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essandro Di Bussolo / 번역 이창욱
하느님께서 (먼저) “첫걸음을 떼시고” “사랑할 줄 모르는 인류”를 사랑하신다. 왜냐하면 그분께서는 연민과 자비를 가지고 계신 반면, 우리는 비록 착하지만, 많은 경우 다른 이들의 필요를 깨닫지 못하고 “어쩌면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속에 들어오지 않았기에 무관심한 채 지내기 때문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1월 8일 주님 공현 대축일 후 화요일 산타 마르타의 집 아침미사 강론을 통해 이같이 말했다. 이날 미사는 조지오 주르(Giorgio Zur) 대주교의 영원한 안식을 위해 봉헌됐다. 오스트리아 교황대사를 지낸 주르 대주교는 “이곳 산타 마르타의 집에 거주해 오던 중 지난 밤 자정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교황은 성 요한 사도의 첫째 편지에 나오는 사랑의 권고부터 마르코 복음의 빵을 많게 한 기적에 이르기까지, 이날 전례 말씀에서 묵상의 실마리를 잡았다
하느님께서 첫걸음을 떼셨고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습니다
교황은 “사랑하는 여러분, 서로 사랑합시다. 사랑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1요한 4,7)라는 제1독서의 성 요한 사도 말씀을 인용했다. 요한 사도는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설명했다. 곧, “하느님께서 당신의 외아드님을 세상에 보내시어 우리가 그분을 통하여 살게 해 주셨습니다”(1요한 4,9). 교황은 “이것이 바로 사랑의 신비”라며 다음과 같이 확언했다. “하느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그분께서 (먼저) 첫걸음을 떼셨습니다.” (그것은) “사랑하기 위해 하느님의 어루만짐이 필요하고”, 하느님의 증거가 필요하지만, “사랑할 줄 모르는 인류를 향한” 첫걸음이었다. “하느님께서 행하신 이 첫걸음은 바로 그분의 아드님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고 삶에 의미를 주시기 위해, 우리를 쇄신시키기 위해, 우리를 재창조하시기 위해 그분을 보내셨습니다.”
티베리아 호숫가에서 예수님은 군중에게 가엾은 마음을 가지셨습니다
이어 교황은 빵과 물고기를 많게 한 기적에 관한 마르코 복음서의 구절을 설명했다. 교황은 “왜 하느님께서 이런 일을 행하셨는가?”라고 물으며 “‘가엾은 마음(compassione, 연민)’ 때문”이라고 말했다. (예수님께서는) 티베리아 호숫가에서 배에서 내리시어 많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교황은 그들이 홀로 버려져 있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 같았기 때문이다”(마르 6,34).
“하느님의 마음, 예수님의 마음은 뭉클했고, (주변을) 보셨으며, 그 사람들을 바라보시자 무관심하게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사랑은 쉬지 않습니다. 사랑은 무관심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가엾은 마음을 갖습니다. 가엾은 마음은 마음을 쏟는 것이며 자비를 뜻합니다. 타인을 향해 마음을 쏟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사랑이란 타인들을 위해 마음을 쏟는 것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들이 음식을 찾아야 합니다”고 말한다
교황은 사람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치시는 예수님과 마지막에 제자들이 “왜 예수님은 항상 같은 말씀만 하실까”하며 지루해하는 모습을 묘사했다. 그래서 예수님이 “사랑과 가엾은 마음을 갖고” 가르치시는 동안, 어쩌면 (제자들은) “자기들끼리 말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리고는) 마침내 시계를 봤을 것이다. “그런데 너무 늦었네. (...)” (여기서) 교황은 마르코 복음사가의 말을 한 번 더 인용했다. “여기는 외딴곳이고 시간도 이미 늦었습니다. 그러니 저들을 돌려보내시어, 주변 촌락이나 마을로 가서 스스로 먹을 것을 사게 하십시오”(요한 6,35-36). 실질적으로 제자들은 “사람들이 알아서 (자기네들의 식사를) 준비해야 하고” 그들이 빵을 사야 한다고 말한 것이다. 교황은 “제자들이 ‘우리는 문제없어’라고 생각하고, 자신들을 위한 빵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들은 그 빵을 지키고 싶어했습니다. 이는 무관심입니다.”
“제자들은 사람들에게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했기 때문에, 그분에게만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렇다고) 제자들이 나쁜 사람들은 아니었습니다. (단지) 무관심했던 겁니다.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가엾은 마음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던 겁니다. 무관심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던 겁니다. 가엾은 마음과 자비의 핵심을 깨닫기 위해, 제자들은 죄를 짓고, 스승을 배반하며, 스승을 버려야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대답은 예리했습니다.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마르 6,37). 그들에 대한 책임을 져라. 이는 예수님의 가엾은 마음과 무관심 간의 투쟁입니다. 그 무관심은 역사 안에서 되풀이됩니다. 언제나, 계속, 계속, (...).”
“수많은 사람들이 좋은 사람들이긴 합니다만, 다른 이들이 필요로 하는 요구를 이해하지 못하고, 가엾은 마음을 갖지 못합니다. (그들은) 좋은 사람들이지만, 어쩌면 그들 마음속에 하느님의 사랑이 들어오지 않았거나, 혹은 들어오지 못하게 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노숙자의 사진과 눈길을 돌리는 사람들
여기서 교황은 교황청 자선소의 벽에 걸린 한 장의 사진을 설명했다. “훌륭한 로마 청년이 찍은 스냅사진인데 자선소에 기증했습니다.” 그 사진을 찍은 사람은 현재 교황청 기관지 「로세르바토레 로마노」(L’Osservatore Romano)의 사진기자 다니엘레 가로파니(Daniele Garofani)다. 그는 크라예프스키(Krajewski) 추기경과 함께 노숙자들에게 무료 급식 봉사를 하고 돌아오는 길에 그 사진을 찍었다. 교황은 그가 어느 겨울밤에 “레스토랑에서” 나오는 “모피 외투를 잘 차려 입은 사람들의 모습을 지켜봤다”고 설명했다. “사람들은 모두 잘 차려입고 있었으며” “친구들과 함께 잘 먹어서” 만족스러운 모습이었다. 교황은 사진을 계속 설명하면서, 거기에는 “길바닥에 노숙자가 있었는데, 이렇게 웅크리고 있었습니다. (...)” 교황은 구걸하며 손을 내미는 동작을 흉내내면서 계속해서 사진을 설명했다. “사람들이 다른 곳을 바라보는 순간에 (사진을) 찍을 수 있었는데, 서로 눈길이 마주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어 교황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것이 바로 무관심의 문화입니다. 이것이 (당시) 사도들이 취했던 태도입니다.” “어둡고, 배고플 테니, ‘저들을 돌려보내시어, 주변 촌락이나 마을로 가서 스스로 먹을 것을 사게 하십시오’. 저들의 문제입니다”(마르 6,35-36 참조). “우리는 먹을 것이 있습니다. 우리를 위한 ‘빵 다섯 개, 그리고 물고기 두 마리가 있습니다’(마르 6,28).”
사랑의 반대는 증오가 아니라 무관심입니다
교황은 “하느님의 사랑은 항상 (우리보다) 먼저 간다”면서 “(하느님의 사랑은) 가엾은 마음(연민)의 사랑, 자비의 사랑”이라고 말했다. “사랑의 반대가 증오인 것은 사실이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의식적인 증오’는 없습니다.”
“하느님의 사랑, 하느님의 연민에 가장 일상적인 반대는 무관심입니다. 바로 무관심이지요. ‘나는 만족해. 나는 부족한 것이 하나도 없어. 나는 모든 것을 갖고 있어. 이번 생애는 확실히 보장되고 영원도 마찬가지로 확실해. 왜냐하면 나는 매주일 미사에 참례하러 가고, 좋은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이야.’ ‘하지만, 레스토랑에서 나가면서 나는 다른 곳을 바라보지.’ 생각해봅시다. 하느님은 (먼저) 첫걸음을 떼셨고, 연민을 가지셨으며, 자비를 가진 분이시지만, 많은 경우 우리는, 우리의 태도는, 무관심합니다. 우리부터 시작해서, 인류가 치유되도록 주님께 기도합시다. 무관심의 문화라는 이 질병으로부터 내 마음이 치유되도록 기도합시다.”
기꼬 형제에게 축하 인사 “사도적 열성으로 교회를 위해 일하십시오”
미사 끝에 교황은 80세 생일을 맞은 네오까떼꾸메나도 길 창립자 기꼬 아르궤요(Kiko Argüello)에게 축하인사를 보내고 “교회 안에서 일하는 사도적 열성”에 감사를 전했다.
첫댓글 교황님과 안 엘리지오님!!!
항상 강건하시고 행복을 누리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