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제사를 지내고 오늘은 묘제를 다녀왔다.
큰비가 내릴까봐 걱정했는데 다행히 날이 개이고 햇빛이 났다.
저번에 산소 移葬할 때에도 날씨가 꾸물꾸물하더니 다행히 祭가 끝나고 나서야 비가 내렸다.
자손들 생각하는 조상님들 음덕 때문인가.
시집왔을 때 시어머니는 명절에 항상 심부름을
보냈다
친척 어르신 집에 떡과 과일을 보냈다.
대명절에는 집집마다 떡과 과일, 먹을 것이 넘쳐날텐데 굳이 보내는 이유를 이해 못했다.
옛날에 가난하게만 살아와서 '명절에라도 나눠
먹어야 된다.'는 생각이 뿌리 박혔기 때문이었을 거라고 대충 짐작했다.
오래 전에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제사를 시작하면서부터 나도 모르게 괸당집에 보낼 떡을 싸고 있었다.
무의식중에 '제사 음식은 나눠 먹어야 된다.' 는
생각이 세뇌되어 버린 것처럼 자연스레 생겨난
버릇이 됐다.
평소에 종이 가방을 모아두는 습관도 생겼다.
제사가 끝나고 동서들과 조카들이 설겆이를 하고
치우는 새에 병풍 치운 제사방에 종이 가방을 들고 간다
호일과 랩을 잘라 일렬로 늘어놓고 떡, 과일, 소고기적, 생선 등을 랩으로 싸고 종이 가방에 넣는다.
셋어머니, 말젯어머니, 작은어머니집에는 떡과
생선을 넣고
조카가 많은 집에는 과일과 쥬스병을 더 넣고
제사에 오지 못하고 돈만 보낸 고모님 집에도
신경 써서 이것저것 보낸다.
열서너개를 포장하여 끝내도 뭔가 아쉬워
플라스틱 통을 꺼내 삼색나물을 담는다.
"비빔밥이라도 해 먹으라."고
그런데 올해부터는 "늬들이 알아서 가져가라."고
했다.
종이 가방과 호일을 내주었더니 부지런히 싸
넣는다.
한우 소고기적은 눈 깜짝할 새 사라졌다.
사과 배도 없어졌다.
고향의 해녀 어머니들이 가끔 생미역을 푸짐하게 보내오면 여기저기 나누어 주었는데 이번 제사엔 없다.
올해는 미역 풍년이라던데....
보름 뒤에 큰 제사가 있는데 그땐 보내줄런지도.
일본 모카 커피를 마시고는 "향도 좋다아." 하길래
서방 모르게 몇 개씩 나눠줬다.
올해는 제삿날과 묘제가 연일로 겹쳐 음식 준비에
지쳤는가보다.
예전에는 많은 제사와 초하루,보름 삭망도
끄떡없이 치루었는데 나도 어느새 나이가 들었는지 몸살이 날 때도 있다.
그래서 옛날에는 일찍 제사를 자식에게 넘겼는가보다.
그때가 언제인지 알 수 없지만 아직은 버티어
볼 생각이다.
첫댓글 미풍양속은 전통으로 쭈우욱 대를 이어가야하는데.............아마도 우리대에서 끝장이 날 것 같다.
옛날과 달리
요즘은 먹을 것도 넘쳐나는 시대인데
가져가면 고맙지요.
한 조상님 자손들이니.....
미풍양속은 아니지만.
아우라님 글을 간간 접하면
대가족 종갓집 맏며느리로 살아가는 것 같고
그에 넘어 제주도 맏며느리로 살아가면서도 전통과 현대화의 양면을 살아가는거 같은데
기운도 좋은 것 같네요.
힘들면 만사 귀찮은 법이거든요.
그보다 저는 아우라님을 통해 제주의 토속적인 것들을 귀담아 듣고 있다네요.
道伴 님.
무남독녀로 어머니가 해준 밥만 먹고
직장 다니다 서쪽 끝에서
동쪽 끝으로 시집 갔더니 대가족 종손집이었어요.
아버님네 10형제
어머님 쪽 13형제.
시할머님, 증조할머님까지.
철부지가 사람됐지요. ㅎ
종손집 종부다운 후덕한 모습입니다
나도 지엄하신 시할머니 모시고
시집살이 일년했지요
힘들어도 종손답게 전통도 지키며 사시니 후손들이 본받을점이 많겠습니다
좁은 섬에서도 지역에 따라
풍습이 다르더군요.
우왕좌왕 실수를 해도
너그럽게 받아주시고.
사람은 적응하며 살아가는가 봅니다.
에고 말만 들어도 우리 아우라님
허리가 휘지 않을까 염려가 되어요
이제는 달라질 때도 되었건만
문화가 바뀌는데는 긴 시간이 걸리죠 ^^
제삿상에 올리는 음식도 많이
바뀌어졌지요.
예전에는 청묵을 써 꼬쟁이에 꿰어
화롯불에서 은근하게 구워냈지요.
요즘 누가 그러나요.
메밀묵도 안 쓰는데.
전북, 소라적 생선적, 새우튀김 등
요즘 입맛에 맞게 바꿔집니다
가공식품이나 햄 같은 건 안씁니다.
우리집은 종손집이지만 불교식?(유교?)식으로 지내다가 다 없애버리고
일년에 딱 두번으로 끝냅니다.추석과 설에
잘 하셨습니다.
아들 대에 가면 우리도 그렇게 될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