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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올렸던 거지만 김재근 교수의 한선을 읽고서 쓴 글을 다시 올립니다
1)선용재(배를 만드는 재료 즉 나무)와 한선과의 관계
1.박달나무
산지:강원도 비중:0.946~1.127 굴곡강도(kg/cm3):1206~1663 굴곡탄성계수(kg/cm2):164930~187140
2.적송
산지:강원도 비중:0.548~0.728 굴곡강도(kg/cm3):526~977 굴곡탄성계수(kg/cm2):87760~136520
3.삼송
산지:평북 비중:0.415~0.433 굴곡강도(kg/cm3):313~384 굴곡탄성계수(kg/cm2):54140~77190
4.도토리
산지:영남 비중:0.735~0.766 굴곡강도(kg/cm3):672~866 굴곡탄성계수(kg/cm2):109100~135200
보통 선용재는 굳고 강한 참나무류등이나 무르고 가볍고 가공하기 쉬운 가벼운 나무들을 혼용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경우 대부분의 경우 적송을 많이 쓰고 참나무류의 경우는 목정(나무못)이나 방패판에 쓰일뿐 많이 쓰이지 못합니다
그에 비해 일본에서는 소나무뿐만 아니라 삼나무나 양질의 느티나무등이 다량으로 나오고 중국에서는 삼,송,예장나무등을 다양하게 사용합니다
즉 우리나라의 선용재는 장난아니게 빈약합니다 왜 그럴까??
위에 나온 표는 우리나라에서 자라는 대부분 나무의 기계적 성질을 잘 보여줍니다
일단 느티나무의 경우 일본은 곧고 바르게 자랍니다 그에 비해 우리나라는 거목으로는 자라는데 형질이 좋지 못해서 각재와 판재로도 못씁니다 그리고 박달나무와 도토리나무의 경우 위 표를 보면 알겠지만 상당히 단단하지만 굴곡탄성계수가 너무 과대합니다 즉 굴곡을 요하는 각재와 판재등으로는 적당치 못하고 오직 목정으로 사용됩니다
게다가 추가적으로 곧은 재료를 찾기가 힘듭니다
그러면 자주 쓰이는 재료인 적송과 흑송은 어떨까??
일단 다른 나라와 비교해보면 한국산 적송의 굴곡강도는 일본삼나무의 1.3~1.75배 미국 삼나무의 1~1.73배 굴곡탄성계수에서는 일본삼나무의 1.36~1.75배 미국삼나무의 1~1.59배입니다
일본의 느티나무와 비교해도 굴곡강도는 약간 떨어지지만 굴곡탄성계수는 오히려 높은 수치를 나타내죠
이는 즉 우리나라 선용재는 다른나라보다 강하기는 하지만 대신 굽히기가 무진장 힘듭니다 또한 이런 나무들마저 잘 곧게 뻗지 못하는경우도 많았고 더 나아가서 옹이도 매우 많다는 중대한 결함까지 있었죠(참...왜 이런다냐)
그래서 우리나라의 배는 다른 나라처럼 판재를 엷게 가공하여 쓰기에는 곤란합니다 이는 결국 우리나라 배에 큰 영향을 줍니다
2)각국 배의 구조비교
동양의 목선은 사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거의 비슷합니다
일단 첫째로 현대 목성이 방형용골을 밑에 두고 선저가 첨저선을 이루는데 비해서 동양선은 넓고 평탄한 저판을 밑에 깔고있는 평저선들이다 다만 중국 강남의 원양선은 서양선과 동일한 첨저선입니다
둘째로 현대 목선이 선수부에 방형선수재를 두고 예리한 포인티드 스템을 이루고 있는 데 비하여 한선과 정크선은 선수부가 평면적으로 구조되어 있는 블룬티드 스템입니다
다만 일본의 화선만은 독특한 방형선수재입니다
셋째로 현대목선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늑골을 배치하고 거기에 외판을 고착하고 있는데 비하여 동양선은 늑골이 없습니다 대신 중국선에서는 필요 이상으로 격벽을 많이 설치하고 한선에서는 가룡목을 두고 일본선에서는 상하의 후나바리를 두어 횡강도를 부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가지 면에서도 구조가 많이 다른데 한선의 저판은 아주 두꺼운 판재를 조립해서 구조하고 외판과는 엄연히 구분이 되는데 대하여 정크선의 저판은 외판과 거의 동일한 두께의 형재일 뿐만 아니라 저판과 외판의 경계도 둥글게 연결되어 있어 그 구별이 잘 가지 않습니다
일본의 화선은 저판은 평탄하지만 선저외판이 무딘 v자형을 이루어 한선이나 정크선과는 모양이 다릅니다
한선은 두꺼운 판자를 모아서 만드므로 조립식 저판이라 할수있습니다
한선과 정크선은 선수재,선미재는 각형평면으로 이루어진 트란삼형이라는 점에서는 동일합니다
하지만 한선은 선수재인 이물비우를 구조하는데 있어서 판재를 가로로 붙이는 방식과 세로로 붙이는 두 가지 방식이 있는데 중국에서는 세로로 붙이는 방식은 없습니다(물론 이것도 요새와서 뒤집혔을수도 있음)
한선의 경우는 군선에서만 판자를 세로로 붙이는데 이는 해전에서 충돌을 예상한 것으로 보입니다 외판의 경우는 한선은 턱붙이 클링커 이음방식이고 중국의 경우는 턱붙이 클링커 이음방식과 키벨이음 방식이 나타납니다
각 부재의 고착방법도 중국과 일본의 경우는 철정을 사용하는데 한선은 목정을 사용합니다 이는 한선의 경우 선용재의 사정과 개각시공을 통한 수명연장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생긴 것입니다 구획을 가로질르고 횡강도를 지탱하는 방법도 중국은 격벽을 다수 설치하는 것으로 해결했는데 처음에는 이 격벽이 수밀격벽을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신안선의 발견으로 이 또한 의심되고 있습니다(조판마다 20cm의 직사각형 구멍이 뚫려있음)
한선의 경우는 격벽이 없고 가룡목을 설치했는데 이는 격벽에 비해서 매우 간편하게 만들수 있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전반적으로 보면 한선구조는 중국선의 구조보다 간략하게 되어있고 조잡합니다
3)한선의 개혁노력
고려시대 여몽연합군의 일본침공과 관련하여 고려가 배를 준비할때 고려가 원나라 황제에게 이런 부탁을 합니다
"원종 15년 황제(원나라 세조)가 일본을 정토코자 고려에게 명하여 군함을 감독하여 만들도록 하였는데 만일 배를 남중국식에 따라 만들면 비용도 많이들고 기일내에 마치기도 어려울 것인즉 온 나라가 걱정하였다"
그후 결국 고려는 고려식으로 만들 것을 허러받고 서둘러 건조를 했는데 이후 이 배들에 대해서는 고려사에서는 "강남의 전선은 크기만했지만 부딪치면 깨져서 원정에 실패했은즉 고려로 하여금 다시 조선케하여 재정을 하면 가히 일본을 정복할수 있다"
중국의 범해소록에서 "대소함선이 파도에 밀려 접촉하여 많이 깨졌지만 오직 고려의 배만이 튼튼해서 온전할수 있었다"라는 말을 듣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뜻할까요??
첫째 고려시대에도 할수있다면 얼마든지 강남식으로 배를 만들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즉 이미 어느정도 건조기술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둘째 만들기 쉽운데 비해서 훨씬 단단하다는 것입니다 물론 남중국에서 제대로 만들면은 그 배들이 일단 크기때문에 더 단단할수 있지만 짧은 기간내에 많은 배를 만들때는 오히려 고려의 배가 만들기 쉬워서 더 단단하다는 것입니다
그후 조선초기에는 이런 논의가 있었습니다
세종 12년
"중국강남,류큐,일본등 여러나라배들은 모두 철정을 쓰고 여러날 걸려 건조하므로 빠르고 단단하고 물에 떠 있어도 물이 세지 않고 큰 바람을 만날지라도 20~30년동안 쓰는데 우리의 배는 목정을 쓰고 급속히 건조되므로 튼튼하고 빠를수가 없어 8~9년도 못가서 파손이되고 헐어지게됩니다 청컨대 이제부터 다른나라의 조선예에 따라 모두 철정을 쓰게 하옵소서"
또 다른 기록은
"각포의 군선은 모두 마르지 않은 송판으로 목정을 써서 만들어 풍랑을 만나면 이은 자리가 쉽게 해이되므로 틈새가 많이 생기고 물이 새어 습해지므로 얼마견디지 못하고 중국배는 오래 쓰므로 중국선처럼 철정을 쓰고 판자에 석회를 바르고 괴목을 쓰고 판자를 겹붙여 배를 만들어 시험하자"입니다
이런 논란이 있으지 4년후인 세종 16년에는 이런 기록이 있습니다
"의정부와 6조가 모두 전함이 빠르고 느린데 대하여 왕에게 상주하기를 세종 13년 경강에서 만든 동자갑선이 중정도로 빠른데 하체에는 철정과 목정을 절반씩 그리고 상장에는 모두 철정을 써서 철이 모두 1800근 들었습니다 우의정이 아뢰기를 채택할만 합니다 금년 가을 경강에서 가수색이 만든 왕자갑선이 가장 빠른데 하체에 철정과 목정을 절반씩 그리고 상장에 모두 철정을 써 철이 1900근 1량이 들었습니다 의정부와 6조가 아뢰기를 채택할만합니다
금년봄 류큐(지금의 오키나와)선장이 만든 월자 갑선이 제일 빠르지 못한데 상장과 하체에 모두 철정을 썼고 철이 3352근1량이 들었습니다 왕이 병조에 명하기를 금후 각도 각포의 전선은 동자와 왕자 시험선을 본받아 만들도록하고 류큐선장이 만든 월자선이 비록 그 상장이 전함에 맞지 않아도 그 하체가 견실하여 그 법을 취할 만한즉 그것 역시 본받도록 각도에 이첩하라고 했다"
사실 이것뿐만 아니라 당시 조선은 일본의 배를 배껴서 만들어봐 실험을해보았고(신숙주의 보고에 의하면 일본배는 성능을 만족시키지 못해 받아들이지 않았음)이를 본받아 세종시기에는 중국과 류큐의 우수한 조선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실제로 실험까지 마치고 각포에 만들도록 시킵니다
하지만 결국 이 개혁은 문종때 취소됩니다
"의정부가 병조가 제공한 바에 따라 왕에게 아뢰기를 지금 사람을 경기,충청,전라의 3도에 파견하여 군선을 중국식으로 건조하였는데 중국식 배는 선제에 따라 정교하게 만들면 물안의 벌레가 나무를 먹을수 없고 선체가 깨지지 않아 정말 유익합니다 그런데 15년이 되어서 썩고 공은 두배에 이르므로 도리어 이득에 미치지 못하지만 우리배는 물자가 많이 들지 않고 또한 깨진다하더라도 보수를 가하면 수십년을 견디어내며 얼마든지 조운에 쓸수 있으므로 무궁한 이득이 있습니다"
왜 갑자기 이렇게 변할 것일까??
이 이유를 찾아볼라면 일단 당시 한선의 개량점을 찾아보면 알수있습니다
일단 당시 한선의 나쁜점은
1.군선의 종류가 잡다하고 동일 선종이라도 일정한 규격이 없다
2.선체가 크고 둔중하여 속력이 느리다
3.시공이 조잡하여 수명이 짧다
4.배의 유지 보수를 잘못하여 더욱 수명이 짧아진다
였습니다 헌데 중국식 조선법을 들어오면서 이런 문제점이 어느정도 해결됩니다
일단 1번은 법에 따라 규제를 하면되고 3~4번은 개각시공이란느 것을 통해서 해결했습니다(2번은 결국 해결 못함)
즉 중국식 조선법이 들어오면서 수명부분에서 자신감을 얻고 그를 통해 다시 원래 조선법으로 돌아간 것입니다
4)개각시공
개각시공은 말그대로 다시 고치고 더한다는 것입니다 조선의 경우 이 개각시공을 상당히 중요하게 여기고 배의 개각시공 연수를 법으로도 정해놨을 정도입니다 이 개각시공을 통해서 얻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수명연장입니다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조선의 배는 목정을 썼기 때문인데 이런 목정은 빼더라도 철정에 비해서 목재에 큰 상처를 주지 않아서 배를 분해하고 약해진 부분을 쉽게 빼내고 새로운 판재를 끼어널수 있었습니다
또한 선용재 때문에 어차피 판재가 두껍기 때문에 상처가 조금 나더라도 그렇게 크게 튀나지는 않았습니다 이런 개각시공은 결국 배를 쉽게 만들수 있으면서 수명까지 크게 연장시키는 효과를 가져왔습니다
5)판자의 두께와 평저선과의 관계
흔히들 한선이 평저선인 이유로 우리나라 해역의 지리적 조건을 많이듭니다 물론 틀린말은 아니지만 이것의 영향을 준 것은 지리적인 조건만 있는게 아닙니다 바로 위에서 언급했듯이 선용재의 특성과 판재의 두께와도 관련이 있습니다
일단 우리나라 선용재는 굴곡강도와 굴곡탄성계수가 강한편이어서 휘게 만들기 힘듭니다 그리고 이런 것 때문에 결국 처음부터 두껍게 만드는데 이로 인하여 형질을 마음되로 변형시킬수 없었습니다
이로인하여 단순한 선형으로 꾸미지 않을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배는 첨저선이 아닌 평저선으로 갈수밖에 없었고 거기에 더하여 겉으로 보는 크기에 비해서 배가 많이 무거워질수밖에 없었습니다(물론 겉으로 보기보단 강도가 쎄지만
이게 두번째 글이었습니다
1.한선은 어떻게 방수,방충을 하나??
사실 한선은 고려시대에도 조선시대에도 물이 잘 샌다는 것은 여러기록에서도 나옵니다
그 이유는 배 밑판에 틈이 많기 때문인데 이 틈이 많은 이유를 제가 읽고 있는 한국 배의 역사에서는 조잡한 기술때문이라고 설명해놓고 있고(물론 여기서는 기술이 떨어진다고 하는게 아니라 재료상 문제와 너무나도 빠른 시공때문이라고 지적합니다)
옛날에 했던 역사스페셜(고려전함편)에서는 이렇게 틈이 벌어져있어야 충격에 강하다고 하는군요(건축으로 말하면 내진설계 같은 것??)
하지만 이렇게 물이 새는 것은 역시 배의 수명에 악영향을 줄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조선시대 세종때와서 중국과 류큐(오키나와)의 조선법을 받아들이려고 했었습니다
그래서 중국식 방식으로 麻(마)같은 섬유질로 틈새를 막고 그 위에 석회와 어유(魚油)를 섞어서 바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역시 문종이후 이 방법은 폐지됩니다(근데 현대의 목선처럼 배밥을 만들어서 방수하는 방법은 계속 쓰는 건지 아닌 건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럼 어떻게 방수를 하냐??그것은 마르지 않은 생목을 그냥 씁니다 그 이유는 나무의 송진기가 틈새를 매워주기 때문입니다
또 목선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충해를 방지해야하는데(서양의 경우 배 밑판의 동판을 깔아나서 바다생물이 붙는 것을 방지했다는데 이것도 충해방지인가??)한선은 생목을 쓰기 때문에 특히 이 방지에 주력을 다해야했습니다
그 방지책으로 석회 또는 유독한 도료를 판자에 도포하는 방법과 물에 잠기는 선체부분을 화기 또는 연기로 그을리는 방법이 있는데 조선초기는 두가지 방법 모두 사용되다 석회를 바르는 법은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남은 것이 연화법인데 이 연화법은 11세기 것으로 고증된 완도선에서도 외판에 그 흔적이 남아있고 경국대전에서는 매월 모든 배가 실시하도록 규정해났습니다
2.조운의 역사와 조운으로 이용한 배
조운의 역사에 대한 시작은 진시황때라는 설과 7세기 수나라 양제때라는 설이 있는데 현재는 양제때라는 설이 유력하고 이를 제도로 확립한 때를 당나라때이고 크게일어난 때는 송나라때입니다(11세기)
하지만 이런 조운제도의 원나라 이전까지 내강조운에만 그쳤습니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는 고려이전에도 조운에 대한 기록이 있지만 제도는 아니었고 고려시대에 와서야 시행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내강조운보다 해로조운이 발달해서 중국보다 조운제도는 200년 늦었어도 바다를 통한 조운은 300년 앞섰습니다
그럼 고려의 조운선은 뭐였을까??
이런 조운선은 지방마다 다른 종류를 배치해놓습니다
그중에 현재 가장 큰 것으로 확인되는 조운선은 초마선인데 이 배는 10개의 연해 조창에 각각 6척을 배당해서 1척에 1천석을 싣게하였다고 기록되 있습니다
이것은 당시 조운선치고는 엄청나게 큰 배였는데 당시 원나라 연해용 조운선은 대선은 1천석을 실었고 소선은 300석을 실었습니다 그리고 명나라의 조운선도 2천석을 실었다는데
우리나라의 석수는 중국과는 다르게 1석은 10斗(두)가 아니라 15두(소석)에서 20두까지 됩니다
이 초마선은 한선연구에서 상당히 중요시되는데 그 이유는 아마 이 배가 훗날 전형적인 한선의 구조일거라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초마선은 훗날 조선시대 조운선의 원형이됩니다
그럼 이배는 처음부터 1천석을 다 실었을까??
아닙니다 조선시대 법전에는 600석으로 제한을 뒀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전글에서도 언급했지만 곡물 같이 무거운 것을 너무 많이 실으면 배의 수명이 줄어듭니다 특히 못이 많이 상하는데 이건 철못이든 나무못이든 마찬가지였습니다 물론 나무못은 철못과는 달리 빼더라도 판재에 상처를 많이 주지는 않지만 그래도 오래쓰려면 대도록 과중하게 싣지 않도록 했습니다
헌데 조선후기로 가면 상황이 달라집니다
그 이유는 당시 대동법이 시행되면서 실어야할 곡물의 물량이 더욱더 많아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조정에서는 훈련도감과 선상들에게 조운을 맡기기도 했지만 이들의 배는 초기에는 소형이었습니다(물론 나중에 가면 이들도 1천석을 넘게 실을수 있는 배를 이들도 조선업에 뛰어들면서)
그래서 법적으로 제한되어있던 한계석수 600석이 나중에는 800석에서 1천석까지 들어납니다만 그대로 물량이 너무 많아서 1년에 두세번씩 운용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바다에서 운용하는 배는 상당히 거대하지만 강에서 운용하는 조운선은 이보다 훨씬 작은 300석 이하였는데 그 이유는 우리나라의 강이 유량변화가 너무 심해서 큰 배가 드나들기가 힘들었다고 합니다 물론 그에 따라 여러가지 시설들을 만들었지만(강 밑바닥에 길을 만들거나 둑을 이용해서 수량을 조절하는 것등)역시 큰 배가 드나들기에는 부족했기 때문에 바다에서 이런 작은배들이 큰배에서 나온 곡물을 실어서 강을 따라 올라갔습니다
또 당시 연해조운을 할때 위험한 구간이 많았었는데 이것 때문에 조선시대에 바다가에 운하를 만들었고 이래서 생겨난 것이 지금의 안면도입니다(원래는 반도였는데 조선시대 운하를 파면서 섬이되버렸습니다)
이외에도 경인운하를 파려고했는데 빌어먹을 암석층 때문에 실패했습니다(고려시대 때도 암석층 때문에 실패ㅡ.ㅡ;;지금도 과연 이 암석층을 뚫을 만큼 효과가 있을지에 대해서 의문이어서 아직도 경인운하에 대한 시행은...)
3.조선후기 수군 선박 운용의 변화
임진왜란때 수전을 보면 2차대전 당시 전함과 비슷한 역활을 했던 것으로 볼수있는 판옥선이 주력 전투함이고 순시정이라고 할수있는 사후선이 등장합니다
허나 후기에는 선용재의 부족과 평화시 과도한 수군 유지비용으로 인해서 다른 종류의 보조군선들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나온 것이 순양함이라고 할수있는 방선과 구축함이라고 할수있는 병선이 등장합니다
이는 효율적인 해상방비를 위해서 조선후기에와서 이렇게 변한 편제인데
방선의 경우는 중국에서 오는 밀무역선을 경비하는데 효과적이었고 병선의 경우도 200석급의 조운선으로 쓰이면서 소형무장함으로 자리를 굽혔습니다
4.조선시대 만들은 특수함
조선후기에는 여러가지 특수 군선이 만들어졌습니다
그중에 창선의 경우는 나대용 장군이 만든 것으로 판옥선과 귀선을 약식화한 구조인데 이 배는 상장을 꾸미지 않고 갑판위에 4면에 방패판을 세어놓고 적이 배에 기어오를 수 없도록 요소에 창검을 꽂아놓은 배로 격군 42명을 가지고 빨리 달릴수 있었습니다
즉 귀선 축소판이라고 볼수있는 배이지만 결국 채택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후에도 엄청나게 빠른 해추선을 만들지만 채택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또 중국식의 배도 기록을 토대로 만들었는데 해골선은 중국의 병서를 토대로 만든 것으로 앞은 크고 낮으며 뒤는 작고 엄청나게 높은 특이한 구조의 배인데 빠르고 경쾌하며 적이 안을 볼수가 없다고 합니다
이배는 전라우수영에 1척 배치됬는데 선장 1명 사부 및 포수 20명 격군 34명등 56명이 탔다고 합니다
그리고 륜선이라는 배도 만드는데 이배는 구미의 동력선인 외륜선처럼 실용화되지는 못했지만 명종 5년에 중국문헌을 보고 만들었고 1700년에도 정조 13년에도 만들어서 실험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성공하지는 못했는데 이는 중국에서도 외륜을 구동하기 힘들어서 호수에서 성공적으로 쓰였을 뿐인데 우리나라는 연안해역에서 사용하려해서 실패했습니다
5.한선의 속도
이 글은 전에 속도와 관련된 논쟁이 있었기에 쓰는 글입니다
사실 한선의 속도에 대해서는 딱히 뭐라고 하기 힘든데 어디에서는 판옥선의 보통 속도가 4노트라고 하고 어디서는 14~20km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그리고 일본배와 비교해서 조선전기와 임진왜란때는 그들의 배에 비해서 느리다고 하지만 조선후기와 19세기 영국인 선장(해군장교 출신)은 조선배가 일본배보다 빠르다는 기록이 간혹 나타납니다
아마도 이는 상황에 따라서 속도가 많이 달라지기 때문인 것 아닌가 생각되는데 그 이유는 판옥선의 경우 보통때는 돛만을 이용해서 나가다가 전투시는 돛대자체를 아예 접고 노만을 이용해서 추진을 하는 경우가 많아서 그런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런데 가끔가다 돛과 노를 같이 사용하고 바람까지 순풍인데다 베테랑 노꾼들이 노를 저으면 19세기 증기전함의 최고 속도와 맞먹는 9~10노트정도의 속도를 1시간정도 낼수있다고 하더군요
즉 저의 생각은 한선의 경우 보통은 4노트 안밖의 속도를 내며 이 속도는 일본배에 비해서 느리다 하지만 가끔 필요할 경우 짧은 시간동안 엄청나게 빠른 속도를 낼수있다고 생각됩니다
첫댓글 위에 보시면 알겠지만 중국과 류큐,일본배까지 만들면서 실험까지도 했었습죠
좋은글 잘 봅니다. 제가 궁금한게.. 판옥선이 불멸의이숭신에 나온것처럼 흘수선밑으로 선체가 반 이상 잠겨잇는게 아니라 바다 위에 좀 선체 대부분이 높이떠있는 모습 이라는생각이 들었거든용.. 그 판옥선 그림중에 하나 있던데..
저 죄송합니다만 글좀 풀어서 설명좀
아 저도 설명이 넘;; 좀 정리해서 나중에 ㄷ;ㄷ;
뭘 말씀인지 알겠군요. 조선시대 삽화들을 보면 판옥선의 하층부분이 다들어나 보이는데 실제 불멸의 이순신에서 보면 판옥선의 하층 부분은 물에 잠겨있는 모습으로 나옵니다. 제생각엔 실제로도 그럴거라고 봅니다. 그림은 액면 그대로 보기에는 문제가 잇지요.
그나마 또배님이 이해를.. 근데 제생각에는..그정도로 잠기면.. 판옥선이 대양을 못갈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 용골만 박아줘도...
그게 일부러 배의 구성을 보여주기 위해서 그렇게 그렸다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한선에는 용골이 없는 대신 다른 장치를 해놓은 걸로 압니다(아마 그게 가룡목으로 기억합니다)그리고 판옥선 자체가 크기에 비해 높아서 대양에서는 운행이 다른 한선들보다도 더 힘들다고 합니다
대양항해까지 감안 한다면 전체적인 체적이 커져야 하는데 판옥선의 경우는 기존의 배에 층만 한층 더 올려놓온 거라 한계가 있을 것입니다.
호오 잘 배우고 갑니다 그런거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