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0년 6월 부산교육청은 일조권 침해를 받고 있다며 학교법인 동아학숙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가 패소했다.
동아학숙이 부산 서구 부민동에 짓던 12층짜리 도서관 및 기숙사 건물이 바로 옆 부민초등학교의 일조권을 침해하기 때문에 부산지법에 공사 중지를 요구했으나 거절 당했다.
재판부는 “해당 건물이 ‘준주거지역’에 있어 주거지역과 같은 일조권 기준을 적용하기는 어렵다”고 기각 이유를 설명했다. 일조권 논란에도 결국 이 도서관과 기숙사 건물은 예정대로 시공됐다.
그런데 최근 발생한 ‘준주거지역’ 일조권 분쟁에서는 결과가 달랐다. 부산 연제구에서 신축을 추진 중인 주상복합 아파트가 주변 부산검찰청의 일조권을 침해해 생긴 분쟁이다.
이 아파트 사업자는 부산검찰청 인접 주거지에 최고 38층 높이에 734가구를 짓는 사업승인을 연제구청에 냈고, 부산검찰청은 일조권을 침해받는다며 건물 높이를 규제하라고 이의를 제기했다.
사업자는 사업지가 준주거지역이고 관련 건축법에 따라 승인을 추진하는 것이기 때문에 특별히 문제될 것이 없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부산검찰청은 문제를 적극 제기했고 지자체는 국토부에 해결을 요청했다.
국토부는 이 사안에 대한 법령적용을 법제처에 맡겼고 최종적으로 “준주거지역에 공동주택을 건축해도 (주거지역과 같은) 일조권 규정을 적용해야 한다”고 입장을 정리했다.
일조권 규정에 따라 건축허가를 다시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법제처의 새로운 법령해석으로 이 아파트 사업자는 사업추진을 멈추고 층수를 낮춰 건축계획을 다시 짜야 할 상황이 됐다.
“준주거지역 일조권 규제하면 사업 추진 못해”
심각한 것은 법제처의 이 해석이 다른 준주거지역 사업에도 엄청난 파급효과를 미친다는 것이다. 법제처가 해석한 대로 법령이 정비되면 지금까지 일조권을 무시하고 지은 준주거지역의 고층 주상복합 아파트나 오피스텔, 도시형생활주택 등이 모두 불법건축물이 된다.
아울러 현재 준주거지역에서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모든 사업지도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일조권을 고려하고 사업을 추진한 곳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 지역 주변 주민의 소송대란이 불거질 가능성이 크고, 사업자는 건축설계를 다시 해야 하는 등 사업을 재검토해야 하는 상황에까지 처하게 된다.
대한건축사협회에 따르면 준주거지에 사업을 진행하는 곳은 서울에서만 200건 이상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준주거지역은 도시계획법에 의해 주택을 지을 수 있으나 상업 및 업무 기능을 보완할 필요가 있는 곳을 대상으로 정부가 정한다. 정부는 역세권 등을 준주거지역으로 정해 용적률 등 혜택을 주고 상업시설과 업무시설을 많이 짓도록 한다.
이런 준주거지역은 건축법 등 관련법상으로는 일조권 규제 대상이 아닌 것으로 알려져 왔다. 건축법에서 일조권 규제를 언급한 항목은 건축법 61조1항과 61조2항인데 준주거지역이 직접적으로 언급되지는 않는다. 61조1항은 ‘주거전용지역이나 일반주거지역’에 해당하는 내용이, 61조2항에는 ‘일반상업 및 중심상업지역을 제외한 지역의 공동아파트’에 해당하는 규정이 각각 명시돼 있다.
따라서 준주거지역에서 주택사업을 할 때는 사업자는 61조2항에 따라 건축 인허가를 준비했다. 이 법에 따르면 준주거지역 건물은 채광 창문의 직각 방면 대지경계선까지 수평거리의 2배(근린상업•;준주거는 4배) 만큼 건물을 높일 수 있다.
예를 들어 건물 사이 거리가 20m이면, 준주거지역 내 건물은 80m까지 올릴 수 있다.
하지만 이번에 법제처는 준주거지역에서도 건축법 제61조1항을 적용받아야 한다고 해석했다. 보통 ‘정북방향’ 규정으로 불리는 이 규제를 받게 되면 높이 8m이상 건물은 정북 방향 인접 대지경계선에서 건축물 높이 2분의1이상 거리를 두고 지어야 한다.
건물 높이가 60m라면 30m 거리를 두고 건물을 지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이 규정은 주거전용지역이나 일반주거지역에만 적용되는 것이다.
국토부 “일조권 규제 일반주거지역에만 적용하도록 관련법 개정”
따라서 법제처의 이번 법령해석이 준주거지역 전체에 적용된다면 준주거지역 지정 효과는 보기 힘들다. 정부는 상업 및 업무시설을 확대가 필요한 주거지역을 준주거지역으로 지정하고 용적률을 400~500%까지 높이는 등 인센티브를 주고 있다.
하지만 일조권 규제로 용적률을 제대로 쓰기 어렵게 되면 정부의 도시계획 자체도 지장이 생길 우려가 커진다.
일조권종합법률사무소 다민 강문식 실장은 “일조권 제한을 하면 층수가 낮아지면서 준주거지역에서 500%까지 활용할 수 있는 용적률이 300% 밑으로 줄어든다”며 “사업성이 크게 나빠져 사실상 사업을 하지 말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의 이런 여론에 따라 국토부는 즉시 대응에 나섰다. 국토부는 12일 해명자료를 통해 “현재 법제처 법령해석 변경에 대해 전문가 의견을 수렵하고 법제처와 협의중”이라며 “공동주택의 정북방향 일조기준은 전용 일반주거지역에서만 적용하는 내용으로 3월중 입법 예고하는 등 건축법 개정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관련 법령이 개정될 때까지 준주거지역 주상복합 사업은 주춤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박일한[jumpcut@joongang.co.kr] |
2012년 03월 12일 16시 22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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