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시((遠視)
멀리 있는 것은 아름답다.
무지개나 별이나 벼랑에 피는 꽃이나
멀리 있는 것은
손에 닿을 수 없는 까닭에
아름답다.
사랑하는 사람아,
이별을 서러워하지 마라,
내 나이의 이별이란 헤어지는 일이 아니라 단지
멀어지는 일일 뿐이다.
네가 보낸 마지막 편지를 읽기 위해선 이제
돋보기가 필요한 나이,
늙는다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을 멀리 보낸다는
것이다.
머얼리서 바라볼 줄을
안다는 것이다.
- 오세영 -
원시((遠視)란 먼 곳은 잘 보이나 가까운 것은 잘 보이지 않는 눈의 상태를 말한다. 이를 흔히 노안(老眼)이라고도 하는데 그만큼 나이가 들면서 나타나는 자연적인 현상으로 여긴다.
시인은 이런 원시를 거리 개념으로 파악하여 오히려 아름답다고 한다. ‘손에 닿을 수 없는’ 것이기에 ‘무지개나 별이나 벼랑에 피는 꽃’이 아름답다고 한다. 마치 놓친 고기가 크다는 변명처럼 들린다. 그러나 사랑이 결부되면서 시인의 의도가 드러난다. 헤어지는 것이 아니라 멀어지는 일이니 ‘이별을 서러워하지 마라’고 한다. 나아가 ‘편지를 읽기 위해선 이제 / 돋보기가 필요한 나이’에서는 ‘늙는다는 것’ 조차 ‘사랑하는 사람을 멀리 보낸다’는 의미로 파악한다.
이별이란 헤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저 멀어지는 일이요 늙는다는 것 역시 사랑하는 사람을 그저 멀리 보낸다는 것이라는 시인의 생각 - 이 시가 가슴에 와 닿은 것을 보면 나도 나이가 든 모양이다. ♣
- 이병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