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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거울 스크랩 대동아의 신화 ①
seraphina 추천 0 조회 22 09.05.31 20:25 댓글 6
게시글 본문내용

폭력으로도 지울 수없는 한자의 문화유전자

 

작은 탱자하나가 멀고 먼 시간을 눈뜨게 하듯이 이 작은 한자하나가 천만리 멀고 먼 공간을 향한 바람이 된다 일본의 군국주의자들이 아무리 진군나팔을 불고

총검을 높이 세워도 마음의 문틈으로 새어들어오는 집단기억을 틀어막을 수 없다

 

'대동아공영권(大東亞共榮圈)' 이라는 한자가 그랬다 그것은 여남은살 어린이에게는 너무나 어려운 한자다 그러나 태평양 전쟁은 '대동아전쟁'이라고 불렸던 시절

'전쟁'을 수식하는 말로 늘 이 여섯글자가 따라다녔다 그러기에 어는 한자보다도 낯이 익다 더구나 처음 '입춘대길(立春大吉)'의 한자를 쓰면서 제일 먼저 배운것이

한가운데가 대칭형으로 갈라지는 한자가 길하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대동아공영권' 이야말로 맨끝의 '권(圈)'자만 빼면 모든 글자가 좌우대칭으로 갈라졌다

그리고 나라 '국(國)'자만 배우다가 그보다 더 크고 더 넓은 뜻의 '권'자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하지만 어리아이 눈으로 봐도 이상한 것이 있었다 일본이란 나라이름에도 동아시아라고 할 때도 큰대(大)자가 붙어있는데 막상 제일 큰 아세아(亞細亞)에는

어째서 '세(細)'자가 들어있는가 일본말로 무엇을 만드는것은 '사이쿠'라고 하는데 그것을 한자로 쓰면 '세공(細工)'이 된다 그러니 '세'자는 수수깡으로

안경을 만들때에나 쓰는 별볼일 없는 글자가 아닌가

 

사실 그랬다 '亞細亞'라는 한자어는 중국에 선교하러온 마테오리치(1552~1610)에 의해 처음 만들어진 한자어다 그런데 그가 'ASIA'를 음역해 한자로 옮길때

만약 대명제국이 자기네도 그 아세아 속에 있다고 생각했다면 거기에 '세'자를 붙이려했겠는가 마찬가지로 '탈아입구(脫亞入歐)'를 선언한 일본인들 역시

자신들은 항상 아시아 밖에 있는 특수한 나라로 인식해갔다 쇼토쿠다이시(聖德太子)가 수양제에게 국서를 보내면서 "해뜨는 곳에 천자가 해 지는 곳의

천자에 보낸다" 고 한 말을 보아도 알 수 있다

 

'대동아공영권'이란 말이 국가 기밀과 전쟁첩보를 다루던 이와구라 히데오(岩畔豪雄)라는 군인에 의해 만들어지고 태평양전쟁이 일어나기 직전인 1940년에

마스오카(松岡洋右)외무대신의 입을 통해 널리퍼진 말이라는 것을 알면 처음부터 아시아의 번영이 아니라 전쟁을 염두에두고 만들어진 구호임을 알수있다

 

그랬기 때문에 대동아공영권에서 가장 많이 사용한 한자는 영화'영(榮)'자가 아니라 '비(非)'자였다 건듯하면 '비상시(非常時)'라는 말을 내세워 남자들의 머리카락을

깎고 여성들의 긴 옷고름을 가위로 잘라 리본처럼 만들어놓았다  남자들은 군민복을 입어야하고 여성들은 '몸뻬'(순우리말로 '허드렛바지' '일바지'라한다)를

입어야한다 몸뻬는 옛날 일본의 동북지방 사람들이 일할 때 입었던 옷인데 정부(후생성)에서 디자인해 보급운동을 통해 식민지까지 강제로 착용케했던 것이다

어머니도 누이도 몸뻬를 입은 모습으로 바뀐다 그것이 대동아공영권의 이미지였다 가수 아와타니노리코가 전시위문 연주때 몸뻬가 아니라 무대의상차림으로

출연했다고해서 군당국의 미움을 샀다는 이야기하나로 그 억압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된다 비상시국에 맞지않는 행동을 하면 '비국민(非國民)'이라는 딱지가 붙어

비상미(非常米) 배급도 어렵게 된다 매일같이 비상령이고 비상경계령이다

 

폭격에 대비한다고 웬만한 문에는 모두 '비상구(非常口)'라고 표시돼있었다 '대동아'란 말과함께 한국인에게는 늘 이 '비'라는 한자가 따라다녔기에 우리는 일제에서

해방된 뒤 바로 얼마전까지만해도 '비상구' '비상문' 이란 글씨를 볼 수 있었다 영자로는 그냥 'EXIT'이고 한자의 본고장인 중국에서는 '태평문(太平門)'이라고

부르는데 말이다 같은 한자 같은 문인데 한쪽은 비상이고 한쪽은 태평이다

 

'대동아공영권'이라는 여섯자는 뜻하지않게 내 작은 영혼을 만주벌판으로 그리고 공초(空超)오상순 시인(1894~1963)처럼 아시아의 밤으로 향하게했다

"고량바다케와 히로이나!(수수밭은 정말 넓구나)" 언뜻들은 이 한 대목이 나의 먼 조상이 달렸던 만주벌판의 바람소리를 듣게한 것이다 금지의 문자 '비'에 마음'심'을

붙이면 정말 눈을 감고 울고있는 슬플비(悲)자가 되고 그 반대편에는 환하게 웃고있는 얼굴을 닮은 웃음소(笑)자가 보인다 한자는 어떤 폭력으로도

지울 수 없는 문화유전자 였다

 

 

2009년 5월 26일   중앙일보   이어령의 한국인이야기   에서 옮겨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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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09.05.31 20:31

    첫댓글 별꽃아우 「생각의 거울」폴더로 가야하는데 시력도 손가락도 좀.....ㅋ 그래서 이리루 왔네요 아우가 옮겨줘요 번거롭게해서 미안!!!!

  • 09.06.01 09:28

    번거롭지 않아요~ ^^ 옮겼습니다..

  • 09.05.31 20:58

    어디에 두든 읽기만 하면 되죠?^^ 블에서 한편..여기서도 한편..내일은 2편을 읽을까 합니다..ㅎㅎ

  • 작성자 09.06.01 04:34

    감사합니다 나비님 애독해주셔서.......

  • 09.06.01 12:29

    아..몸빼바지의 역사가 그리 되는거였군요..

  • 작성자 09.06.01 12:57

    이어령님의 글을 읽으면서 우리가 모르는 역사를 알게되지요 몸뻬라는 것이 그러네요 어머니의 어머니의 어머니들께서 번거로운 한복을 벗고..... 그런줄만 알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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