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추천]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이병률 여행산문집) / 에세이 글귀, 문구
우리는 다양한 목적을 위해 책을 읽는다.
책을 읽는 것이 습관인 사람
책을 정말 좋아하는 사람
활자를 좋아해서 무엇인가 읽는 사람
책을 통해 원하는 정보를 얻고자 하는 사람
책을 읽으면서 어휘를 디벨롭하는 사람 등
정말 다양한 목적과 목표를 갖고 책을 읽는다.
나는 책을 좋아한다.
영화나 드라마처럼 영상으로 정해진 장면이 아닌
글을 읽고 내가 상상하는 그 행위를 좋아한다.
중학생 때 교과서에 수록되어 있는
'위그든씨의 사탕가게'에 묘사되어 있는
가게의 분위기라던가 감초 과자의 맛이라던가
그런 것들을 머릿속으로 그리는게 얼마나 재밌던지.
나는 아마 책을 좋아했던 것 같다.
그 동안 읽은 책들이 꽤 많은데
현생을 사느라 바빠서 (라고 핑계를 대본다)
독서 리뷰 자체를 못했었다.
읽기만 해도 따뜻해지는 책,
혹여나 지금 몸과 마음이 지쳐있다면
위로가 되어줄 책을 소개하려고 한다.
이 책은 여행을 하며 느꼈던 감성적인 사진과
글들로 가득 채워져 있는 여행 에세이다.
페이지마다 그가 생각하고 느꼈던 기록들을
오롯이 담아 냈으며,
길 위에서 쓰고 찍은 사람과 인연,
그리고 사랑의 여행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일단 내가 제일 좋아하는 부분 먼저.
이 책의 재미있는 점은 목차도, 페이지도 없어
순서에 구애받지 않고
원하는 곳을 펼쳐서 읽으면 된다.
당신을 좋아한다는 말-11p
11월과 12월 사이를 좋아합니다.
그건 당신을 좋아한다는 말입니다.
언제였던가요.
덕유산에서 삼 개월을 여행자로 지낸 적이 있는데
매일매일 폭설이었고 나 또한 매일매일 눈사람이었습니다.
그 시간,
나는 모든 것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어요.
인생의 진하디 진한 어떤 예감 같은 거요.
그 후로 나에게 생긴 병이 있다면
눈을 찾아 자주 길을 나선다는 것.
누군 병이라지만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은 병이겠죠.
매일매일 폭설을 기다리다 드디어 폭설을 만났습니다.
요즘 저의 근황을 이야기하자면
매일매일 폭설 중이라는 겁니다.
우리 천 살까지 만나 살까요. 그러면 어떨까요.
이러면 어떨까요. 모두를 던지는 거예요.
그 다음은 그 이후의 모두를 단단히 잠그는 거예요.
삿포로에 갈까요.
하루에 일 미터씩 눈이 내리고 천 일 동안
천 미터의 눈이 쌓여도 우리는 가만히 부둥켜 안고 있을까요.
우리가 선명해지기 위해서라기 보다
모호해지기 위해서 라도 삿포로는 딱이네요.
당신은 단 하나인데 나는 여럿이어서,
당신은 죄가 없고 나는 죄가 여럿인 것까지도
눈 속에 단단히 파묻고 오겠습니다.
삿포로에 갈까요.
이 말은 당신을 좋아한다는 말입니다.
내가 너무 좋아하는 글귀.
당신을 좋아한다는 말을 이렇게나
시적으로 담담하게 써내려 가다니.
나 역시 눈을 참 좋아하는데
그 눈을 사랑하는 이와 함께 보고 있노라면
그렇게 마음이 따뜻해진다.
내리는 눈은 차갑지만,
쌓인 눈은 따뜻한 것처럼
너와 함께 보는 그 눈은 무엇보다 따뜻하다.
이 부분이 너무 좋아서 최근에 필사도 시작했다.
그날의 쓸쓸함 - 5p
청춘은 한 뼘 차이인지도 모른다.
모두 그 한 뼘 차이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 사람과 내가 맞지 않았던 것도.
그 사람과 내가 스치지 못했던 것도...
청춘의 모두는 한 뼘 때문이고
겨우, 그 한 뼘 차이로 인해 결과는 좋지 않기 쉽다.
청춘은 다른 것으로는 안 되는 것이다,
다른 것으로는 대신할 수 없는 것이며
그렇다고 사랑으로도 바꿔 놓을 수 없는 것이다.
사람이 사람에게 '나를 사랑하느냐'고 묻는 건
사랑이 어디론가 숨어 버려서 보이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단지 그걸 만지고 싶어서일 텐데.
그걸 붙들고 놓지 않으려는 게 아니라,
그냥 만지고 싶은 걸 텐데.
갖자는 것도, 삼켜 버리는 것도 아닌,
그냥 만지고 싶은 것.
위 부분은 이별을 맞이한 사람들에게
극 공감을 얻을 수 있는 부분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헤어지기로 했다고 심장이 시켜도
상대방의 입장에서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겠지.
사랑은 둘이 함께 시작하는데,
끝은 왜 혼자서 마무리 짓는걸까.
그렇게 사랑을 시작하고
이별을 맞이하면서 또 강해지는 거겠지.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10p
조금이라도 마음을 위로 받기엔 바람 부는 날이 좋다.
세상 그 어떤 시간보다도,
지금 우리 앞에 있는 시간이 좋다.
희망이라는 요리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두근거릴수록 좋다.
사랑하기에는 조금 가난한 것이 낫고
사랑하기에는 오늘이 다 가기 전이 좋다.
연애는 뭐다? 타이밍이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할 확률은 기적이다.
개인적으로 이리 재고, 저리 재는
흔히들 말하는 간잽이를 좋아하진 않는다.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것인지,
그 사람의 마음을 받아주지 못한다면
확실하게 거절을 하는 것이
나를 품고 있는 사람에게 대한 예의이다.
내가 그린 그림 - 6p
할아버지는 할머니의 나이가 여든둘인지,여든하나인지
잘 모른다고 말하며 웃습니다.
할머니의 나이를 물어서 잘 모른다고 대답했으니
할아버지 당신의 나이를 물었더라도
잘 모른다고 대답했겠지요.
살다보면 그렇게 됩니다.
아무것도 셈하지 않고,
무엇도 바라지 않으며,
있는 그대로를 기쁘게 받아들이는 일.
살다보면 사랑도 그렇게 완성될 겁니다.
우리가 사랑을 하면서 이토록 힘이 드는 건,
행복을 바라기 보다
맨 앞에다 자꾸 사랑을 앞세우기 때문입니다.
기코우에 한번 가보세요.
거참 사랑, 별거 아닌데요, 라는 생각으로,
사랑 그거 참 우아하고도 먼 길이데요, 라는 생각으로
술을 조금은 많이 마시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전적으로 공감한다.
있는 그대로를 기쁘게 받아들이는 일,
사랑 또한 그렇다는 것.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그 사람에게 바라기만 했고
그 사람 또한 나와 같은 마음이길 바랬고.
그렇게 바라기만 하는 관계는 건강한 관계는 아니었음을.
묻고 싶은 게 많아서 -14p
많이 사랑했느냐고 묻고 싶을 때가 있다.
그게 누구였는지 알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만큼을 살았는지, 어땠는지 궁금할 때.
아무도 사랑하지 않아서 터져버릴 것 같은 시간보다
누구를 사랑해서 터져버릴 것 같은 시간이
낫지 않느냐고 묻고 싶다.
불가능한 사랑이어서,하면 안 되는 사랑일수록
그 사랑은 무서운 불꽃으로 연명하게 돼 있지 않은가
누가 내 마음을 몰라주는 답답함 때문이 아니라
누가 내 마음을 알기 때문에
더 외롭고, 목이 마른 이유들을 아느냐고 묻고 싶다.
묻고 싶은 게 많아서 당신이겠다.
나를 지나간
내가 지나간 세상 모든 것들에게
'잘 지내냐'고 묻고 싶어서
당신을 만난 거겠다.
관심가는 사람,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질문이 그렇게 많아진다.
너는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싫어하는지,
취미가 뭔지, 좋아하는 음식은 뭔지
너의 하루 일상이 그렇게 궁금하다.
생각해보면 포와 연애 전에
그렇게 묻고 답을 했었다.
둘이서 12시간동안 놀아도
그렇게 재미있었고 대화가 끊이지 않았다.
묻고 싶은 게 많아서 당신이었나보다.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17p
지금 내 말을 들어줄 사람은 당신밖에 없을 것 같다.
지금 당장 하고 싶은 일 한 가지가 있다면
당신 앞에서 우는 일.
그래도 우리는 이 생에서 한 번은 만나지 않았는가 말이다.
당신을 생각하느라 조금 웃었습니다.-17-1p
내가 앓고 있는 것이 당신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공기라는 생각이 듭니다.
전부라는 생각이 듭니다.
힘들고 지칠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사람,
엉망진창 망가진 모습을 보여줘도
부끄러움이 없는 사람.
그런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황홀한 말 - 27p
말 한마디가 오래 남을 때가 있다.
다른 사람 귀에는 아무 말도 아니게 들릴 수 있을 텐데
뱅그르 뱅그르 내 마음 한가운데로 떨어지는 말.
한마디 말일 뿐인데 진동이 센 말.
그 말이 나를 뚫고 지나가
내 뒤편의 나무에 가서 꽂힐 것 같은 말이.
"우산 가져왔어요?"
그날 밤은 나만이 아니라 세상 사람을 모두가 잠들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 말 때문이었다.
모든 것이 사라져도 떠나지 않고 남아 있는 말,
모두다 빗물에 씻겨도 씻겨 떠내려가지 않을 당신,
그 무렵 그 말이 나에게 얼마나 힘이 되었는지를
당신에게 말하지 못했다.
아무렇지도 않은 말일텐데
나에게 와닿는 말이 있다.
그 말 덕분에 예상치 못한 곳에서
위로를 받게되고, 힘을 얻게된다.
사람은 언제나 예상치 못한 순간을 맞이한다.
조금만 더 내 옆에 있어 달라고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 - 29p
당신이 좋다, 라는 말은 당신의 색깔이 좋다는 말이며,
당신의 색깔로 옮아 가겠다는 말이다.
하지만 당신 색깔이 맘에 들지 않는다, 라는 말을
무의식적으로 했을 경우,
당신과 나는
어느 정도의 거리를 지켜야 하는 사이라는 사실과
내 전부를 보이지 않겠다는
결정을 동시에 통보하는 것이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는 데는 방향이 문제인 적은 있어도
색깔이 문제일 수는 없다 (자주 방향과 색깔이 혼동되는건 사실이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일은 아주 사소한 부분들을 쌓아 가는 것이다.
고로 당신이 좋다, 라는 말은
당신이 무슨 색인지 알고 싶다는 말이며
그 색깔을 나에게 조금이나마 나눠 달라는 말이다.
그 색에 섞이겠다는 말이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우리는 당신 목에 두른 스카프 색깔이
그게 뭐냐고 말하지 않는다.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대상은 색이 없어지고
오히려 지워져 창백해진다.
사랑스럽기 때문이다.
사랑의 감정으로 대상은 참을 수 없이 완벽해지기 때문이다.
내가 어떤 부분 때문에 누군가를 좋아했는데
알고보니 싫어하는 면도 갖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좋아하는 감정이 더 크다면
그것 또한 감수하고 받아들여야지.
당신한테 나는 -39p
사람을 좋아하는 일은 그러네요.
내가 그 사람에게
어떻게 보이느냐의 '상태'를 자꾸자꾸 신경 쓰게 되는 것.
문득 갑자기 찾아오는 거드라구요.
가슴에 쿵 하고 돌 하나를 얹은 기분.
절대로 나는 그렇게 되리라고 생각한 적 없는데
그렇게 되는 거예요.
누군가가 마음에 들어와 있다는 건
전혀 예상하지 않았던 날씨처럼,
문득 기분이 달라지는 것.
갑자기 눈가가 뿌예지는 것.
아무것도 아닌 일에 지진 난 것처럼 흔들리는 것.
진짜 이 문장은 여러번 곱씹고 또 곱씹었다.
갑자기 눈가가 뿌예지는 것.
아무것도 아닌 일에 지진 난 것처럼 흔들리는 것.
누군가를 사랑하는건 그런 것.
한 사람 때문에 힘이 다 빠져나갔을 때 - 52p
그녀가 돌아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얼마 만인지 몰랐다.
얼마 만에 돌아온 것이 문제가 아니라 돌아올 때 혼자였으니
그녀가 사랑을 연명하지 못하고,
완성하지 못하고 돌아온 쪽이었다.
하지만 세상 어디에 완성이 있을까.
그래도 혼자인 것을 잘 견디며,
쓸쓸한 저녁을 잘 이해하고,
밤 불빛을 외로움이 아닌 평화로움으로 받아들이며,
사랑하면서 사는 삶이 무엇인지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그녀는 한때를 완성한 것이 아니겠는가.
헤어질 떄는 무슨 말을 했을까,
떠나올 때 가방은 그가 들어다 주었을까.
그때는 하필이면 저녁이었을까.
익숙해진 만큼만 서로는 울었을까.
세상 끝 어딘가에 사랑이 있어 전속력으로 갔다가
사랑을 거두고 다시 세상의 끝으로 돌아오느라
더 이상 힘이 남아 있지 않은 상태 ~
우리는 그것을 이별이라고 말하지만,
그렇게 하나에 모든 힘을 다 소진했을 때
그것을 또한 사랑이라 부른다.
이 책에서 정의하는 이별의 뜻이 참 멋지다고 생각한다.
한때 누군가를 사랑하면서 그 순간을 완성하고,
이별을 맞이하면서 다시 홀로 미완성을 맞이하는.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 정희와 상원의 얘기가 생각난다.
갑자기 스님이 되어버린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나는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나무도 풀도 동물도 사랑하지만,
나를 사랑할 수 없는 그 사람을 나는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랬던 그녀가 친구들 사이에서 금기어였던
그의 이름을 부르겠다는 그 순간은 어떤 심정이었을까.
그녀와 그는 서로의 한때를 완성했던 것으로 평생을 살아가겠지.
당신이 행복할 것이니 난 미안하지 않습니다 - 55p
누구를 강렬하게 좋아하는 마음이 빨강이라면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도 빨강입니다.
문득 치받쳐 오르는 것도,
그게 그렇게 오래 달라 붙어 있는 것도 빨강입니다.
적어도 사랑은 붉게 오리란 걸 알고 있습니다.
예감은 그런 것 아닌가요.
난데없는 것,
금방이라도 붉게 물들어 버릴 것 같은 것.
사로 잡히는 것.
문득 어느 날 첫눈에 내려도 흰색의 눈발이 아니라
붉은 눈발이 흩뿌릴 것 같은 것.
그렇게 심장의 통증이 시작되는 것.
58p
단 한 번 여행을 떠난 것뿐인데
이토록 지금까지 끝나지 않는 여행도 있는 거라고.
오래도록 여운이 남는 여행이 있다.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영화가 있다.
꽤 긴 시간동안 마음에 남는 사람도 있다.
이 책은 나에게 만남, 사랑, 이별 등
다양한 감정을 느끼게 해준 고마운 책이다.
중간 중간,
토끼와 강아지 등 동물과 관련된 에피소드도 있었지만
그 부분은 혼자 계속 울컥해서 넣지 않았다.
혼자 여러번 곱씹을 예정이다.
지금 마음이 지치거나
이별로 인해 많이 힘들다거나
삶이 퍽퍽해서 어디로 훌쩍 떠나고 싶을 때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를 추천하고 싶다.
한글자 한글자 눌러 담은 이 마음이
당신을 어루만져줄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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