엿재이
이상준(수필가)
각설이 복장을 한 엿장수들이 가위소리를 내며 춤판을 벌이고 있다.
며칠 전부터 건물이 올라가는가 싶더니 어느새 완공이 되어 누군가가 그곳에서 식당을 개업
하는가 보다. 개업 이벤트 행사에 동원된 각설이들의 익살스런 몸놀림이 길손들의 웃음을 자
아내게 한다.
요즘 아이들에게 엿장수를 설명하라고 하면 엿가위 소리에 맞추어 현란한 춤과 익살스런 풍
자로 사람들을 웃기고 울리는 저 광대 정도로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릴 적 우리에게
다가왔던 엿장수, 경상도 표준말로 ‘엿재이’는 그게 아니었다.
구멍가게조차 없었던 우리 마을에서는 엿장수가 아이들에게 가장 반가운 손님이었다. 찰
각! 찰각! 엿재이 가위 소리가 멀리서부터 들리면 아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그동안 모아두
었던 탄피나 빈병, 밑창이 낡아 떨어진 백 고무신을 들고 소리가 나는 쪽을 향해 뛰곤 했었
다. 혹시나 며칠동안 목을 빼서 기다리던 엿장수를 놓칠세라 아예 맨발로 뛰는 아이도 있었
다. 어떤 아이는 바지가 흘러내리는 줄도 몰랐고, 더러는 가랑이가 찢어지는 줄도 모르고
그 가위소리에 홀린 사람마냥 뛰었다. 마루 밑과 장독대까지 구석구석을 뒤지다가 찌그러진
깡통이라도 없는 날이면 할머니의 빠진 머리카락을 뭉쳐 뛰어나갔다. 할머니가 빗질을 할 때
마다 머리가 더 빠지기를 바라는 나쁜 손자가 된 것도 순전히 그 엿 때문이었다. 그것도 없
는 아이들은 엿판이 얹힌 손수레를 졸졸 따라다니며 코를 실룩거리다보면 마음씨 좋은 엿장
수가 가끔가다 맛보기로 엿 한 조각을 떼어 주기도 했다. 그 달콤한 맛의 유혹에 견딜 수가
없던 놈은 댓돌 위에 할아버지 신발을 갖고 나오거나 부엌에 있는 새 냄비를 들고 오기도 했
다. 어떤 놈은 텃밭의 마늘을 뽑아주고 엿을 바꿔 먹다가 혼이 나기도 했다. 그런 날 저녁이
면 동네어귀에는 으레 매를 맞고 쫓겨 나온 아이들이 하나 둘 모여들기 마련이었다. 저녁 짓
는 연기가 안개처럼 피어오르던 동네어귀에서 쫓겨나온 애들은 저마다 엉덩이를 까놓고 누
구 멍이 더 시퍼렇다며 키득대곤 했었다.
찰칵! 찰카악! 저 가위소리가 들리는 날, 입안에 고이던 엿물의 단맛을 주체할 수 없었던
그 시절이 아득하다. 아이들의 인기로 따진다면, 그때의 엿장수는 컴퓨터였고, 스타크래프트
였고, 탤런트였고, 개그맨이었고, 인기 가수였었다.
이제는 우리나라 어디를 가더라도 그 옛날의 그 엿장수는 없다. 가위소리도 없고, 그 소리
에 넋을 놓고 뛰어가던 아이들도 없다. 이어폰만 귀에 꽂으면 엿장수의 가위소리보다 더 빠
르고 매력적인 음악을 들을 수 있고, 엿가락보다 더 달콤한 군것질거리가 지천에 널려 있
다.
보리밥 한 그릇도 제대로 먹기 어려웠던 시절, 그 꿀맛 같은 추억과 고향마을의 모습이 잠
잠하고 다소곳이 젖어 있는 가위소리가 온 저녁거리를 뒤덮고 있다. 향수에 젖게 하는 소리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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엿재이
이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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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51
06.02.23 10:52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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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엿재이" "엿판" 그옛날 추억의 향수네요.
그 가위소리에 우리는 다 달여들었지요. 유년의 추억이 생각납니다.
읽는동안 어린시절이 생각나네요 - 바꿔먹을꺼리없어 울기도했죠
선배님 아버지 백고무신도 가져가면 엿장사가 받아줬는데요. 건강하시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