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선후배들의 모임이 있다.
금년 여름, 4년 선배님께서 암으로 세상을 떠나셨다.
참담한 심정을 금할 길이 없었다.
형님을 충주시 앙성면 '진달래 메모리얼 파크'에 모셨다.
그리고 우리 형제들이 십시일반의 마음으로 정성을 모았다.
구성원 전원이 힘을 보탰다.
그렇게 27명이 마음을 합해 보니 총 755만원이 되었다.
그 마음을 전달하기로 했다.
어제 부부동반으로 '인사동'에서 만났다.
형수님을 모시고 식사를 함께 했다.
그리고 우리의 순수한 마음과 정성을 전달했다.
부부동반으로 만난 건 '형수님의 뜻'이었다.
긴 세월 동안 모임을 했던 터라 서로를 잘 알고 있어도, 남편이 없는데 남성들만 나오는 모임에 여성 혼자서 참석하기란 심적으로 약간(?) 부담이 될 것 같다고 했다.
형수님의 뜻을 충분히 헤아릴 수 있었다.
그런 연유로 부부동반으로 회동했다.
안다.
인생살이에 돈이 전부는 아니라는 걸.
하지만 근 이십여 년간 둘도 없는 형제처럼 동고동락했던 우리들이었다.
그 끈끈하고 풋풋한 우애와 사랑을 조금이나마 표현할 수 있어서 얼마간은 마음이 놓였다.
사실이 그랬다.
형수님도 마음을 담아 우리에게 깊은 감사를 표하셨다.
형님은, 청춘기에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 유학을 했었고 그곳에서 직장생활도 했었다.
그렇게 10여 년간 '알프스' 자락에서 뜨거운 삶을 엮으셨다.
'유럽생활'을 마치고 귀국해 늦게 결혼했고 누구보다도 행복한 가정을 꾸리셨다.
일생 동안 열정을 다했고 은퇴를 목전에 두고 있었다.
그러나 사람의 앞길은 누구도 알 수 없었다.
그건 전적으로 '신의 영역'이었다.
어제 음식을 시켜놓고 식사를 하기 전에 모두가 일어나 '묵념'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먼저 가신 한 분을 생각하며 다시 한번 명목을 빌었다.
식사 후에 카페로 옮겨 15명이 오랫동안 살가운 얘기꽃을 피웠다.
반석같은 우정과 신뢰,
그리고 탄탄하고 향기로운 형제애.
누구나 소망하고 바라는 인생의 '궁극적인 테마' 중 하나다.
그러나 그런 관계를 위해선 숱한 헌신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걸 알아야 한다.
아니다.
'아는 것' 만으로는 안된다.
아는 바를 반드시 묵묵하게 '실천'해야만 한다.
그래야만, 각자가 소망하는 인간관계의 수준과 커뮤니티의 울타리가 살갑고 훈훈해 진다.
인생살이는 시험지가 아니다.
그래서 '행'이 없는 '앎'은 무의미하다.
우리의 커뮤니티에 27명의 형제들이 있다.
'콘도 회원권'도 2개나 있고 회비도 적잖다.
그런 얘기를 하면 사람들은 입을 쩍 벌리며 놀랍다는 표정을 짓는다.
하지만 보여지는 뭔가가 중요한 건 아니다.
껍데기 말고 그 안에 있는 '사람'이 중요한 법이니까.
최후의 한 명이 남더라도 같은 '마인드', 같은 '스피릿'으로 서로를 위해 기도하며 배려하는 삶을 살고자 다짐한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헌신 없는 '말의 성찬'은 자꾸만 사람을 지치게 만들고 외롭게 한다.
눈에 잘 띄지 않는 '배려'와 '수고' 그리고 서로를 향한 '땀 한 방울'.
'사람이 꽃보다 향기로울 수 있는 이유'도 바로 이것이라고 믿는다.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아는 순간부터 나무는 가장 아름답게 불탄다.
제 삶의 이유였던 것.
제 몸의 전부였던 것.
아낌없이 버리기로 결심하면서 나무는 '생의 절정'에 선다.
시인 '도종환 님'은 '단풍'을 이렇게 노래했다.
생의 절정은 이런 스피릿이다.
가히 대가의 절창답다.
인생 2막.
'소유'와 '욕심'에 매몰되면 안된다.
내 삶의 전부였던 것을 조금은 내려 놓아야 비로소 '사람'이 보이고 나눌 수 있는 '사랑'이 깃들 테니까 말이다.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