점'을 가지는 것에 대해 말하는 것을 들었다. 또한 노력의 필요성 역시도 말이다.
그 시절은 갔다. 이제 어색한 대화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우연한 만남은 없을 것으로 보여진다. 3년 반 전 콘테의 경질에서부터 시작되어 18개월 동안 고용 심판소에서 이어진 법정 싸움에 휘말린 모든 사람들이 다시 이야기를 나눌 가능성은 없다. 양 측 모두 그 시절을 끝낸 방식이 전혀 일어나지를 않기를 바랄 것이다.
피치의 크기가 관중석에 있는 사람들과의 충분한 거리감을 주는 것은 아니다. 터치라인에서 보여지는 콘테의 무지막지한 에너지는 다시 활력을 찾은 그의 토트넘 팀이 리그컵 준결승 1차전에서 상대를 몰아붙인다면 여전히 드러날 것이다. 런던 남서부 동네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콘테가 끼칠 수 있는 영향력을 알고 있다.
그의 복귀는 코로나바이러스와 부상 그리고 콘테가 정말로 몇 년전 데려오고 싶었던 선수의 인터뷰 때문에 초래된 첼시의 허약함 때문에 때에 맞지 않은 복귀다. 타이틀을 따낸 후 로멜루 루카쿠를 에버턴으로부터 데려오지 못했던 것은 클럽 고위층에게 콘테가 처음으로 삐진 것들 중 하나로 인식되고 있다.
그것이 종말의 시작이었고, 끔찍할 정도로 괴팍했던 2번째 시즌의 분위기를 만들었다.
만약 모든 불협화음이 권력 싸움에 기반을 두고 있는 것이라면 이 불협화음은 시즌 내내 당황스럽게 이어졌다. 이는 주간 기자회견에서 이뤄졌고 관객들의 흥미를 불러일으켰으며 피할 수 없었던 추악할 결별로 마무리되었다. 그럼에도 결별의 복잡한 내용에 대한 합의는 프리미어리그 감독들의 조정 재판소에서 비공개로 더 많은 언쟁을 벌인 후에야 이루어졌다. 이후 판사는 콘테의 경질이 정말로 정당하지 못했다는 것을 발견했고 큰 돈이 들었던 사건의 막을 내렸다.
구단의 회계 장부 - 2019년 6월 30일까지의 재정 결과에 대해 다루고 다음 해 초에 발표되었으며, 이는 2차 고용 재판소 결과와 거의 동시에 발표 - 는 '성인팀 감독과 사단의 교체에 관한 비용과 이와 관련된 법적 비용'으로 26.6M을 추가로 지출했음을 명시하고 있다.
콘테와 그의 사단의 경질은 축구 역사상 가장 비싼 위약금을 지불하게 한 경질로 기록되었다.
아마도 이는 마지막을 장식할 가치가 있을 것이다. 콘테는 첼시에서의 2번째 시즌에서 리그 5위와 FA컵 우승을 기록했지만 이는 그의 자리를 지키기에 충분하지 못했다. 그의 경질은 1군 팀의 몇몇 선수들이 프리시즌에 복귀하여 콘테의 페이스대로 진행되던 2018년 7월 13일 구단 홈페이지에 올라온 61단어의 성명서로 마침내 확인되었다. 하지만 그는 사실상 팀의 결과가 현저히 악화되고 처음으로 챔피언스리그 진출이 위협받던 2월 초부터 죽은 채 역할만 수행하는 사람 같았다.
다음 해에 있었던 2번의 재판은 모두 콘테의 손을 들어줬다.
첫 재판은 콘테의 퇴직금 지급 조건을 두고 비공개적으로 몇 개월간 대화를 하다 합의에 이르지 못하자 2019년 5월, 3인으로 구성된 프리미어리그 감독들의 조정위원회에 출석해 양 측의 주장을 듣는 것으로 이뤄졌고, 콘테가 받아야 할 보상이 있다면 어떤 것인지를 두고 고심했다. 몇몇 목격자들은 몇 시간 동안 심문을 받기도 했다. 소란스러웠던 콘테의 첼시 생활 중 논란이 될 만한 어떤 것도 경중을 신경쓰지 않고 변호사들에 의해 법적인 세부 사항으로 가려졌다. 우리가 예측할 수 있는 것은 그 분위기가 극도로 긴장되고 법적인 논쟁은 인정사정없었다는 것이다.
첼시 구단은 디에고 코스타의 이적에 관한 콘테에 관여부터 이적시장에서의 지원에 대한 콘테의 끝없는 불평까지 그가 2번째 시즌에 했던 그의 행동이 사실상 계약 위반에 해당된다고 주장했다. 콘테의 변호사들은 콘테 그의 행동이 직무 태만에 거의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려 노력했고 12개월의 계약기간이 남아있는 상태에서 그가 다음 직장을 찾거나 계약기간이 끝나기 전까지는 첼시와 남아있던 9M의 연봉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콘테의 법률팀은 시즌이 끝난 후 2달이 지나고서야 그를 경질하기로 한 구단의 결정 - 프리시즌 훈련이 재개됐고 그의 경질은 누구도 아는 비밀이 되었다 - 이 그가 새로운 시즌을 앞두고 다른 직장을 구할 가능성을 하락시켰다고 주장했다. 콘테는 2019년 5월 31일 인테르의 감독이 되기 전까지 다른 팀의 감독직을 맡지 않았다. 그들의 주장에는 추가된 피해가 내재되어 있었다. 즉 당시 첼시를 함께 떠난 최소 8명의 콘테 사단 멤버들 - 처음 콘테 사단에는 11명이 있었다 - 에 대한 보상금도 더해져 이와 관련된 소송 비용은 백만 파운드가 넘는 금액이었고 재판이 콘테의 손을 들어주자 첼시가 지불해야 하는 금액 역시도 커져갔다.
또다른 부당해고 소송은 그 해 말 콘테의 변호사들이 중앙 런던 고용 재판소에 제기한 일인데, 이는 또다시 비공개로 진행되었고 콘테의 변호사는 폴 길로이 QC와 맨체스터에 본사가 있는 센터필드 LLP의 존 메흐라즈가 맡았으며 린제이 고든은 그를 대신해 리그 감독 협회를 대표했다. 첼시는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고 앤드류 글레니 고용 판사는 이후 콘테가 첼시에서 불공정하고 경질당했기에 최대 83,682 파운드의 보상금과 기본 1,524 파운드를 지불하라고 판결했다.
이미 받은 금액과 비교했을 때는 상대적으로 적은 수준의 보상금이었던 점을 고려한다면 이 소를 제기한 이유는 분명히 재정적이기보다는 그가 이 모든 것의 원인이었다는 생각을 지우기 위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는 이 판결에 대해 자신의 정당성을 입증했다고 느꼈다. 당시 그는 성명서에서 "재판 결과에 매우 기쁘다. 법적 절차가 진행됐어야 한다는 점에 유감을 느낀다."고 밝혔다.
로만 아브라모비치가 첼시를 인수한 이후 이뤄낸 5번의 프리미어리그 우승 중 가장 주목할 만한 우승으로 거론될 만한 우승을 이끈 콘테를 경질하기로 한 구단의 결정은 공정하지 못했다는 것이 밝혀졌지만 그는 첼시에서 보낸 2번째 시즌 내내 구단과 언쟁을 벌였다. 콘테는 사람들을 불쾌하게 만들었고 자신의 스타일이 모두와 맞지 않다는 것을 자유롭게 인정했다. 콘테는 그를 선임한 사람들이 미리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야 한다고 주장 - 그리고 그때도 그렇게 말했다 - 했다.
2018년 1월 이적시장 결말이 만족스럽지 못한 쪽으로 흘러가자 그는 "나는 타협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 동시에 나는 매우 솔직하다. 내가 나 자신을 바꾸려 한다면 내 커리어를 중단하는 것이 맞다. 정직한 사람은 모든 순간 아주 분명히 말한다. 그리고 진실하지 못한 사람들은 언제나 진실을 말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솔직해지려 하고 모든 순간 진실을 말하려고 한다. 나는 거짓말하는 사람들을 아주 싫어한다."고 말했다.
콘테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FA컵 결승 직후 이를 강조했는데, 그는 이 경기가 자신이 첼시 감독으로서 맡는 마지막 경기라고 강하게 생각했을 것이다. 그의 선수들이 트로피를 들기 위해 모여있을 때 그와 마리나 그라노브스카야 - 영향력 있는 보드진 멤버이자 사실상의 풋볼 디렉터가 된 - 는 웸블리의 로얄 석에서 짧고 쌀쌀맞은 악수를 했다.
그는 "나같은 감독을 선임하려고 할 때 어떤 사람을 선임하려 하는 것인지 알아야 한다. 나는 내 성격을 바꿀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경기 후 기자회견에서 "나는 변할 수 없다."라는 말을 7차례나 말했고 이는 매번 도전처럼 느껴졌다.
거의 모든 불협화음의 시작은 이적시장에 보인 구단의 움직임에서 비롯되었다. 콘테는 첼시가 타이틀을 따낸 일이 은골로 캉테, 마르코스 알론소 그리고 다비드 루이스와 같은 뛰어난 영입생들과 명석한 코칭 그리고 유럽 대항전이 없었던 덕분에 이뤄낸 직전 시즌 10위 팀의 작은 기적이라 생각했다. 오스카를 상하이 상강으로 판매한 덕에 첼시는 그해 선수 거래 부분에서 이득을 기록했다. 36라운드 WBA 원정에서 미키 바추아이가 기록한 결승골로 확정지은 리그 우승은 큰 업적이었다.
하지만 프리미어리그 첫 시즌만에 리그 우승을 차지한 4번째 감독이 된 콘테는 이를 발판으로 삼았고 성공은 그에게 힘을 불어넣어줬다. 그는 2017년 여름을 초기의 아브라모비치의 향수를 느낄 수 있게 많은 돈을 사용할 시간이 될 거라 생각했고 구단 이사진들에게 루카쿠와 버질 반 다이크 영입을 요구했다. 첼시는 당시 두 영입이 모두 비싸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지만 콘테는 두 선수 모두 데려올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2020년 11월 텔레그래프와의 인터뷰에서 "두 선수가 있었다면 우리 팀을 30% 더 성장시켰을지도 모른다"고 말한 바가 있다. 유나이티드가 루카쿠를 영입하고 소튼이 반 다이크에 대한 어떤 관심도 막아설 때 그는 구단이 "향후 몇 년간 최상위에서 머물 기회를 스스로 놓쳤다."고 주장했다.
콘테는 챔피언스리그를 곧바로 정복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경험있는 선수들을 노리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50M의 이적료로 맨체스터 시티에 합류한 카일 워커를 원했고 유베를 떠나 밀란으로 합류한 레오나르도 보누치를 콕 찝었으며 아스날을 떠날 것처럼 보였던 알렉스 옥슬레이드-체임벌린 영입을 주장했다. 체임벌린은 반 다이크처럼 위르겐 클롭과 함께하는 아아디어에 더 매료되었다. 아스날의 또다른 선수였던 알렉시스 산체스와 유벤투스의 브라질리언 풀백 알렉스 산드루에 대한 콘테의 애착은 1월에도 계속되었다.
한편 콘테는 스페인 출신 공격수이자 유벤투스에서 같이 했었던 페르난도 요렌테도 스완지에서 영입하고 싶어했다. 숫자를 채우기 위한 스쿼드 플레이어로서 그를 영입하고 싶었는데 이는 특히 코스타의 가까운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에 더욱 그러했다.
그는 요렌테 딜이 빨리 마무리되고 큰 노력 없이도 될 거라 생각했지만 보드진은 32세의 요렌테를 영입할 가치가 있는지 확신하지 못했다. 토트넘이 결국 요렌테에 대해 첼시보다 좋은 제안을 건넸고 큰 일처럼 느껴지지는 않았지만 그 해 여름의 화젯거리 중 하나였다. 콘테는 이 일을 자신의 판단에 대한 지원 부족으로 인식했다.
구단은 FFP를 최대한 준수하려고 하는 한편 더 빡빡해진 일정을 앞두고 전력을 보강할 필요성을 인정했다. 하지만 그들은 20-40M 사이의 금액으로 영입할 수 있거나, 개선의 여지가 있는 어린 재능들을 영입하는 것을 선호했다. 그들은 콘테의 요구를 권력을 잡으려 하는 것으로 인식했다.
여름 내내 콘테가 이탈리아에서 휴가를 보내는 동안 첼시의 보드진들은 새로운 영입에 대한 업데이트를 요구하는 메시지와 이메일을 받았다. 그리고 그가 선호하는 타겟들을 영입할 수 있을 거라는 가능성이 낮아지자, 침묵이 흘렀다.
약 10일간 콘테와 연락하려는 구단의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다. 그에게 전화를 거는 소리가 크게 울렸고 이메일과 문자에는 침묵만이 흘렀다. 콘테가 마침내 나타났을 때 계약기간은 처음에 체결한 3년에서 연장되지 않았지만 개선된 계약을 서둘러 진행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그들은 충격에 빠졌을지도 모른다. 단순히 급료 인상만 요구했고 이미 의심은 싹튼 상태였다.
17-18 시즌 시작 전날 당시의 분위기가 어땠는지 구단 직원에게 물어봤을 때 그는 "어렵다"고 말하며 "너도 그 이유를 알잖아."라고 덧붙였다.
당시 첼시는 큰 돈을 썼다. 알바로 모라타는 당시 첼시의 클럽 레코드 - 모라타 계약서의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콘테가 공개적으로 해리 케인에 대한 오래된 애정을 드러냈지만 말이다 - 였다. 티에무에 바카요코는 모나코의 리그1 우승과 챔피언스리그 준결승 진출에 기여했고 40M의 파운드를 들여 영입한 선수였으며 네마냐 마티치의 대체자 역할을 곧바로 맡았다. 컨페드레이션스컵 출전 때문에 합류가 늦었던 안토니오 뤼디거는 다비데 자파코스타와 대니 드링크워터와 함께 블루스의 유니폼을 입었고, 후자의 경우 분명히 콘테가 밀어붙인 영입으로 보인다.
하지만 콘테는 자신의 불만족함을 프리시즌 미팅때 드러냈다. 할 수 있는 게 제한적인 프리시즌 때 구단의 새로운 영입생들을 소개할 것처럼 보였지만 그는 자신의 동료들인 파올로 바놀리와 다비데 마조타를 새로운 사단의 일원으로 소개했다. 그는 자신의 생각을 드러낸 것이다.
그리고 코스타가 있었다.
콘테와 첼시는 브라질에서 태어난 스페인 국가대표팀 스트라이커를 우승 시즌 내내 집중시키는 일을 잘 해냈다. 코스타는 직전 여름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로 복귀하려 했고 시즌 중에는 중국의 텐진 취안젠으로 이적하려 했으며 시즌이 끝난 후에는 다시 마드리드로 이적하려 했다. 콘테는 첼시에 완전히 헌신하는 선수들하고만 함께하고 싶어했고 특히 그들이 예상 밖으로 리그 우승을 위해 질주할 때 더욱 그랬다. 코스타는 이를 힘들게 만들었다.
코스타는 그가 한동안 허리부상을 겪고 있었다고 말을 했는데, 이는 구단 메디컬팀에 의해 반박되었고 레스터 시티 전에서 명단제외되었다. 하지만 코스타가 해가 바뀌자 8골에만 기여했음에도 불구하고 팀과 선수는 여름까지 버텨냈다. 그는 타이틀 세레머니의 중심에 있었고 심지어는 웨스트브롬위치 원정경기가 끝난 후에는 소화기를 끄겠다고 위협해서 콘테가 기자회견을 중간에 끊고 라커룸에서의 파티에 참여하게 했으며 이후에 있었던 아스날과의 FA컵 결승전에서 득점을 기록했다. 하지만 그가 세심한 관리를 필요로 했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그는 언제나 판매될 가능성이 높은 것처럼 보였다.
그럼에도 콘테가 코스타에게 문자를 보내 그가 더이상 타이틀 방어를 위한 자신의 계획에 포함되어있지 않다는 말을 보낸 사건은 보드진의 큰 충격을 초래했다. 이 메시지는 고위층의 승인 없이 보내진 문자였다. 이는 그들로 하여금 협상에서의 재량권을 사라지게 했고 보드진들은 결국 AT로부터 엄청난 이적료를 받아냈지만 협상에서의 입지에 위협을 끼친다고 생각했다. 당연히 선수들 사이에서 전달될 수밖에 없는 메시지에서의 무시하는 말투 역시도 선수들에게 충격을 안겼다.
사실 그 시즌에 불평을 늘어놓으면서 많은 선수들은 콘테 하에서의 빡빡한 삶에 지쳐가고 있었다. 해가 지나기 전에는 2위를 차지하고 있어서 최소한 챔피언스리그 진출을 확보할 것처럼 보였지만 그들은 1월 이적시장이 다가오면서 추가 영입을 요구하는 콘테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감독과 보드진 사이에서 유용한 완충 역할을 하던 마이클 에메날로 풋볼 디렉터가 11월에 팀을 떠나면서 이는 콘테와 보드진 사이의 관계를 악화시킬 뿐이었다. 그들이 끊임없이 갈등을 빚고 있다는 느낌이 퍼져나갔다.
종종 이탈리아 언론에서 산체스와 산드루에 대한 이적설이 나왔다. 대신 클럽에 합류한 선수들은 에메르송 팔미에리, 올리비에 지루 그리고 로스 바클리였다. 몇몇 사람들은 시즌 중 영입을 환영했지만 사실상 감독이 이미 팀에 있는 선수들을 충분히 좋지 못한 선수들이라고 생각한 이상 다른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상기시켜도 효과없었을 것이다.
어려운 시즌들에 나왔던 불화는 불안감을 고조시켰다. 행복하던 직전 시즌에는 주전 자리를 지켰던 다비드 루이스는 리그에서 선발로 나선 횟수가 9번에 불과했고 4-1로 패배했던 왓포드전 이후에는 3달 이상 나오지 못했다. 콘테는 이미 10월 중순에 있었던 챔피언스리그 로마전에서 루이즈를 교체할 때 그가 보였던 반응에 그리 좋은 인상을 받지 못했다. 콘테가 이탈리아 국가대표팀을 떠난 뒤 처음으로 이탈리아에서 경기한 로마 원정에서 3-0으로 패배하자, 그는 대패를 복기하고 터질 듯한 긴장감을 리뷰하기 위한 팀 미팅에서 자신의 불만을 여과없이 드러냈다.
그의 눈에 그 날 밤의 첼시는 '배고픔, 안정감 그리고 동기부여'가 결핍된 상태였다. 그들의 수비는 보통은 캉테가 보충하던 중원에서의 방패가 없는 상황에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했다. 다비드 루이스는 분명히 수비진을 옹호하려 했으나 질문의 여지를 남길 기분이 아니었던 콘테에 의해 가로막혔고, 콘테는 그를 가차없이 다뤘다. 그의 기분은 케네디 - 중국에서 진행되던 구단의 프리시즌 도중 모욕적인 2개의 인스타그램 비디오를 올리고 집에 돌아감 - 가 미팅 도중 하품하는 것을 봤을 때 훨씬 더 어두워졌고 이는 결국 엄청난 비난을 불러일으켰다.
불만을 품은 브라질리언 트리오를 완성하기에 앞서 윌리안은 팀에서 자신의 역할이 중요해지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콘테와의 관계가 너무나 악화되어 FA컵 결승전에서 승리한 후 게시한 인스타그램 포스트에서 트로피 이모티콘으로 콘테를 지워버렸다. 이후 윌리안은 자신의 어린 딸이 그의 휴대전화를 가지고 놀다가 했다는 설득력없는 말을 했다.
이에 개의치 않고, 보드진은 만약 콘테가 팀에 남아 마지막 1년을 채우려 한다면 핵심 선수들이 이적을 밀어붙일지도 모른다고 믿었고 이 중에는 윌리안과 다비드 루이즈가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더 우려스러웠던 점은 팀에 스타이자 구단이 30만 파운드의 주급으로 스탬포드 브릿지에 남기고 싶어했던 그들의 슈퍼스타 에당 아자르를 잃을 가능성이었다. 벨기에 선수는 유난히 생기없던 맨체스터 시티 원정에서 패배할 때 가짜 9번으로 뛰라는 요청을 받았는데, 당시 지루와 모라타 모두 벤치에서 이를 지켜보고 있는 중이었다. 그는 최선을 다했지만 어느 시점에서 아자르가 믿음을 잃었다는 것이 드러나고 있었고 경고음이 울리고 있었다.
아마 콘테식 접근법의 강렬함은 머지않아 짜증나게 했을 것이다. 결과가 좋지 못함에 따라 반대의견이 더 쉽게 나옴으로써 한계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뤼디거는 TV 인터뷰에서 팀의 접근법에 의문을 표했고 곧바로 선발명단에서 빠졌다. 라커룸의 주요 인물들은 직전 시즌 첼시가 유럽대항전을 하지 않아서 비어있던 시간들을 유용하게 채웠던 훈련량과 전술 분석량이 훨씬 더 많은 경기를 해야 하는 지금도 줄어들지 않았다는 점에 불만을 표했다.
선수들은 경기 전날 호텔에서 준비를 할 때나 가끔은 경기가 끝난 후 밤을 영원히 함께 보낼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가끔 몇몇 선수들이 실제로 살고 있는 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함께 자기도 했다. 탈출구는 전혀 없었다.
2월 초 비커리지 로드에서 기록한 4-1 패배이자 팀의 시즌 41번째 경기는 최악의 순간처럼 느껴졌다. 직전 시즌 이맘때 즈음에는 29경기를 치렀었고 몇몇 고참 선수들은 결국 화제를 전환할 수 있도록 며칠간의 휴가를 요청했다. 그의 팀이 그 날 경기에서 두려움을 갖고 경기했다고 일갈한 콘테는 선수들이 훨씬 덜 노력하고 있다고 주장했지만 그들이 숨 쉴 구멍을 뚫어줬다.
모두가 콘테와 보드진 사이의 관계가 악화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불확실함이 구단 주위에 스며들었으며 그 불안감이 모두를 갉아먹고 있었다. 티보 쿠르투아는 FA컵 우승 이후 이를 인정했다. 그는 "구단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명확함이 필요하다. 우리는 이번 시즌 이것이 부족했다. 늘 모두를 둘러싼 루머가 있었기에 리그 타이틀을 지켜내는 것이 어려웠다. 경기 전후로 많은 질문을 받게 되고 이는 결국 선수들 전체로 이어진다. 우리는 이를 코밤 안에서 느꼈다. 때때로는 부정적인 스피릿이 있었고 그렇게 되면 스스로 끌어올리는 게 어려워진다."고 말했다.
기자회견에서 보인 콘테의 목소리가 변한 것은 당시 그의 팀이 톱4를 추격할 수 있도록 외부의 것에 집중하지 않게 하려는 것이었지만 이미 때는 지나갔다.
선수들은 시즌이 끝나자마자 감독 교체를 생각했지만 알고 보니 어떠한 발표도 임박한 상태가 아니었다. 월드컵에 출전하고 있던 첼시 선수들은 침묵 속에서 놀라움을 드러냈다. 몇몇 선수들은 이것이 지난해 콘테가 무단결근한 것에 대한 복수가 아닌지 궁금해했지만 사실은 마우리시오 사리를 나폴리로부터 데려오는 협상이 복잡해서 생긴 일에 가깝다.
구단은 또한 또다른 강력한 팀들 - 이탈리아 국가대표팀, 레알 마드리드, PSG, 심지어는 나폴리 - 이 콘테를 데려가기 위해 접근함으로써 깔끔히 이별할 수 있기를 희망했다. 하지만 러시아에서 열리는 월드컵에 모든 초점이 쏠리느라 무력감이 있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콘테가 자신의 계약기간을 지키기 위해 돌아와 프리시즌을 지휘하는 것은 웃음거리가 됐을 것이다.
월드컵에 출전하지 못한 선수들은 일주일 전 7월 7일 돌아와 프리시즌 테스트를 한 후 이틀 후 훈련을 시작할 거라 통보받았을 뿐이다. 콘테는 자신의 선수들이 7월 9일에 돌아오기를 원했지만 선수들이 피지컬 테스트를 위해 코밤에 돌아올 때 그의 사무실에 있었다. 그와 그의 스탭들은 월요일이 되자 각자의 역할을 맡았고 그 주 막판 사리가 합류하자 그는 팀을 떠났고 소송이 시작됐다.
이주 초 콘테는 스탬포드 브릿지로 처음 복귀하는 것에 대한 기대감에 대해 말했고, 그는 그 곳이 언제나 자신의 마음 한 구석에 남아있다고 말했다. 두 소송의 결과를 생각했을 때 그는 유감스러워할 이유가 전혀 없다. 자신에게 처음 프리미어리그를 느낄 기회를 줬고 '감독으로서, 그리고 사람으로서 자신을 많이 발전시켰다'고 스스로 말하는 콘테는 첼시를 극찬하고 있었다. 폭풍이 휘몰아치던 지난 2년간을 돌아보는 그의 말을 들어보면 마지막 12개월에 대한 상처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끝난 방식에 대한 그의 좌절감을 보는 것은 어려웠다.
그는 "한 팀의 감독을 하게 되면 오랫동안 하고 싶어한다. 나는 첼시와 놀라운 2년을 보냈다. 직전 시즌 10위였던 팀을 맡아 리그 우승을 이뤄냈고 2번째 시즌에는 FA컵을 우승했다. 우리는 첼시와 환상적인 일을 해냈지만 때로는 그것으로 충분하지 못할 때가 있다.
구단이 나를 내보내야 한다고 결정한다면 그 결정을 존중해야 한다. 실망하고 좌절할 수 있지만 구단이 내린 결정을 존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존중은 자신의 권리와 입장을 지키려는 단호함 그리고 자신이 마땅히 받아야 할 것을 주장하는 것에 동반되어 나온 것이다.
그렇다면 터치라인에서 보인 콘테의 감정에 한때 기뻐하던 첼시 팬들의 반응은 어떨까? 첼시의 시즌권 소유자 댄 실바는 "나는 그의 첫 번째 시즌과 웨스트햄전이 끝나고 관중석으로 달려든 일 같은 일화들을 절대 잊지 못할 것이다. 그는 친근하고 환상적이었으며 명석했다. 하지만 2번째 시즌은 교통사고와도 같았다.
영입, 시티 원정에서의 퍼포먼스,,,, 그리고 누구든 토트넘으로 가는 사람들은 내게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토트넘은 우리 감독들의 무덤이다.
콘테가 첼시를 떠난 방식은 팬들과의 연결고리를 많이 부쉈을 것이다. 그가 구단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고 그것이 오래 걸렸다는 점도 포함해서 말이다. 리그를 우승했음에도 그는 가장 인기있는 감독이 아니다. 조세 무리뉴처럼 토트넘에 가면 존중받을 권리를 잃게 된다."고 말한다.
다른 사람들은 좀 더 회유적일 것이다. 첼시 팬캐스트의 데런 맨틀은 "그를 향한 모욕이나 욕설이 없을 거라 생각한다. 펩 과르디올라가 이끄는 맨체스터 시티보다 15점 이상 높은 승점으로 시즌을 마무리하는 일이라,,, 나는 그의 업적이 그가 떠난 방식에 가려진 것만 같다. 우리는 정말로 경질을 잘 처리하지 못한다. 구단은 그에게 상황을 매듭지을 1년의 시간을 더 줬어야 한다."고 말한다.
https://theathletic.com/3041634/2022/01/05/antonio-contes-chelsea-sacking-and-the-tribunal-that-ended-in-a-26m-payou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