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詩 읽기] 손님이 묵어간 게 언제였던가
출처 농민신문 : https://www.nongmin.com/article/20231129500524
세상 사람을 둘로 나누기 좋아하는 친구가 있다. 월급을 주는 사람과 월급을 받는 사람, 히말라야에 가본 사람과 못 가본 사람…. 이런 식이다.
그렇다고 친구가 세상을 갈라쳐 갈등을 조장하려는 흑백론자는 아니다. 나도 가끔 내 삶을 둘로 나눠보는데, 그럴 때마다 둘은 선명하게 대비된다.
집에 초점을 맞추면 더욱 그렇다. 마당이 있던 집과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 시간을 경계로 둘로 나누다보면 한쪽은 매번 과거다. 돌아갈 수 없는 그때는 사라지고 없는 그곳에 포개진다.
고향 집 떠나 도시에 산 지 어느덧 사십여년, 돌아보니 마당과 집이 오간 데 없다.
마당은 무엇이었던가. 마당은 때에 따라 쓸모가 바뀌었다. 농번기에는 일터였고 농한기에는 놀이터였다. 그뿐이랴, 관혼상제가 치러지는 마을의 예식장이기도 했다.
마당은 길의 시작이자 끝이었다. 가족의 외출이 시작되고 귀가가 마무리되는 곳이었다. 특히 손님을 맞이하고 떠나보내는 곳이었다.
마당만 사라진 게 아니다. 집도 없어졌다. 누가 말했던가. 우리 현대인에게 집은 ‘짐 보관소’일 뿐이라고. 가족은 있지만 가정이 없다. 핵가족이 한자리에 모이는 시간이 갈수록 줄어든다. 핵가족도 옛말이다. ‘핵개인’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다시 둘로 나눠보자. 손님이 오는 집과 손님이 오지 않는 집. 아니, 이렇게 묻는 게 낫겠다. 우리 집에 손님이 하룻밤 묵어간 게 언제였던가. 아침 일찍 마당을 쓸어 본 게 언제였던가.
중동지역의 오래된 속담이 생각난다. ‘손님이 오지 않는 집은 천사도 오지 않는다’.
이문재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빛명상
흙 묻은 손,
그림찻방 손님
오늘 그림찻방에 온 손님들이
어색하고 미안한 표정들이다.
정성껏 가꾸어 놓은 찻방에
허름한 작업복과
흙이 묻은 손들이라 그런가 보다
작업복에 흙 묻은 손이
최고의 찻방 손님들이다.
빛(VIIT)의 터에서 잔디를 고르고
나무들이 잘 자라도록 보살펴 온
참사랑이 피어나는
흙 묻은 손이기 때문이다.
몰래 감춰온 80년대 보이차를
정성껏 내어 놓는다
어찌 보면 가장 고마운
찻방 손님일 테니까.
출처 : 빛(VIIT)향기와 차명상이 있는 그림찻방
2021년 1월 18일 초판 1쇄 P. 68
찻방 손님, 맑은 새벽 일터
정겨운 손님에게
정겨운 손님이 오셨다.
팔공산 세찬 바람 살얼음 딛고 나온
새순과 풀잎 중에서
첫 잎을 따서 모아둔 야생차
뽕나무, 가시오가피, 찔레순
칡순, 산복숭아나무, 두충나무
인동초, 두릅, 산미나리, 민들레
냉이, 씀바귀, 질경이, 쑥도
곡우 전 산야의 새잎들은
독이 없고 제각각 독특한 약성이 풍부하여
저들끼리 조화되어 신선하고 감미로운
최상의 보약차로 만들어진다.
이들을 한 줌 듬뿍 넣어
보글보글 끓이면
주전자에서 모락모락
피어나오는 향기에 취해
지그시
두 눈을 감는다.
그이도 나도 차도
추녀 끝을 서성이던 산비둘기도
정겨운 손님이
가시자
빛VIIT명상에서 깨어난 매화에
원형 무지개 달님이 찾아오셨다.
정겨운 손님에게
출처 : 빛VIIT향기와 차명상이 있는 그림찻방
2021년 1월 18일 초판 1쇄 P. 186
감사합니다
그림찻방의 귀한 손님들...마음을 나누는 따뜻한 찻자리 감사드립니다.
빛의 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림찻방 빛의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