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오랜만에 역사이야기를 쓰도록 하겠습니다.
이번에는 제목에서 볼 수 있듯이 발해, 통일신라(남북국시대) 후삼국 시대에 대하여 써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역사 이야기 속으로 가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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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는 신라가 통일해서 통일신라 입니다. 이때 많은 사람들이 통일신라 하면 김춘추와 김유신을 생각 합니다. 김춘추가 신라를 통일 했다고 생각 하시는데, 틀린 생각입니다. 김춘추는 백제를 멸망시키고 바로 죽게 됩니다. 그리고 김춘추의 아들 문무왕이 왕이 되고 고구려를 멸망시켜 통일신라를 세우게 됩니다.
통일신라에서 문무왕이 죽고 아들 신문왕이 왕이 되자 많은 귀족들이 반란을 일으킵니다.
통일전쟁을 승리로 이끈 김춘추의 후손들만이 계속 왕위를 이어가자 다른 귀족들이 불만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여기에는 신문왕의 장인인 김흠돌도 있었습니다. 신문왕은 크게 분노하여 이런 귀족들을 모두 제거해 버립니다. 이렇게 반대 파를 없애버리고 나자 감히 왕에게 덤비는 귀족들은 없었습니다. 이제 신문왕은 신라의 여러제도를 새롭게 손을 보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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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가 세워지고 가장 시급했던 문제는 큰 땅을 어떻게 다스리는가 였습니다.
통일 전의 3 국에 각각 3주(지금의 행정구역 '도')씩 총 9주로 나누어서 통일신라를 균형있게 다스렸습니다. 한편 수도인 경주가 남쪽 구석에 치우쳐 있는 약점을 보완하기 위하여 다섯개의 작은 도시인 5소경(지금의 특별시, 광역시) 을 두고 지방세력의 성장을 감시하였습니다. 군대의 조직은 도성을 지키며 왕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중앙군인 9서당(지금의 군대)을 두었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북쪽 국경 지방 한주에는 2개를 둔 10정의 지방군을 두었습니다.
신문왕은 왕권 강화를 위해 귀족에게 주는 녹읍을 없앰으로 나라의 수입을 올리고 귀족의 세력을 약화 시켰습니다. 녹읍이란 신라 정부가 관직에 오른 귀족들에게 월급 대신 준 땅으로 자신의 백성들을 그 땅에서 마음대로 부려먹었습니다. 또, 녹읍은 자신의 자식에게 물려줄 수 있었습니다. 왕권을 키워야겠다고 생각한 신문왕은 녹읍을 없애고, 관료전이란 땅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관료전이란, 녹읍과 달리 땅에서 세금만 걷어갈 수 있고 죽으면 나라에 돌려 주어야 했습니다. 이렇게 되자 귀족들의 힘이 약해지고 왕권이 강해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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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렇게 신라가 왕권을 강화하고 있을 때, 신라의 국경지역 위쪽에서는 새로운 나라가 탄생하고 있었습니다. 그 나라의 이름은 '발해' 입니다. 이 발해는 고구려의 민족, 거란, 말갈 등의 여러 민족이 섞여 만들어진 나라입니다. 발해는 고구려의 전성기 시대 영토의 2배 정도의 영토를 가지고 있었고, 신라, 당, 거란, 말갈과 교류를 했었습니다.
이때 발해가 당나라와 많이 교류를 했었는데, 그 이유는 적은 것을 주고 큰 것을 당나라에게서 받아오기 위해서 였습니다. 얼마나 많이 교류를 했는지, 당나라에서 사신이 오지 마라고 할 정도 였습니다.
또, 발해는 일본에게 지금의 밍크코트를 수출했었는데, 일본인들이 너무 많이 사서 일본인들이 여름에 밍크코트를 두세겹 입으며 부자인 것을 자랑하니까 경제가 낮아졌습니다. 그래서 일본은 귀족들만 밍크크코트를 살 수 있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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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가 교류를 활발히 하며 잘 살고 있을 때, 통일신라는 점점 무너져 갔습니다.
통일신라 말에는 지배층의 사치와 귀족들의 왕위 다툼이 심해져서 150년 동안 무려
20여명의 왕들이 바뀌었습니다. 귀족들은 왕권이 약해진 틈을 타서 토지를 늘려갔고,
흉년, 전염병이 돌고 도적 떼들이 들끓었습니다. 결국 통일신라는 무너져가기 시작했습니다. 그 틈을 타 지방에서는 군사를 모아 독자적인 세력을 키우는 사람들이 생겼습니다. 이 사람들을 '호족'이라고 합니다. 호족은 대부분 신라의 골품제도 때문에 아래서는 출세할 수 없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호족들이 반란을 이르키고, 힘이 약해진 신라를 압박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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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통일신라가 분열 되고 후삼국 시대가 시작됩니다.
후백제는 신라의 남서 해안을 지키는 군인이었던 견훤에 의해 건국되었고, 완산주에 도읍을 정하고 중국에 사신을 보내어 국교를 맺으며 세력을 키워 나갔습니다.
후고구려는 신라의 왕자였으나 권력다툼에 의해 밀려났던 궁예에 의해서 건국되었고, 왕건을 장수로 내세워 후백제를 공격하였습니다. 하지만 궁예가 자신을 미륵(세상이 어지러울 때 사람들을 구원하러 온다고 알려진 부처)이라고 하며 가혹한 정치를 마고 많은 신하를 죽여서 민심이 돌아갔습니다.
이렇게 신라가 찢어져서 다시 삼국이 만들어진 시대를 후삼국 시대라고 합니다.
왕건은 궁예를 도와 많은 전쟁에서 활약하였고, 호족과 백성들의 지지를 얻어서 민심을 잃은 궁예를 몰아내고 왕이 되었습니다. 견훤은 경주로 쳐 들어가서 경애왕을 죽이고 경순왕을 새 왕으로 세웠습니다.
이때 왕건이 신라를 도와주러 경주로 내려왔지만 공산에서 매복해 있던 백제군에게 습격을 당해서 크게 패하였고, 다시 군사를 정비하여 그 지방의 호족들의 힘을 빌려서 견훤의 후백제군을 크게 물리쳤습니다. 나라의 힘이 약해진 신라는 후고구려에 나라를 바치고 신라는 영영 사라졌습니다.
그 사이 후백제는 왕위 계승의 문제로 내분이 일어났습니다. 견훤의 큰 아들 신검은 견훤을 금산사에 가두고 왕위를 빼앗자, 견훤은 고려로 탈출하여 왕건과 함께 후백제를 치러 갑니다. 일리천(구미)에서 큰 승리를 거둔 왕건은 936년에 삼국을 통일하여 고려를 세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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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가 세워지고, 발해는 곧 멸망하게 됩니다.
발해는 말갈족에게 멸망하게 되는데, 발해도 왕위의 문제로 내분이 일어나서
금방 멸망하게 됩니다.
이렇게 후삼국 시대와 발해는 막을 내립니다.
[출처] 발해와 통일신라 그리고 후삼국 시대|작성자 짱정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