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분하던 한국 국민, 앞으로 국가 정상화와 위기 극복을 [4월 5일자 사설] 윤대통령 파면 / 4/5(토) / 조선일보 일본어판
한국 헌법재판소가 4일 윤석열 대통령 파면을 결정했다. 2017년 박근혜 대통령=당시=에 이어 8년 만에 임기 중인 대통령이 퇴진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지난해 말 비상계엄 선포·대통령 탄핵소추 이후 4개월간 이어져 온 혼란과 대립은 박근혜 전직 대통령 때보다 심각했다. 하지만 이번 파면 결정 직후에는 여당·국민의힘이 즉각 결정 수용과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고 탄핵 찬성파·반대파의 시위도 큰 충돌 없이 끝났다. 8년 전 4명이 숨지고 63명이 다치는 참사가 벌어진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는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한국 국민은 분열돼 있고 대립도 심하지만 지켜야 할 선은 지키는 현명한 국민이다. 이제는 정쟁과 혼란의 굴레에서 벗어나 조속히 국정 정상화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
헌법재판소는 이날 재판관 8명의 만장일치로 파면을 결정했다. 비상계엄 상황은 온 국민이 TV로 지켜보고 있었다. 헌법이 정한 비상계엄 요건에 맞는지, 국무회의 등 적절한 절차를 지켰는지, 계엄 선포 이후 법이 정한 국회 활동의 자유를 방해했는지 등 핵심적인 문제는 모두 목격됐다는 뜻이다. 윤 대통령=당시=이 추천 임명한 헌법재판관도 모든 주요 쟁점이 헌법과 법률을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탄핵 반대 시위에 참가한 시민들의 좌절감은 클 것이다. 탄핵 반대파 인사들은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총리나 장관들에 대해 탄핵소추, 방탄(=몸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 입법을 30차례에 걸쳐 잇달아 내놓는 등 폭주해 국정을 뒤흔들고 있는 상황에 분노해 거리로 나와 시위를 해왔다. 더불어민주당이나 탄핵 찬성파 단체들이 탄핵 반대파 인사들을 깔보거나 자극해 탄핵 성립을 반기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니다. 이는 어느 한 쪽이 이겼거나 졌다거나 하는 게임이 아니라 한국 정치의 비정상적인 점이자 비극의 한 단면이다. 기뻐할 일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민주당 일부 의원이 반헌법행위자처벌법을 발의한 것은 경솔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우선 부끄러운 것은 이런 사람들이다. 정당 지도부나 주요 대선주자들도 지지자들을 설득해 갈등과 분열의 복원에 앞장서야 한다. 더 이상 갈등을 조장하거나 선동해서는 안 된다.
앞으로 60일 이내에 대통령선거가 실시된다. 지난 4개월간 국민은 심리적 내전 상태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갈등을 겪어 왔다. 대선에서는 불가피하게 갈등이 커질 가능성이 높지만 정치권의 행태에 따라 갈등을 줄이고 국정을 정상화하는 계기로 삼을 수도 있다. 대통령 권한대행인 한덕수 국무총리는 대선이 공정하게 치러질 수 있도록 선거관리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대선 주자들도 국민통합을 위해 노력하는 동시에 과거에 대해가 아니라 나라의 현안과 미래 비전에 대해 서로 경쟁하는 자세를 보여주기 바란다.
계엄·탄핵이라는 사태를 거치면서 지금의 대통령제로 나라를 원만하게 운영하기 어렵다는 것이 다시 한번 분명해졌다. 1987년 개헌 후 선출된 대통령 8명 중 3명은 퇴임 후 체포됐고 1명은 수사를 받던 중 자살했다. 3명이 탄핵소추됐고 그중 2명이 파면됐다. 그런데도 역대 대통령들은 모두 당선 후 자신들의 권력을 약화시킬까 봐 개헌을 외면해 왔다. 그러나 이대로는 안 된다는 국민들의 공통 인식은 어느 때보다 강하다. 여야 중진과 주요 대선주자들은 모두 개헌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다만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만 개헌에 대해 소극적인 견해를 바꾸지 않고 있다.
만약 이재명 대표가 집권한다고 해도 현행 대통령제의 무한정쟁 구조 속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다. 여당은 대통령의 친위대로 전락해 전횡을 일삼고, 야당은 반대를 위한 반대를 거듭할 것이다. 이러다간 극한 대치와 대립, 탄핵의 악순환이 되풀이된다. 현실적으로 60일 이내에 치러지는 대선 전까지는 개헌을 추진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여야와 대선주자들이 여야 협의정치를 핵심으로 하는 개헌안을 공약으로 내걸고 대선 후 바로 국회 개헌특위에서 이를 정리해 국민투표에 부쳐야 한다. 임기만 보장된다면 새 대통령이 누구든 반대할 이유가 없다. 개헌이 되면 후진적 정치가 바뀌고 한국도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정쟁을 일삼는 사이에 나라 밖에서는 전례 없는 위기의 물결이 밀려오고 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억지 관세 폭탄으로 경제 위기가 심화하고 있다. 한국 기업들이 잇따라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높아 수출은 이미 줄었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이벤트 가능성 등으로 볼 때 안보 불확실성도 높다. 따라서 대선까지 과도기인 지난 두 달간은 위험하고도 긴요한 기간이다. 불필요한 정쟁을 자중하고 여야와 정부는 긴밀히 협력해야 한다.
지금은 모두 탄핵이라는 결과를 받아들이고 자중해 일상을 되찾아야 한다. 분열과 대립을 멈추고 나라를 정상화시켜야 한다.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니고, 우리 한국인 모두를 위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