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집안 어른들을 모시고 '송년모임'을 가졌다.
대부분 70대 중반에서 80대 중반이셨다.
맛있는 음식에 간단하게 술도 한 잔 곁들였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모두가 한자리에 모인 건 3년만이었다.
반갑고 살가웠다.
밀린 얘기들이 많았다.
쉴새 없이 대화가 이어졌다.
주로 건강얘기, 인생 2막 얘기, 손주들 얘기, 요즘 관심사에 대한 얘기들이었다.
막판엔 '대통령의 리더십'에 대한 얘기까지 등장했다.
3시간 동안 많은 애깃거리들이 여과 없이 쏟아졌다.
모임을 주관했던 나는 그저 감사할 따름이었다.
잘 드셨다.
미소도 환하셨고, 화법도 활달하고 힘이 넘치셨다.
'전용룸'이라 다소 시끄러운 듯해도 크게 문제될 건 없었다.
식사를 마치고 식당 부근 카페로 이동했다.
70대 중반의 숙모님 한 분이 카페라떼를 들고 내 옆으로 오셨다.
내 손을 잡으시더니 연신 "고맙다"고 하셨다.
"조카가 일일이 연락하고 서둘러서 이런 모임을 주관했으니 그나마 여러 사람들의 얼굴을 한번에 볼 수 있었지, 그렇지 않았으면 아무도 나서지 않았을 테고, 이렇게 한자리에서 보지도 못했을 거야. 항상 고맙네. 고마워" 하셨다.
나도 답변을 드렸다.
"코로나 때문에 3년만에 모임을 주선했네요. 코로나가 아니었으면 매년 자리를 마련했을 텐데 오히려 제가 미안하고 송구스런 마음이 들어요. 집안 어르신들이 모두 다 이렇게 좋아 하시는데요"
대화 말미에 이런 얘기도 하셨다.
"삼촌하고 10일 계획으로 남도 여행을 떠났었는데 단 이틀만에 집으로 돌아왔다네."
"아니 왜요?"
"그동안엔 여행사를 통해서 국,내외 여행을 하곤 했었는데 달랑 둘만 가니까 너무 생경했고 여러 가지가 맞지 않더라고."
"아이고 숙모님. 평생을 같이 사셨는데 아직도 맞지 않는 부분이 있어요?"
"관광지 선택이나 특히 식사문제가 그랬지. (저쪽 테이블에서 대화 중인 삼촌을 턱으로 가리키며) 저이는 아직도 나를 잘 몰라. 내가 40년 넘게 참고 살아서 그렇지. 자기가 좋아 하는 식당만 찾아다니는 거야. 전남 영산포에서 '홍어정식'을 받아 들고 나는 폭발하고 말았다네. 가기 싫다고 했는데도 기어이 내 팔을 잡아 끌더니....식사는 고사하고 숨이 막혀서 살 수가 있어야지."
"그래서요?"
"나는 그냥 나와버렸지. 저만치 길거리에서 붕어빵을 팔고 있더라고. 길거리에 우두커니 서서 그걸 먹고 있는데 갑자기 서러움의 눈물이 쏟아지더라고. 그래도 저이는 30분 가량 식사를 다 하고 요지로 이를 쑤시면서 나오는데 부아가 치밀어 혼났다네.
그 길로 영산포 역으로 가서 기차 타고 상경했지. 열차 안에서 한 마디도 하지 않았고. 앞으로 둘이서 여행을 가는 일은 '절대로' '절대로' 없을 거네. 10일 계획 중에 이틀 같이 다녔는데 매끼 그런 식이었어. 아이고 내 팔자야."
나는 금슬 좋은 두 분의 다른 모습을 보았다.
평생 공무원이셨던 삼촌과 가정주부로 사셨던 숙모님,
자주는 아니었어도 일 년에 한두 번 여행사를 통해 여행도 떠나셨고 집 주변에서 두 분이 산책도 자주 하시는 스타일이라 이런 문제가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었다.
"젊어서부터 부부간에 다양한 경험과 훈련이 되어 있지 않으면 나이들수록 더 힘들어져.
늙으면 늙을수록 더 자기주관적으로 변하거든.
트레킹, 맛기행, 출사(사진)여행도 그렇고 숱한 시간 동안 부대끼며 합일점을 찾아가는 것이 결혼생활인데 우리는 단체 속에서만 활동했지, 단 둘만의 경험이 별로 없다보니 정말로 힘들더라고. 그런 점에서 조카는 지금 매우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해."
"지금처럼 더 부대끼며 다양한 경험을 많이 해보라"고 조언해 주셨다.
고마운 말씀이었다.
결혼생활이 어려울 만큼 두 분에게 큰 문제가 있다는 얘기는 아니다.
오랫동안 함께 사셨기에 별 문제가 없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작은 변수들은 언제나 존재할 수 있고, 존재한다는 얘기를 하는 것 뿐이다.
나이가 많든 적든, 인생살이가 결코 쉽지 않다는 걸 절감했다.
경제적인 여유도 있고 행복하게 노후생활을 하시는 분들조차 이런 면면이 있다는 게 놀라웠다.
역시 인생은 '역지사지'여야 한다.
그리고 나이가 들수록 '잔잔한 배려'가 제일이 아닌가 싶다.
집안 어르신들의 건강과 평안을 기원한다.
일생 동안 열정적인 삶을 살아오신 모든 분들께 존경과 감사를 전한다.
브라보.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