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실이야기-3부
초급공부가 끝난 후 바로이어 중급공부가 시작되었다. 9월부터 12월까지 3개월간 동양의학과 침과 뜸에 대해서 또한 진단하는 방법과 치료하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배우게 되었다.
진맥 하는 법과 진단하는 법을 배우는데 이것도 또한 환상이었다.
진맥을 할 수 있다니....
진단을 할 수 있다니...
치료를 할 수 있다니...
무심코 보았던 일들이 모두 무언가 몸에 병이 있다고 말을 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 얼굴만 보아도 웬만한 것은 그래도 알 수가 있게 되었다. 지하철 탔을 때 마주 앉아 있는 사람 얼굴 보면서 조용히 마음속으로 진단하게 된다. 저 사람은 얼굴이 검고 광택이 없으니 어쩌구 저쩌구 생각하면서 속으로 진단을 내리고 치료해야 하는 상황을 연상해 보는 것이다.
초급 때는 공부시간에 모델이 되어 몸을 보이며 혈자리에 관해 공부하는 것이 많이 힘들었지만 중급이 되면서는 서로 자연스러워지면서 그런 것이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공부시간에 전체적으로 한명의 모델이 필요할 때는 주로 총각들이 모델이 되어주었다.
어떤 때는 엉덩이까지 다 내려 꼬리뼈 있는 곳에 침을 놓는 연습까지 해야 했다. 화가들이 모델에 대해 엄중하듯이 우리들도 그런 것을 배워 나가고 있었다.
치료에 임해서는 절대 남자 여자 구별이 없고 환자라는 것, 엄중히 치료에 임해야 한다는 것을 정말 엄하게 배워 나갔다. 우리는 몸을 대여해 주면서 서로의 실력을 쌓아 나갔다.
공부가 끝나는 오후 1시면 우리는 가격이 저렴한 단골 식당으로 몰려 가 점심을 먹는다. 점심때는 꼭 그날 교수를 초대해서 공부 시간에 못다한 이야기를 나누고 질문을 해가며 즐거운 식사를 했다. 거기에서도 우리는 많은 것을 배우는 계기가 되었다.
어느 날은 중국 중의대 왕따이 교수를 초청해 세미나를 했다. 큰 강당에 침뜸 공부하는 많은 분들이 참석했다.
밤에 세미나를 할 때 중국에서 공부를 하고 온 교수가 통역을 맡았는데 나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 통역하는 내용을 노트에 정신없이 받아 적었다.
족삼리 혈은 우리가 늘 쓰는 자리인데 왕따이 교수도 그 혈에 대해 많은 언급을 했다. 또한 광명혈에 대해 이야기 하는데 그것 또한 새로운 발견이었다. 그분의 오래된 경험이라 굉장히 신뢰가 가고 뜸에 대해 배우고 가노라고 겸허한 모습까지 보여주었다.
세미나는 밤10시에 끝났지만 나는 집으로 가지 않고 내 광고사무실로 가 노트해온 것을 컴퓨터에 입력하기 시작하였다. 세미나때 노트에 부지런히 적은 것을 또 부지런히 입력해 대충 교정을 보고 프린트를 쫙 뽑아 원본을 만들었다.
새벽 4시에 그 작업은 끝났다. 몇시간 후면 공부하러 가야하는데 피곤하기는 하지만 반 친구들에게 이것을 복사해서 나누어 줄 생각을 하니 기뻐서 힘이 하나도 안 들었다. 기쁨이 솟고 기운도 솟아났다.
그날 오전 10시에 수업에 가니 어제 통역한 교수가 우리 수업담당이라 혹시 통역 받아 쓴 부분에 잘못이 있나 봐 달라고 원본을 보여 드렸더니 교수님 하시는 말씀, “이렇게 발 빠르게 해 오셨습니까?”한다.
나는 빠르다는 말은 생전 처음 듣는 말이다.
나는 느림보이기 때문에 그 말이 내가 꼭 경망스럽다는 말로도 느껴질 정도였다. 우리반 학생들은 밤에 나다니기 어려운 입장들이라 밤에 하는 세미나에는 참석할 엄두도 못 낸다는 것을 알기에 혼자 듣고 혼자 배우기는 너무 아까와 복사물을 만든 것이다.
급하게 엉성하게 받아 적은 것이라 시간이 지나면 기억이 날것 같지 않아 식기 전에 만든 것인데 그 교수 발 빠르다는 말에 김이 빠지는 듯 했지만 어쨌든 그 원본을 30장 복사해 우리반 학생들에게 나누어 줄 수 있어서 기뻤다.
침 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공유하지 않는 것에 있다. 자기가 어렵게 터득한 치료법을 남에게 잘 나누어 주지 않는다.
특히 좋은 자료를 공유하려고 스스로 애쓰는 일은 이 계통에서는 별로 없다는 것을 나중에 그 교수에게 임상을 배우면서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중급은 조금 심도 있는 공부를 했고 수료시험을 볼 때 또 식구들 고생 시켜 가며 겨우 통과한 후 2001년 12월에 수료식을 가졌다. 수료식 날 주간반 야간반 동기생 거의 다 신나게 즐기며 그 동안에 고생한 것에 대해 보람을 만끽했다.
중급이 끝났을 때 이제 조금 뭔가 조금 보이는 듯 싶었지만 그래도 뿌옇게 보일뿐 자신감은 생기지 않았다.
여기서 공부가 끝난다면 죽도 밥도 아닌 것이 애매할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급반 등록을 놓고 그래도 약간의 고민이 생겼다.
공부를 계속 해야 할까 그냥 여기서 끝낼까... 어차피 고급반을 졸업한다 하여도 광고일을 하다보면 특별히 쓸일은 없을 것 같은데 8개월 과정을 더 해야 하나 어떻게 할까...
망설임이 며칠간 이어졌다.
12월 어느날 나는 갑자기 엉뚱한 생각이 불현듯 떠올랐었다.
‘제복입고 일하는 것은 참 멋있는 것 같아’
‘금융의 제복도 괜찮고 군인의 제복도 괜찮고...’
‘전문직인 의사들의 하얀 가운도 괜찮은데 나는 하얀가운 입을 일이 없겠구나’대학을 아예 의술 쪽으로 잡았으면 지금쯤 하얀 가운 입고 일할 텐데 지금 다시 대학 갈 수도 없고... 포기하자 가운 입고 일하는 것 나 대신 누군가 그 일을 하고 있겠지.
나는 포기가 빠른 편이다. 웬만해서는 돌아보지 않는다. 중 고등 때도 시험을 보고 나면 시험문제 답이 궁금하다고 다시 책 열어 보는 일은 없다. 시험보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나서는 그게 끝이다.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 하얀 가운에 대한 일도 그 이후로 깨끗이 포기한 후 잊고 있었다.
고급반 공부에 대한 결론은‘시작했으니 일단 끝까지 가보자'로 결정이 났다.
고급반은 등록금도 조금 고급이었다. 형편이 어려운 젊은이는 등록을 미루거나 포기하기도 했다.
2002년 1월 드디어 고급반 공부가 시작되었다.
첫 수업시간이 되었다.
두근두근...
중급과는 다르게 가슴이 두근거린다.
이제는 졸업반이다. 후배들이 우리가 배우던 교실에서 똑같이 공부하고 있는데 초급, 중급이었을 때 고급반 선배들이 굉장히 높이 보였었다. 그렇게 높이 보였던 고급반 강의실에 앉게 되니 저절로 어깨가 으쓱하였다. 등록하길 잘했다. 모든 것은 마무리를 잘 해야지.
첫 시간이라 교무담당이 올라와 먼저 안내를 하였다.
“일주일에 하루는 이론이고 하루는 임상실습입니다. 하얀 가운을 준비해 주십시요”
“응? 하얀 가운을?”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다. 하얀 가운이라니? 하얀 가운 입고 진료하나? 웃으운 이야기지만 나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한번도 한약방에 가본 일이 없는 나는 한의사들이 신사복 입고 진료하는 것으로만 알았던 것이다. 초등학교때 친구 아버지가 한의사여서 가보았지만 하얀 가운 기억은 전혀 없었다.
나는 침과뜸 한약과는 전혀 상관없이 살고 특히 침과 뜸은 예전 서양의학이 들어오기 전의 고전적인 치료수단으로 생각하는 정도였기 때문에 공부 시작하기 전에는 접할 기회가 전혀 없었다.
그러나 아무에게도 놀라는 척을 할 수가 없었다.‘내가 너무 무식해’라는 생각만 들었다.
그러면서 그때 한 달 전에 얼핏 떠올랐던 깨끗이 포기한 하얀 가운에 대한 생각이 떠오르면서 미리 예측하는 무언가를 누구에게나 이렇게 조금씩 부여받는가보다 라는 느낌이 들었다.
새로운 출발이었다. 하얀 가운이라니! 그것을 입을 수만 있다면 무엇인들 못할까?
첫 수업이 끝나던 날 우리는 떼로 몰려가서 제기동에 있는 의료기상에서 몸에 맞는 하얀 가운을 구입했다. 세상에서 이런 기쁨은 그렇게 많지 않다.
집에 와서 나는 처음으로 나를 침과 뜸으로 안내해 준 내 가족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진심어린 나의 인사에 쑥쓰러워 하며 열심히 하라는 말을 해 주었다. 임상실습은 각자 자신이 요일을 선택해 봉사실에서 하는데 나는 월요일을 택했다. 월요일 임상교수는 중국에서 몇년 동안 공부를 하고 온 나에게 생전 처음으로 행동이 재빠르다는 말을 해준 그 교수다.
나는 드디어 2002년 1월 말경 어느 월요일 아침!!!
임상실습을 위해 잘 손질한 하얀 가운을 가방에 넣고 부푼 가슴 가득 안은 채 봉사실로 향했다.
봉사실이야기-3부 끝
2004.1.21
후궁
첫댓글 넘 재미있네요....저번에 허리 아파서 침 몇번 맞았었는데 허리가 아프다고 해서 허리에다가만 침을 놓는 것이 아니라 무릎 뒤부분에도 놓군요..생각지도 않던 부분이라 너무 놀라서 식은 땀을 뻘뻘 흘렸었지요. 다행이라면 바지를 벗지않고 청바지 위에 맞았다는 것. 그 담 날은 부항을 떠 준다고해서 옛날 집에서
부항떠주는 아부머니가 동동구리무 빈병에 성냥불로 휴지태워 진공상태로 검은 피 빨아내던것 생각하고 갔었는데...비슷한 기구로 성냥으로 따끔하게 만드시더니 한마디 하시더군요."자 지금부터 쫙 빨아들일겁니다" 전 어지간하면 예의상 "네.그렇군요"라고 대답할텐데 정말 아무런 느낌이 없어서 하나도 빨아들이는 것
같지않다 대답했더니, 어색한 침묵 약 3초후에 "일부러 쎄게 빨아드리게 하진않았구요. 혈에 뜨거운 김을 넣어주는겁니다" 하시는데 너무 민망해서리, 몸을 살짝 아주 살짝 꿈틀거렸는데 부항기가 도미노처럼 무너지더군요, 정말 기가 막혀서, 심양에서 침구과 의사하시다가 청도에서 안마하신다는 그분 정말 미스테리....
봉사실에는 할머니가 많이 오셔서 기본으로 허리를 치료하게 됩니다. 무릎뒤에 놓는 침이 허리 치료하는 중요혈입니다. 그리고 부항 붙이면 그부분이 보랏빛이 되는데 부항은 권하고 싶지 않습니다. 나쁜피는 부항이나 그 어느방법으로도 빠지지 않습니다. 나쁜피를 빼낼 수 있다면 노벨상감입니다.
글을 쭉 읽어 내려가다 보면 그 부분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글귀가 있다 합니다...후궁님의 열성적인 모습을 강의 내용을 복사해서 나눠졌다는 부분에서 느낄수 있었습니다..무슨일에 흥미를 가지지 않고 빠지지 않는다면 그 일을 해나갈수 없습니다...
지금 공부하시는 침과뜸에 남다른 열정을 보여주시고 또 그것을 글로 남겨주시는 후궁님께 감사드립니다..이 글을 보는 많은 회원분들이 공감하고 또 이글에서 전해지는 교훈을 얻을 수 있을겁니다...하는 일은 틀려도 모든이가 행동하는 그 기초는 모두가 똑같습니다...
칭다오신님 감사합니다. 날씨가 제법 겨울답습니다. 감기조심하시고 새해좋은일 있으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