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성천의 무한으로
김은정
1.
귀 있는 수달이 들었지, 물밑에 어룽대는
달의 묵시를
한 백 년도 남지 않았을 거야, 분명히,
바위에 플라스틱 똥을 눈 수달의
끊어진 내성천 물길을 끼어들어 떵떵 어르는
쇳물처럼 불안이 흘러왔지
어쩌자고 돌리려 들까,
죽은 흰수마자 수염이 꼭 쥐고 있는 회룡포 여울을
자른 후 땜질을 하는 강철의 용접공처럼
듣는 귀 있는 사람들이
지도를 펼치고
불꽃이 튀는 목소리로
망하기 위해 내성천의 무한을 녹조 낀 유한으로
덮어버리려는 듯이
시원한 생수를 한 통씩 나누어 마시며
별 하나, 별 둘,
밤하늘의 우리를 헤아리는 심심함 대신
도시에 근사한 주차장을 세우고
발 빝에 파이프관을 파묻었지, 생활하수가
불어나 강이 오염될 때까지 보란 듯이
사람이 물을 이기는 전략으로
맑은 물을 고집하며
벌컥벌컥 들이키다 잠깐, 물의 상표에
귀를 대고 백두산, 소백산, 한라산ⵈⵈ 이쯤
더, 더, 더 물답게
나의 물
그래, 내성천은 맑은 물의 표상이야,
생명의 근원이지,
흐르는 물은 스스로 정화되는 법이야,
꼼꼼히 씹어 마시느라
물길을 돌다 고향을 잘못 빠져나온 은어의 꿈은
던져버렸지, 아무렇지도 않게
흰 마스크를 고쳐 쓰면서
벌써 백 년 전의 일이었지
2.
그 후에 물의 전쟁
총과 대포로 싸웠던 끔찍한 전쟁
백 년의 물 전쟁
물, 물 오직 맑은 물
오랜 전쟁이 끝난 후에 남은 것은 미사일처럼
솟은 워터프로펠러들
구름처럼 떠 있는 고고도생수공장
저 아래엔
깨진 백자 더미 같은 내성천
산산조각 부서진 사기 더미를 헤집고 가슴의 빛을 꺼내
뭉텅뭉텅 붙여보면 실패하는 퀴퀴한 냄새
발등에 떨어지는 붉은 핏물
끈적끈적한 붉음에
떠오르는 허상
선명해지는 시간의 속도
달이 파리하게 누워있는데
이제 먼지의 길을 연습해야지
죽은 별의 길을 가야지
별 헤는 사람 없이
자그마치 오백 년을 굴러다니는 검은 비닐봉지처럼
떠돌아야지 속이 뒤집힌 표정으로
사람을 이겨야지
내성천을 아껴줘,
제발, 딱정벌레의 다양성을 지켜줘,
가난했던 수달의 고백과
꼬치동자개의 자갈색 무늬를 천천히
돌아보면서
3.
가장 나중 된 물에서
먼저 된 물로 돌아가려면 얼마의 귀가 필요한가
흰목물떼새 날개로 덮듯이
내성천의 슬픔을 다 듣는 귀를 가지려면
이 예측할 수 없는 위험 속에서
백 년 전의 친구에게 쓰는 편지
─수달에게
지금 내성천은
문명의 찬란한 열매
제일 아름다운 플라스틱 무덤
물의 영광스러움 끝에 남은 참담함
윤리가 없는 주체들의 비천한 신전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무지에서 물을 새롭게 듣는 곳
작은 돌멩이에서 물의 거룩함을 보는 곳
긴 별의 순례 끝에 우리가 다다른 마지막 피난처
우리는 공존을 선택하고 너에게로 달려가지
물의 시작점, 출발점으로
─추신: 별빛으로 가고 있어, 백 년 전의 네에게로
육분의를 돌리듯이
----김은정 시집 {아빠 찾기}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