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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2018. 7. 18.
무척이나 덥다. 전 지구가 폭염에 시달리나 보다.
지방농업기술센터에서 문자 왔다.
'폭염에 따른 농업인의 건강, 농작물 및 가축관리에 철저를 기하기 바랍니다'
시골에 있다면 한낮에도 일을 하고 있을 터.
밤 늦게까지 부엌방에서 책을 보고는 늦게 자고, 아침 한나절에서야 일어난 뒤에는 죽을똥 살똥 일할 게다.
땡볕에서, 캄캄할 때까지.
나는 지금 서울에 와 있다.
서울 한양대병원에 간 아내한테서 문자가 왔다.
작은딸이 진통을 시작한다고.
나는 조만간 외할아버지가 될 예정이다.
작은딸 출산을 기다리느냐고 아내와 나는 시골로 내려가지 않았다.
서해안 산골마을의 텃밭. 어떻게 변화되었는지 상상이 안 간다.
건달 농사꾼이기에 텃밭에는 정말로 많은 풀씨가 떨어져서 잡초가 주인행세를 한다.
지난 4월, 5월, 6월 초에 관리기로 밭을 조금 간 뒤에 달래 등 씨앗 뿌리고, 더덕 등은 모종을 심었다.
더덕은 경기도 성남 모란시장에서 식용으로 3만 원어치를 구입해서 텃밭에 옮겨 심었다.
지난해의 두둑에서 저절로 싹 튼 방울토마토 모종도 이식했고...
잡초는 며칠 간만 방심하면 금세 싹이 터서 작물을 억누른다.
성장율이 더딘 작물은 잡초에 치여서 죽고.
내가 건달 농사꾼, 엉터리 농사꾼이라서 작물을 엉망진창으로 잘못 재배를 하기에 진짜 농사꾼이 손가락질을 해도 내 마음은 시골에 가 있다.
시골사람들 정말로 고생을 많이 한다.
내가 사는 서해안 산골마을은 분지형 산골이라서 논밭이 적다. 다랑이 논이 대부분이다. 앞뜰은 1993년도에 농지정리로 조금 번듯하게 정리했지만 산비탈에 있는 밭들은 그 모양새가 제멋대로였다. 이런 지형으로 마을사람은 작은 땅에서 꼬작거리는 농사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농토가 적으니 대형농장을 형성할 수도 없고, 전문적인 농업교육을 이수한 사람도 적었다.
옛방식이 무척이나 남아 있고, 트랙터 등 중장비로 벼농사나 조금 지었다.
예전 그 많았던 촌사람도 거의 다 사라졌고, 지금은 노인네들이나 남아서 소규모 농사를 짓는다.
소규모이고 노인네들은 농업기술원, 농업기술센터에서 지원하는 새로운 농법의 농사를 알지도 못하고, 안다고 해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마을사람의 짓는 농사는 벼농사가 주였다.
오랜 세월동안 객지에서 살았던 내가 귀향했을 때 나는 텃밭농사가 주였다.
내 집을 에워싼 텃밭이기에 나는 늘 밭에서 살았다. 마을중심에서 조금은 외진 곳이기였기에 더욱 그랬다.
나무를 좋아하기에 농가에는 온통 큰 나무들이 에워쌓았다. 은행나무, 목백일홍나무, 감나무, 쭝나무(참죽), 모과나무, 밤나무, 매실나무,.앵두나무, 왕보리수나무 들이 줄줄이 이어지고...
오랜 세월을 대전, 서울 두 곳에서만 살다가 퇴직한 뒤에 귀향한 나는 지방농업기술센터에서, 귀농귀촌반 학생이 되어서 농업교육 100시간을 이수했다. 소소한 교육도 제법 받았다. 또 충남농업기술원에서도 잠깐 교육을 받았다. 내가 수십 년 전인 1950년대, 60년대, 70년대 초에 보았던 농법과는 사뭇 달랐다.
예전에는 일꾼들이 정말로 많았다.
내 집에는 머슴(일꾼아저씨)가 있어서 일꾼아저씨가 이럭저럭 농사를 알아서 지었다.
일꾼아저씨는 구루마를 끌고는 장마다 장으로 나갔다. 구루마에 마을사람의 짐을 실고서...그 싻으로 일꾼을 샀다. 일꾼아저씨가 농사를 짓는다리보다는 마을사람이 거의 다 지었다고 본다.
텃밭 세 자리는 마을아주머니들이 농사 지었고.
그 당시에는 비료, 농약 등이 거의 없었고, 있다고 해도 귀했다.
20 ~ 30명의 일꾼들이 뒷산에서 풀을 베어다 지게로 져 날라서 퇴비장에 쌓았다. 몇 달 뒤에는 풀이 썩어서 두엄이 되었다. 소, 돼지, 닭의 똥을 정말로 소중한 거름이었고, 인분도 그랬다.
소변, 대변을 보는 곳을 똥수깐, 뒷간(칙간)이라고 불렀으며 나중에는 변소깐이라고 불렀다.
나무통으로 된 둥근 소마통에 대고는 오줌을 갈겼고, 뒷간(똥수칸)에서는 똥을 누웠다. 첨벙거리는 똥물에 엉텅이가 적식까봐 조심스럽게 누웠으며, 짚푸라기로 밑을 닦았다.
이런 똥통에는 고자리가 정말로 많았다. 집파리, 쇠파리 등 요즘의 서울 아파트 단지에서 보는 그런 파리가 아닌전혀 이색종 파리였다.
여름철에는 파리의 애벌레인 고자리가 득실거렸다.
소마통으로 퍼서 텃밭에 뿌리면 애벌레들은 마늘, 양파 등의 작물의 실뿌리에 허옇게 달라붙어서 파먹었다. 품질이 아주 뒤떨어지게 마련.
1960년대, 70년대 초에는 비료 공급이 적었다. 논밭 경작 마지기에 따라서 비료가 배분되었지만 머리가 잘 돌아가는 이장은 타동네에 슬쩍 넘겼다. 마을사람한테 분배되어야 할 비료가 타동네로 빼돌린다고?
그랬다. 인간이 사는 곳이면 때와 장소를 가르지 않았고, 상황에 따라서 비열한 행태가 과거에도 있었고, 현재에도 있고, 미래에도 있을 것이다.
비료가 적기에 오줌과 똥은 소중한 거름이 되었다. 그만큼 고자리(애벌레)가 많았고, 성충인 파리떼가 극성했다.
똥수깐, 소마통의 가생이에는 고자리가 허옇게 달라붙어서 꼼지락거리며 위로 위로 오르려고 애를 쓴다.
고자리가 고자리를 덮쳐서 대부분 밑바닥에 떨어지고, 다시 또 기어오르고, 다른 벌레한테 치여서 또 떨어지고...
그러는 과정을 거치면서 뒷깐 똥통 바깥으로 기어나오는데 성공한다. 어렵사리 모두 다 소마통을 벗어난다.
이들의 다툼을 내려다보노라면 왜그리 혐오스럽던지, 무질서 속의 질서였다.
우리 인간세상도 이와 같지 않을까? 서로가 서로를 이기려고 다투지는 않을까?
며칠 전에 2019년도 최저임금에 관한 기사가 연거푸 떴다.
소상공인연합회, 전국편의점가맹점연홥회에서 최저임금 상승율이 많다면서 자기네 직원인 노동자를 해고해야 한다는 뜻으로, 정부 당국에 집단항의하는 사진을 담긴 뉴스가 연거푸 떴다.
최저임금을 받는 노동자들은 개개인이기에 집단(협회)는 없을 터. 이들은 아뭇소리도 못하고.
인터넷 뉴스에서 와글거리는 댓글을 보았다.
수십 년 전 시골 농가 뒷깐 통수깐에서 보았던 고자리떼들을 떠올렸다.
똥통 벽을 기어오르고 경쟁하면서 서로를 밀치고, 떨어뜨리고(최종적으로 다 바깥으로 기어나가지만서도) 탈출에 성공하는 꼬라지를 떠올렸다.
직장에서 벗어난 지가 오래되었으니 나는 개털 수준도 안 된다.
범털이 많은 세상에서, '갑'이 아닌 2등품 3등품, 4등품,. 5등품도 아닌... 열외품/등외품은 또 기가 죽는다.
요즘 날마다 서울 송파구 잠실 석촌호수 서호에 나가서 혼자서 산책한다.
녹음이 우거진 가로수 아래의 길을 걸으면서도 나는 고개를 숙였다. 혹시라도 개미를 밟을까 싶어서. 사실이지 내가 걸으면 숱한 개미를 밟아서 죽일 게다. 그들도 하나의 살아 있는 생명체인데... 다만 나는 걷는 이상 그들을 밟기에 이왕이면 덜 밟으려고 천천히 걷고, 고개를 숙여서 시멘트 도로를 보고 걸었다.
나는 강자가 아닌 약자이기에, 약자 편에 서고 싶기에.
그저께이다.
아파트 베란다에 있는 수돗가, 플라스틱 물그릇을 치우던 아내가 기겁하면서 소리를 내질렀다.
내가 고개를 틀어서 보니 제법 큰 지렁이 한 마리가 그릇 밑에 숨어 있었다. 아내가 수도물을 뿌리자 지렁이는 위기를 느끼고는 마구 꿈틀거리면서 도망치고...
징그럽고 더럽다.
저거 잡어서 죽여? 살려?
갈등하다가는 손으로 집어서 화분 속에 던졌다. 화분 속으로 재빨리 들었다.
서울 23층 아파트 안에서도 사는 지렁이라니...
베란다 위에는 50개 쯤의 화분이 있고,. 화분 흙은 더러는 시골에서 밭흙을 퍼 왔고, 아파트 단지 안에 버린 화분 흙을 손바닥으로 긁어서 가지고 왔기에 흙속에 지렁이의 알이 들어 있다가 성충으로 자랐을 터.
'지렁이는 흙을 먹고는 배설하지. 그 배설물은 식물한테는 유익한 거여. 시골에서는 일부러 지렁이를 키우는데...'
말하면서 나는 시골 농사꾼의 티를 냈다. 엉터리 농사꾼이지만서도.
아내는 아뭇소리도 하지 않았다.
서울 아파트 23층에서 지렁이가 뭐가 그리 필요할까? 더럽고 징그럽고, 또 많은 병균을 지녔을 터인데도 나는 차마 잡아죽이지 못했다. 지렁이가 약자이기에.
나도 그렇다. 약자라고 해서 모든 동식물을 배려하고 보호해 주는 것은 아니다.
간밤에 인터넷 뉴스를 보니 시골집 앞에서 말벌에 쏘여서 예순한 살의 중노인이 호흡장애로 죽었다.
지난해 늦가을 내 텃밭 가생이로 자꾸만 번지는 시누대(이웃집에서 울타리로 재배) 근처의 풀을 예초기로 자르려는 순간에 말벌집을 발견했다.
바로 코앞에서. 붕붕거리는 떼거리들.
내가 무심코 예초기를 댔더라면 벌떼들이...
수십 년 전, 말벌한테 쏘여서 시골에서 올라와 서울아산병원(강동구 풍납동)에서 치료을 받았던 경험이 있기에 벌이라면 지금도 겁을 낸다.
시골에서 살자면, 시골에서 농사를 짓자면 늘 야생동물과 야생곤충의 위험에 생명이 왔다갔다를 한다.
인터넷 뉴스를 보니까 뜨거운 땡볕에서 밭을 매던 할머니가 현장에서 죽었다고 한다.
아니 왜 폭염 속에서 풀을 매느냐고?
그래보았자 농작물 가격은 똥값인데, 대도시소비자한테는 푼전인데...
어제는 초복(7월 17일).
아내가 닭튀김을 사왔다.
'저거 얼마짜리여?'
아내가 무어라고 대답했다. 너무나 싸서 내 귀를 의심했다.
'저엉 못 믿겠으면 나중에 나랑 시장에 가요. 직접 확인해 보세요'라고 아내는 덧붙였다.
퇴직한 지가 오래된 탓으로 주머니가 자꾸만 비어가는 나는 저절로 짠돌이로 변하고 있기에 별미로 먹는 음식을 그다지 달가워하지 않는다. 이런 남편의 성깔을 아는 아내가 어쩌면 내게 값을 제대로 알려주지 않았을까?
아내의 표정으로는 거짓이라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아내의 말이 사실이라면? 나는 욕부터 하고 싶다. 도대체 닭은 키우는 양계장 축산업자는 돈 얼마를 버는 거여? 닭을 잡아서 털을 뽑고, 내장 발라내고... 기름에 튀겨서 단맛이 나는 재료를 묻히고...하는 일련의 과정 모두가 노력이며, 돈인데...
최종소비자인 내가 입을 딱 벌릴 만큼 싼 가격이라면?
농산물, 축산물, 어류 등의 먹을거리, 유통은 결국에는 돈 많은 도시소비자를 위한 거여?
축산업자, 유통업자, 가공업자, 판매상인(장사꾼)은 도대체 어떻게 돈 벌고, 어떻게 살라고?
결론은 돈 많은 자들을 위한 사회구조인가 싶다.
농촌에 주소지를 둔 나로서는 화가 난다.
사회 약자인 농축어업인들의 실정을 조금은 짐작하기에...
농촌사람들의 수명은 도시사람보다 5년 정도 짧다고 한다. 사실여부의 진위는 모르겠지만 내 경험으로는 맞을 것 같다.
도시도 마찬가지일 게다. 푼돈을 벌어야 하는 사회적 약자들이 무척이나 안타깝다.
가진 자들은 집단행동을 해서 자기네의 욕구를 강요한다지만 '덜 가진 자, 못 가진 자'들이 혼자서 따져봐야 아무런 효과도 없고, 욕만 바가지로 얻어쳐먹는다.
역사 이래로.
간밤 인터넷 뉴스를 보았다.
2019년 최저임금이 과다하게 많이 올랐다면서 최저임금 노동자의 고용이 타격받는다면서 아파트 경비원을 예로 들었다. 아파트 경비원들이 잘릴까봐 걱정한다고 했다.
내가 보기에는 경비원들은 대체로 나이 많다. 돈을 벌어야만 생계를 이끌어 갈 수 있기에 노동자로써 일한다. 그들이 마음 편하게 일하고, 또 쉴 수 있도록 배려해 주면 안 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경비원 한 두 명을 자르면 돈이 얼마쯤 절약되는 것일까? 잘리지 않은 아파트 노동자인 경비원들은 그만큼 일이 더 해야 한다는 뜻이다.
임금상승에 따른 경비가 추가로 부담되면 아파트 전체 주민이 조금만 더 부담하면 되지 않을까?
내가 보기에는 적은 비용에 불과한데...
아직도 시골정서가 남은 나한테는 고개가 가우뚱해진다.
아파트 계단을 청소하는 할머니. 아마 80살 쯤 된 것 같다.
나는 먼저 고개 숙이고는 '고맙습니다. 매우 건강하시군요. 노인은 일하면 더욱 건강해져요. 집안에 가만히 있으면 몸이 더 약해져요. 아주머니, 힘들어도 일하는 게 재미있다고 마음 잡수세요. 쉬엄 쉬엄 일하고요. 슬쩍 쉬시고요.'
내가 이렇게 말해도 그 할머니는 근력껏 힘껏 청소할 게다.
체구가 무척이나 작은 할머니. 계단을 오르내리면서 물걸레질하고 청소하려면 얼마나 힘이 들까? 자존심도 상하고...
빈말이라도 해서 달래드리고 싶다. 마음이라도 그분들을 따뜻하게 대했으면 싶다.
그렇고 보니 나는 정말로 인생 잘못 살았다는 느낌이다.
약자를 위한다면 대갈통이 뽀개지는 한 대들어야 하는데도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강자의 편에 선 것도 아니고.
1987년 봄. 서울 시내 중구, 종로구에서는 경찰대와 시민들이 박터지게 싸웠다.
체루탄이 난무하고.
그 당시 체루탄 제조판매 회사의 여사장 한영자는 그해 납세순위 1위였다.
경찰이 얼마나 많은 체루탄을 쏘아댔기에 그해 납세 순위가 1등이라고?
그때 어떤 공안검사하고 나하고 전화로 다퉜다. 경찰이 밀리니까 소총이 아닌 기관총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했기에.
세상에나. 그는 소총과 기관총의 성능을 몰랐나? 그 당시 소총은 방아쇠 한 번 당기면 한 발이 나가지만 기관총은 수십 발이 한꺼번에 나간다. 그거 누가 누구한테 겨누려고?
가진 자들이 더욱 욕심 사납고, 교활하고, 잔인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지금은 2018년. 세상은 많이 달라졌을까? 세상이 많이 바꿨을까?
일흔한 살인 내가 보기에는 아직도 현재진형형이다. 형태만 다룰 뿐.
요즘 세상 많이 바뀌고 있더라. 좋은 징조이기도 하고. 자꾸만 나아지겠지.
수십 년 전 시골 뒷깐(똥수깐)에서 보았던 고자리때들이 아직도 남아 있는 세상이다.
남보다 앞서려면 남을 밀어서 떨어뜨려야 하는 심성은 그때나 지금이나 별 차이가 없다. 단지 방법이 더욱 교활해졌다는 것만 빼놓고는...
일전 어느 사람이 '자유민주주의'라는 용어를 썼다.
나는 그게 무슨 말인지 알어? 하고 물을 뻔했다.
일전 어떤 사람이 남북관계를 언급하면서 '주적'이란 단어를 썼다.
나는 그게 무슨 뜻인지를 알어? 하고 물을 뻔했다.
국방장관 중에 김... 이라는 분이 있다. '주적'에 관한 말을 했다가 임기가 무척이나 짧았다.
말을 왜곡시키는 게 정치계였기에. 적과 아군이 뚜렷한 집단이기에. 귀에 걸면 귀거리, 코에 걸면 코거리가 되는 세상이기에.
나는 이런 용어에는 그냥 빙그레 웃는다.
서기 210년 대의 시대배경인 삼국지 소설책.
장비, 조자룡, 관우, 여포 등의 맹장들은 창과 장검을 휘둘러서 전투했다. 엄청나게 무서운 장수들이었다.
이 분들이 2018년 지금에서 전장터에 나온다면?
낄낄이 수준일 게다. 보이지 않은 곳에서 총 겨누고 방아쇠를 당기면 그뿐. 아무런 총소리도 나지 않는다. 가깝게는 500m, 멀리는 1km에서 저격하는 세상이기에.
이따금 성남 모란시장에 가면 한 구석에서 품바들이 괴상한 형태의 옷을 분장하면서 북치고 소리를 내지른다.
와글와글, 시끌시끌거리는 장터에서는 품바 춤을 추는 사람이 좌중을 휘어잡는다.
그들이 최고의 권력자가 되어서, 힘이 있는 갑이었다.
사이버 세상에서는 더욱 그렇고.
몇 해 전의 일이다.
회원 15만 명 쯤 되는 농업 카페에서 신참인 나.
어떤 회원이 어떤 회원하고 다투기에 잘못하면 누군가가 제명될 것 같아서 내가 중립적인 댓글을 달았다.
결과는 어떤 회원은 삭제되고 나는 강등조치되어서 접근 금지 당했다.
얼마 뒤에 우연히 들어갔더니만 신분이 원위치로 회복되었다.
또 어떤 분이 어떤 회원하고 국내정치 문제로 다투고, 제명된다는 경고문을 보았다. 나는 두 분 모두 살아나는 방향으로 댓글 달았다.
잠깐 뒤에 '당신의 글 몇 시간 이내로 퍼 가세요. 회원 삭제됩니다'라는 문자가 떴다.
세상에나. 내가 댓글 단 분이 카페지기일 줄이야.
절대권력자한테 댓글 잘못 단 죄로 나는 강퇴당했고 지금도 접근할 수 없다.
내가 되살아나려면 카페 모임에 나가서 카페지기나 운영진한테 이렇고 저렇고를 변명해야 한다.
내 진의는 그게 아니였다고...
내가 무척이나 좋아하고, 필요로 했던 카페인데도 아쉬움만 남는다. 왜 남의 싸움에 말리려고 했는지.
'진정성'이 왜곡되는 세상에서...
예전 직장에 다닐 때라면 그렇게 쉽게 임의로 제명당하지 않았을 터.
회사가 개인의 것이 아니기에.
민간사회에서는 그들이 정말로 무섭다. 그들은 최상의 갑이기에. 반항하면 죽음이기에.
서해안 촌사람이 된 나는 푸성귀나 뜯어먹는 풀벌레 수준이기에 아무런 힘이 없는 나를 알쩐하게 내려다본다.
그려유, 나는 빙신, 머저리, 쪼다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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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딸이 서울 한양대병원에 입원해서 출산 예정이란다.
오늘 오후에 입원했으니 오늘이나 내일이면 첫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겠다.
어렵살이 첫아이를 갖는 작은딸.
그간의 속상함이 보상받았으면 한다.
이태 전 유산한 아픔이 있기에 이번에는 무탈했으면 싶다.
나는 외할아버지가 되려고, 지금 서울 송파구 잠실에서 핸드폰 벨소리가 들리기를 기다리며
이런 잡글을 다다닥한다.
이 짓이라도 해야 기다리는 시간이 빨리 지나갈 것 같기에.
아내와 작은딸이 한양대병원으로 가기 전에 내가 문자 보냈다.
'내가 도와 줄 일이 없어?'
'대신 아기 낳아 주실려고요? ~ㅋㅋ'
할아버지가 대신 낳아주는 세상인가?
아내의 대꾸에 나는 잠깐 멍청해지로 했다.
이런 문자를 보냈던 아내인데도, 병원 간 지가 두 시간 반이 넘었을데도 아직껏 소식이 없다.
신생아의 생일이 오늘인 7월 18일까, 내일인 19일까?
그냥 기다리는 수밖에.
다다닥한 잡글 길이가 많으면 미움받는다.
남한테 보여주는 글이 아니고, 나 자신을 위로하려고 다다닥 한다.
첫댓글 참 ..다시돌아가시면 갑갑하시겠어요. 잡풀은 시간날때마다 뽑아줘야 그나마 들힘든데. 어찌하리 풀과의 전쟁이 곳 시작될텐데 ㅎㅎㅎ
서울가시면 시골은 잊으셔야 합니다 맘쓰여서. 암것도 못하잖아요 ㅎㅎ
예.
텅 빈 마을이고, 텅 빈 시골집입니다.
이야기를 나눌 만한 사람도 없지요. 삶의 방식이 전혀 다르니까요.
더군다나 제 시골집은 텅 빈 집. 아내가 따라간다지만 그게 며칠이나 되겠어요? 일주일 길어보았자 이주일 이내이지요.
가면 그만큼 힘이 드니깡요. 벌레 정말로 많습니다. 금방이면 살갗이 타며,...
일전 아내는 잠실새마을시장에서 들깨 한 단을 사오고는 안타까워 하대요. 그 많은 들깻잎이 단 돈 5,000원!
소비자인 아내도, 나도 입을 딱 벌렸지요. 농사 짓는 사람은 얼마나 받아야 한대요? 최종소비자인 서울사람인 아내가 안타까워 하는 가격인 것을...
어제 닭튀김을 사왔는데 내가 몇 차례나 물었었지요. 그게 얼마짜리여?
@곰내 너무나 값이 싸대요.
소비자인 내가 화가 날 지경이대요.
도시 소비자들은 농산물, 축산물, 어물 가격이 쌀수록 좋겠지요.
그런데 생산자는요?
우리나라에는 천민자본주의가 팽배했네요.
답답해서 이런 잡글을 다다닥하고 있네요.
@곰내 그러게 말입니다.
농사지어서 먹고사는게 쉬운일아니지요
해서 정부에서 많은해택을 부여하는거 아닐까요 ㅎㅎ수고하세요
@지존. 그래요. 제가 늘 비꼬지요.
얻어먹고 사는 사람들이라고요.
의료비 반액, 세금 반액, 농자대 보조받고, 비료, 유류(농기계용) 면세받고,... 받고. 또 받고...
앗.. 이래서 지지표가 몰표되는군요!
잘 보았습니다.
예.
님의 닉네임이 곱군요.
우린 떵뚜깐이라 했는디유ㅎ
벌레 그까이꺼
촌에 살아보니 살아집디다만
아쉬운건 딱! 하나
교촌 배달이 안 되네유ㅠ
시골 옛말이 무척이나 투박하지요.
하도 점잖은 체하는 세상이라서..
위와 같은 말을 쓰는 제가 오늘은 경박/천박하네요
따님이 순산하여
할아버지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예. 댓글이 이쁩니다.
제가 외할아버지가 되면... 저는 또 뒤로 물러나 앉아야겠지요.
그래도 좋지요. 하나의 '끈', '인연'이 이어기기에...
저는 자꾸만 뒤로 밀려나고, 사라지고, 잊혀지더라도 그게 소망이며, 희망이며, 바람이지요.
작은 따님 순산을 기다리시느라 시골도 못 내려가시고 글만 쓰고 계시니
이러다간 잡초는 우거지고 잡초밭 주인은 책한권 내겠습니다.
손주를 언제까지 봐 주시기로 하셨는지 이러시다가
가을이 성큼 다가오겠습니다.
제 마음이 다 급해집니다.
유실수에 때 맞춰 달리는 과일도 따셔야 하고
농작물 가꾸기도 산너머 산인데.
우짜지요.
텃밭 세 자리.. 농사..
저는 건달농사꾼, 엉터리농사꾼이기에 제가 농사를 잘 지으면 안되지요.
농사는 전업농사꾼(임업 축산 등 1차산업종사자 모두)이 잘 지어서 팔아야 하고,
저같은 엉터리들은 재미로, 취미로 농자 짓는 체를 해야지요. 진짜 농사꾼이 잘 지은 농산물을 사 먹어야 하지요.
도시농사꾼, 건달농사꾼이 농사 잘 지으면 농어산촌에서 일하는 분들이 정말로 힘이 들어요.
그들은 농작물을 지어서 팔야야만 돈 벌고, 그 돈으로 다시 농사 지을 채배를 해야 하니까요.
도시인들보다 수익이 2/3수준인게 농촌의 현실이지요.
댓글 고맙습니다.
이런 댓글 달면 미움받을까요?
곰내님 텃밭에 뱀이 숨어 들어와 있을거 같아요.
아구~ 무시라~~
따님의 순산을 기원합니다~~^^
예. 뱀 가운데 맹독사인 율무기가 늘 살지요. 야산과 연계가 되는 길목이라서...
1969년 여름방학 때 22살인 작은쌍둥이는 시골집 울안에서 뱀 물려서 22시간 만에 죽었지요.
형인 나는 아직껏 사네요. 어떤 해에는 뱀을 서너 마리씩 잡고요. 뱀 몸뚱이가 붉은 반점이 있지요.
시골생활은 낭만이 아니지요.
장화 신고, 긴 옷 입고, 모자 쓰고, 장갑 끼고. 손에는 늘 삽을 지니면서 일하지요.
왕탱이, 말벌도 무섭고요.
뱀을 번식시켜서 자연에 풀어놔주는 사람도 있대요.
생태계를 지킨다면서요.
항상 시골가서 울 아들하고 조용히 살고 싶은 로망인데~~
벌레 많고 ~~ㅎ
시골 사는게 걍 사는게 아니네요~~
딸래미 순산하여 이뿐손주보시면 자랑글 많이 올 려주세요~~
예.
시골생활은 여러 종류이지요.
귀농 : 농사 지어서 돈 버느 것.
귀촌 : 농사 지어서 돈 버는 것보다는 생활하는 것 위주
전원 : 농사 지어 돈 버는 게 아니고 생활하는 것
귀향 : 옛고향으로 되돌아가는 것, 귀농일 수도 있고, 전원생활일 수도 있지요.
농촌생활은 하루라도 더 젊었을 때... 늙어서 들어가면 매사가 다 돈이어요. 불편한 거 엄청나게 많아요.
서울은 전철 몇 분마다 도착하지요. 무료이고요... 시골에서는 자가용없이 버스 기다린다? 어느 세월에?
아프면 병원... 그게 구멍가게 수준이지 어디.. 큰 병원에 가려면요? 다 돈이어유.
돈 없이면 도시가 더 나아유.
근데 다다닥~~단어를 자주 쓰십니다..
그거 제껀데요..ㅋ
(글 중간에 오타가 있습니다.
체류탄. >>> 최루탄.)
다다닥이 님의 것이군요.
알았어요. 다음부터는 다다다닥 할 게요.
님 고맙습니다. 빠르게 자판 두둘리면 오탈자가 많이 나와요. 이렇게 지적해 주시면 저는 정말로 고맙지요.
제가 모르는 것도 새롭게 배울 수 있으니까요.
정말로 고맙습니다. 꾸벅꾸벅. 얼른 고치겠습니다.
이런 잡글... 제대로 쓰려면/책에 내려면 아마 60번도 더 고쳐야 하지요.
나중에는 구토할 만큼 짜증이 나도록 고쳐도 여전히 잘못된 곳이 나타나대요.
위 잡글 앞뒤 순서도 없이 그냥 다다다닥 수준...
@곰내 다다닥 얘기는 농담이구요.
오타는 누구에게나 있지요.
그러니 정식 출간 하려면 수십번은 교정보는
것이구요.
혹시나 지적질로 오해받을까봐
말을 안하는 것이고
막상 이런 말하는 저도 오타 많습니다.
@다다닥 님의 댓글 빙그레 웃습니다.
지적질?
아닌데요. 저한테는 무척이나 고맙지요. 잘못과 실수를 깨달을 수 있기에.
자기 잘못을 보이지 않거나 보여도 우기고 떼 쓰는 게 인간심리이지요.
저는 늘 배우려는 자세로 가리키고, 가르쳐주는 것을 고마워하지요.
오타, 잘못된 표현, 본인도 모르는 편견이야 숱하지요.
누군가가 살짝 바르게 잡아주면 고마웁지요.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예.
어제 점심 뒤에 병원 갔는데도 하룻밤을 지낸 오늘 아침(09 : 30)까지도 소식 없네요.
고맙습니다. 따뜻한 댓글에 꾸벅꾸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