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양환해장성(三陽環海長城)
삼양환해장성(三陽環海長城)은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삼양3동에 있는 고려시대의 환해장성이다. 1998년 1월 7일 제주특별자치도의 기념물 제49-3호로 지정되었다.
배를 타고 들어오는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제주도에서는 해안선을 따라가며 성을 쌓았는데 이를 환해장성이라 한다. 현재 성벽이 남아있는 곳으로는 온평리, 행원리, 한동리, 동복리, 북촌리, 애월리, 고내리 등 14곳이 있다. 김상헌이 지은 『남사록』에는 환해장성을 일러 ‘탐라의 만리장성’이라 부르고 있다.
삼양 환해장성은 별도마을과 벌랑마을의 중간에 해당하는 곳에 자리잡고 있다. 성 밖의 지형은 낮고 성 안의 지형은 높은 형태로, 현재 남아 있는 성벽의 전체 길이는 약 280m이다. 바깥쪽의 성벽은 비스듬한 경사를 이루고 있는 반면 안쪽의 성벽은 직각에 가까운 경사를 이루고 있다.
환해장성(環海長城)
제주도의 해안선을 따라 쌓아 놓은 성벽.
지정종목 시도기념물
지정번호 제주기념물 제49호
지정일 1998년 01월 07일
소재지 제주전역
시대 고려
종류/분류 성곽
1998년 1월 7일 제주도기념물 제49호로 지정되었다. 바다로부터 침입해 오는 적을 방비하기 위하여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에 걸쳐 쌓은 것이다.
제주도는 바다로부터 침입하는 적들이 상륙하기 좋은 곳이 많다. 그러므로 이들에 대한 방비로 해안선의 접안할 수 있는 곳을 돌아가면서 돌로 성(城)을 쌓아 놓았다. 이것을 환해장성이라고 한다.
1653년 제주목사 이원진(李元鎭)이 편찬한 《탐라지》 〈고장성(古長城)〉조에 의하면 “연해 환축(環築)하여 둘레가 300여 리라. 고려 원종 때 삼별초가 진도에서 반하니 왕은 시랑(侍郞) 고여림 등을 탐라에 파견하여 영병 1,000으로 이를 대비하여 장성을 구축하였다.”고 하였다.
이 사실을 《탐라기년》에는 “6월에 영국 선박이 우도(牛島)에 정박하여 섬에 작은 흰 기를 세우고 섬 연안 수심을 1개월 동안이나 측량하면서 돌을 모아 회(灰)를 칠하여 방위를 표시하였다. 이때 권직(權稷) 목사는 크게 놀라 마병(馬兵)과 총수(銃手)를 총동원하여 만일의 변에 대비하였고, 그해 겨울 도민을 총동원하여 환해장성을 수축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삼양환해장성 위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