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1일 하느님의 바람
“자식을 많이 낳고 번성하여 땅을 가득 채우고 지배하여라. 그리고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을 기어다니는 온갖 생물을 다스려라. … 이제 내가 온 땅 위에서 씨를 맺는 모든 풀과 씨 있는 모든 과일나무를 너희에게 준다. 이것이 너희의 양식이 될 것이다(창세 1,28-29).” 하느님이 사람에게 처음으로 하신 말씀이다. 하느님은 사람을 ‘너희’라고 부르셨다. 사람은 하느님과 대화하고 하느님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유일한 피조물이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어땠는지 모르지만 나는 강아지나 고양이와 속 깊은 대화를 할 수 없어서 그들도 하느님과 소통하고 관계 맺는지 모른다.
성경 첫 구절은 이렇게 시작된다. “한처음에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창세 1,1).” 이를 두고 어떤 사람은 ‘온 우주는 하느님으로 가득 차 있다.’라고 말한다. 이 지구 땅 위에서 사는 한 공기가 없어지는 걸 걱정하는 사람은 없다. 지극히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사실이라서 애써 믿을 필요가 없는 거처럼 이 땅의 모든 생물에게 하느님 현존은 그런 것이다. 그런데 하느님과 ‘너와 나’라는 2인칭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인 사람만이 그걸 애써서 믿어야 한다. 아마 강아지와 고양이에게 하느님 현존은 지극히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거라서 찾아오는 노화를 걱정하거나 슬퍼하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건지도 모르겠다.
사람은 하느님을 대신해서 모든 피조물을 다스려야 할 책무를 받았다. 사람만이 아니라 다른 피조물을 부모처럼 보살피고 하느님 마음으로 사랑해야 한다. 그런데 사람은 다른 사람을 또 다른 피조물을 왜 그렇게 모질게 대하는지 모르겠다. 하느님 뜻을 거스르려는 죄스러움이 우리 안에 있기 때문일까? 죄로 아버지 하느님을 두려워하게 됐는데, 그 두려움은 불안으로, 불안은 다시 폭력으로 변한 건 아닐지 모르겠다. 그래서 사람을 의심하고 자연을 착취하게 됐나 보다.
하느님은 예수님을 통해서 이 모든 잘못된 관계를 바로잡으신다. 그분은 우리 죄를 없애시는 속죄(贖罪)의 어린양이시다. 하느님을 거부하는 죄를 당신 몸에 지니고 십자가 위에서 불살라 없애셨다. 하느님께 바쳐지는 번제물처럼 말이다. 이를 알고 믿고 또 세례성사를 통해 예수님의 형제자매가 된 우리 그리스도인은 서로 사랑한다. 하느님의 자녀인 우리, 참된 그리스도인이 나타나기를 애타게 기다리는 모든 피조물을 친절하게 사랑스럽게 대한다(로마 8,19). 모든 피조물에는 하느님의 사랑과 그분의 뜻이 들어 있음을 기억한다. 서로 사랑하는 게 하느님의 뜻이고 간절한 바람이다.
예수님, 주님 말씀과 행적을 통해서 하느님 아버지 마음을 배웁니다. 본래 하느님은 두려워하거나 애써 믿을 필요 없는 분입니다. 주님은 법정에서 저의 변호사처럼 제게 가까운 분이니 주님께 제 모든 걸 다 말씀드리겠습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안고 계신 아드님 마음을 제게 전해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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