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에카와 여자중등부장 중학생에게서 이러한 의견이 있었습니다.
"지금 뉴스에서 많이 다루고 있는 소년 범죄를 보고 친구들은 '용기있네' 라고 말하지만 그러한 것은 용기도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주위에서 집단 괴롭힘을 하고 있는 사람이 있으면 '그만둬' 라고 한 마디를..... 그것이 훌륭한 용기라고 생각합니다.
'집단 괴롭힘' 을 없애는 열쇠는 주위에
이케다 SGI회장 똑똑하군요! 그대로입니다!
'집단 괴롭힘을 없애기' 위한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은 실은 '주위에서 보고 있는 사람들' 입니다.
괴롭히고 있는 사람에게 '그만둬' 라고 말할 수 있는지 어떤지.
집단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사람에게 '우리들은 너의 편이다' 라고 말해 줄 수 있는지 어떤지.
그렇지 않으면 '나는 관계없다' 고 '보고도 못 본 척' 할 것인지. 그것으로 결정된다.
그러므로 모두 '용기' 를 내기 바란다.
두 번 다시 없는 중학교 시절입니다. 집단 괴롭힘이라는 먹구름 따위는 여러분의 용기의 바람으로 날려 버리고 즐겁게 푸른 하늘을 우러러보며 살아갔으면 합니다.
마에카와 '집단 괴롭힘이 전혀 없는 세계' 라..... 훌륭하군요!
어둠과 빛의 경계
SGI회장 단 한 사람으로 좋다. 단 한 사람이라도 편들어 주면 얼마나 기쁠까.
집단 괴롭힘을 당하고 있을 때, 사람은 '세계가 모두 자신의 적이다' 라고 생각해 버린다.
누구도 믿을 수 없다. 인간을 믿을 수 없다. 인생을 믿을 수 없다.
칠흙같은 어둠 속에 홀로 주저 앉아 있는 것 같다.
그러한 때에 한 사람이라도 좋다. '나는 당신의 편이다!' 라고 말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어둠 속에 '빛' 이 비치는 것입니다.
'칠흙같은 어둠' 인가, 희미하게라도 '등불이 켜져 있는가'. 이것은 큰 차이입니다. 아니 정반대라고 할 정도로 다르다.
그 '한 사람' 이 있는지 없는지가 빛과 어둠의 '경계선' 입니다.
호리이 전 중등부장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대로입니다.
저도 괴롭힘을 당하고, 괴롭힘을 당해도, 중학교 3년간 그래도 어떻게든 견디어 낼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실은 한 명의 친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2학년이 되어 반이 바뀌었습니다. 나중에 안 일입니다만 제가 모르는 사이에 어머니가 쭉 학교에 부탁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조금은 나아졌습니다.
새로운 반이 되어서 처음 옆에 앉았던 친구가 A군이었습니다. A군은 아침에 등교하면 '안녕!' 이라고 말을 걸어 왔습니다.
그것은 굉장히 놀랍고 정말로 기뻤습니다.....
하루만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음 날도 또 다음 날도 말을 걸어 주었습니다. 그렇게 말을 걸어 준 사람은 A군 뿐이었습니다.
모두 내가 집단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어 연관되는 것을 꺼리고 있었기 때문에.
SGI회장 문제는 그것이군요!
그렇더라도 A군은 정말 훌륭한 사람이군요.
가장 멋있다.
호리이 예. 그 친구와는 컴퓨터에 대한 취미도 같아서 함께 게임 이야기도 했습니다. '이거, 재미있으니까 읽어봐!' 라고 만화책을 빌려 주던 일도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때 처음으로 중학교 생활을 하면서 '살아 있다!' 고 실감했습니다.
이케다 선생님이 말씀하신 그대로입니다. 저도 한 줄기 '빛' 이 있었기 때문에 생활할 수 있었습니다.
특별한 것이 아니더라도 괜찮습니다. 체육 시간이나 임해 학교 등에서 그룹을 지을 때에 '너는 어떻게 할거니' 라고 말을 걸기도 하고, 그런 대수롭지 않은 배려가 정말로 기쁜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중등부장이었을 때도 언제나 "A군 같은 사람이 되어 주세요. 괴로워하고 있는 사람에게 말을 걸어 줄 수 있은 사람이 되어 주세요. 그런 사람이야말로 '가장 멋있는 사람' 인 것입니다" 라고 호소했습니다.
SGI회장 A군과는 지금도 친구입니까?
호리이 예. 가장 친한 친구입니다.
마쓰무라 전 여자중등부장 저도 고등학교 시절입니다만 '동료들에게 따돌림' 받았을 때 언제나 지켜 준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과는 지금도 친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그러한 사람에게는 자연히 친구가 따릅니다.
'모든 악의 근원'
SGI회장 그러한 사람이 늘어나는 만큼 학교는 바뀝니다.
이것은 정말로 중요한 것입니다.
넓게 말하면 지금 대부분의 사회 문제도 '나는 관계 없다' 고 말하는 사람이 많은 것이 '모든 악의 근원' 이라 해도 좋다.
악을 '나는 관계없다' 고 말한다. 자신에게 불똥이 떨어지지 않는 이상 보고도 못본 척 한다. 사실은 그런 행동이 '악을 돕는' 것이 된다.
호리이 초대회장 마키구치 선생님은 "좋은 일을 하지 않는 것은 결국 나쁜 일을 한 것과 같다" 고 말씀하셨습니다.
SGI회장 그대로입니다.
"선로에 돌이 놓여 있다. 그대로 두면 기차가 사고를 일으킬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돌을 치우려 하지 않는 것은 결국은 선로에 돌을 놓은 것과 같다."
그런 신념이었다.
그러므로 마키구치 선생님은 언제나 선두에 서서 악과 싸웠다.
그러므로 항상 괴롭힘을 당했다. 당시의 교육계에서도 종문에서도 국가권력에서도.
'악에게 계속 괴롭힘을 당한 인생' 이었다. 그것은 마키구치 선생님의 영광입니다. 우리의 자랑입니다.
마쓰무라 "좋은 일을 하지 않는 것은 나쁜 일을 하는 것과 같다" 고 말한 것은 보통의 생각과는 상당히 다르군요. 보통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 고 생각합니다.
SGI회장 예를 들면 사람이 연못에 빠졌다.
자신이 떠밀지 않았다고 하여 아무것도 하지 않고 보고만 있다면 어떻겠는가?
떠밀은 악과는 같지 않다고 해도 다른 의미에서 이것도 '악' 이 아니겠는가.
호리이 괴롭힘을 '보고도 못본 척' 하는 것은 정말로 '연못에 빠져 있는 사람을 죽게 내버려 두는' 것과 비슷합니다.
SGI회장 엄격히 말하면 그것은 '괴롭히고 있는 사람의 협력자' 입니다. '공범자' 가 되는 것입니다.
마에카와 (방관하고 있는 사람은) 자신은 모를지도 모릅니다!
'당신이 대신 괴롭힘을 당하고'
SGI회장 '내가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괜찮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면 그것은 '나는 괴롭힘을 당하는 것이 싫으니까 네가 괴롭힘 당해 줘' 라고 바라는 것과 같다.
마쓰무라 비겁합니다.
SGI회장 '나는 관계없다' 고 하는 것은 '편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나는 관계없다' 가 가장 인간을 타락시키고 있다.
'나는 관계없다' 고 중얼거릴 때마다 자신의 '인간다움' 이 줄어들고 점점 사라져 버린다. 그것을 깨닫기 바라는 것입니다.
소극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것은 적극적으로 '자신을 망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자각하지 않으면 해마다 점차 하찮은 인간으로 되어 간다.
악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는 무기력한 인간이 되고 만다.
학년과 더불어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 가 증가
마에카와 4개국에서의 '집단 괴롭힘에 대한 조사' 가 있습니다.
<1997년 조사, 금년 발표. 국제 집단 괴롭힘 문제연구회>
조사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집단 괴롭힘을 보고 들었을 때에 어떻게 하겠는가' 라는 질문에 영국에서는 중학생이 되면 '집단 괴롭힘을 그만두도록 힘을 쓰겠다는 학생' 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주의를 주거나 선생님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라는 대답이 초등학생에서 중학생으로 학년이 올라갈수록 적어지고 있습니다.
SGI회장 과연. 중요한 조사군요.
단 나는 '그러므로 일본의 중학생은 안 된다' 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숫자' 가 나타내고 있는 '진정한 의미' 를 아는 것은 어떠한 경우도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일본의 중학생에게는 '그런 상황에 처해 보지 않고서는 모르는' 괴로움이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마에카와 감사합니다.
호리이 확실히 모처럼 용기를 내서 학교의 선생님에게 말해도 조금도 진지하게 들어 주지 않습니다. - 예를 들어 이런 경험을 한 번이라도 한 중학생은 이제 아무도 신용할 수 없게 되고 맙니다.
마에카와 실은 '집단 괴롭힘을 보고도 그만두게 할 수 없었다' 는 고민도 들어 오고 있습니다. 중학교 2학년 여학생에게는 뭐합니다만.....
SGI회장 그래! 그러나 그것으로 괴로워하다니 그것만으로 훌륭하다고 생각해요.
마에카와 이런 이야기입니다.
"저의 반 어느 여학생에게 몇명의 남학생이 '바보', '느림보', '구리다' 라고 말하며 그 아이가 나누어 준 음식은 먹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하고 가방을 차기도 합니다.
SGI회장 심하군요.....
듣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메어지는 것 같습니다. 자신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지 정말로 그들은 모르는 군요!
마에카와 "다른 여학생도 '저 얘는 당해도 당연한' 듯이 느끼고 주의를 전혀 주지 않습니다. 저는 도저히 그런 모습을 보고 있을 수 없어서 주의를 주고 싶었습니다만, 남자 아이들이 무서워서 아무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도와 줄 수 있을까요."
'그만두면 자신이 당한다'
마쓰무라 이것은 많은 사람의 느낌이라고 생각합니다.
'괴롭힘을 어떻게든 그만두고 싶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이번은 내가 괴롭힘을 당한다' 그런 공포 때문에 주저한다고 생각합니다.
마에카와 심하면 '함께 괴롭히지 않으면 자신이 당하기 때문에' 괴롭힘에 가담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호리이 지금 '그 아이는 당해도 당연하다' 라는 한 구절이 있었습니다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으로 주위에서 괴롭힘을 정당화하고 있군요.
괴롭히는 쪽은 이런저런 '괴롭히는 이유' 를 만들어 냅니다. 물론 '사람을 괴롭혀도 좋다는 이유' 따위는 절대로 없습니다! 있을리 만무합니다.
전부 자신들의 '추한 마음' 을 정당화 하기 위한 '변명' 입니다.
마쓰무라 'OO는 느림보이기 때문에 괴롭힘 당해도 당연하다', '자신이 뿌린 씨앗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나는 관계없다' 주위가 이렇게 되버리면 이미 학급 안에서 누구도 괴롭힘을 그만두게 할 수 없게 되어 버리는 군요.
어떻게든 하고 싶다! 그 '마음' 을 관철하라
SGI회장 그런 가운데 질문한 여학생은 '나는 관계없다' 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떻게든 돕고 싶다' 고 생각하고 있다. 그것만으로 아주 아주 훌륭해요.
'어떻게든 돕고 싶다' 고 생각하는 그 마음을 소중히 하고 싶다.
왜인가. 그 마음을 계속 가지고 있으면 고등학교에서 대학교에서 대학에서 사회에서 반드시 '어떻게든 도울 수 있는' 자신이 될 수 있다.
반대로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고 체념하면 그 순간에 정말로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어 버린다. 이것은 중요한 것입니다.
그것을 전제로 해서 나는, 그 학급의 '현실' 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간단히 '용기를 내서 집단 괴롭힘을 막아라' 고 하는 것은 말한 쪽이 무책임하다고 생각한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지금 줄곧 '집단 괴롭힘' 에 대해서 함께 생각하고 이야기했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원칙' 입니다.
'현실' 은 천차만별로 전부 다르다. 그래서 일률적으로 말할 수 없다.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용기를 내서 집단 괴롭힘을 막아라' 고 하는 것은 쉬워요.
그러나 그 결과 소중한 중등부 여러분이 상처 입을 가능성이 있다면 그것은 말할 수 없습니다. 나는 한 사람도 빠짐없이 전원이 소중합니다. 누구도 위험한 지경에 이르게 하고 싶지 않다.
우선 '기원' 을!
SGI회장 그러므로 최소한 말할 수 있는 것은 '절대로 자신은 괴롭히지 않겠다는' 것.
그리고 어본존에게 괴롭힘 당하고 있는 사람의 일을 '진심으로 기원해 가는' 것.
그 위에 가능하면 어떠한 방법으로든 그 아이에게 '내가 걱정하고 있다는 마음을 전하는' 것.
정직하게 '자신은 지금 집단 괴롭힘을 그만두게 할 용기는 없지만 나쁜 것은 절대로 괴롭히고 있는 쪽이기 때문에! 당신은 조금도 나쁘지 않다!
나는 매일 기원하고 있으니까! 라고 편지를 쓰는 것만으로도 좋다고 생각한다.
마쓰무라 그것도 용기가 필요합니다. 훌륭하군요.
사실 그런 방법으로 편지를 쓴 여학생도 있었습니다. 그러자 조금씩 그 아이가 마음을 열어가고 자기 편도 점점 늘어나고 괴롭힘이 없어지게 되었습니다.
호리이 편지나 메모에는 자신의 이름을 쓰고 싶지 않다면 그것으로 좋다고 생각합니다.
SGI회장 그것과 누군가 동료를 찾는 것입니다. '괴롭힘을 그만두게 하고 싶다' 고 생각하는 사람은 반드시 어딘가 있다고 생각한다. 없으면 만들면 된다. '동지' 를 만드는 것입니다.
'자신 혼자' 와 '이제 한 명의 동지가 있다' 는 것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마에카와 어느 여학생은 그룹 안에서 좋은 사이 일 때에 '괴롭혀서는 안돼', '만약 우리들 사이에서 앞으로 괴롭힘을 당하거나 괴롭힘을 보거나 하면 솔직하게 서로 이야기하자' 라고 모두에게 약속했다고 한다.
그것이 있었기에 한 사람이 동료들에게서 따돌림을 받게 되었을 때에도 도와 줄 수 있었다고 합니다.
호리이 그리고 선생님에게 이야기할 때는 '제가 말했다는 것은 비밀로 해 주세요' 라고 분명히 하는 쪽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괴롭히는 아이에게는 그 선생님이 '다른 선생님에게 들었다', '다른 선생님이 보았다' 고 말하면 되니까요.
신뢰할 수 있는 사람에게 협력을 구한다.
SGI회장 부모라든가 선배라든가 누구라도 좋으니까 '이 사람은 신뢰할 수 있다' 고 하는 사람에게 상담하고 협력을 구해도 좋다.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선은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하는 것이 좋습니다.
지금의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사소한 일' 인지도 모른다.
그 사소한 일을 부끄럽게 여기고 손을 빼버리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럴 필요는 없다.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것' 을 하는 사람이 훌륭합니다.
'무엇인가' 시작한다.
SGI회장 프랑스의 미테랑 전 대통령 부인은 열성적인 인권활동가입니다.
소카대학에서 만났을 때 이런 이야기를 하셨다.
"예를 들면 눈앞에 50명의 사람이 물에 빠졌다고 합시다. 그런데 나에게는 현재로 한 사람에게만 구원의 손길을 내밀 수 있다. 그러나 우선 한 사람을 도와 주면 다음 사람을 도와 줄 수 있습니다. 마침내 그것을 전체로 파급해 갈 수 있습니다."
호리이 그렇게 생각합니다. '집단 괴롭힘' 이라고 하면 왠지 이야기를 확대해서 '이러한 사회이기 때문에' 이라든가 '잠깐 동안 노력하고 언 발에 오줌 누기' 라고 한다든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변명만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불에 달구어진 돌' 이라도 여러분이 '물을 부으면 차가워 집니다.
SGI회장 그러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물' 을 붓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누군가가 '무엇인가' 시작하는 것이다.
마에카와 우리들 담당자도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를 진심으로 연구해 가겠습니다.
반발한다면
SGI회장 그래서 여러분이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사람에게 '손을 내밀었다' 고 하자.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고마워한다고는 장담할 수 없다. 반대로 '쓸데없는 짓 하지마!' 라고 반발할 지도모른다.
괴롭힘을 당해온 사람은 마음에 상처를 입었기 때문에 인간을 좀처럼 믿을 수 없다. 그러한 경우가 많다.
사람을 '경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기 때문에 만약 그러한 반발이 있어도 화를 내서는 안 된다.
이해해 주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 조금 전에도 말한 것같이 집단 괴롭힘과 싸우는 것은 '자기 자신의 마음을 구하기' 위한 것도 있다. 자신이 '악의 공범자' 로 되지 않기 위한 것도 있다.
그러므로 '벗을 도와 주는' 것은 실은 '자신을 위한' 것도 있는 것입니다. '자신의 마음을 도와 주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은혜라도 베푼 것처럼 유별나게 생색을 내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고 '자신을 위한 것도 있다' 고 생각하면 상대방이 반발해도 화가 나지 않습니다.
화가 나는 것은 '도와 주고 있다' 는 '교만' 한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이가 아무것도 이야기해 주지 않는다'
마쓰무라 잘 알았습니다.
한 가지 더 있습니다만, 어느 부모님으로부터 "아이의 모습이 왠지 이상합니다만, 아무리 물어도 이야기해 주지 않습니다" 라는 상담이 있었습니다만.....
SGI회장 그것은 걱정거리군요.
단지, 괴롭고 너무나 괴로워서 말하고 싶어도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어떻게 말하면 좋을지 모른다 - 그러한 기분도 알아 주었으면 한다.
더욱이 어린이도 자존심이 있습니다. 자신이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상황은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는 기분도 들겠지요.
괴롭힘으로 그 아이의 자존심은 더욱더 섬세해지고 신경이 곤두서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더구나 '괴롭힘을 당하고 있지 않니', '말해, 말해' 라고 '추궁' 받는 것은 고통입니다.
그러므로 어쨋든 '나는 어떤 일이 있어도 네가 무엇을 해도 네 편이다' 라는 메시지를 반복하고, 반복하면, 마음에 스며들지 않을까요.
그렇게 하고 '옆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 좋은 경우가 있다. 그 '애정' 만 전해지면 그것이 '지주' 가 됩니다.
물론 게중에는 '자신의 아이이기 때문에 너무나 조심할 필요는 없다' 고 생각하는 분도 계시리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그것으로 옳습니다.
아이가 도망가도 뒤쫓아서 꼭 껴안고 뒤쫓아가 매달려 '나는 반드시 너에게 힘이 되겠다' 는 것을 끝까지 전해 간다.
끝까지 함께 하고 이야기를 듣기 시작해 간다.
어느 쪽을 선택할지는 바로 가정 여하에 달려 있습니다.
평소 대화의 밀도(密屠)에서도 좌우됩니다. 평상시는 대화다운 대화도 없다가 문제가 일어나자 갑자기 '무엇이든 이야기해' 라고 말해도 그리 간단하지 않을 것입니다.
마쓰무라 어느 중등부원은 괴롭힘 당하고 있는 사실을 부모에게 이야기했을 때 "열심히 이야기한다고 했지만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르게 됩니다. 입에서 여러 가지 말이 나옵니다만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아이들의 마음은 심하게 흔들리고 있는 것입니다.
SGI회장 그러기 때문에 몇시간이라도 며칠이라도 끈기 있게 '듣는 입장' 에 철저했으면 합니다. 아이들은 이야기하는 것으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자신에게 맞는 해결 방법을 찾아 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선은 '조언하는' 것보다도 '마음을 텅 비우고 다만 듣는' 정도의 기분으로도 좋지 않은가하고 나는 생각합니다.
또 단 한 마디, 아무런 생각없이 말한 '한 마디' 를 소중히 해 주십시오.
그 '한 마디' 에 '온 정성' 이 들어 있는 것입니다.
하여튼 어떠한 경우에라도 부모님이야말로 아이들에게 최대한 아군입니다. 최대의 '안심감' 을 주었으면 하는 생각입니다.
마에카와 담당자도 무엇이라도 할 수 있는 것이 있으면 무엇이라도 돕고 싶습니다. 사양하지 말고 현지의 청년부들에게 연락을 해 보세요.
물론 상담을 받은 담당자는 '프라이버시는 엄수' 해 주기를 부탁드립니다.
SGI회장 중요한 것이군요. '입이 가벼운' 간부는 최저의 간부입니다.
호리이 어느 담당자는 '무엇인가 괴로워하고 있는 것 같다' 고 느끼면 그 아이를 차에 태우고 밤에 시내 고속도로를 달린다고 합니다. 목적지도 없고 특별한 이야기를 하는 것도 아니고 '단지 달릴' 뿐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함께 '라면을 먹는' 것입니다.
SGI회장 여러 가지 지혜가 있군요. 믿음직스럽군요!
'받아 주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SGI회장 중학생이 쓴 이런 시가 있다.
슬프고 고통스러울 때도 있었다
전부 던져 버리고 도망가고 싶은 때도 있었다
그러나 노력했어요
나를 받아들여 주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었기 때문에
인정해 주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었기 때문에.....
기뻣기 때문에.....
아직 마음속은 불안과 공포와 고독으로 가득 차 있지만
믿어 주는 사람을 위해서
인정해 주는 사람을 위해서
... 그것과 자신을 위해서
그래서 '절대로 지지 않아요'
분별있는 사람 모두가 전국으로, 전 세계로 바삐 돌아 다니며 집단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사람에게 전해 주기 바랍니다.
'군(君)은 외토리가 아니다!' 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