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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하촌 - 김정한
1
타작마당 돌가루 바닥같이 딱딱하게 말라붙은 뜰 한가운데, 어디서 기어들었는지 난데없는 지렁이가 한 마리 만신에 흙고물 칠을 해 가지고 바동바동 굴고 있다. 새까만 개미 떼가 물어 뗄 때마 다 지렁이는 한층 더 모질게 발버둥질을 한다. 또 어디선지 죽다 남은 듯한 쥐 한 마리가 튀어나오더니 종종걸음으로 마당 복판을 질러서 돌담 구멍으로 쏙 들어가 버린다.
군데군데 좀구멍이 나서 썩어 가는 기둥이 비뚤어지고, 중풍 든 사람의 입처럼 문조차 돌아가서 --북쪽으로 사정없이 넘어가는 오막살이 앞에는, 다행히 키는 낮아도 해묵은 감나무가 한 주 서있다. 그러나 그게 라야, 모를 낸 후 비 같은 비 한 방울 구경 못한 무서운 가뭄에 시달려 그렇지 않아도 쪼그라졌던 고목 잎이 볼 모양 없이 배배 틀려서 잘못하면 돌배나무로 알려질 판이다. 그래도 그것이 구십 도가 넘게 쪄 내리는 팔월의 태양을 가리어, 누더기 같으나마 밑둥치에는 제법 넓은 그늘을 지웠다. 그걸 다행으로 깔아 둔 낡은 삿자리 위에는 발가벗은 어린애가 파리똥 앉은 얼굴에 땟물을 조르르 흘리며 울어댄다. 언제부터 울었는지 벌써 기진맥진해서 울음소리조차 잘 아니 나왔다. 그 곁에 퍼뜨리고 앉은 치삼노인은, 신경통으로 퉁퉁 부어오른 두 정강이 사이에 깨어 진 뚝배기를 끼우고 중얼거려 댄다.
"요게 왜 이렇게 안 죽을까? 요리조리 매끈거리기만 하고……. 예끼!" 그는 식칼 자루로 뚝배기 밑바닥을 탁 내려 찧었다. 삑! 하고 미꾸라지는 또 가장자리로 튀어 내 뺀다. 신경통에 찧어 바르면 좋다고 해서, 딸애 덕아가 아침 일찍부터 나가서 잡아 온 미꾸라지다.
그것이 남의 정성도 모르고!
"요 망할 놈의 짐승!"
치삼노인은 다시 식칼로 겨누었으나, 갑작스레 새우처럼 몸을 꼽치고는 기침만 연거푸 콩콩한다. 그럴 때마다 부어오른 다리의 관절이 쥐어뜯는 듯이 아프며, 명줄이 한 치씩이나 줄어드는 것 같았다. 그예 그의 허연 수염 사이에서 커다란 핏덩어리가 하나 툭 튀어나왔다.
"에구 가슴이야……. 귀신도 왜 이다지 잡아가지 않을꼬?" 노인은 물 붙은 콩껍질같이 쪼그라진 눈에 괸 눈물을 뼈다귀 손으로 썩 씻었다. 곁에 누운 손자 놈은 땀국에 쪽 젖어 있다. 노인은 손자 놈의 입이며 콧구멍에 벌떼처럼 모여드는 파리 떼를 쫓아 버리면서, 말라붙은 고추를 어루만진다.
"응, 그래, 울지 말아. 자장 우리 애기…… 네 에미는 왜 여태 오잖을까? 입안이 이렇게 바싹 말랐고나. 그놈의 집에서는 무슨 일을 끼니때도 모르고 시킬꼬 온! 에헴, 에헴……" 노인은 억지 힘을 내 가지고, 어린걸 움켜 안고는 게다리처럼 엉거주춤 뻗디디고 일어섰다. 그럴 때, 마침 아들이 볕살에 얼굴을 벌겋게 구워 가지고 들어왔다. 들어서면서부터 퉁명스럽게, "다들 어디 갔어요?"
"일 나갔지."
"무슨 일요?"
"진수네 무명밭 매러 간다고 했지, 아마."
들깨는 잠자코 윗통을 훨쩍 벗어서 감나무 가지에 걸쳐놓고는 늙은 아버지로부터 어린것을 받아 안았다. 치삼노인은 뽕나무 잎이 반이나 넘게 섞인 담배를 장죽에 한 대 피워 물면서 아들을 위로하듯이--그러나 대답은 두려워하며 물었다.
"논은 어떻게 돼 가니?"
"어떻게라니요. 인젠 다 틀렸어요. 풀래야 풀물도 없고, 병아리 오줌 만한 봇물도 중들이 죄다 가로막아 넣고, 제에기……."
"꼭 기사년 모양 나겠군 그래."
"기사년은 그래도 냇물은 조금 안 있었나요."
"그랬지. 지금은 그놈의 수돗바람에……"
"그것도 원래 약속을 할 때는 농사철에는 냇물은 아니 막아 가기로 했다는데, 제에기, 면장 녀석은 색주가 갈보 놀릴 줄이나 알았지, 어디 백성 죽는 건 알아야죠." 들깨는 열을 바짝 더 냈다.
"할 수 없이 이곳엔 인제 사람 못 살거여."
"참 아니꼽지요. 더군다나 전과 달라 중놈들까지 덤비는 꼴을 보 면……." 아들의 불퉁스러운 어조에는, 거칠 대로 거칠어진 농민의 성미가 뚜렷이 엿보였다. 가물은 그들 의 신경을 더욱 날카롭게 하였던 것이다.치삼노인은 '중놈'이란 바람에 가슴이 섬뜩하였다.-- 그것은 자기들이 부치고 있는 절논 중에서 제일 물길 좋은 두 마지기가, 자기가 젊었을 때, 자손 대대로 복 많이 받고 또 극락 가리라는 중의 꾐에 속아서 그만 불전에 아니 보광사(普光寺)에 시주한 것이기 때문이다. 멀쩡한 자기 논을 괜히 중에게 주어 놓고 꿍꿍 소작을 하게 되고 보니, 싱겁기도 짝이 없거니와, 딱한 살림에 아들 보기에 여간 미안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뭘 허구 인제 와? 소 같은 년!"
들깨는 화살을 방금 돌아오는 아내에게로 돌렸다. 그리고 이 꼴 보라는 듯이 물에서 막 건져낸 듯한, 그러나 울어 울어 입안이 바싹 마른 어린것을 아내의 젖가슴에 쑥 내던지듯 했다. 아내는 잠자코 그것을 받아안기가 바쁘게 부엌으로 들어가더니, 머리에 쓴 수건을 벗어 물에 추겨 가지고 어린것의 얼굴을 닦으면서 일변 젖을 물렸다.
"소 같은 년, 어서 밥 안 가져와?"
남편의 벼락같은 소리다. 아내는 부지중 눈물이 핑 돌았다. 들깨는 아내의 귀퉁이라도 한번 올려붙일 듯이 더펄더펄 부엌으로 들어갔으나 한 팔로 애기를 부둥켜안고 허둥대는 아내의 울상에 그만 외면을 하고는 미처 다 차리지도 않은 밥상을 얼른 들고 나왔다. 그러나 다른 때 같으면 곧잘 넘어가는 보리밥도 그날은 첫술부터 목에 탁 걸렸다.
2
우르르르, 쐐---
이글이글 달아 있는 폭양 아래 난데없는 홍수 소리다. 물벌레, 고기 새끼가 죄다 말라져 죽고, 땅거미가 줄을 치고, 개미 떼가 장을 벌였던 봇도랑에, 둔덕이 넘게 벌건 황토 물이 우렁차게 쏟아 져 내린다. 빨갛게 타져 죽은 곡식이야 인제 와서 물인들 알랴 마는, 그래도 타다 남은 벼와 시든 두렁 콩들은 물소리만 들어도 생기를 얻은 듯이 우줄 우줄 춤을 추는 것 같다. 행길 양옆을 흘러가는 봇도랑 가에는 흰 옷, 누른 옷, 혹은 검정 치마가 미친 듯이 부산하게 떠들며 오르내린다.
수도 저수지(貯水池)의 물을 터놓은 것이다. 성동리 농민들이 밤낮 없이 떼를 지어 몰려가서 애원에, 탄원에 두 손발이 닳도록 빌기도 하고, 불평도 하고, 나중에는 밤중에 수원지 울안에까지 들어가서 물을 달리 돌려내려고 했기 때문에, T시 수도 출장소에서도 작년처럼 또 폭동이나 일어날까 두려워서, 저수지 소제도 할 겸 제이(第二) 저수지의 물을 터놓게 된 것이다.
그러나 고까짓 저수지의 물로써 넓은 들을 구한다는 건 되지도 않는 말이고,--물을 보게 된 것이 차라리 없을 때보다 더한층 시끄럽고, 싸움만 벌어질 판이다.
들깨는 논이 보 꼬리에 달렸기 때문에 몇 번이나 저수지 물구멍까지 올라가지 않으면 아니 되었다. 그러나 그렇게 봇머리까지 가서 물을 조금 달아 가지고 오면, 도중에서 이리저리 다 떼이고 자 기 논까지는 잘 오지도 않았다.
이렇게 수삼차 오르내리고 보니, 꾹 눌러 오던 화가 그만 불끈 치밀었다.
"여보, 노장님!"
들깨는 오던 걸음을 되돌려서, 소리를 치며 비탈길을 더우잡았다.
"제에기, 논을 떼었으면 떼였지, 인젠 할 수 없다!" 그는 급기야 이를 악물었다. 어느 앞이라고, 만약 한 번이라도 점잖은 중에게 섣불리 반항을 했다가는 두말없이 절 논이라고는 뚝딱 떼이고 마는 것이다.노승은 들은 체 만 체, 들깨가 가까이 가도 양산을 받은 그대로 물을 가로막고 있었다.
"여보, 이게 무슨 짓이요. 밑엣 사람은 굶어 죽어도 좋단 말이요?"
들깨는 커다란 사벨로써 노승의 장난감 같은 삽가래를 뗏장과 함께 찍어 당겼다. 물은 다시 쐐-- 하고 밑으로 흘러내린다.
"이 사람이 버릇없이 왜 이럴까?"
노승은 짐짓 점잖은 체하고 나무라면서도, 눈에는 시뻐하는 빛과 독기가 얼씬거린다.
"살고 봐야 버릇도 있겠지요."
"아하, 이 사람이 아주 환장을 했군. 아서라 그렇게 하는 법이 아니다." 노승은 다시 물을 막으려고 들었다.
"천만에요! 우리도 살아야겠어요. 물을 좀 가릅세다. 노장님까지 이래서야……" 들깨는 제 손으로 갈랐다. 그리고 몇 걸음 못 가서, 또 어떤 논 귀퉁이에서 조그마한 애새끼 한 놈이 쏙 나오더니 물을 가로막고는 언덕 밑으로 숨어 버린다.
"예끼, 쥐새끼 같은 놈!"
들깨는 골 안이 울리도록 고함을 내지르며 쫓아가서, 그 놈의 물꼬에다 아름이 넘는 돌을 하나 밀어다 붙이었다.
길 저편에서도 싸움이 벌어졌다.---갈갈이 낡아 미어진 헌옷에, 허리 짬만 남은--- 남방 토인들의 나무 껍데기 치마 같은 몽당치마를 걸친 가동 할멈이 봇도랑 한복판에 평퍼져 앉아서 목을 놓고 울어댄다.
"에구 날 죽여 놓고 물 다 가져가오."
"이 망할 놈의 늙은이, 남이 일껏 끌고 온 물만 대고 앉았네. 어디 아가리만 벌리고 앉았지 말구 너도 한 번 물이나 끌고 와 봐!"
경찰관 주재소의 고자쟁이로 알려져 있는 이 시봉이란 젊은 놈의 괭이는 더펄머리를 풀어헤치고 악을 쓰는 늙은 과부 할멈의 허벅살에 시퍼런 멍울을 남겨 놓고 갔다.
들깨는 보릿대 모자를 부채 삼아 내 흔들면서, 쥐꼬리만한 물을 달고 내려가다가, 철한이란 놈하고 봉구란놈이 아주 논 가운데서, 곰처럼 별로 말도 없이 이리 밀치락 저리 밀치락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을 보았으나, 말려 볼 생각도 않고 제 논으로만 갔다. 그의 논으로 뚫린 물꼬는 으레 또 꽉 봉해 져 있었다.
"어느 놈이 이렇게 지독허게……"
막힌 물꼬를 냉큼 터놓고서, 막 논두덕 위에 올라서자니까, 자기 논 아래로 슬그머니 피해 가는 오촌 아저씨가 보인다. 아저씨도 환장이 되었구나 싶었다. 새벽부터 나돌며 날뛰어도 반 마지기도 채 적시지 못한 것을 돌아보고는 들깨는 그만 낙심이 되어서 논두덕 위에 털썩 주저앉았으나, 그 쥐꼬리만한 물줄기가 끊어지자 그는 다시금 그곳을 떠났다.
철한이와 봉구란 놈은 아직도 싸우고 있었다.
"이,이, 이놈의 자식이 사람을 아주 낮보고서."
봉구란 놈이 벋니를 내 물고서 악을 쓴다.
"글쎄, 정말 이걸 못 놓겠니?"
철한이란 놈이 아무리 제비 손을 넣으려고 애를 써도, 워낙 떡심 센 놈이 돼서 봉구는 달싹도 않고, 되려 철한이란 놈의 턱밑을 쥐고 자꾸 밀기만 했다.
그러던 놈들이, 들깨가 한번 소리를 치자, 서로 잡았던 손을 흐지부지 놓고서 논두덕 위로 올라 왔다.
"예끼 싱거운 녀석들! 물도 없애 놓고 무슨 물싸움들이야! 분풀이할 곳이 그렇게도 없던가 온!"
들깨의 이 말에, 그들은 쥐꼬리만한 봇물조차 끊어지고 만 빈 도랑만 내려다볼 뿐이었다.
이윽고 세 사람은 봇목을 향해서 나란히 발을 떼어놓았다. 대사봉(大師峰) 위로 해가 뉘엿뉘엿 기울고, 네 시를 아뢰는 보광사의 큰종 소리가 꽝꽝 울려 왔다. 절에 있는 사람들은 제각기 저녁 밥쌀을 낼 때다. 그러나 그 절 밑 마을---성동리 앞 들판에 나도는 농민들은 해가 기울수록 마음이 더욱 달떴다. 게다가 모처럼 터놓은 저수지의 봇목에 논을 가지고서도, '유아독존'식으로 날뛰는 절 사람들의 세도에 눌려 흘러오는 물조차 맘대로 못 대인 곰보 고서방은 마침내 딴은 큰맘을 먹고 자기 논물꼬를 조금 더 터놓았다. 그러자 그걸 본 한 양반이 빽 소리를 내지르며 달려왔다. 오더니 다짜고짜로, "왜 또 손을 대요?"
"인제 물도 다 돼 가고 하니 나두 좀 대야지요."
하다가 고서방은 자기 말이 너무 비겁한 것 같아 한 마디 더 보태었다.
"그리고 당신 논에는 물이 철철 넘고 있지 않소"
"뭐? 넘어? 어디 넘어? 이 양반이 눈이 있나 없나?" 하며 그는 곰보 논 물꼬를 봉하려고 들었다.
"안 돼요!"
곰보는 물꼬를 아까보다 더 크게 열면서, "위에 있는 논은 한 번 적시지도 못하게 하고 아랫논만 두렁이 넘게 물을 실으려는 건 너무 심하잖소?"
"무어---?"
"그렇게 노려보면 어쩔 테요?"
"야, 이 친구가 밥줄이 제법 톡톡한 모양이로군!"
그는 비쭉 냉소를 했다.
"이 친구? 네 집에는 그래 애비도 삼촌도 없니? 누굴 보고 이 친구 저 친구 해?" "뭐가 어째? 야, 이 녀석이 제법 꼴값을 하는군. 어디 상판대기에 빵꾸를 좀 내줄까?" "이놈---개 같은 놈! 아무리 세상이 뒤바뀌어졌기로서니……." "야, 이 녀석 좀 봐. 세상이 뒤바뀌어졌다구? 하,하, 하……." 그는 다른 사람도 다 들으라는 듯이 소리를 높이더니, "예끼 건방진 녀석!"
그리고 제보다 몸피가 훨씬 큰 곰보의 뺨을 한 대 갈겼다.
"이게 뭘 믿고서……"
곰보가 하도 어처구니가 없어서, 그 자의 멱살을 불끈 졸라 쥐니깐, 그 근방에 있던 같은 패들이 벌떼처럼 우---몰려왔다. 그러자 아까 가동 늙은이를 상해 놓던 고자쟁이 이 시봉이가 풋보올 차던 형식으로 곰보의 아랫배 짬을 콱 질렀다. 곰보는 악! 하며 그 자리에 쓰러졌다. 쓰러진 놈을 여러 놈들이 밟고 치고…… 그러다가 나중에는 뻗어져 누운 놈을 끌고 주재소에까지 가자고 야단이다. 곰보는 그 말이 무엇보다도 무서워서, 잘못했다고 빌지 않을 수가 없었다.
들깨가 곁에 가도, 곰보는 넋잃은 사람처럼 논두렁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왼편 눈 밑이 퍼렇게 부어 올랐다.
저수지의 물은 그예 끊어졌다. 물끊어진 수문을 우두커니 들여다보는 농민들은 하도 억울해서 말도 욕도 아니 나오고, 그만 그곳에 주저앉았다. 그와 동시에 온종일 수캐처럼 쫓아다닌 피로까지 엄습해서 일어날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한편, 물을 흐뭇이 대인 보광리 사람들은 제 논물이 행여 아랫논으로 넘어 흐를세라 돋우어 둔 물꼬와, 논두렁 낮은 짬을 한층 더 단단히 단속하느라고 몹시 바빴다.
고서방은 분도 분이지만, 그보다 내년 봄엔 영락없이 그 절논 두 마지기가 떨어지고 말 것을 생각하면, 앞으로 살아 나갈 일이 꿈같이 암담하였다. 아무런 흠이 없어도 물길 좋은 봇목 논은 살림하는 중들에게 모조리 떼이는 이즈음에, 아무리 독농가로 신임을 받아 오던 고서방일 지라도 오늘 저 지른 일로 보아서, 논은 으레 빼앗긴 논이라고, 실망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는 문득 지난봄의 허서방이 생각났다.---부쳐 오던 절 논을 무고히 떼이고 살길이 막혀서, 동네 뒤 소나무 가지에 목을 매어, 시퍼런 혀를 한 자나 빼물고 늘어져 죽은 허서방이 별안간 눈에 선하였다. 곰보는 몸서리를 으쓱 쳤다. 이왕 못 살 판이면 제에기 처자야 어떻게 되든지 자기도 그만 그렇게 죽어 버릴까…… 자기가 앉은 논두렁이 몇천 길이나 땅 속으로 쾅 둘러 꺼졌으면 싶었다.
이튿날 아침 들깨와 철한이는 오랜만에 논에 물을 한 번 실어 놓고는, 허출한 속에 식은 보리밥 이나마 맘놓고 퍼 넣었다. 그때까지도 저수지 밑 봇목 들녘과 내 건너 보광리---최근에 생긴 중마 을---에는, 빌서 얻은 계집이라도 잃어버린 듯이, 중들의 아우성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 하룻밤 동안에 논두렁을 몇 토막이나 내이고 물 도둑을 맞은 사람이 많았기 때문이다.
고서방은 중들의 발악 소리를 속시원하게 들으면서, 군데군데 커다란 콩낱이 박힌 보리밥, 아니 보릿겨 밥을 맛나게 먹었다.
"누가 간 크게 그랬을까요?"
아내는 숭늉을 떠오며 짜장 통쾌한 듯이 물었다.
"그야 알 놈이 있을라구, 사람이 하두 많은데."
고서방은 궁둥이를 툭툭 털면서 일어나 섰다. 담배 한 대 재어 물 여가도 없이 고동 바로 허리춤을 졸라매고 이주사댁 논을 매러 막 집을 나서려고 할 즈음에 뜻밖에도 주재소 순사 하나가 게딱지만한 뜰안에 썩 들어섰다.
"당신이 고서방이오?"
눈치가 수상하다.
"예, 그렇소."
"잠깐 주재소까지 좀 갑시다."
"무슨 일입니까?"
고서방은 금방 상이 노래졌다.
"가면 알 테지."
말이 차차 험해진다.
"난 주재소 불려 갈 일이 없습니다. 죄지은 일은 없습니다. 고서방이 뒤로 물러서니깐, "이놈이 무슨 잔소리냐? 가자면 암말 말고 갔지 그저." 순사는 고서방의 어깻죽지를 한 대 갈기더니, 어느새 포승을 꺼내 가지고 묶는다.
"아이구 이게 무슨 일유? 나리 제발 그러지 마세요. 이분은 죄 지은 일 없읍네다. 나구서 개구리 한 마리도 죽인 일없다는데, 지난밤에는 새두룩 이 마당에서 같이 잤는데…… 아이구 이게 무슨 일유?"
학질에 시난고난하면서도, 미친 듯이 매달리는 고서방네를 몰강스럽게 떠밀어 버리며 순사는 기어이 고서방을 끌고 갔다.
3
한 포기가 열에 벌여, ----에이여허 상사뒤야.
한 자국에 열 말씩만, ----에이여허 상사뒤야.
앞 노래에 응해 가며 성동리 농군들은 보광리 앞뜰에서 쇠다리 주사댁 논을 매고 있다. 백 도가 넘게 끓는 폭양 밑! 암모니아 거름을 얼마나 많이 넣었는지 사람이 아니 보이게 자란 볏 속! 논바닥에서는 불길 같은 더운 김이 확확 솟아오르고, 게다가 썩어 가는 밑거름 냄새까지 물컥 물컥 치미는 바람에는 두말없이 그저 질색이다. 그래도 숨이 아니 막힌다면 그놈은 항우(項羽)다. 몽둥이에 맞아 죽다 남은 개새끼처럼 혀를 빼물고 하--하--하는 놈, 벼 잎사귀에 찔려 한쪽 눈을 못 쓰고 꽈악 감은 놈--그들은 마치 기계와 같다. 다른 점이 있다면 앞잡이의 노래에 맞춰서 '에이여 허 상사뒤야'를, 속이 시원해 지는 듯이 가슴이 벌어지게 내뽑는 것쯤일까.
한 놈이 슬쩍 봉구의 머리에다 궁둥이를 돌려 대더니, 아기 낳는 산모 모양으로 힘을 쭉 준다.
"예, 예끼, 추--추한 자식!"
봉구는 그놈의 종아리를 썩 긁어 버린다.
"이따, 이놈아, 약값이나 내놔!"
그놈이 되려 봉구를 놀리려고 드니까, 곁에 있던 철한이란 놈이 얼른 그 말을 받는다----.
"약값? 야 이놈아 참 네가 약값을 내놔야겠다. 생무우 먹은 트림 냄새도 분수가 있지 온… …."
"아닌게아니라, 냄새가 좀 이상한걸. 이 사람, 자네 똥구멍 썩 잖았나?" 또 한 놈이 욱대긴다.
"여--역놈의 대밭에 마, 말다리 썩는 냄새도 부,부, 분수가 있지!" 봉구란 놈이 제법 큰소리를 친다. 그러면서도 자기는 입은 그대로 제 옷에 오줌을 질질 싸고 있다.
하--하--끙--끙…….!
"어이구 이놈 죽는다.!"
철한이란 놈이 속이 답답해서 앞으로 몇 걸음 쑥 빠져나간다.
"쉬--ㅅ! 쇠다리 온다."
들깨란 놈이 주의를 시킨다.
쇠다리 주사가 뒤에서 논두렁을 타고 왔다. 한 손에는 양산, 한 손으론 부채를 흔들면서, 쇠다리 주사가 뭐냐고? 그렇다. 옳게 부르면 이 주사다. 그러나 속에 똥만 든 그가 돈냥 있던 덕분으로 이 조 말년에 그 고을 원님에게 쇠다리 하나 올리고서 얻은 '주사'란 것이 오늘날 와서는 세상이 달라 진 만큼 그만 탄로가 나고 말았기 때문에, 모두를 그를 그렇게 불렀다. 물론 안 듣는 데서만이지만.
"모두들 욕보네. 허---날이 자꾸 끓이기만 하니 온!" 어느새 쇠다리가 뒤에 와 선다.
"그런데 조금 늦더래도 이 논배미는 마자 매고 참을 먹어야겠군. 자, 바짝---팔대에 힘을 넣어서. 저런, 봉구 뒤에는 벼가 더러 부러졌군, 아뿔싸!" 쇠다리 주사는 혀를 쯧쯧 차며 부채를 방정맞게 흔들어 댔다. 일꾼들은 잠자코 풀 죽은 팔에 억지 힘을 모았다. 거친 볏줄기에 스친 팔뚝에는 금방 핏방울이 배어 나올 듯했다. 그러나 그들은 눈을 질끈 감고, 대고동을 해낀 갈퀴 같은 손으로, 어지러운 벼 포기 사이를 썩썩 긁어 댔다.
흐--흐--끙--끙……!
얼굴마다 콩낱 같은 땀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놀란 메뚜기 떼들이 파드닥 파드닥 줄 도망질을 친다. 노래는 간곳 없고! 나머지 열 자국! ---그들은 아주 숨쉴 새도 없이 서둘렀다.
"요놈의 짐승!"
제일 먼저 맨 철한이란 놈이, 뒤쫓겨 나온 뱀 한 마리를 냉큼 잡아 올려 가지고는 핑핑 서너 번 내두르더니 훌쩍 저편으로 날려 버린다.
고대하던 쉴 참이 왔다. 농부들은 어서 목을 좀 추겨 보겠다고 포플라나무 그늘에 갖다 둔 막걸리통 곁으로 모여 갔다.
우선 쇠다리 주사부터 한 잔 했다.
"어---그 술맛 좋---군!"
쇠다리 주사는 잔을 일꾼들에게 돌려 주고, 구레나룻을 휘휘 틀어 올리더니, "그런데 참 술이 한 잔 씩 밖에 안 돌아갈는지 모르겠군. 그저 점심때 쌀밥(쌀이 사분지 일 될까?) 먹은 생각하구 좀 참지. 그놈의 건 잘못 먹으면 일 못하기보다 괜히 사람 축나거든.
더군다나 오늘같이 더운 날에는……"
그러나 농부들은 사발 바닥이 마르도록 빨아 넘기고는, 고추장이 벌겋게 묻은 시래기 덩어리를 넙죽넙죽 집어넣는다. 목도 말랐거니와 배도 허출했다. 그럴 때 마침 뿡---하고, 자동차 한 대가 그들이 쉬는 데까지 먼지를 뒤집어씌우고 달아나더니 보광리 앞에서 덜컥 머물었다. 거기서 내린 것은---해수욕을 갔다 오는 보광리 젊은 사람들이었다. 일본으로, 서울로 유학을 하고 있는 팔자 좋은 젊은이들이었다. 물론 계집애들도 섞여 있었다. 성동리 농부들은 한참 동안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들 가운데 섞여 있던 고자쟁이 이시봉이 웬일인지 차에서 내리자 바른 총으로 주재소로 들어갔다. 술을 잘못 하기 때문에 식은 밥만 두어 술 뜨고 난 들깨는 눈이 주재소 문에 가 박혔다. 얼마 뒤에 시봉이가 나왔다.
"고서방은 어찌 됐을까?"
부지중 중얼거린 들깨. 묵묵히 이마에 석삼자를 깊게 지우는 철한이.---우리 때문에 무고한 고서방이……! 그들은 그대로 가만히 있는 자기들이 그지없이 부끄럽고 맘이 괴로왔다. 세상을 모르는 봉구란 놈은 제 발바닥의 상처만 풀어헤쳐 놓고, 그 속에 들어간 뻘을 꺼내고 있다. 다른 농군들은 행려(行旅)의 시체처럼, 거무데데한 뱃가죽을 내놓고 길바닥 위로, 잔디 위로 그늘을 찾아서 여기저기 나자빠졌다. 어떤 친구는 어느새 코까지 쿨쿨 골고, 어떤 친구는 불개미한 테 거기라도 물렸는지 지렁이처럼, 자던 몸을 꿈틀꿈틀한다.
매미란 놈들이, 잎사귀 하나 까딱 아니 하는 높다란 포플라 나무에서, 그 밑에 누워 있는 농군들 을 비웃는 듯 구성지게 매암매암매---한다.
모기 속에서 저녁을 치르고 나면 마을 사람들은 게딱지같은 집을 떠나서 모두 냇가로 나온다. 아무런 가뭄이라도 바위틈에서 새어 나오는 물이 군데군데 제법 웅덩이를 만들었다. 냇가의 달밤은 시원하였다.
먼동이 트면 곧 죽고 싶은 마음
저녁밥 먹고 나니 천년이나 살고 싶네.
어느새 벌써 달려 나와서 반석 위에 번듯 누워 하늘을 쳐다보며 읊조리는 쇠다리 주사댁 머슴 강 도령의 노래다.
반달같이 생긴 다리 아래편 백사장에는 애새끼들이 송사리처럼 모여서, 노래로 장난으로 혹은 반딧불 쫓기로 부산하게 떠들고 뛴다. 비를 기다리는 하늘에서는 구름 한점 없이 달만 밝고, 달빛 속 에 묻힌 성동리 집 집에서는, 구름인듯 다투어 모기 연기만 피워, 산으로 기어오르고 들로 내려깔려 연긴가 달빛인가 알 수도 없다.
남자들의 뒤를 이어 여자들도 떼를 지어 다리를 건너왔다. 다리 위편이 남자들의 자리다. 그들은 나오는 대로 멱을 감고는 여기저기 반석을 찾아가기가 바쁘다. 가는 곳이 그들의 그날 밤잠자리다. 그리도 못 하는 놈은---행인지 불행인지 아직도 제 논에 풀물이 있어서 봇목으로 물 푸러 가는 놈! 그러나 물푸개 석유통을 옆에 둔 채 어느새 지쳐 한잠이 든 봉구는, 밤중이 넘어서 공동 묘지 입구까지 물 푸러 갈 것인지 코만 쿨쿨 골아 댄다.
그래도 남은 놈들은 이야기에 꽃이 핀다.
"들깨, 자네 누이동생은 어쩔 텐가?"
"어쩌긴 무얼 어째?"
"키 보니 넉넉히 시집갈 때가 됐던걸."
"키는 그래도, 나인 인제 겨우 열 일곱이야. 열 일곱에 혼사 못 될 건 없지만 어디 알맞은 자 리가 쉬 있어야지."
"아따 이 사람 염려 말라구. 그만한 인물이면 야 정승의 집 며느리라도 버젓하겠데. 자리가 왜 없을라구!"
"이 사람이 왜 또……괜히 얼굴만 믿고 지나친 데 보냈다가 사흘도 못 돼서 쫓겨오게! 천한 사람은 그저 천한 사람끼리 맞춰 야지……"
"암 그렇구말구!"
가만히 듣고만 있던 철한이란 놈이 뜻밖에 한 마디 보태었다. 그럴 때 마침 다리 아랫목에서 멱을 감고 있던 여자들이 킥킥거리며, 또는 욕설을 하면서, 남자들이 노는 위편으로 자리를 옮겨간다. 그걸 본 강도령, "위에 가면 안 되오. 왜 밑에서 허잖구----?"
"보광리 새끼들 때문에 밑에선 못 하겠다우."
아낙네들의 대답이다. 남자들의 시선은 일제히 다리 아래편으로 쏠렸다. 하늘 높게 백양목이 줄지어 선 곳----.
사랑으로 여위었느니 어쨌느니 하는 레코오드에 맞춰서 반벙어리 축문 읽는 듯한 노래 소리가 들려 왔다.
"유성기는 또 누구를 홀리려고 가지고 다닐까. 저것들이 곧잘 여 자들이 멱감는 곳만 찾아 다닌단 말야."
강도령이 남 먼저 욕지거리를 내놓는다.
"예--끼더런 자식들! 듣기 싫다. 집어치우고 가거라, 가!" 동네 젊은 녀석들은 모두 바위에서 일어나서 욕을 한 바탕씩 해 주고는 얼른 논두렁으로 올라가 서 진흙을 가득가득 움켜 냇물 속에 핑핑 내던졌다. 보광리 만무방들이 돌아간 뒤, 농부들은 머리에서 수건을 풀어 제각기 얼굴을 가리기가 바쁘게 너럭바위 위에 휘뚝휘뚝 쓰러졌다. 쓰러지자 곧 쿨쿨. 적막한 농촌의 밤이다. 다만 어디선지 놋그릇을 땅땅 두드리며 '남의 집 며느리 낮에는 잠자고 밤에는 일하네.' 하고 학질 주문(呪文)을 외고 다니는 소리만 그쳤다 이었다 할 뿐. 길쌈하는 아낙네들의 노란 등잔불도 꺼지기가 바쁘다.
4
가뭄은 오래오래 계속되었다. 아침저녁으로는 제법 거무스름한 구름장이 모여들다가도, 해만 지면 그만 어디로 사라져 버렸다. 꼭 거짓말같이…… 보광사 절골을 살며시 넘어다보는 그놈도 알고 보면 얄미운 가뭄 구름. 뒷 산성 용구렁에 안개가 자욱해도 헛일. 아침놀, 물밑 갈바람은 더군다나 말도 안 되고. 어쨌든 농부들은 수백 년째 전해 오고 믿어 오던 골짜지 천기조차 온통 짐작을 못 할 만큼 되었다. 날마다 불볕만 쨍쨍----그들의 속을 태웠다. 콧물 만한 물이라도 있는 곳에는 아직 도 환장한 사람들이 와글거리고, 풀물도 없어진 곳에는 강아지 새끼도 한 마리 안보였다. 물 놓던 성동들도 삼 년 전 소위 수도 수원지(水源池)가 생기고는 해마다 이 모양---여기저기 탱고리수염 같은 벼포기가 벌써 발갛게 모깃불감이 되고, 마을 앞 정자나무 밑에는 떡심 풀린 농부들의 보람없는 걱정만이 늘어갈 뿐이었다.
걱정 끝에 하룻밤에는, 작년에도 속은 그놈의 기우제(祈雨祭)를 또 다시 벌였다. 앞산 봉우리에 다 장작불을 피워 놓고 성동리 사람들은 목욕 재계를 하고 어떤 위인은 낡은 두루마기, 또 어떤 위인은 제법 몽당 도포까지를 걸치고서 쭉 늘어섰다. 구장, 들깨, 갓이 비뚤어진 봉구……. 옛날 훈장 노릇을 하던 노인이 쥐꼬리보다 작은 상투를 숙이고서 제문을 읽자 농부들은 일제히 하늘을 우러러보고 절을 하며 비를 빌었다.
"만인간을 지켜 주시는 천상의 옥황상제 님이시여…….!"
그들은 몇 번이나 코가 땅에 닿도록 절을 하였다. 이글이글 타오르는 불길을 따라 그들의 축원도 천상에 통하는 듯하였다. 기우제는 끝났다.
"깽무깽깽 쿵덕쿵덕, 깽무깽깽 쿵덕쿵덕……."
농부들은 풍물을 울리면서 산을 내려왔다. 동네 앞 타작마당에서 그들은 짐짓 태평 성대를 맞이한 듯 소고를 내두르며 한바탕 멋지게 놀았다. 조그만 아이놈들도 호박꽃에 반딧불을 넣어 들고서 어른들을 따라 우쭐거렸다.
"구, 구, 구장 어른, 저, 저, 구름 좀 봐요!"
봉구란 놈이 무슨 엄청난 발견이라도 한 듯이 엉덩춤을 추면서 외쳤다. 아닌게 아니라 거무스름한 구름장 하나가 달을 향해서 둥실둥실 떠왔다.
"얼씨구 좋다! 쿵덕쿵덕!"
농부들은 마치 벌써 비나 떨어진 듯이 껑충껑충 뛰어댔다. 그러나 그것도 모두 헛일---하루, 이 틀, 비는커녕 안개도 내리지 않고, 되려 마음만 졸였다. 불안은 각각으로 커져만 갔다.
그러한 하룻날 보광사 농사 조합에서 성동리의 유력자---쇠다리 주사와 면서기며 농사 조합 평의 원인 진수를 청해 갔다. 그래서 그들이 저쪽의 의논에 응하고 가져온 소식---그것은, 오는 백중날 보광사에서 기우 불공을 아주 크게 올릴 예정이니까,성동리에서는 한 집에 한 사람씩 참례를 하는 것이 좋겠다고, 기우 불공이라니 고마운 일이다.
"허지만 우리 같은 것 그리 많이 모아서 뭘 헌담? 불공은 중들 이 헐 텐데..." 농민들은 무슨 영문인지 잘 몰랐다. 그러나 안 갔으면 가만히 안 갔지, 보광사의 논을 부쳐먹고 사는 그들이라 싫더라도 반대는 할 수 없는 처지였다. 이왕이면 괘불(掛佛)까지 내걸어 달라고 마을 사람 측에서도 한 가지 청했다. 괘불을 내어 달면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소원 성취된다는 말을 어릴 때부터 종종 들어온 그들이었다.
하지만 절 측에서는 경비가 너무 많이 든다고 첨에는 뚝 잡아떼었다. 고까짓 일에 무슨 경비가 그 리 날 겐가? 어디, 과연 영험이 있나 없나 보자!---마을 사람들은 꽤 큰 호기심을 품고서 간곡히 청했다. 구장이 두어 번 헛걸음을 한 뒤, 쇠다리 주사가 나가서 겨우 승낙을 얻어 왔다. 그래서 칠 월 백중날! 보광사에서는 새벽부터 큰종이 꽝꽝 울렸다.
성동리 사람들은---농사 조합 평의원인 진수와 구장과 그 다음 몇 사람 빼놓고는 대개 중년이 넘은 아낙네들과 쓸데없는 아이들 놈뿐이었지만---장꾼같이 떼를 지어 절로 절로 올라갔다. 천여 년의 역사를 가지고 무려 백여 명의 노소승(老少僧)이 우글거리는 선찰 대본산 보광사에는 벌써 백중 불공차 이곳 저곳에서 모여든 여인들이 들끓었다. 오색 단청이 찬란한 대웅전을 비롯하여, 풍경 소리 그윽한 명부전, 팔 상전, 오백나한전……. 부처 모신 방마다 웬만한 따위는 발도 잘 못 들여놓을 만큼 사람들이 꽉꽉 들어찼다. 그들은 엉덩이 혹 은 옆구리를 서로 맞대고 비비대기를 치며, 두 손을 높게 들어 머리 위에서부터 합장을 하고 나붓이 중절을 하였다.
아들 딸복 많이 달라는 둥, 허리 아픈 것 어서 낫게 해 달라는 둥……제각기 소원들을 은근히 빌면서. 잠자리 날개보다 더 엷은 생노방주 옷에 모두 제가 잘난 체 부처님 무릎 앞에 놓인 커다란 희사함(喜捨函)에 아낌없이 돈들을 척척 넣고 가는 그들! 얼핏 보면 죄다 만석꾼의 부인, 알고 보면 태반은 빚내어 온 이들. 성동리 아낙네들은 명부전 뒤 으슥한 구석에서 잠깐 땀을 거두고서, 대웅전 앞으로 슬슬 나왔다. 자기들 딴에는 기껏 차려 봤겠지만, 앉으려는 겐지 섰는 겐지 분간을 못할 만큼 풀이 뻣뻣한 삼베 치마 따위로선 그런 자리에 어울릴 리가 만무하였다. 다른 분들과 엄청나게 차가 있는 자기들의 몸차림을 못내 부끄러워하는 듯, 어름어름 차례를 기다리고 섰다.
그러자, 며칠 전부터 와 있던 진수 어머니가 어디서 봤는지 쫓아왔다. 아주 반가운 듯한 얼굴을 하고, "여태 어디들 처박혀 있었어? 아까부터 아무리 찾아두 온…… 다들 부처님 참배는 했나?" 자기는 벌써 보살님이나 된 셈치는 어투였다.
"아직 못 봤수. 웬걸 돈이 있어야지!"
이 얼마나 천부당 만부당한 대답일까?
"그럼, 시주돈도 없이 절에는 뭘 하러들 왔수?"
진수 어머니는 입을 삐쭉하더니, (이것들 곁에 있다가는 괜히 큰 망신하겠군!)할 듯한 표정을 하고는 어디론지 펑 가 버린다.
베치마 패들은 잠깐 주저주저하다가, "돈 적으면 복 적게 받지 뭐."하고는, 남편이나 아들들이 끼니를 굶어 가며 나뭇짐이나 팔아서 마련한 돈들을, 빚의 끝돈도 못 갚게 알뜰살뜰히도 부처님 앞에 바치고 나온다. 더러는 내고 보니 꽤 아까운 듯이 돌아다보기도 했다.
법당 뒤 조그마한 칠성각 안에는, 아기 배려고 백일기도한다는 젊은 아낙네. 지리하지도 않은지 밤낮으로 바깥 난리는 본체만체하고, 곁에 선 중의 목탁 소리에 맞춰 무릎이 닳도록 절만 하고 있다. 자기 말만 잘 들으면 틀림없다는 그 중의 말이 영험할진대 하마나 아기도 뱄을 것이다.
꽝! 뗑뗑, 둥둥둥, 똑똑, 촤르르!
종각의 큰북 소리를 따라 각전 각방의 종, 북, 바라며 목탁들이 한꺼번에 모조리 발광을 하자, 허주지의 지휘를 좇아 이빠진 노화상(老和尙)의 독경 소리와 함께 엄숙하게 불문이 삑삑삑 열리고, 새빨간 가사의 서른 두 젊은 중의 어깨에 고대하던 괘불(掛佛)이 메여 나와, 대웅전 앞 넓은 뜰 한가운데 의젓이 세워졌다. 삼십여장의 비단에 그려진 커다란 석가 불상! 장삼 가사를 펄럭이는 중들은 말할 것도 없고, 모여든 구경꾼들까지 상감님 잔치에라도 참례한 듯이 놀라울 만큼 엄숙해졌다.
공양상이 나오자, 주지를 비롯하여 각방 노승들이 참배를 드리고, 다음으로 젊은 중, 강당 학인 (學人), 그 밖에 애기중들, 그리고 중 마누라와 보살계에 든 여인들, 맨 나중이 일반 손님들의 차례였다. 중들을 빼놓고는 모두 앞을 다투어 돈들을 내걸고 절을 하며 소원 성취를 빌었다.
"어서 물러 나와요. 다른 사람도 좀 보게."
진수 어머니는 다 같은 보살 계원을 밀어내고 들어서더니, 자기는 돈을 얼마나 냈는지 절을 열 번 도 더 했다. 주지 부인을 보고, 어머니 어머니하고 섰던 진수도, 남먼저 쫓아 나가서 대가리를 땅에 처박았다. 성동리 아낙네들은 이미 주머니가 빈지라, 부러운 듯이 곁에서 남이 하는 구경만 하고 있었다. 이러한 거추장스런 일이 다 끝난 뒤에야 겨우 기우 불공이 시작되었다. 괘불 앞에는 큰북이 나오 고, 바라가 나오고, 목탁이 나오고…… 성동리 구장이 동네서 긁어 온 돈을 내걸자 기도는 비로소 시작되었다."딱딱 딱딱,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꽝, 둥, 촬, 딱 다글!" 목탁 소리와 함께 독경 소리가 높아지고 경문의 구절마다 꽹과리, 북, 바라, 큰 목탁이 언제나 꼭 같은 장단을 짚는다. 성동리 사람들은 중들의 기도를 따라서 자기들도 절을 하였다. 중들의 궁둥이를 향해서. 어떤 중은 이리 저리 돌아다니면서 무지막지한 촌뜨기들의 가지각색의 절들을 통일시키기 위하여, 불갓절을 모르는 위인들의 몸에 함부로 손을 대가며 합장절을 가르쳤다. 이번에는 물론 삼베 치마들도 한 몫 들었다. 그러나 그들의 절이란 어울리기는커녕 우습기가 한량없었다.
기도의 한 토막이 끝나려 할 즈음 잦은 고개를 넘는 경문, 신이 나서 어개를 우쭐거리는 장단꾼, 청천백일 아래서 이마를 땅에 대고 제발 덕분에 비오기를 비는 농부들과 그들의 어머니며 아내들… …
기도가 쉴 참에 성동리 사람들은 어마어마한 강당 안을 버릇없이 들여다보았다. 아마 여든도 훨씬 넘었을 듯한, 수염까지 허연 법사(法師)가 높다란 법탑 위에 평좌를 하고 앉아서, 옹이가 툭툭 불거진 법장(法杖)을 울리면서 방안이 빽빽하게 들어앉은, 한다한 보살 계원들을 앞에 두고 방금 설법의 삼매경(三昧境)에 빠진 모양이었다.
"보광산하 십자로, 무설노고 호손귀."
라고, 맑은 목청으로 외더니, 가만히 눈을 감는다. 눈썹 하나 까딱 안 하는 모습이 마치 산부처 같았다. 뒷벽에는 '합장의 생활'이라고 어마어마하게 쓴, 설교 제목이 걸려 있었다. 방안은 죽은 듯이 조용하다.
"꽝!"
법사는 마침내 법장을 들어 법탑을 여무지게 울리면서 다시 눈을 번쩍 뜨더니, 청중을 한번 휘둘러보고는 설법을 계속한다.
"…… 보광산 밑 네 갈래 길에서, 혀 없는 늙은 할머니가 손자를 부르며 돌아간다---는 말씀입니다. 혀 없는 할머니가 어떻게 손자를 부를까요? 얼핏 생각하면 말도 아닌 것 같지만, 여기 에 정작 우리 불교의 깊은 진리가 숨어 있거든요. 알고 보면 무궁무진한 뜻이 있지요……" 청중은 무슨 소린지 알 바 없어 그저 장바닥에 갖다 둔 촌닭처럼 눈만 끔벅끔벅할 뿐이었다. 하 기야 진수 어머니처럼 몰라도 아는 체하는 여걸이 없는 바는 아니지만, 그러나 그건 보통 사람이 못할 짓, 어떤 이는 벌써 방앗공이 마냥 끄덕끄덕 졸고만 있다. 다시 바깥 기도가 시작되었다. 기도중들은 장삼 가사가 담뿍 젖도록 땀을 흘려 가며 경문을 외고, 목탁, 꽹과리를 때려치며, 북, 바라를 요란스럽게 울려 댔다. 괘불과 불경 영험이 있어야 할 테니까. 그래서---기도는 꽤 장시간, 경문이 늦은 고개, 잦은 고개를 오르내린 다음에 마침내 엄숙한 긴장 속으로 들어갔다. '나무아미타불'의 느린 합창 소리에 대웅전 앞 넓은 뜰은 모래알까지 소르르 떨리는 듯싶었다.
5
최후로 믿었던 괘불조차 영험이 없고 가뭄은 끝끝내 계속됐다. 들판에는 반 이상 모가 뽑히고 메 밀 등속의 댓곡식이 뿌려졌으나, 끓는 폭양 아래서는 싹도 잘 아니 날뿐더러, 설령 났더라도 말라지기 바쁠 지경이었다.
빨리 쌀밥 맛 좀 보자고 심었던 올벼도 말라져 버리고, 남은 놈이래야 필 염도 안 먹고, 새벽마다 성동리 골목골목에는 보리 능기는 절구질 소리만 힘없이 들렸다. 학교라고 갔던 놈들은 수업료를 못 내서 떼를 지어 쫓겨 왔다. 쫓겨오지 않고 끌려오기로서니 없는 돈이 어디서 나오랴! 부모들의 짜증이 무서워서 오다가 되돌아서는 놈은, 만일 탄로만 나고 보면---거짓말은 도둑놈 될 장본이라고, 여린 뺨이 터지도록 얻어맞곤 하였다.
"없는 놈의 자식이 먹는 것도 장하지 학교는 무슨 학교야?" 이 집에서도 퇴학, 저 집에서도 퇴학이다. 이런 처지에는 추석도 도리어 원수다. 해마다 보광리 새 장터에서 열리는 소위 면민 대운동회에 출장은커녕, 쇠다리 주사이나 진수네 집 사람, 그 밖에 는 간에 바람든 계집애나 나팔에 미친 불강아지 같은 애새끼들밖에는 성동리에서는 구경도 잘 아니 나갔다. 그러나, 그래도 명절이라 해서, 사내들은 낡은 두루마기들을 꺼내 입고서 이집 저집 늙은 이들을 뵈러 다니면서, 오래간만에 시금텁텁한 밀주(密酒)잔이나 얻어 마시고는 아무데나 툭툭 나 자빠져 잤다.
쇠다리 주사 댁 안뜰에는 제법 널뛰기까지 벌어졌으나, 아낙네들은 별로 보이지 않고 거의 다 마 을의 젊은 처녀들이었다. 들깨의 누이동생 덕아도 저녁에는 한바탕 뛰었다. 그러나 그들도 마치 무 슨 의논이나 한 듯이 죄다 곧 흐지부지 흩어졌다. 중추 명월이야 옛날과 조금도 다를 바 없고, 네 활개를 활짝 펴고 높이 솟아 보는 아찔한 재미야 잊었을 리 만무하되, 원수의 가난과 흉년은 이 동 네로부터 청춘의 기쁨과 풍속의 아름다움마저 뺏아 가고 말았다.
싱거운 추석이 지난 뒤, 성동리 사람들은 모두 산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남자는 지게를 지고, 여자들은 바구니를 들고서. 그러한 어느 날, 성동리 여자들은 보광사의 대사봉 중턱에서 버섯을 따고 있었다. 가동 늙은이를 비롯하여 화젯댁, 곰보네, 들깨 마누라, 덕아…… 그 중 제일 익숙한 것은 역시 가동댁이었다. 그는 어릴 적부터 까투리처럼 그 산을 싸다닌 만큼, 어디는 어떻고, 어디는 무슨 버섯이 난다는 것을 환히 알기 때문에 언제든지 남의 앞장을 서 다니면서 값나가는 송이라든가, 참나무 버섯 따위부터 쏙쏙 곧잘 뽑아 담았다. 다른 여자들은 부러운 듯이 그의 뒤를 따라다니며, 한 광주리 가득 채워 이고 이십 리나 넘어 걸어야 겨우 한 이십 전 받을 둥 말 둥한, 소케버섯, 싸리버섯 등속을 딸 뿐 이었다.
하늘을 가리운 소나무와 늙은 잡목 그늘은 음침하고도 축축하였다. 지나간 이백십 일 풍에 부러진 느티나무 가지는 위태롭게 머리 위에 달려 있고, 이따금 솔잎에서는 차디찬 물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억새랑 인동덩굴이 우거진 짬은 발 한 번 잘못 들여놓다간 고놈의 독사 바람에 또 순남네처럼 억울하게 죽을 판. 하지만 가동 늙은이의 말이 옳지, 가뭄 탓으로 그 해는 버섯조차 귀했다.
덕아와 같은 젊은 계집애들은 악착스럽게 무서운 절벽 끝에 붙어 있었다. 아찔아찔 내둘려서 밑을랑 내려다보지도 못하고, 놀란 참새처럼 가슴만 볼록거렸다. 석양 받은 단풍잎에 비쳐 얼굴은 한 층 더 붉어 오나 밉도록 부지런히 썩어 빠진 버섯만 보살피고 있는 것이었다. 재 너머 나무터에서는 초군들의 긴 노래가 구슬프게 들려 왔다---.
지리산천 가리 갈가마귀야, 이내 속 그 뉘 알꼬…….!
낫을 들면 으레 나오는 노래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서, 여자들이 싸대던 비탈 위에서 갑자기 사람 소리가 나고 조그마한 애 새끼 놈들이 까치집 만큼씩한 삭정이를 해서 지고는, 선불 맞은 산돼지 새끼처럼 혼을 잃고 쫓겨 왔다. 맨 처음에 선 놈이 차돌이, 그 다음은 개똥이……제일 꽁무니에 처져서 밑빠진 고무신을 벗어 들고 허둥대는 놈은 그 해 가을에 퇴학당한 상한이란 놈이다.
"예끼 요놈의 새끼들! 가면 몇 발이나 갈 줄 아니?" 악치 듯한 소리와 함께 보광사 산지기 수염쟁이가 뒤따라 나타났다.
"아이구머니!"
여자들도 겁을 먹고 도망질이다. 잡히면 버섯을 빼앗기고 혼이 날 판. 그루터기에 걸려서 넘어지는 이, 솔가지에 치마폭을 찢기는 이, 그러나 바구니만은 버리지 않고 내달린다. 화젯댁은 제 도망질보다 쫓겨가는 아이들의 뒤를 따르느라고, 몇 번이나 바구니를 내던질 뻔하면서 곤두박질을 쳤다.
"아이구 차돌아, 그만 잡히려무나!"
그래도 아이들은 돌아보지도 않고 달아만 난다. 자갈비탈에서 지게를 진 채 자빠지는 놈, 엎어지는 놈, 그러다가 갑자기 옴츠리고 앉는 놈은 응당 날카로운 그루터기에 발바닥을 찔렸을 것이다.
산지기는 그 애의 나뭇짐을 공치듯이 차서 굴리어 버리고는, 다시 벚나무 몽둥이를 내두르며 앞 엣놈을 쫓는다. 그러자 의상 대사의 공부터라는 바위 밑으로 쫓겨 가던 아이들은 갑자기 무춤하고 발을 멈췄다.---동무 하나가 헛디디어 헌 누더기 날리듯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놀라고 선 영문을 알게 된 산지기는 부릅떴던 눈을 별안간 가늘게 웃기며, "예끼 이놈들, 왜 있으라니까 듣지 않고 자꾸만 달아나더니 결국 이런 변을 일으키지 않나?" 마치 그들이 동무를 밀어뜨리기나 한 듯이 나무랐다.
화젯댁이 미친 듯이 날아 왔다. 다행히 차돌이가 있는 것을 보고는 다소 마음이 놓이는 모양이었다.
"어머니, 상한이가 떨어졌어요!"
화젯댁은 대답도 않고서, 번개같이 비탈 아래로 미끄러지듯이 내려갔다. 모두 그의 뒤를 따랐다. 상한이는 망태기를 진 양으로 험한 바위틈에 내려 박혀 있었다. 화젯댁은 바구니를 내던지고서, 상한이를 안아 내었다. 숨은---벌써 그쳐 있었다. 얼굴은 알아보지 못하게 부서져서 피투성이가 된 위에, 한쪽 광대뼈가 불쑥 튀어나와 있었다. 그리고 그가 죽은 자리에는, 이상하게도 그때까지 지니고 있었던 밑 빠진 고무신이 한 짝 엎어져 있었다.
화젯댁은 한동안 넋을 잃었다. 그러나 우두커니 서 있는 산지기의 얼굴을 노려본 그녀의 눈에는 점점 살기가 떠올랐다.
"당신은 자식이 없소?"
칼로 찌르듯 뼈 물었다.
"있든 없든 무슨 상관이야. 흐---!참! 없다면 하나 낳아 줄 건 가?" 산지기는 뻔뻔스럽게, 털에 쌓인 입만 비쭉할 뿐이었다.
"뭐라구요? 액 여보, 절에 있다구 너무 하오. 아무리 산이 중하기로서니 남의 자식의 목숨을 그렇게 안단 말유?"
화젯댁은 그 자의 거만스러운 상판대기에 똥이라도 집어 씌우고 싶었다.
"야, 이 여편네 좀 봐! 아아주 누굴 막 살인죄로 몰려구 드는군. 건방진 년 같으니, 천지를 모르고서 괜---히. 왜 이따의 새끼 도둑놈들을 빠뜨렸느냐 말야? 이년이 저부터 요런 도둑질을 함부로 하면서 뻔뻔스럽게---"
산지기는 화젯댁의 버섯 바구니를 힘대로 걷어찼다. 그리고는 어디론지 핑 가 버렸다. 초동들의 죄는, 결코 그 산지기의 핑계말과 같이, 돈주고 사지 않은 구역에서 땔나무를 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그 까치집 만큼씩한 삭정이 한 꾸러미를 목표로,식은 밥 한 덩어리씩을 싸들고는 어른들을 따라 이십 리도 더 되는, 동네서 사 놓은 나무터까지 정말 갔던 것이다. 구태여 트집을 잡는다면, 돌아오던 길에 철부지한 마음으로 떨어진 밤을 주우려고 길가 잡목 숲속에 잠깐 발을 들여 놓은 것 뿐이었다.
얼마 뒤에 죽은 아이의 할머니가 파랗게 되어 달려왔다. 가동 할머니다. 그녀는 곁엣 사람은 본체만 체, 바보처럼 우두커니 서서, 늘어진 손자만을 눈이 빠지도록 노려보더니, 그만 '하하하!' 웃어 댔다.
"정말 죽었구나! 너가 정말 죽었구나! 죽인 중놈은 어딜 갔니… …" 그녀는 넋두리를 하는 무녀(巫女)처럼 한바탕 떠들더니 또 다시 '하하하!'한다.
가동 늙은이는 완전히 실신을 하였다. 물 건너로 품팔이간 아들은 죽었는지 살았는지 십 년이 가깝도록 이렇단 소식이 없고, 며느리조차 달아난 뒤로는, 그 손자 하나만을 천금같이 믿고 살아온 것이었다. 이윽고 산지기는 보광사 파출소에서 순사 한 사람을 데리고 왔다.
가동 할멈은 한참 동안 산지기를 노려보더니, '예끼 모진 놈!'하고 이를 덜덜 갈며 발악을 시작했다.
"고라 고랏! 안 대겠소. 나무 산에 도돗지리 보낸 단신 자리 몬 했소. 이 얀반 사라미 아니 주깃소!"
순사는 와락 덤벼드는 가동 할멈을 우악스럽게 물리쳤다. 그러나 밀리면서도, "아이구 이 모진 놈아, 천벌을 맞을 놈아! 내 자식 살려 내라, 살려 내----" "고론 마리 하문 안 대겠소!"
순사는 눈을 잔뜩 부릅뜨고 노파를 막아섰다.
"여보 나리까지도 그러시우---?"
가동 할멈은 장승같이 눈을 흘기더니 갑자기 또 '하하하!' 미친 웃음을 친다.
"아이구 상한아! 상한아! 귀신도 모르게 죽은 내 새끼야---" 하고 할머니는 마치 노래나 하는 듯이, "어허야 상사뒤여, 지리산 갈가마귀 그를 따라 너 갔느냐? 잘 죽었다. 내 손자야, 명산 대 지에서 너 잘 죽었구나--- 하하 하……!"
이렇게 가동 늙은이는 그만 영영 미쳐 버리고 말았다.
6
은하수가 남북으로 돌아져도 성동들은 가을답지 않았다. 전 같으면 들이차게 익어 가는 누른 곡식에, 농부들의 입에서도 저절로 너털웃음이 흘러나오고, 아낙네들은 가끔 햅쌀 되나 마련해서 장 출입도 더러 할 것이로되, 그 해는 거친 들을 싱겁게 지키는 허수아비처럼 모두들 맥없이 말라 빠졌다.
보광사로부터 산 땔나무터에도 인제는 더 할 것이 없고, 또 기한이 지나자, 사내들은 별반 할 일 이 없었다. 간혹 도둑 나무를 하러 다니는 사람이 있지만 붙잡히면 혼이 나곤 했다. 첫여름에 무단히 경찰서로 끌려간 고서방은, 남의 논두렁을 잘랐다는 얼토당토않은 죄에 몰려 괜히 몇 달간 헛고생을 하다가 추석 지난 뒤에 겨우 놓여 나왔으나, 분풀이는커녕 타고난 천성이라 도둑 나무도 못 해 오고 꼬박꼬박 사방 공사 품팔이나 다녔다. 길이 워낙 멀고 보니, 그나마 닭 울 자 집을 나서야 되고, 삯이라곤 또 온 종일 허둥대야 겨우 삼십 전 될락말락. 그러나 이렇게 다니 는 것은 물론 고서방만이 아니었다.
아낙네들은 버섯 철이 지나자 인젠 멧도라지나 캐고, 그렇지 않으면 콩잎 따기가 일이었다. 그것 도 자기 산 없고, 자기 밭 적은 그들은 욕 얻어먹기가 일쑤였다. 마침내 군청에서 주사 나리까지 출장을 나와서, 소위 가뭄으로 인한 피해 상태의 실지조사를 하고 가더니 달포가 지나도록 아무런 소식이 없고, 동네 안에는 다만 주림과 불안만이 떠돌 뿐이었다. 그래도 보광사에서는 갑자기 간평(看坪)을 나왔다. 고자쟁이 이 시봉과 본사 법무원(法務院)에서 셋---도합 네 사람이 나왔다.
간평! 소작료! 농민들에게는 이 말이 무엇보다도 무섭고 또 분했다. 그러나 그날 절논 소작인으로서는 물론 하나도 출타를 않고 기다렸다. 농사 조합의 평의원이 되어 있는 진수도 그날은 면소 일을 제쳐놓고 중들을 맞이하였다.
그래서, 진수의 집 사랑에서는 일찍부터 술상이 벌어졌다. 미리 마련해 두었던 밀주와 술안주가 이내 모자랐든지, 머슴 놈이 보광리 상점으로 종종걸음을 치고 쇠고기 굽는 냄새가 흐뭇이 새어 나오는 통에, 대문밖에 죄인처럼 쭈그러뜨리고 앉은 소작인들은, 괜히 헛침만 꿀떡꿀떡 삼키었다.
작인들은 간평원들의 미움이나 받을까 저어했음인지 차례로 안으로, 들어가서는 오시느라고 수고했다고 공손히 수인사를 하고 나왔다. 고서 방은 지난 여름 당한 일을 생각하면 이가 절로 갈렸지만 그래도 시봉의 앞에 무릎을 꿇지 않을 수 가 없었다.
"에헴, 에헴, 에---헴!"
치삼노인도, 듣는 사람의 가슴까지 걸릴 기침 소리를 연거푸 뽑으면서 기다란 지팡이를 끌고 대문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자식 같은 사람들 앞에 절을 하고서는, 그러지 말라던 아들의 말을 듣지 않고서, 그예 자기 집농사 사정을 여쭈어 보려고 했다.
"여보 노인, 그런 소리는 할 필요 없소. 메밀을 갈았으면 메밀을 간 세만 내면 되지 않겠소?" 이시봉은 거만스런 반말로써 사정없이 쏘았다. 치삼노인은 다시 말해 볼 여지가 없었다.
"여보, 그런 말은 이런 데서 하는 법이 아니오. 괜히 남 술맛 떨어지게!" 곁에 앉은 중 하나가 뒤를 따라 핀잔을 하는 바람에, 화가 더 치밀었으나 진수의 권하는 말에 치 삼노인은 다행히(!) 무사하게 밖으로 나왔다. 그러나 '허 참, 복받겠다고 멀쩡한 자기 논 시주해 놓고 저런 설움을 받다니 온!'하는 젊은 사람들의 말도 들은 체 만 체, 뼈만 왈왈 떨리는 다리를 끌고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다른 사람들은 그래도 진수네 집 대문밖에, 노 우거지상을 하고 앉아서 어서 술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그러다가 더러는 투덜거리며 돌아가고, 잡담이나 하고 고누나 두던 눅은 친구들도 나중에는 역시 불평이 나왔다.
"제에기, 간평을 나온 겐가, 술을 먹으러 나온 겐가? 아무 작정을 모르겠군." 머리끝이 희끔희끔한 친구가 이렇게 불퉁하니깐, 곁에 있던 까만 딱지가, "글쎄 말야, 이것들이 또 논을랑 둘러보지도 않고 앉아서만 소작료를 정할 것 아닌가?" "제에기, 우, 우리 논에는 또 안---가겠군. 자---작년에도 앉아서 세만 자---자 잔뜩 매더니……."
봉구란 놈도 한 마디 보태었다.
"설마 자기들도 사람인 이상 금년만은 무슨 생각이 있을 테지!" 한 시절 보천교에 미쳐서 정감록이 어떠니 하고 다니던 최서방의 말이다. 삼십을 겨우 지난 놈이 아직도 상투를 달고, 거짓말 싱거운 소리라면 '소진장의(蘇秦張儀)'라도 못 따를 것이고, 한동안 보천교에 반했을 때는 '육조판서'가 곧 된다고 허풍을 치던 위인이다.
"이 사람 판서, 설마가 사람 죽이는 걸세. 생각은 무슨 생각! 자네 판서나 마찬가지지 뭐." 툭 쏘는 놈은, 일본서 탄광밥 먹다 온 까만 딱지 또쭐이었다. 이윽고 술이 끝났다. 모가지 짬까지 벌겋도록 취해서 나서는 간평원들! 금테 안경을 쓴 진수 아 가 사립 밖까지 나와서 배웅을 하자, 그들은 인도하는 진수의 뒤를 따라서 단장과 함께 비틀거렸다. 그러한 그들의 뒤에는, 얼굴이 노랗고 여윈 소작인들이 마치 유형수(流刑囚)처럼 묵묵히 따랐다.
술취한 양반들에게 옳은 간평이 될 리 없었다.----그거 작인들의 말은 마이동풍 격으로, 논두렁에도 바특이(조금 가까이) 들어서 보는 법도 없이 다만 진수하고 알아듣지도 못할 왜말을 주절거리면서, 그야말로 처삼촌 산소 벌초하듯이 흐지부지 지나갈 뿐이었다. 그러면서도 짐짓 성실한 듯이 이따금 단장을 쳐들어 여기저기를 가리키기도
하고, 혹은 수첩에 무엇인가를 적어 넣으면서.
그렇게 허수아비처럼 흐느적거리며 들깨의 논 곁을 지날 때였다.
"왜 메밀을 갈았소?"
시봉은 들깨의 수인사 대답으로 이렇게 물었다.
"헐 수 있어야죠. 마른 모포기 기다렸댔자 열음(열매) 않을 게고……" 들깨는 한 손에는 콩대, 한 손에는 낫을 든 채 열쩍게 대답했다.
"메밀은 잘 됐구먼."
"뭘요. 이것도 늦게 뿌려서……"
들깨는 시봉의 다음 말을 두려워하는 태도였다.
다른 사람들은 슬금슬금 앞두렁으로 걸어갔다. 거기서는 아기를 등에 업은 들깨의 아내와 누이동생이 바쁘게 두렁 콩을 베고 있었다. 덕아는 열 일곱의 처녀로서는 놀랄 만큼 어깻죽지가 벌어지고, 돌아앉은 뒷모습이 한결 탐스러웠다. 자기 뒤에 가까이 낯설은 사내들이 와선 것을 깨닫자, 푹 눌러 쓴 수건 밑으로 엿보이는 두 볼이 저으기 붉어진 듯은 하나, 낫을 든 손은 여전히 쉴 새가 없었다.
"오빠! 왜 암말도 못 했소?"
간평꾼들이 물러가자, 덕아는 시무룩해 가지고 돌아오는 들깨를 안타까운 듯이 쳐다보았다.
"말은 무슨 말을 해?"
"세 좀 매지 말라구……"
"그놈들 제멋대로 매는 걸 어떻게."
"그럼 오빠는 이까짓 메밀 간 세도 바치려네?"
덕아는 자못 서글퍼 하는 말씨였다.
"글쎄, 먹고 남으면 바치지!"
들깨는 픽 웃었다. 그는 최근에 와서 갑자기 무던히 배짱이 커졌다. 덕아는 오빠의 말에 확실히 일종의 미더움을 느꼈다. 그러나 허리에 낫을 여전히 꽂은 채 담배만 빡빡 피우고 앉은 오빠의 마음속은 결코 그리 후련한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서 메밀밭 위를 바삐 나는 고추잠자리처럼 조급하지도 않았지만. 이튿날 저녁, 동네 사람들은 진수의 집 사랑에 불려 가서, 진수의 입으로부터 제각기 소작료를 들어 알았다. 그리고 그 무서운 결정에 다들 놀랐다. 그러나 가장 현대적 마름인 소위 평의원 앞에서, 버릇없이 덤뻑 불평을 늘어놓다가는 어느 수작 에 어떻게 될지 모르는 형편이라, 작인들은 내남없이, '허 참! 톡톡 다 떨어 봐두 그렇게 될 둥 말 둥한데……?' 따위의 떡심 풀린 걱정 말이나 중얼거릴 뿐 모두 맥없이 돌아갔다.
들깨와 철한이들---이 동네 교풍 회장인 쇠다리 주사의 말을 빌면 동네서 제일 콧등이 세고 어긋한 놈들은, 벌써 버릇이 되어서, 미리 의논이라도 한 듯이, 그날 밤에도 진수의 집에서 나오자 슬슬 야학당으로 모여들었다. 어느새 왔는지 곰보 고서방도 작은 방 한쪽 구석에 다른 때보다 한풀 더 힘없이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이윽고 불강아지 새끼 같은 야학생들을 죄 돌려보내고는, 까만 딱지 또쭐이가 큰방으로부터 돌아왔다. 더펄더펄 자란 머리털 위에 분필 가루를 허옇게 쓰고.---서른 세살로는 엄청나게 늙어 보이는 얼굴이었다.이렇게 소위 콧등이 센 놈들은 저녁마다 야학당에 모여서, 그날 그날의 피로를 잊어 가며 잡담도 하고 농담들도 하다가는, 또쭐이로부터 일본의 탄광 이야기도 듣고, 또 이곳 저곳에서 일어나는 소 작 쟁의 얘기도 들었다. 더구나 소작 쟁의에 관한 이야기는 마치 자기들의 일같이 눈을 꿈벅거리며, 혹은 입을 다물고 들었다.
그날 밤에도 그들은 이슥토록 거기 모여서 놀았다. 그러다가 마침내, 나올 곳 없는 그 해 소작료를 어떻게 할까 하는 말이 누구의 입에선지 나오게 되었다.
7
쇠다리 주사 댁 감나무에 알감이 주렁주렁 달리고, 여물어진 박들이 희뜩희뜩 드러난 잿빛 지붕들 에 고추가 발갛게 널리자 가을은 깊을 대로 깊었다.그러나 농민들 생활은 서리맞은 나뭇잎같이 점점 오그라져서, 밤이면 야학당에 모여드는 친구가 부쩍 늘어갔다. 하룻밤에는 몇 사람이 쇠다리 주사댁 감을 따왔다.
"빨리들 먹게!"
또쭐이는 뒷일이 떠름했지만, 다른 친구는 오히려 고소한 듯한 표정을 하였다.
"아따, 개똥이 저놈, 나무 재주는 아주 썩 잘 해! 그저 이 가 지 저 가지 휘뚝휘뚝 타고 다니는 것이 꼭 귀신같데."
철한이는 먹기보다 감 따던 이야기를 더 재미있게 했다.
"먹고 싶어 먹었다. 체하지는 말어라!"
한 놈이 벌써부터 두 가슴을 두드린다. 그러면서도 또 한 개를 골라 든다. 사실, 퍼런 콩잎이랑 고춧잎 따위에 물린 그들의 입에, 감은 확실히 일종의 별미였다.
"제에기, 또 연설 마디나 있겠지?"
또쭐이가 담배를 피워 물며 두덜대니깐, 바로 곂에 있던 고서방이, "연설 아니라, 무릎을 꿇고 빌어도 하는 수 없지!"
자칫하면 동네 집회소---이 야학당에다 사람들을 모아 놓고, 소위 사상 선도의 연설이 있곤 하였다. 그러나, 연설만으로써 어떻게 될 리는 만무하였다. 더구나 속이 빤히 들여다보이는 교풍 회장 쇠다리 주사나 진흥회장 진수 따위가 씨부렁대는 설교에는 인제 속을 사람은 없었다.
지금은 누가 뭐라고 하더라도, 농민들은 결국 자기들대로 하는 수밖에 없었다. 소작료도, 빚도 인젠 전과 같지는 두렵지가 않았다. 그저 제가 지은 곡식이면 모조리 떨어다 먹었다. 뿐만 아니라 가다가는 남의 것에도 손이 갔다. 그러할수록 동네의 소위 유산자인 쇠다리 주사와 진수의 신경은 극도로 날카로와졌다.
이튿날 아침, 철한이는 안골 논에서 콧노래를 흥얼거리면서 바쁘게 낫을 휘둘렀다. 찬물 내기가 되어서 거기만은 겨우 가뭄을 덜 타고, 제법 벼이삭이 고개를 숙였다. 그는 잇달아 흥타령을 부르면서, 지난밤 어머니에게서 처음으로 들은 자기의 혼사말을 문득 생각하였다. 상대자는 성동리에서 제일 얌전하다는 덕아였다.
한동안 치삼노인이 쇠다리 주사의 꿀떡 같은 말에 꾀였을 때는, 쇠다리 의 첩으로 가게 되느니 어쩌느니 하는 소문이 퍼져서 울고 불고 하던 덕아가 결국 자기에게 오련다 는 것이었다. 물론 그 이면에는 오빠 들깨의 숨은 힘이 크리라는 것을 생각하면, 오빠가 한없이도 고마왔다. 철한이의 머릿속에는 자꾸만 덕아가 떠올랐다. 한동네에 살면서도 자기와 마주치면 곧잘 귀밑을 붉히며 지나가던 덕아! 또렷한 콧잔등에 무엇을 노 생각는 듯한 두 눈! 그리고……그렇 다. 지난 봄 덕아가 바로 그 논에 모내기를 왔을 때 본 그 희고 건강한 팔다리!---예까지 생각하다가 철한이는 혼자서 픽 웃으며 머리를 절절 흔들어 공상을 흩어 버리고는, 베어 둔 볏단을 주섬주섬 안아서 지게에 얹었다.
그걸 해 지고, 총총히 자기 집 돌담을 돌아올 때, 그는 갑자기 발을 무춤 멈추었다. 안에서 뜻밖에 아버지의 고함 소리가 새어 나왔기 때문이다.
"미친 소리 말어! 이런 엉세판에 뭐 자식 장가?"
철한이는 그 말에, 일껏 가졌던 희망이 덜컥 무너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자리에 서 있는 것 이 행여 누가 볼까 부끄럽기도 했지만, 잠깐 더 어름댔다.
"자식을 두었으면 으레 장가를 들여야지, 그럼 살기 딱하다고 언제까지나……" 어머니의 눈물겨운 대꾸가 들렸다.
"그래도 곧 잘했다는 게로군. 앙큼한 년 같으니!"
"어디 종년으로 아시우? 늙어 가며 툭하면 이년 저년 하게" "저런 죽일 년 좀 봐!"
"죽일려든 죽여줘요. 나도 임자에게 와서 스무 해가 넘도록 종노릇도 무던히 해 주고 자식 도 장가들 나인데, 인젠 이년 저년 하는 소린 더 듣기 싫어요." "저년이 누구 앞에서 곧장 대꾸를 종종거리는 거야! 예끼, 미친 년, 죽어라 죽어!" 아버지의 벼락같은 호통과 함께 질그릇 부서지는 소리가 나더니, 이내 어머니의 외마디 소리까지 들렸다.
철한이는 부리나케 집으로 들어갔다. 아버지는 어느새 어머니의 머리채를 움켜쥐고 있었다.
"제발, 이것 좀 놔요. 잘못했소. 내 잘못했소."
어머니는 머리를 얼싸쥐고 빌었다.
"아버지! 이거 노세요. 아무리 짜증이 나시더라도 이게 무슨 꼴 이여요. 이웃 사람 웃으리 다."
아들이 뒤에서 안고 말리니까, 아버지는 못 이기는 듯이 떨어졌다. 허나 분을 못 참고서, "이 죽일 년아, 나는 여태 누구 종노릇을 해 왔기에? 너희들이 들어서 내 뼉다귀까지 깎아 먹지 않았나? 응, 이 소견머리 없는 년아!"
그러면서 부들부들 떨었다.
싸움 바람에 식겁을 한 막내 아들놈은 아침밥도 얻어먹지 못하고서 눈물만 그렁그렁해 가지고 학교로 떠났다. 어머니는 한참 동안 넋잃은 사람처럼 되어서 뒤꼍 치자나무 앞에 앉아 있었다. 외양간 앞으로 돌아가 혼자 울가망하게 서서 홧담배만 피워 대는 아버지의 손아귀에는, 바칠 기한이 지난 세금 고지서와 함께 농사 조합에서 빌어 쓴 비료 대금 독촉장이 꾸겨져 들려 있었다. 그는 문득 외양간 안으로 쑥 들어가더니, 순순히 서 있는 쇠등을 슬쩍 쓰다듬어 본다. 그것이 마치 악착한 생활에 함께 부대낀 자기의 아내나 되는 듯이…… 긴 눈썹 사이로 움푹 들어간 그의 눈에는 어느새 웬 눈물까지 고여 있었다. 철한이의 결혼은, 그리고 약 한 달 뒤에 행례가 있었다.
8
"아이고, 어느 도둑놈이 그 벼를 베어 갔을까? 생벼락을 맞아 죽 을 놈! 그 벼를 먹고 제가 살 줄 알아…… 창자가 터질꺼여 터져!"
하며 봉구 어머니가 몽당치마 바람으로 이 골목 저 골목 외고 다니고, 호세 징수를 나온 면서기가 그녀를 찾아다니던 날, 성동리에서는 구장 이외 고서방, 들깨, 또쭐이 들 사오 인이 대표가 되어 보광사 농사 조합으로 나갔다. 그들의 하소연은, 자기들이 봄에 빌어 쓴 소위 저리자금(低利資金) 의 ---대부분은 비료 대금이지만---지불 기한을 조금 더 연기해 달라는 것이었다.
보광사 소작인들은 해마다 소작료와 또 소작료 매석에 대해서 너 되씩이나 되는 조합비와 비료 대금과 그것에 따른 이자를 바쳐야만 되었다. 그리고 비료 대금은 갚는 기한이 해마다 호세와 같았다. 의젓하게 교의에 기댄 채 인사도 받는 양 마는 양하는 이사(理事)님은 빌 듯이 늘어놓는 구장의 말일랑 귀 밖으로, 한참 '씨끼시마'껍데기에 낙서만 하고 있더니, 문득 정색을 하고는, "그런 귀치 않은 논은 부치지 않는 게 어때요?"
해 던졌다.
"……."
"해마다 이게 무슨 짓들이요? 나두 인젠 그런 우는소리는 듣기만이라도 귀찮소. 호세만 내고 버티겠거든 어디 한 번 버티어들 보시구려!"
"누가 어디 조합 돈은 안 내겠다는 겁니까. 조금만 연기를 해 달 라는 거지요." 이번에는 또쭐이가 말을 받았다.
"내든 안 내든 당신들 입맛대로 해 보시오. 난 이 이상 더 당신들과는 이야기 않겠소." 이사남은 살결 좋은 얼굴에 적이 노기를 띄우더니, 그들 틈에 끼여 있는 곰보를 힐끗 보고는, "고서방 당신은 또 뭘 하러 왔소? 작년 것도 못 다 내고서 또 무슨 낯으로 여기 오우?" 매섭게 꼬집었다. 그리고 그는 다시 장부를 뒤적거리면서, 하던 일을 계속했다. 일행은 허탕을 치 고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며칠 뒤, 저수지 밑 고서방의 논을 비롯하여 여기저기에, 그예 '입도차압(立稻差押)'의 팻말이 붙기 시작했다. 농민들은 알아보지도 못하는 그 차압 팻말을 몇 번이나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보았다.---피땀을 흘려 가면서 지은 곡식에 손도 못 대다니? 그들은 억울하고 분하기보다, 꼼짝없이 인젠 목숨을 빼 앗긴다는 생각이 앞섰다.
고서방은 드디어 야간 도주를 하고 말았다.
"이렇게 비가 오는데, 그 어린것들을 데리고 어디로 갔을까?" 이튿날 아침, 동네 사람들은 애터지는 말로써 그들의 뒤를 염려했다.
무심한 가을비는 진종일 고서방이 지어 두고 간 벼이삭과 차압 팻말을 휘두들겼다. 무슨 불길한 징조인지 새벽마다 당산 등에서 여우가 울어 대고, 외상 술도 먹을 곳이 없어진 농민들은 저녁마다 야학당이 터지게 모여들었다.
그리하여 하루 아침, 깨어진 징소리와 함께 성동리 농민들은 일제히 야학당 뜰로 모였다. 그들의 손에는 열음 못한 빈 짚단이며 콩대, 메밀대가 잡혀 있었다.
이윽고 그들은 긴 줄을 지어 가지고 차압 취소와 소작료 면제를 탄원해 보려고 묵묵히 마을을 떠났다. 아낙네들은 전장에나 보내는 듯이 돌담 너머로 고개를 내가지고 남정들을 보냈다. 만약 보광사에서 들어주지 않는다면…… 하고 뒷일을 염려했다.
그러나 또쭐이, 들깨, 철한이, 봉구---이들 장정을 선두로 빈 짚단을 든 무리들은 어느새 벌써 동네 뒤 산길을 더위 잡았다. 철없는 아이들도 행렬의 꽁무니에 붙어서 절 태우러 간다고 부산히 떠들어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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