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안팎에서 다윗처럼 저주나 비난을 받았다면 위에 제시된 성경구절을 항상 묵상할 뿐만 아니라 그런 상황이 되지 않았다고 할지라도 말씀의 바탕을 내 안에 저장해 두어야 한다.
우리가 말씀을 붙들고 믿음의 여정 길을 걸어가는 걸음을 하나님께서 정해 높으신 법의 저울로 달아보시고 계신다는 뜻
다윗이 솔로몬에게 성전건축을 지시하면서 당부했던 말씀 중에 “내 아들 솔로몬아 너는 네 아버지의 하나님을 알고 온전한 마음과 기쁜 뜻으로 섬길지어다. 여호와께서는 모든 마음을 감찰하사 모든 의도를 아시나니 네가 만일 그를 찾으면 만날 것이요, 만일 네가 그를 버리면 그가 너를 영원히 버리시리라.”(역대상 28:9)
다윗은 성전건축에 쓸 예물을 준비하면서 감사기도를 드리는 내용 중에도 감찰의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나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마음을 감찰하시고 정직을 기뻐하시는 줄을 내가 아나이다. 내가 정직한 마음으로 이 모든 것을 즐거이 드렸사오며 이제 내가 또 여기 있는 주의 백성이 주께 자원하여 드리는 것을 보오니 심히 기쁘도소이다.” (역대상 29:17)
역대하 16:9에도 선지자 하나니가 유다 왕 아사에게 나와서 경고의 말씀 중에도 감찰의 단어를 사용했다.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들을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 이 일은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은즉 이 후부터는 왕에게 전쟁이 있으리이다.”
역대하 24:22 에는 제사장 여호야다가 종교정책을 세워 성전을 보수하여 우상숭배를 금지하는 제도실행하고 있었다. 여호야다가 죽은 뒤 유다 방백들이 요아스 왕에게 와서 여호와의 전을 버리고 우상을 섬겼다. 그러나 하나님은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를 비롯하여 여러 선지자들을 보내어 돌아서게 하려고 했다.
무리들이 서로 꾀하여 왕의 명령에 따라 여호와의 전 뜰 안에서 돌로 쳐 죽임을 당한 스가랴가 죽기 전에 “요아스 왕이 이와 같이 스가랴의 아버지 여호야다가 베푼 은혜를 기억하지 아니하고 그의 아들을 죽이니 그가 죽을 때에 이르되 여호와는 감찰하시고 신원하여 주옵소서.” 라고 유언을 했다.
느헤미야 9:9에는 학사 에스라의 주도 아래 열린 신앙각성대회가 열렸다. 일곱째 달 스무 나흗날에 백성들이 자복하는 가운데 여러 레위인이 찬양과 함게 신앙고백하는 과정에서 “주께서 우리 조상들이 애굽에서 고난 받는 것을 감찰하시며 홍해에서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라는 표현을 하고 있다.
욥기 7:20에도 욥의 친구 엘리바스가 4장과 5장에 걸쳐 긴 질문을 했을 때 욥이 6장과 7장을 통해 대답하는 내용 중에 “사람을 감찰하시는 이여 내가 범죄 하였던들 주께 무슨 해가 되오리이까? 어찌하여 나를 당신의 과녁으로 삼으셔서 내게 무거운 짐이 되게 하셨나이까?”라는 표현하고 있다.
욥기 13:9에도 욥의 친구가 11장 소발의 질문에 12장과 13장에 걸쳐 대답을 하는 내용 중에도 “하나님이 너희를 감찰하시면 좋겠느냐 너희가 사람을 속임 같이 그를 속이려느냐?”라고 하면서 강한 반론을 제시하고 있다.
이어 욥기 14:16에는 욥이 13:20~14:22까지 감사의 기도를 드리면서 “그러하온데 이제 주께서 나의 걸음을 세시오니 나의 죄를 감찰하지 아니하시나이까?” 감찰의 단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여기서 감찰이란 단어 핵심적 내용을 담고 있다.
감찰이란 단어인‘타칸’은 단순히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이나 행동을 보시는 관점만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말씀을 붙들고 믿음의 여정 길을 걸어가는 걸음을 하나님께서 정해 높으신 법의 저울로 달아보시고 계신다는 뜻을 담고 있다.
우리가 믿음의 잣대를 올바르게 사용하고 있는지 저울질하고 계시며 우리가 믿음의 여정을 옳게 걸어가고 있는 걸음걸이 측정하시며 평가하고 있다. 과연 나는 감찰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제대로 받고 있는지 점검해야겠다. 자칫 느슨해지기 쉬운 무더운 여름철에 각성해야 되는 시간이 되어야겠다. 출처/창골산 봉서방 카페 (출처 및 필자 삭제시 복제금지/꼭 지켜주세요)
첫댓글 아멘 !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아멘!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아멘 감사합니다
(*감찰)히브리어로 "타칸"은 “저울을 달다, 평가를 한다.”는 뜻을 갖고 있다.잘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