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인격을 극복하다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7:21-8:2)
① ‘호밀밭의 파수꾼’이라고 번역 출판된 책이 있어요! 오래된 책인데 내용을 간단하게 소개하자면 ‘호밀밭에서 아이들이 즐겁게 뛰어놀고 있는데 주인공이 그 주변을 살펴보니 호밀밭 저 끝에 낭떠러지가 있는 거예요! 그래서 그 끝자락에 가서 양팔을 벌리고 아이들이 오지 못하도록 막고 섰다’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이것뿐이면 싱겁잖아요! 그래서 내용의 의미를 알아야 하는데 주인공이 하는 행동은 순수한 마음의 어린아이들이 호밀밭 저 끝에 있는 어른들의 세계, 곧 거짓과 폭력이 난무하는 세상에 빠지지 않도록 막고 있다는 거예요! 하지만 보세요! 어린아이가 자라면서 저 험한 세상으로 나아가지 않을 수 있나요! 없죠? 없습니다! 사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발달 장애를 가진 사람이고 염세주의자예요! 그런데 자기 딴에는 자기가 사랑하는 동생과 그 또래의 아이들을 지켜야 한다는 사명을 갖고 있어요!
② 왜 이런 이야기를 설교 서두에서 하느냐 하면, 여러분들이 살아가야 할 세상은 그렇게 단순하고 만만한 세상이 아니기 때문이고 또 인생이라는 것이 참 아이러니하기 때문이예요! 좀 더 쉽게 이야기하자면 콩 심은 데 콩이 나는 것은 당연한데 팥이 났다고 이야기한단 말이예요! 어디서? 세상에서! 1 더하기 1은 2여야 하는데 그 답이 1이 되기도 하고 3이 되기도 한단 말이예요! 그래서 젊은이들이 기성세대가 일구어 놓은 세상에 나오면 처음에는 많이 당황하게 돼요! 저도 그런 경험이 있어요!
③ 기왕에 말이 나왔으니까 한 가지 더 이야기하자면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판된 책이 있는데 이 책은 더 오래된 책이예요! 내용은 인간이 개인적으로는 도덕적인데 사회의 일원이 되면서 점점 비도덕적이 되어간다는 겁니다. ‘집단적 이기주의’라는 용어도 있잖아요! 그래서 그 속에서 고민하기를 내가 개인적으로 생각할 때는 그게 아닌데 그 사회의 이익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따라야 할 때가 있단 말이예요! 또 개인적으로는 잘못했다고 양심의 가책을 받는데 사회적으로 보니 다른 사람도 그렇게 잘못을 저지른단 말이예요! 그래서 그냥 합리화하고 넘어가요!
④ 자, 그쯤하고 본문 말씀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롬7:21-23)
⑤ 어느 인디언 노인이 인간 내면의 싸움을 이렇게 비유했어요! "내 안에 개 두 마리가 있소! 한 마리는 착한 놈이고 또다른 한 마리는 고약하고 못된 놈이오! 못된 놈은 항상 착한 놈에게 싸움을 걸지요." 어떤 개가 이기느냐고 노인께 묻자? "내가 먹이를 더 많이 준 놈이요." 인간의 마음 속에 선과 악이 함께 공존하고 있다는 거죠! 그래서 두 마음이 늘 싸워요! 그런데 결판은 어떻게 나느냐? 내가 선택한 쪽이 이겨요! 두 마음 사이의 투쟁은 결국 내가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떻게 살아 왔느냐에 달려있어요!
⑥ 우리가 잘 아는 작품 가운데 ‘지킬 박사와 하이드’라는 것이 있죠! 지킬박사는 존경 받는 과학자이고 하이드는 흉악한 범죄자인데 결론은 두 사람이 아니고 한 사람이라는 거예요! 두 인격이 한 사람 속에 있다는 이야기잖아요! 낮에는 지킬 박사, 밤에는 하이드! 어떤 때는 지킬 박사, 또 다른 때는 하이드! 사실상 모든 사람들이 이런 양면성이 있다는 것을 지적해서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 일으킨 작품입니다.
⑦ 본문 말씀을 계속해서 보면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7:24) 사도 바울이 이제 크리스찬이 됐어요! 그러면 착한 생각, 좋은 감정만 가져야 하는데, 그리고 선한 일만 하고 살아야하는데 실제는 그렇지 못하단 말이예요! 그래서 하는 말이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않고 원치 않는 바 악만 행하는도다. 그러니 나는 곤고한 사람이 아닌가? 누가 나를 좀 이 사망의 몸에서 건져주었으면!”
⑧ 어떤 사람에게 교회에 나가자고 하니까 하는 말이 “죄를 짓지 않을 자신이 없어서 교회에 못나간다”는 거예요! 쉬운 예로 “술, 담배를 못 끊어서 교회에 나가지 못한다”는 거예요! 어떻게 생각하면 참 양심적인 사람이예요! 하지만 정확히 말하면 아직도 자기를 내려놓지 않은 사람입니다. 자기의 의로움을 이야기하는 사람이예요! 그냥 ‘나는 죄인입니다! 내 죄를 용서해주시고 나의 잘못된 행실을 고쳐주옵소서!’하고 교회부터 나오는 것이 좋은 거예요!
⑨ 그런데 보세요! 다음 구절에서 사도 바울은 놀라운 고백을 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롬7:25) 자신의 이중 인격을 시인하는 거예요! 앞서 말씀드렸듯이 모든 사람은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이중 인격을 가졌어요! 이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환자가 자기의 병을 인정하지 않으면 영영 고칠 길이 없어요! 그러니 이중 인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이 사실을 인정해야 하는 거예요!
⑩ 그리고 보세요!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8:1-2) 오늘 설교의 제목이 ‘이중 인격을 극복하라’인데 그야말로 이중 인격을 극복하려면 이 말씀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예수님이 내 죄를 씻어주시려고 대신 죽으셨고 그래서 나는 예수님과 함께 죽었다고 고백하는 사람은 죄가 정해진 상태로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⑪ 왜냐하면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중력의 법칙은 우리로 땅에 붙어서 안전하게 살게 하잖아요! 한편으로 생각하면 중력의 법칙이 없으면 허공을 떠다니면서 더 재미있는 삶을 살 것 같지만 그것도 하루 이틀이지 그게 계속되면 좀 땅에 붙어서 안전하게 살았으면 할거예요! 우주인들이 우주 공간에서 생활하는 모습을 TV를 통해서 봤잖아요! 처음에는 흥미롭게 보일지 몰라도 그것이 생활이다 싶으면 분명히 괴로울 거예요! 아무튼 생명의 성령의 법이 우리로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게 합니다.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해요!
⑫ 그런데 이 본문 말씀에서 유의해야 할 것이 있어요! ‘너를 해방하였음이라’하고 과거의 일로 끝내버리면 잘못된 교리에 빠지는 거예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나를 해방하였기 때문에 이제부터 나는 아무렇게나 살아도 죄와 상관없어!’라고 하면 잘못된 교리에 빠지는 거예요!
⑬ 내가 계속해서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고백하면서 예수님이 나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셨음을 인정하고 찬송할 때에 그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나를 안전하게 하고 행복하게 하는 거예요! 다시 말하면 계속해서 교회에 나와서 예배드리게 될 때에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나를 해방시키는 거예요!
⑭ 잠깐 분위기 반전을 위해 <행복한 착각>이라는 글을 소개합니다. ♥아줌마들- 화장하면 다른 사람 눈에 예뻐 보이는 줄 안다. ♥연애하는 남녀- 결혼만 하면 깨가 쏟아질 줄 안다. ♥남자들-못생긴 여자는 꼬시기 쉬운 줄 안다. ♥부모들-자식들이 나이 들면 효도할 줄 안다. ♥육군 병장-지가 세상에서 제일 높은 줄 안다. ♥아가씨들-자기들은 절대 아줌마가 안 될 줄 안다. ♥회사 사장-종업원들은 쪼면 다 열심히 일하는 줄 안다. ♥꼬마들-울고 떼쓰면 다 되는 줄 안다.
⑮ 사람들이 보통 생각하기를 교회에 나오면 금방 착한 사람이 되고 또 되어야 하는 줄 알아요! 물론 그렇게 되는 것이 바람직하죠! 하지만 시간이 걸리는 문제입니다. 사람에 따라서 어떤 사람은 빨리, 또 어떤 사람은 늦게, 심지어 죽을 때가 되어서 착하게 되는 사람도 있어요!
⑯ 윤리와 종교의 관계는 윤리가 종교 속에 포함되어 있다는 겁니다. 신앙을 가진 사람이 당연히 윤리적이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는 거죠! 신앙은 윤리와 중복이 되어야 하지만 윤리로써 신앙을 다 헤아릴 수는 없어요! 한 예로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죽이려고 했어요! 그것은 분명히 윤리적으로 잘못된 거예요! 그런데 그것이 하나님의 명령이었다는 겁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비윤리적인 분이냐? 그렇게 말할 수는 없어요! 인간적으로 똑똑한 버트란트 러셀은 그래서 하나님을 믿지 않았대요!
⑰ 하지만 사회적인 문제는 신앙인이 윤리를 무시할 때 생기죠! 신앙과 윤리를 아예 떼어놓고 생각하는 사람들 때문에 교회와 하나님이 욕을 먹어요! 하나님께 대한 신앙이 있으면 인간에 대한 윤리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문제입니다.
⑱ ‘밀양’이라는 영화가 있었어요! 전도연과 송강호가 주연으로 나온 영화인데 신앙적으로 많이 문제가 되는 장면이 나옵니다. 여주인공의 아들을 유괴해서 죽인 사람을 여주인공이 신앙으로 그 괴로움을 극복하고 교도소로 찾아가 당신의 죄를 용서하겠다고 하는데 그 죄수는 교도소에서 하나님을 믿고 이미 모든 죄를 용서받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자기의 손에 의해서 아들을 잃은 그 여주인공의 용서가 더 이상 필요 없다는 듯이 말해요! 마침내 그 죄수의 얼토당토 없는 말에 여주인공은 믿음을 버립니다.
⑲ 갈라디아서의 말씀 두 군데를 읽고 설교를 마치겠습니다.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갈5:17) 그래서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갈6:8)
⑳ 모든 사람은 이중인격자일 수밖에 없어요! 차이는 자기가 이중인격자임을 모르고 살거나 알면서도 뻔뻔스럽게 합리화하고 사는 사람이거나 자기의 이중인격을 슬퍼하면서도 마침내 믿음으로 극복하고 겸손함 가운데 사는 사람입니다. 겸손한 믿음으로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는 삶을 사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