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고 싶은 것들
이봉기
신록이 진한 푸르름으로 물들어 가면 뜨락의 장미꽃 봉우리는 찬
란한 봄 햇살에 고운 담홍색으로 수놓는다.
어느새 봄이 왔기에 장미꽃이 한창이 되었을까? 봄꽃들의 축제가
한창이었지만 내 마음엔 봄이 왜 이리도 더디 오고 있는지. 지난 한
달 동안 벚꽃이 언제 피었다 지었는지 모른 채 시간이 지나갔다. 그
리고 오늘 참으로 오랜만에 아름다운 거리를 보았다. 눈부신 햇살아
래 포근하고 평화로운 거리를.
누구나 한세상 사노라면 저마다 견뎌내야 할 아픔과 고난이 있겠
지만 나에게도 시련의 날들이 있었다. 우울의 늪에 빠지게 했던 날들
이 있었다 사월의 첫째주 금요일, 창간호에 게재 할 원고를 받기 위
해 로얄 관광호텔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1시 30분경, 후론트에서 원
고를 받아들고 집으로 오던 중이었다. 대로변에서 아파트가 밀집된
도로로 접어들었을 때 갑자기 한길을 가로질러 차 앞을 달려드는 아
이를 발견하였을 때는 이미 늦었다. 급정거를 해도 아이는 차와 충돌
하게 되어 있었다.
망연자실한 채로 다리가 굳어 브레이크로 옮겨가질 않는다. 아이
는 차 앞머리와 충돌하고 시야에서 사라졌다. 아이는 어떻게 됐을
까? 죽었을까? 중상일까?
'이제 내 인생은 끝났구나' 생각하며 가까스로 차를 세우고 내리
려는데 오토바이를 탄 청년이 따라왔다. 그리고 그 뒤로 두 여자가
달려와서 빨리 병원으로 가자고 소리쳤다. 피투성이가 된 아이를 상
상하며 병원까지 가는 10여분은 초 긴장상태여서 숨도 제대로 쉴 수
가 없었다. 병원에 도착하는 순간 새로운 사실에 놀랐다. 사고직후
아이가 차 앞으로 넘어 졌는 줄 알았는데 차 앞머리에 엉덩이가 받혀
차 옆으로 넘어져 이마를 조금 다쳤던 것이다.
경찰진술에서 자의로 차를 세웠다는 나의 말보다 쫓아가니 차가
섰다는 목격자 위주의 진술로 일이 처리되는 것에 너무나 속이 상하
고 억울했다. 양심과 법은 일치되고 있지 않음을 그때야 알았다. 나
는 법대로 할 것을 우겼고 남편은 내가 당해야 하는 정신적인 고통을
고려해 합의 볼 것을 주장했다. 어쩔 수없이 차와 맞먹는 돈을 주고
야 합의를 보았다.
심한 몸살이 시작되었고 다시는 그들을 보고 싶지 않았지만 다음
날 병원을 찾았으나 합의 금을 받고 즉시 퇴원해 버린 후였다. 사고
의 순간을 잊고 싶다. 그 아이와의 사고로 시련을 겪게끔 예정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사고 당일 주차장에서 원고를 읽으며 시
간을 보낸 것, 매일 다니던 법원 쪽 길을 택하지 않고 돌아 왔던 점,
오전에 전화한 외판원 때문에 찻집에서 한시간이나 지체했던 점등이
그렇게 느껴지는 이유다. 슬프고 절망스러운 일은 하루 빨리 잊어야
한다. 삶의 연결고리가 되고 고도의 정신활동이 어느 것 하나 기억에
의존하지 않는 일이 없지만 때로는 잊혀져야 할 때가 있다.
동이 트기 전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조용히 일어나 집을 나왔다.
산허리를 돌아 가파른 오솔길을 올라가노라면 밤이슬을 맞은 싱그러
운 풀잎들이 정신을 맑게 해주고 메마른 내 삶을 촉촉하게 적셔준다.
오랜만에 송진 내음 가득한 숲을 거닐며 새들의 아름다운 노랫소리
를 들었다. 맞은편 봉우리를 향해 억울한 마음을
'야호' 로 실어 보내니 메아리만 들려올 뿐이다. 그 메아리는 마치
남을 용서하고 미워하지 말며 넓은 시야를 가지고 보라 타일러준다.
올라갈 때는 걸림돌이었던 돌이 내려올 때는 받침돌이 되어 속도
를 조절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마치 우리네 인생살이의 곡절을 일깨
워주는 것 같다. 교통사고 이후 온갖 상념으로 머리 속이 혼란스럽고
무거웠는데 꼬불꼬불한 고갯길을 오르내리다 보니 가슴에 맺혔던 응
어리가 땀과 함께 서서히 녹아 내려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산은
우리에게 마음을 비우라 하고 겸허하라는 것 같았다.
우리는 아름다운 기억 때문에 살지만 때로는 망각하며 사는 것이
축복이 아니던가?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기억되고 있을까?
누가 언제, 나와 관련된 나쁜 일의 기억을 갖고 있다면 차라리 나
를 잊어 달라고 말하고 싶다. 어느 시인의 반고송(般苦頌)을 되뇌면
서 나 자신을 위로해본다.
'괴로운 것이 어찌 그대뿐이랴 걱정과 고통 근심과 불안이 그림
자처럼 붙어 다니는 우리네 삶인 것을. 빛을 향해서면 그림자는 등뒤
로 숨고 빛을 등지고 서면 그림자는 앞에 나타나듯이 그렇게 번뇌와
더불어 살아가는 것을.
응급 상황에 제대로 대처 못한 나의 행동을 자책하며 잃은 것에 대
한 아까운 생각도 있었지만 많은 것을 느꼈다. 겸손을 외치면서도 마
음속에 교만함을 버리지 못하였고 내면의 실질적인 아름다움보다.
허세나 겉치레에 신경을 썼으며 자신의 잘못을 알지 못하고 남을 이
해하고 용서하는데 인색하였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욕심과 집착
과 어리석음에서 벗어나기 위해 겸손해져야 할 것이다. 그들은 가득
찼을 때보다 비어 있을 때의 여유로움을 왜 잊고 사는 걸까? 많을 때
의 소중함보다 적게 가졌을 때의 소중함을 왜 잊고 사는 걸까? 나 자
신 반성의 기회를 갖고 돌다리도 두들겨 건너가는 마음으로 모든 일
에 최선을 다 하리라.
2001. 11집
첫댓글 우리는 아름다운 기억 때문에 살지만 때로는 망각하며 사는 것이
축복이 아니던가?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기억되고 있을까?
누가 언제, 나와 관련된 나쁜 일의 기억을 갖고 있다면 차라리 나
를 잊어 달라고 말하고 싶다. 어느 시인의 반고송(般苦頌)을 되뇌면
서 나 자신을 위로해본다.
'괴로운 것이 어찌 그대뿐이랴 걱정과 고통 근심과 불안이 그림
자처럼 붙어 다니는 우리네 삶인 것을. 빛을 향해서면 그림자는 등뒤
로 숨고 빛을 등지고 서면 그림자는 앞에 나타나듯이 그렇게 번뇌와
더불어 살아가는 것을.
괴로운 것이 어찌 그대뿐이랴 걱정과 고통 근심과 불안이 그림
자처럼 붙어 다니는 우리네 삶인 것을. 빛을 향해서면 그림자는 등뒤
로 숨고 빛을 등지고 서면 그림자는 앞에 나타나듯이 그렇게 번뇌와
더불어 살아가는 것을.
응급 상황에 제대로 대처 못한 나의 행동을 자책하며 잃은 것에 대
한 아까운 생각도 있었지만 많은 것을 느꼈다. 겸손을 외치면서도 마
음속에 교만함을 버리지 못하였고 내면의 실질적인 아름다움보다.
허세나 겉치레에 신경을 썼으며 자신의 잘못을 알지 못하고 남을 이
해하고 용서하는데 인색하였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욕심과 집착
과 어리석음에서 벗어나기 위해 겸손해져야 할 것이다. 그들은 가득
찼을 때보다 비어 있을 때의 여유로움을 왜 잊고 사는 걸까? 많을 때
의 소중함보다 적게 가졌을 때의 소중함을 왜 잊고 사는 걸까? 나 자
신 반성의 기회를 갖고 돌다리도 두들겨 건너가는 마음으로 모든 일
에 최선을 다 하리라.
우리는 아름다운 기억 때문에 살지만 때로는 망각하며 사는 것이 축복이 아니던가?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기억되고 있을까? 누가 언제, 나와 관련된 나쁜 일의 기억을 갖고 있다면 차라리 나를 잊어 달라고 말하고 싶다.
어느 시인의 반고송(般苦頌)을 되뇌면서 나 자신을 위로해본다 '괴로운 것이 어찌 그대뿐이랴 걱정과 고통 근심과 불안이 그림자처럼 붙어 다니는 우리네 삶인 것을. 빛을 향해서면 그림자는 등뒤
로 숨고 빛을 등지고 서면 그림자는 앞에 나타나듯이 그렇게 번뇌와 더불어 살아가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