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60대의 이야기 (18)
사람을 구하려다 생긴 에피소드
1988년 5월 21일, 저는 IBK기업은행에 입사해 서울 마포의 숙소에서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 새벽 1시 30분쯤, 밖에서 다급한 여자의 비명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저는 곧바로 룸메이트를 깨워 함께 소리가 나는 방향을 살폈습니다.
숙소 정문은 철제문이 굳게 잠겨 있어 나갈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가까운 식당 쪽으로 돌아 후문을 통해 담장 쪽으로 달려갔습니다.
담장은 아래부터 위까지 벽돌로 쌓여 있었고, 맨 위에는 네모난 쇠창살이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그날은 이슬비가 부슬부슬 내려 담장이 몹시 미끄러웠습니다.
급한 마음에 담장을 넘던 순간 발이 그대로 미끄러졌고, 네모난 쇠창살에 늑골 부위가 강하게 부딪히는 충격을 받은 뒤 아래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순간 옆구리와 늑골에 극심한 통증이 밀려왔고, 숨조차 제대로 쉬기 어려울 만큼 아팠습니다.
룸메이트는 놀라 달려와 "괜찮아?" 하고 저를 부축했습니다. 한참 동안 통증 때문에 움직이지도 못하다가 겨우 몸을 일으켜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숙소에 들어와 상의를 벗고 상처 부위를 살펴보니, 다행히 골절은 아니었지만 늑골 주변이 심하게 부어 있었습니다.
사람을 구하겠다는 마음 하나로 뛰어나왔지만, 정작 저는 **"아이고, 옆구리 아파 죽겠다!"**를 연발하며 꼼짝도 하지 못하는 처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한참 뒤 정신을 가다듬고 밖을 살펴보니, 여자의 비명소리는 이미 멈춰 있었습니다. 다행히 주변 사람들이 먼저 상황을 수습했던 것 같았습니다.
그 순간 문득 군 병영생활이 떠올랐습니다. 당시 박 병장에게 구타를 당하며 들었던 고통의 비명소리가 아직도 제 가슴속 깊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누군가의 다급한 비명소리를 듣는 순간, 머리보다 몸이 먼저 움직였습니다. 혹시라도 또 다른 누군가가 저와 같은 고통을 겪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망설일 수 없었습니다.
비록 저는 다쳐 끝까지 도움을 주지는 못했지만, 그날의 경험은 제게 또 하나의 소중한 교훈을 남겼습니다.
사람을 돕는 용기는 무엇보다 소중하지만, 자신의 안전을 지키는 것 또한 구조의 첫걸음이라는 사실입니다. 위급한 상황일수록 침착하게 주변을 살피고, 안전을 확보한 뒤 행동해야 한다는 것을 몸으로 배웠습니다.
세월이 흐른 지금도 그날을 떠올리면 아찔했던 순간이 먼저 스쳐 지나갑니다. 하지만 그날의 경험은 선한 마음만큼이나 냉정한 판단과 안전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 제 인생의 잊지 못할 교훈으로 남아 있습니다.
글 / 김재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