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거인
이미숙
어느덧 높아진 가을 하늘에 고추잠자리가 날아오른다.
벼 베기가 한창인 들판에 콤바인의 굉음과 먼지를 뒤집어 쓰고 작
업에 여념이 없는 농부들, 퇴색되어 가는 둑길의 잡초 간간이 부는
바람에 사그락 거리는 갈대의 손짓은 한 폭의 풍경화를 그려내고 있
다. 여기저기 피어있는 작은 들꽃을 바라보니 가슴이 가만히 떨려온
다. 둑길을 따라 얼마쯤 걸어갔을까.
푸드득 날아오르는 새떼로 인해 깜짝 놀라 날아간 하늘을 바라보
니 여기저기 양떼구름이 걸려 있고 그 너머 산허리에는 노을이 지고
있다.
가끔씩 나는 들길을 걷곤 한다.
생각할 것이 있을 때 또는 마음이 정리가 되지 않을 때 무작정 나
와 들길을 걷노라면 어느덧 들끓던 가슴은 살며시 가라앉았다.
오늘은 간밤의 꿈 때문에 들길로 나섰다. 파란 잔디가 깔려 있는
아담한 뜰이었다. 무슨 연유인지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어 그 곳을
기웃거리는데 누군가 나를 불렀다 아는 이 없는 낯선 곳에서 누가
나를 부를까 두리번거리는데 저 멀리 스승님은 미소를 짓고 계셨다.
아무 것도 생각할 수 없는 벅찬 가슴으로 난 스승님을 업고 덩실덩
실 춤을 추었다. 늘 조심스러운 마음에 어렵기만 하던 분을 등에 업
었다는 생각. 그러나 무게가 느껴지지 않아 깜짝 놀라 눈을 뜨니 꿈
이다.
이상했다. 왜 이런 꿈을 꾼 것일까.
벌써 몇 번인가 꿈을 꾸었다. 몇 주째 수업을 나가지 못해 편하지
않았던 마음의 조각들이 꿈속에 나타난 것일까. 한때는 뭔가 해 보리
라는 열정으로 시작한 글 쓰기. 무엇이든지 쓰고 싶었던 이야기들.
가슴속에 묻어 두기에는 너무 무거워 털어 내듯 나를 벗고 싶었다.
소유하려는 이기적인 욕심과 무지를 탓하며 뒷걸음질을 치고 있는
자신을 생각하게 한다.
글 쓰기를 시작한 지난 몇 해 동안 나는 무엇을 하였던가. 위선으
로 나를 포장하려 하였던 것은 아닌지. 삶이란 자기 자신이 가꿔가기
나름이며 글을 쓰기 이전에 사람이 먼저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시던
스승님.
꿈속에서 등에 업힌 스승님의 무게가 느껴지지 않았던 것은 어쩌
면 이기적인 마음을 버리라는 깊은 뜻이 아니었을까. 벌떡 일어나 앉
아 생각에 잠기다 보니 어느 새 새벽이 밝아온다. 수필과 인연을 맺
으며 살아오는 동안 변화된 나의 삶을 부정할 수가 없다. 나보다 남
을 더 생각하고 아낌없이 나누어주고 따뜻하게 감싸며 일깨워 주시
던 소탈하고 진솔한 스승님의 삶을 닮고 싶었다.
무게를 느끼지 못하게 하셨던 것도 제자의 버거운 짐을 덜어 주시
려 하셨던 것은 아닌가 싶다 모두가 어렵다는 IMF도 내 삶과는 거
리가 멀다고 생각했었다. 더 이상 아낄 것도 더 이상 졸라맬 허리띠
도 없는 서민이기에 주어진 내 일에만 전념하면 그만 이라고 생각했
다. 그러나 막상 닥치고 보니 장난이 아니다 살기 위해서 일을 해야
하고 일과 글 쓰기를 병행해야 하는 내 자신이 힘들어서 그만 두고
싶었던 게 어디 한두 번인가. 글도 마음의 여유가 있을 때 쓰는 것이
라고 억지로 자신을 합리화시키려 하였다.
그러나 힘이 들 때면 늘 스승님을 생각했다. 그만 두기에는 이미
너무 깊이 빠져 들어와 있다. 삶의 무게를 깃털처럼 가벼운 당신의
모습으로 비춰 주며 깨달음을 주신 뜻을 생각하면 절로 고개가 숙여
지고 부끄럽다.
들길을 따라 걸으며 자연과 호흡하고 아름다운 산과 들과 어우러
지는 소박한 인생 다시 시작하리라. 알알이 영글어 고개 숙인 벼이
삭처럼 마지막에 웃는 겸손을 배우리라.
어느덧 산마루에 걸려있던 노을도 어둠 속에 잠들고 싸늘한 가을
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한다. 그러나 심호흡 크게 하고 하늘을 향해
목청껏 외치고 싶다. 스승님은 작은 거인이라고 어둠을 발끝으로 밀
어내며 맑아진 가슴으로 돌아오는 가을의 들길이 더욱 아름답게 가
슴에 와 닿는다.
2001. 11집
첫댓글 삶이란 자기 자신이 가꿔가기
나름이며 글을 쓰기 이전에 사람이 먼저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시던
스승님.
꿈속에서 등에 업힌 스승님의 무게가 느껴지지 않았던 것은 어쩌
면 이기적인 마음을 버리라는 깊은 뜻이 아니었을까. 벌떡 일어나 앉
아 생각에 잠기다 보니 어느 새 새벽이 밝아온다. 수필과 인연을 맺
으며 살아오는 동안 변화된 나의 삶을 부정할 수가 없다. 나보다 남
을 더 생각하고 아낌없이 나누어주고 따뜻하게 감싸며 일깨워 주시
던 소탈하고 진솔한 스승님의 삶을 닮고 싶었다.
"억지로 자신을 합리화시키려 하였다.
그러나 힘이 들 때면 늘 스승님을 생각했다. 그만 두기에는 이미 너무 깊이 빠져 들어와 있다.
삶의 무게를 깃털처럼 가벼운 당신의 모습으로 비춰 주며 깨달음을 주신 뜻을 생각하면 절로 고개가
숙여지고 부끄럽다.
들길을 따라 걸으며 자연과 호흡하고 아름다운 산과 들과 어우러지는 소박한 인생 다시 시작하리라"
너무나 내 얘기 같아서
따라 적어 봤어요
감사합니다
삶이란 자기 자신이 가꿔가기
나름이며 글을 쓰기 이전에 사람이 먼저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시던 스승님.
꿈속에서 등에 업힌 스승님의 무게가 느껴지지 않았던 것은 어쩌면 이기적인 마음을 버리라는 깊은 뜻이 아니었을까. 삶의 무게를 깃털처럼 가벼운 당신의
모습으로 비춰 주며 깨달음을 주신 뜻을 생각하면 절로 고개가 숙여지고 부끄럽다.들길을 따라 걸으며 자연과 호흡하고 아름다운 산과 들과 어우러지는 소박한 인생 다시 시작하리라. 알알이 영글어 고개 숙인 벼이삭처럼 마지막에 웃는 겸손을 배우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