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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글 코너 스크랩 수필 청계천의 봄
황종원(중앙대) 추천 0 조회 51 11.04.18 19:51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문득 부르는 소리, 친구다. 그를 만나 한 잔 걸친 점심을 먹었다.
앞으로 이야기 보다 지난 이야기에 목이 메니 어찌 한 잔 술로 씻기랴.
저마다 갈 길이 달라 헤어진다.
나는 나선 김에 청계천으로 향한다.
천둥 번개 친다던 하늘엔 보슬비 보슬 보슬.
청계천 물은 찰랑 찰랑 봄봄.
청계천의 시원을 따라 잠시 보고 나는 모전교 방향으로 간다.
한낮이건만 내가 걷는 추억의 길은 밤의 어둠이다.
그립고 안타까운 밤, 웬지 서럽고 시리던 청춘의 밤. 

어느 날 써 놓은 글의 감정에 나는 늘 매여있다.
세월이 더해가면 갈수록.

 

 

 

청계천이 흐른다.

꽃잎이 흐른다.

봄날이 흐른다.

 


      

 

 

 

청계천이 시작하는 위치에 조형물 '스프링'

 

 

조형물에 대한 안내

 

 

여기서 청계천 물이 흐른하는 상징인 듯하나 사실 물의 시원은 광화문 이순신 장군 동상 앞이 보이는 바닥에 시원을 해 놓았다.

 

물이 흘러 청계천으로 흐른다.

 

이 길을 따라 가면 청계천 둔치로..

 

물 좔좔 봄봄.

 

폭포수를 내려다 보는 위치.

 

 

폭포 부근은 젖어서 조심 조심.

 

폭포를 거리를 두고 바라보니 시원타~

 

 

이렇게 오손 도손 걸을 수 있으니 행복. 

 

모전교 표지로서 아래 사진 오른쪽이 모전교(모전다리의 다리부분)

 

 

임립한 건물 사이로 계천이 흐르다니..

 

흐르는 물위에 떠있는 꽃잎은 누구의 일편단심이냐.

 

징검다리너머 아득한 곳, 봄은 거기도.

 

 

징검다리 보이는 상부에서 내려다 보면..

 

다시 길을 간다. 바쁠 일이 무언가.

 

나무 길도 있고..

 

간단한 가교도 있으며,

 

안내 표지도 있다.

 

흘러 흘러 간다. 인생인양, 세월인양.

 

 

그 물을 내려다 보고,

 

 

광교 위에서 내려다 보고

 

너희는 이름이 뭐냐. 물으면 봄봄이란다.

 

현대적 철다리가 좀 건방지고.

 

 

다리 사이에 전시장이 있다. 아싸.

 

꾸물대는 날씨, 손이 시렵고 오한이 난다. 나는 길을 접는다.

 

 

 

다리 위에 이런 표지

 

안내도를 보면 더 가고 싶고.

여기가 바로 광교.

 

 

청계 고가도로가 사라졌다. 퇴계로4가에서 종로 4가까지 걸져진 세운상가도 이제 사라진단다.

그 길을 뛰며 달리던 유년과 소년의 추억이 떠오른다. 

밤이 내린다. 가로등 불빛에 그리운 사람 그리운 시절 그리운 길이 있다. 서울내기에게 갈 곳이 없는 비애는 슬픔처럼 고여 있다. 고향을 떠난 이에게 고향이 부르듯, 이 밤에 나를 부르는 소리 있어 집을 나선다. 청계천의 밤으로 가로등 불빛 따라 나선다.

 


길 따라 사춘기 기억이 조각조각 떠오른다. 청계천의 밤은 두려웠다. 골목에는 왁자지껄 웃음소리. 골목에는 우당탕탕 싸움 소리. 웃고 싸우던 청계천이었다.

세운상가가 있기 전에 골목길에는 화장발 진한 누나들이 형들과 아저씨들의 소매를 잡는 밤이 있었다. 소년인 나는 거들 떠 보지 않던 누나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 것일까.

 


여름철 찌는 더위에 문 마다 열린 집 집 마다 내 아버지 같은 아저씨와 내 어머니 같은 아줌마와 내 또래의 계집아이가 있었다. 개천이면서 물소리는 어둠에 묶여 소리 소문 없이 흐르고 달빛도 물위에서 조심스럽게 건넜다.

 


청계천의 판잣집들은 청계천에 나무 말뚝을 박고 허공에 떠있었다. 청계천 양쪽 집들 사이 하늘에는 별들이 주머니 칼날이 카바이드 불빛에 날카롭게 번쩍이듯 장마철에 물에 잠긴 청계천으로 꽂혀 내리곤 했다.

 


내 기억의 한쪽이 무너진다. 소년의 판잣집이 사라지면서 세운상가가 들어서고 갑자기 청계천위에 아스팔트가 깔린다. 그 위를 고가도로가 도시의 복판을 차지한다. 청계 고가를 달리다 보면 내려다보이는 청계천변의 건물과 옥상위에 갖가지 잡동사니들이 떠오른다. 삼일 아파트가 새로 세워지며 기구한 여인의 운명처럼 늙어가는 모습이 시시각각 변하던 세월이 지나간다.

 


나의 소년 청년 장년이 걷던 길이다. 청계천을 사이에 두고 건물들의 불빛이 사방 천지에 가득하다. 다리 아래 흐르는 물빛이 잉크색으로 보석같이 흐른다. 세월 나그네가 되어 나는 청계천 불빛 마당에 들어선다. 거기서 나는 소년과 청년, 장년을 만난다.

 


동아일보사 옆 청계광장에서 청계천의 물이 발원하는 샘을 지나면 추억 속에 청계천이 떠오른다. 청계천 양쪽에 머리를 맞대고 있는 판잣집들이 처마를 맛댄 골목을 요리 조리 가다가 막다른 길에 서면 중학생인 나는 가끔 슬펐다. 헤어나지 못할 가난을 의복처럼 걸친 어린 나에게 청계천을 슬픈 개울이며 다시 깨끗해질 수 없는 구정물이었다.

 


을지로 6가 오관수교 앞에 있는 덕수상고가 있었다. 내가 중학교에서 고등학교까지 6년을 다니며 머리통이 굵어지는 동안 청계천은 뚜껑이 덮이고 오관수교까지 덮여있었다. 오관수교 골목에 밤이 환절기 감기처럼 내렸다. 학교를 파하고 돌아가는 우리를 막는 젊은 것들이 밤마다 있었다. 어린 논다니들이 교모를 빼앗고 골목을 깔깔대며 달렸다.

 


"나 잡으면 용치."

 


까까머리 고학년들은 모자를 다시 채가지고 오기도 했다.

 


학교 옆 헌책방에서 우리들 중 더러는-물론 나도 그 축에 낀다― 집에서 새 책 값을 받아 헌책을 사서 나머지는 삥땅을 치곤했다. 한 학기에 한 번씩이니 비자금을 그때나 만들었다.

 


밤이 되면 오관수교 다리 위에 한겨울에도 동동 떨며 사진 좌판을 지키는 아줌마가 있었다. 좌판에는 엄앵란과 태현실과 신성일의 사진이 녹슨 상철처럼 매달려있다. 그 아줌마에게 은밀하게 다가가는 까까머리들은 엄앵란, 태현실, 신성일의 사진을 달라고 했던가.

 


을지로 4가에서 퇴계로 4가까지는 예관동과 인현동이 이어졌다. 인현동은 이순신 장군이 어린 시절 병정놀이를 하시던 터였다. 을지로 4가에서 청계천의 판잣집을 지나고 또 지나고 하다보면 종로의 우미관이나 화신백화점으로 이어지는 길이었다. 나는 노는 날이면 그 길을 아득한 나그네 길처럼 다녔다. 우미관은 재개봉 영화관이었고, 화신 백화 점안에 있는 화신영화관은 동시 상영관이었다. 갈 곳 없으며 공부하라는 독촉을 받는 일이 없는 소년이 갈 곳은 영화관뿐이었다. 집이 길가 가겟집이라 극장에서 포스터를 붙이고는 공짜표 한 장씩을 주면 바로 내 차지였다.

 


거리의 자식처럼 버려진 듯 크던 우리 또래들을 그렇게 자랐다. 청계천의 시궁창 냄새는 우리의 가난과 청춘의 냄새이며 기약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한 슬픈 조짐이었다. 아침에는 밥 한 공기 입에 달고, 점심때는 성당에서 나누어주던 강냉이 가루 빵으로, 저녁에는 콩나물죽으로 때웠던 청춘시절은 청계천처럼 가난했다. 나는 굴복하며 쓰러지며 살아왔더냐.

 


아니다. 이어지는 삶이 아무리 어려워도 청계천 냄새 보다는 향기로웠다. 청계천의 판잣집보다 나아졌고, 나의 청춘 시절에 청계천 목로주점의 작부가 젓가락 장단으로 부르는 노래보다 신바람 났다. 살아가는 인생이 어디 봄만 있더냐. 여름의 수고와 가을의 가을걷이가 있지 않더냐. 그러기에 인생의 겨울을 이렇게 새롭게 태어난 청계천을 볼 수가 있으니.

 


이제 광화문 교보에서 책구경하고 나서 청진동에 가서 해장국에 막걸리 몇 잔 걸치고  청계천으로 내려가야겠다. 그동안 서울 나그네는 갈 곳이 몰라 아득했다. 이제 봄이면 봄이라서 좋고, 여름이면 여름이라 명랑하며, 가을이면 가을 남자 되고, 겨울이면 필시 아이들이 스케이트와 썰매가 청계천 위에 가득하리니 이 아니 좋으냐.

 


청춘의 시절 말고 이제 다시 추억을 만들어 갈 수 있으니 세상 한 번 살만하다. 새로운 청춘들은 청계천 모전교를 나중에 추억하는 청계천이 되리니. 기쁘고 슬픈 사랑이 청계천 아래 물처럼 흐를 것이다. 내가 이렇게 청계천을 지나 잠시 오간수교 위에 서듯, 청계천을 추억 하듯이 또 다른 누구도 훗날이 오면 또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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