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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는 식용 닭(병아리)의 수명을 지금껏 29일로 보았다.
오늘 인터넷에는 30 ~31일로 사육한다고 보도했다.
양계농장은 7 ~8만 마리 사육.
정읍 하림 도계공장에서는 1일 23만 마리를 가공하며 최대 38만 마리도 처리한다고 한다.
국내 연간 소비량은 9억 마리. 1인당 18마리.
알에서 깐 병아리가 커서 30 ~31일만 살고는 기계로 털이 홀라당 벗겨지고, 모가지가 잘려지고...
병아리를 30 ~31일 안에 키우려면 도대체 어떻게 키우고, 살찌우고, 병이 안 든 채 살려내야 하는지 그 방법이 무척이나 의문스럽다.
수십 년 전, 내 시골집 닭장에도 닭은 조금 쳤다. 수컷 암컷도 있고, 병아리가 어미를 뒤좆아서 텃밭 여기저기로 모이를 주워먹고, 벌레도 먹고, 푸성귀도 뜯어 먹었다.
이들의 수명은 제법 길었다. 집에 무슨 큰 행사가 있어야 닭을 잡았고, 암탉이 낳은 달걀을 짚꾸러미에 열 개씩 넣어서 장에다가 팔았다. 달걀이 부족하면 이웃집에서 몇 알도 꾸고.
나는 닭고기를 먹지만 늘 별로였다.
비린내가 나서. 왜 살코기가 비위에 거슬렸을까? 햇병아리를 억지로 살찌워서 잡았기에.
하나뿐인 생명이 고작 30 ~31일 산다니 이들의 목숨이 무척이나 안타깝다.
닭의 평균수명은 7 ~13년. 기대수명은 30년까지.
사람으로 치면 신생아 수준을 막 벗어난 젖먹이 아이인데.
이들은 오로지 죽기 위해서 태어났으며, 닭공장의 철망우리는 A4종이 한 장 크기의 케이지(cage : 가로 20cm, 세로 30cm)에 갇혔다가...
수탁병아리는 3시간 안에 감별사에 식별되어 살해되고, 사내아이가 이렇게 대접받아서야 어디...
예전 시골집에서 키운 토종수탁은 정말로 늠름하고, 멋졌는데... 수컷이 암컷들을 잘도 이끌었는데...
대형양계장의 수평아리는 불과 3시간 안에 살해당하다니 자본주의는 동물권리를 잔인하게 짓밟는다.
시중에 나온 닭은 30 ~31일인데 만약에 몸에 이상이 생겼다면 25일에도 잡아서 시중유통한단다.
소비자는 양념 맛에 게걸스럽게 발라먹고...
남의 생명을 빼앗으려고 키우는 양계업자, 남을 생명을 죽이는 도정업자, 이를 가공판매하는 육식업자, 남의 살점을 탐하는 육식가들이 모두 너무들 한다.
남의 생명을 경시하는 인간들의 심성이 무척이나 무섭다. 돈만 되면 그 어떤 짓도 된다는 논리일까?
위에서 '하림'이란 명칭을 보았다.
양계업 등의 사업으로 대기업 반열에 올랐다.
'하림각' 이름으로 음식업계에 널리 알려졌고...
1.
2018. 7. 21. 인터넷 뉴스에는 중앙일보의 기사가 떴다.
'돈 걱정없이 살려면 10억? 50억? 살면서 따져 봤다'
중앙일보사, 기자들은 돈이 엄청나게 많은가 보다. 돈이 10? 50억? 운운하고 있으니...
나는 얼마쯤이면 돈 걱정없이 살까?
존 암스트롱 '돈에 관한 덜 걱정하는 법(How to worry less about money)' 책.
얼마쯤이면 걱정 없을까라는 사람은 대체로 실제소용비보다는 10배 정도 뻥튀긴단다.
돈이 그렇게 많이 필요하지 않다는 책...
글세다. 책 팔려고 이런 기사 작성했나 싶기도 하고...
일전 소상공인연합회, 전국편의점가맹점연합회에서는 2019년 최저임금율이 10.9%로 상승하기게 직원을 해고시키겠고 집단항의를 했다.
2018년 최저임금이 월 157만 3천에서 2019년에는 174만 3천 원으로 오른다고 사업을 접네 마네했다.
금년보다 내년에는 월 17만 원을 더 주는 부담이 크다고 주장했다.
불쌍한 사장님이 찌질하고 구차하다고 보는 일부 네티즌도 있을 게다.
이런 네티즌에 대해서 '좌빨, '문빠'라고 비난하는 네티즌도 또한 있다.
어제, 오늘에는 편의점 점주(사장)에 대한 본질적 문제는 근접출점(동일업종 과다경쟁), 과다한 가맹점 수수료, 임대료 및 최저임금상승을 이유로 폐업 결심을 하겠다는 기사도 떴다.
편의점 점주(사장님)은 근로자(직원) 월급이 금년 157만 원에서 내년 175만 원 인상으로 사업을 접네 마네하는데
위 중아일보는 염장 지르는 기사나 썼다.
'돈 걱정이 살려면 10? 50억? 운운했다.
2018년도 최저임금자(노동자)가 월 157만 원을 번다.
이 월급으로는 언제 10억? 50억 원을 만들어서 돈 걱정 없이 살지?
나로서는 계산이 전혀 나오지 않는다.
언제, 어떻게 해서 10억? 50억 원을 모우지?
나도 돈 걱정 없이 살았으면 싶는데도 실현가능성은 제로(0)이기에 꿈조차 꾸지 않는다.
딴세상에서 사는 그들이 부럽기는 해도...
1.
지금 질투하는 것일까?
그럴 게다.
어떤 문학카페에 글이 올랐다.
문학작가라서 그럴까, 자기 자랑질이 지나쳤다는 느낌을 받았다.
저거 어떻게 하지?
카페지기도 아니고, 운영자도 아니기에 잔머리를 굴렸다.
인터넷 카페 하나의 화면에는 글이 20개 오른다.
그 문학카페는 점잖은 문인들이 들락거리기에 글 올리는 숫자를 제한하지 않았다.
상황에 따라서는 1일 2건 이상도 올렸다.
나는 이 점을 노렸다. 어떤 카페에서 내 글을 퍼서 옮기는 것.
1분 30초 이면 한 편씩이다. 30분이 채 안 되어 20개를 올렸더니만 자랑질하는 글은 뒷장으로 자동적으로 넘어갔다.
한 개 화면에 내 글 20개로 가득 찼다.
아름다운 5060.
아름답다는 문구가 무척이나 정이 간다.
인생 후반기의 5060대이니 사회연륜과 경륜이 이미 최고점에 다달았기에 점잖은 회원들이 활동한다.
생활전선에 뛰어들어서 정신없이 일하는 사람은 아니기에 시간적으로, 지적으로도 다소 여유있는 분들이 활동할 터.
글 쓰고, 사진 올리는 방이 무려 140개. 엄청나게 다양하며, 활동한다.
이 가운데 '삶의 이야기'방이 가장 활성화되었다. 날마다 오르는 글이 금세 뒤로 밀리기에 '삶방' 규정에는 하루 1건으로 규제한다. 그런데 최근에는 이를 어기고 하루 2건 올리는 경우를 보았다.
부럽다.
남보다 더 많은 능력을 가졌는가 싶기도 하고.
하루 1건이 아닌 2건 이상도 올리는 게 당연하다고 자리매김하면?
하루 2건이 아니라 그 이상이라도 그거 우습게 채울 수 있다. 성질 급하기에 금방이면 글감 하나 건져서 다다닥 자판기를 누르기에.
그런데도 규정을 지키고 싶다.
'규정이 현저하게 위법하거나 부당하지 않다면 일단은 지켜야 한다'라는 인식이다.
예외를 둘 만한 무슨 현저한 내용이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그럴 만한 무슨 특별한 이유라도?
서해안 촌늙은이가 공연히 서울에 올라와서는 별 거 따진다. 늘 미움이나 받는데도...
나도 슬쩍 동승할까?
안되는데... 그러면 안되는데...
예전 학교 다닐 때다.
서양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악법이 법이다'라는 말을 남기고는 감옥에서 독배를 먹고는 죽었다고 배웠다.
악법도 지켜야 한다는 법논리, 철학논리에 고개를 가우뚱했던 나. '아니, 왜 악법을 지켜야 해?'라는 반발심이었고, 이런 반발심, 의구심은 미움이나 받는 짓거리이었다.
훗날 소크라테스의 '악법도 법이다'라는 명언은 사실이 아니라고 했다.
일본 법학자가 잘못 번역했으며, 일제 식민지에서는 이 논리가 군경질서를 잡는 철학으로 작용했고, 해방 이후에도 리승만, 박정희 시대에도 이 말이 효력을 발휘했다.
2018년인 지금.
나는 위 '악법도 법이다'라는 명제에는 그냥 웃는다.
'너무들 했어.'
하나의 약속은 지키고 싶다.
'현저하게 위법하거나 부당한 것이 아니라면... '
1.
'제물에 대한 숨은 뜻이 그럴 듯하군요.
제사 발상지인 중국보다도 조선의 제사문화는 더욱 세분화되었고, 나중에는 붕당정치의 근간이 되었지요.
왕족, 양반 사대가문은 국가정책/시책을 논하는 것보다는 제사를 어떻게 지내느냐에 생사를 걸고 싸웠지요.
평민한테 강요하여 지나친 충효사상을 깃들게 하고요.
위 제사상의 제물의 위치, 순서, 방향, 종류 등을 보면 제각각이네요. 제멋대로가 정답이겠지요.
형식에 치우친 것보다는 돌아가신 분을 한 번 더 생각한다는 뜻으로 절했으면 싶습니다.
음식물도 새롭게 의미를 부여하고요.
저는 약식으로 줄입니다.
여러 종류의 사진 제공에 고맙습니다.
사진으로도 많은 것을 배웁니다.'
어떤 글에 위처럼 댓글 달고 싶었다.
같다는 것보다는 다르다가 훨씬 발전적이기에.
제사가 무척이나 많은 나는 제사를 지낼 때마다 늘 고민하다가 이제는 그냥 적당히 지내고, 또 자꾸만 축소해서 없애고 있다. 내 멋대로, 내 생각대로, 내 주관대로이다.
제사 지내는 의미, 방법, 제물 놓은 순서는 매번 다르다.
비슷하다, 다르다가 아닌 틀리다, 잘못이다로 변질된다.
이런 것들은 역발상이 아닐까?
조선조 왕족 양반네인 사대문가의 지나치게 형식적인 제사문화도 그렇다.
일반 백성(심지어는 상놈)까지도 철저히 강요했던 제사문화로써 왕권에 대한 충효사상을 강요했다.
조선조 519년(1392 ~1910년)의 통치를 엿보게 한다.
1960년 초여름.
모내기를 막 시작한 무렵에 시골의 할머니가 뒷간에서 쓰러진 것을 중학생인 누나가 발견했다.
대전으로 전학 간 쌍둥이 형제는 누구의 손인가에 이끌려서 시골로 내려왔다.
안방에 누워 있는 할머니는 저 세상으로 벌써 길 떠났다.
상제인 아버지와 작은아버지는 누런 베옷을 입고, 머리에 무슨 갓처럼 생긴 두건을 쓰고, 허리에 요대 차고, 짚신 신고, 상장 막대기를 집고, 집안식구들이며, 문상객이며, 수십 장의 만장이며...
모든 사람이 다 떠나간 뒤 시골 안사랑방에서 어머니는 아침 저녁으로 상식을 올렸다. 꼬박 2년을...
3년 뒤인 1963년 겨울철 12월.
대전 사는 할아버지의 초상은 더욱 요란했다. 중앙종친회 임원인 할아버지, 족보발간 위원...이었기에 초상 마당에는 온톤 사람들로 가득 찼다.
대전 회덕면 계족산 아래에 묘를 썼다.
시골집 안사랑방에는 영정 상을 차렸다. 수십 개의 만장이 가득 찬 안사랑방.
어머니는 아침 저녁으로 상식 올렸다. 꼬박 2년상을 치뤘다. 보름 삭망마다 닭 잡고...
20년 뒤인 1982년.
아버지는 폐암으로 대전에서 세상을 떴다.
내가 상주가 되었을 때에는 그래도 제사 지내는 형식이 무척이나 간소화되었다. 삼베굴건이 아닌 광목으로 된 옷을 입었으며, 종아리에 행전을 쳤으되 짚신은 신지 않았다.
그래도 만장은 수십 장. 중앙종친회 임원인 아버지는 16권의 족보발간위원장이었기에 문상객은 엄청나게 많았다.
시골의 어머니가 아침 저녁으로 제사상을 올렸다. 안사랑방에서 꼬박 2년을 또...
33년 뒤인 2015년 2월.
어머니가 아흔일곱 살을 막 보낸 며칠 뒤인 밤 11시 15분에 지방종합병원에서 세상을 떴다.
읍내 장례식장에서 부랴부랴 장례식을 치뤘다.
남자 상주는 나 혼자.
상복은 장례식장에서 검정양복을 빌려서 입었다. 검정 넥타이를 매고...
상례절차는 장례식장에서 알아서 다 해주었다. 상주인 나는 그냥 절만 하고, 문상객을 접대하면 되었다. 모든 게 간략하고 형식적이었다.
꽃상여를 탄 엄니. 시골마을의 할아버지들이 상여를 자청해서 맸다. 그 추운 날.
상여문화도 자꾸만 축소하여 간소화되어서 이제는 화장문화가 자리매김했다.
제사문화를 보면서 컸던 나.
이제는 사라져야 할 구시대 문화 유산이다.
1.
생각의 차이에 대한 사례이다.
간밤 TV 먹방 프로인 백종원이 출연했던 뚝섬 골목식당의 경양식집 장국에 대한 네티즌의 의견이 엄청나게 많았다.
경양식집의 장국은 와인 잔에 담아냈는데 어떤 요식업체는 이것을 레시피 편절이라고 했다. 자기네는 컵에 장국을 담는데 이를 모방하여 와인 잔에 담았으니 이는 편절이다(훔쳐갔다)는 뜻으로 다퉜고, 새로 문을 연 경양식집 업주는 표절이 아니다며 소송할 수 있다는 뜻으로 보도했다.
장국을 대접, 접시에 담은 것이 무슨 특별한 상업적 권리일까?
어떤 업체는 장은 컵에 담아서 손님한테 내놨고, 어떤 업체는 컵이 아닌 와인 잔에 담아서 냈다고 해서 이게 무슨 재산권 침해이며, 법적인 문제가 생길까 싶다.
2018. 7. 21.에도 인터네 뉴스가 엄청나게 떴다.
어떤 음식업체가 주장했다.
'레시피와 인테리어 등 동일한 컨셉트로 식당을 차렸다.'
'그는 와인 잔에 장국을 내는데 우리 가게는 장국을 커피 잔에 제공한다. 마치 자기가 개발한 것인 양 방송국에 출연했다.'
이에 대하여 뚝섬 경양식집 대표(정 사장)은 법으로 대응하겠다고 말했단다.
나는 경제사회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어서 인터넷으로 검색했다.
공업소유권은 특허권, 실용신안권, 의장권(design right), 상표권 4종을 총칭한다.
위에서 된장국을 컵에 담아주는 것을 와인 잔에 담아주었다고 해서 이게 의장권을 해치는 것일까?
된장국을 컵에 담아주는 것을 국가기관에 출원했나 싶다.
설마하니 이런 것을 출원한다고 해서 국가기관이 인정해줄까?
빙그레 웃기에는 무척이나 쓸씁하다. 그만큼 동일업종에 대한 과다경쟁, 상혼이 빚는 넌센스같다.
백종원의 골목식당에 대한 지적이 내가 보기에는 그렇다.
늘 의심이 많은 나는 백종원씨의 골목식당에 대한 지적, 가르침을 또다른 시각으로 볼 것같다.
와인 잔에 된장국, 유리컵에 스프 담고, 배추없이 서빙한다는 것이 뭐그리 대단한 지적거리일까?
자기만의 독특한 영업전략은 성공할 수도 있고, 실패할 수도 있다.
새로운 시도에 대해서 제3자가 꾸짓을 것은 없다.
요즘 가진 자들의 횡포를 엿본다. 똑같이 모두 다같이 똑같이...
집단문화, 군대문화, 획일적인 사고(들쥐 근성), 떼거리문화가 아직도 남았나?
마치 조선시대의 왕족, 사대부가 제사문화에 박터지게 300년 간 지속한 꼬라지를 엿보는 것같다.
붕어빵틀에서 나오는 붕어빵처럼 모든 게 똑같은 사고가 무척이나 그렇다.
보다 말랑거리는 변화는 떼거리집단에 눌려서 늘 뒤로 사그라지는 것일까?
사회현상에 문외한인 나는 상식선에서 문제를 바라보기에 숱하게 의문을 갖고, 또 엄청나게 질문을 한다.
이해불능의 세상일까?
힘 센 자가 이기는 세상이기에 오류, 궤변, 요설, 억지가 난무하겠지.
대한민국 남한에는 현재 활동 중인 변호사가 2017년 통계 24,051명. 인구 2,125명 당 하나씩이다.
법정투쟁이 엄청나게 많다는 뜻.
결론은 돈 많은 자가 이긴다. 돈이 없으면 어떻게 변호사를 선임하냐고!
가난한 촌늙은이인 나.
살아남으려면 말이라도 제대로 해야 할 터.
논리적으로 따지고 싶다. 큰 공룡, 악어한테 잡혀 먹히지 않으려면...
1.
병원 가려고 부산하게 준비하는 아내를 보다가 문득 거실 TV 탁자 위에 올려왔던 호박 한 덩어리을 보았다.
겉이 곰팡이가 슬었기에 손을 대니 물컹했다.
나도 모르게 AC!
'왜 욕해요?'
아내한테 지청구를 먹었다.
'작은딸한테 주려고 했는데...'
임신 중인 막내딸이 해산하면 주려고 했는데 호박 한 구석이 상해서 물렁거리기 시작했으니 별 수 없다.
수돗가에서 겉을 씻은 뒤에 부엌칼로 잘랐다. 껍질도 벗기고...
300개 쯤의 씨앗은 물에 휑군 뒤에 물 빠지는 바구니에 담아서 볕에 내놨다.
물기 마르면 시골로 가져가서 내년에 종자해야겠다. 아직 오지도 않은 내년 봄 농사를 지으려고 호박씨를 챙기는 나는 건달 농사꾼.
껍질 벗긴 호박 1/3을 씻어서 냄비에 넣고는 물 부어서 끓였다. 아무런 식재료를 넣지 않고 호박만 삶았으니 이게 무슨 맛일까? 나중에 쉰 김치 등 부식재료를 넣은 뒤에 호박국을 끓여서 먹어야겠다. 나머지 2/3는 냉동고 안에 넣었다. 며칠간이라도 보존할까 싶다.
아내는 오늘도 밥 한 덩어리 도시락에 담고는 작은딸이 입원한 병원으로 갔다. 일찍 서둘러서 나갔다.
나는 어제처럼 국 없는 아침밥을 혼자서 차렸다.
맛이 간 김치, 오이짱아치, 가지나물, 잔 멸치볶음을 밥 그릇에 담고는 젓가락으로 휘저은 뒤에 떠먹었다.
내 고개는 왼쪽으로 틀어졌다. 수십 년 동안 왼손에 신문, 책을 들고서 밥을 먹기에.
'밥 먹을 때에는 제발 좀 책 보지 마세요'라는 지청구도 수십 년 째 이어지고.
어쩔 수 없다. 책벌레인 나는 밥 먹으면서도 글짜를 읽는 중독자이기에.
아무려면 어떠랴 싶다. 고개를 왼쪽으로 틀어서 책을 보기에 오른손에 든 수저와 젓가락은 밥그릇 하나만 정확하게 겨냥하면된다.
국 없는 밥. 밥 그릇에 반찬 몇 가지를 한꺼번에 담았으니 누가 보면 '개밥', '돼지밥'으로 여길 게다.
내가 별 거 다 고백한다.
밥상머리 예절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나...
점심 때다. 삶았던 호박국을 조금 떠서 작은 냄새에 붓고는 냉장고 안을 뒤져서 잡다한 식재료를 꺼냈다.
다꾸앙(단무지, 음식점에서 배달온 반찬류가 남은 것), 맛이 간 쉰 김치, 오래된 쪽파졸임 등을 집어넣고는 가위로 잘게 썰었다. 잡탕이 된 호박국.
점심 한 끼 거뜬하게 해결했다. 냉장안에서 오래된 잔반도 조금 처리했고.
그 어떤 것이라도 새롭게 변화시킨다는 사고가 짙은 나이기에 까짓껏이다. 고추장 하나만 있으면 밥을 먹는 나이기에.
냉장고 안에 오랫동안 처박아 두었던 잔반을 재활용하면 그뿐이다.
조금은 돼지밥 같기도 하지만...
한 번 깊이 생각해야겠다.
큰딸이 왔기에 다꾸왕이라고 말했다가 지적당했다.
단무지.
나는 일본말에 길들여졌다. 언어순화가 아직 덜 되었다는 증거이다.
첫댓글 요즘 유교사상의 발상지 중국에서도 제사를 안 지낸다고 합니다
지내면 벌금 감옥에 간다네요
우리나라도 제사 문화에 대해 한번 생각케 합니다.
예.
그렇군요. 2,500년 전의 공자 시대의 전통이 뭐 그리....
조선조는 제사문화에 찌든 찌질이문화이대요. 왕권유지, 사대부의 권력다툼에 이용된 제사문화....
지금도 서원, 향교 등지에서는 도포 입고, 갓 쓴 사람들이 무척이나 많대요.
서울 종묘에서는 이런 궁중제례문화가 이어지고, 이를 한국문화로서 상품화되고...
제례문화를 보면서 생각의 차이를 한 번 더 생각해야겠습니다.
중국에서의 제사문화가 변했다는 님의 정보에 고맙습니다. 꾸벅꾸벅.
한국이 중국보다 더 공자를 숭배하나봐요 향교가 다 그분 모신답니다 요즘들어 배웠답니다
수십 년 전, 직장에서 휴가를 내고는 시향에 참가했지요.
직장인이기에 양복을 입고요. 산소에 모인 노인들한테 고개 숙여 인사하니 도포 입는 분이 왜 고개를 까딱이냐?
엎드려서 절해야 한다고 하대요. 산소 땅바닥에 손짚고 절하라고요?
제가 할 것 같아요? 또 시향은 꼭 정해진 날짜에만 해야 한다고요?
저는 주말인 토요일이나 일요일을 원했는데... 결국 20년 넘게 사향에 가지 않았지요. 제가 첫번째 제주인데도...
그분들 다 돌아가셨고, 지금은 제가 제주되어 주말로 조정하지요.
제문/축문도 아이들이 알도록 우리말로 쉽게 쓰고... 이것마저 더 줄일려고요.
돈만 들어갈 뿐... 다 없애야 할 껍대기들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