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밤 열시가 되어서 심포지엄은 끝났다.
지하의 퍼브 바 'Charlies'에서 맥주나 한잔하자. 하여 내려갔다.
그 옆의 'Elune'은 나이든 사람들은 입장 사절이란다.
'자리가 없으니 기다리세요.' 하고는 한없이 세워두고
젊은애들만 들어가게 해 눈치를 채게 한다고.
왕년의 서울 종로 2가의 '낭만'이 생각난다.
거기는 젊은이들이 입장 사절이었다.
여기는 별실이라 바깥의 훙겨운 분위기는 CCTV로만 비추어 준다.
필리핀 밴드 Higher Ground가 'Beautiful Sunday'를 신나게 부르고 있다.
먼저 시킨 아사히와 기린생맥주
마른 안주와 이어 나온 과일 안주.
건너편의 대구에서 온 여선생에게 대구이야기를 한다.
우리 본가가 있었던 상서동, 소개도로가 나며 철거되고 남은 일부가 나중 요정이 되었었고
인교동의 또 다른 우리집은 유면한 배우 신모씨가 어릴적 살았다.
그러니까 신모씨와 우리 하고도 걸리는 사이이다.
대구의 부촌에서 일어난 일로 후에 영화로도 두번이나 나온 '기생 강명화'
'어떻게 그렇게 잘 아세요'
우리집은 원래 경산, 지금은 대구로 편입된, 이고 대구에서 누대를 살아왔기 때문이다.
옆에서 부산 동아대학의 후진이 속삭인다.
'형님, 폭탄 한잔씩만 돌리지요.'
마다 할 내가 아니지.
이런 회식의 좋은 점은 서로가 격식을 훌훌 털어버리고 어울릴 수 있다는 점이다.
얼굴색들이 보지 좋치요.
이럴때는 좌장이고, 연자이고, 남녀노소 가릴 것없이 마시고 논다.
누가 와서 술한잔을 따룬다.
저의 아버님이 경북의대 신장내과에 있다가 개업한 조 아무개입니다.
아, 나는 당신 어머니도 알고 있는데.
명함을 받아보니가 경북의대 신장내과 교수이다.
대를 물려 같은 대학 같은 과에 있는 부러운 후배와 후배 아들.
폭탄주와 그냥 맥주를 두고 고민(?)하는 나.
그런데 표정이 별로 고민스러워 보이질 않는구나.
그래도 이런 곳에서 한잔 하는 것이 좋다.
별로 움직이지 않고 또 끝나고 바로 올라가면되니까.
곽선생이 나의 처가가 원래 기장이었다고 하니까
자기가 기장신앙촌의 박태성장로 왕진을 여러번 다녀왔다고 말하며 교주답지 않게 겸손하더라.
아들대에 내려와서 쇠퇴한 천부교의 창시자이다.
열두시가 다되어 방으로 들어왔다.
부산의 친구들에게 '술한잔 안할래'하고 전화 안하기 잘했다.
테이블에 놓여있는 선물 박스
열어보니 쵸컬릿 한 박스이다.
서울에 올라가 딸에게 주어야지.
호텔 베란다에서 밤의 해변을 찍는다.
객실 바로 아래의 스파
다음 날 자세히 찍으려 하였더니 남녀가 벌거벗고 들어가 있어 구경만 하였다.
오늘은 바쁜 하루이었다.
첫댓글 대구 옆에 경산은 육이오때 우리가 피난 갔을 때, 잠시 거쳐간 곳이고요..... 내가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 박태선 장로교를 나갔습니다. 그 때는 천부교라고 하지 않고, 전도관이라고 했는데, 나중에 개명이 된 모양입디다. 박태선 장로는 평안도 사람인데, 종교적 이적(기적)을 일으키는 능력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닌가 봅디다...
시온교, 감람나무교 등으로도 불리지 않았나요.
경남 기장에 있는 죽도는 내가 결혼할 당시 우리 처가 소유이었는데
여기에 팔고는 일반인들이 출입을 못하게 막아 버렸어요.
아래 대가 잘 풀리지 않았는것같은데.
내가 중학교를 경기도 소사에 있는 제1신앙촌 내의 시온중학교를 가겠다고 했다가, 아버지에게 한참 혼 나고 원주중학교를 거쳐서 경복을 가게 되었지요.... 그 때, 아버지가 혼내지 않았으면, 유교수를 만나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
박태선 장로는 스스로 감람나무라고 칭하고, 그가 하느님과 중재자 역할을 한다고 했던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