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젓한 부산바다 함지골을 아시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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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어렴풋이 보이는 섬이 거제도. 뛰어들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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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釜山)은 동경(憧憬)의 도시다. 마음이 싱숭생숭하거나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사무칠 때 우리는 무심코 ‘부산’을 떠올린다. 하지만 막상 부산 어디를 가야할지 난감하다. 해운대? 광안리? 너무 흔하다. 밤기차도 좋고 자가용도 좋다. 바쁜 사람은 비행기도 근사하리라. 봄이 상륙한 부산으로 떠난다. 부산 어디? 외지 사람들에게 꼭꼭 숨겨놓은 함지골로……
해운대는 이름값에다 넓은 백사장이 매력이다. 하지만 한시간쯤 백사장을 걷고나면 지루해진다. 바다를 바라보고 선 호텔 콘도가 이국적 정취를 풍기지만 파도를 따라 몇 번 왔다갔다 하면 바다를 보는 재미도 금새 시들해지고 만다. 광안리는 아이들 데리고 가기에는 보여줄 거리가 별로다. 밤정취가 너무 선정(煽情)적이다. 태종대는 가까이 하기에는 바다가 너무 멀다. 마치 동해바다에 온 듯 검푸른 남태평양의 수평선이 막힌 가슴을 탁 열어젖히지만 뒤엉켜 함께 놀기에는 너무 고고하다. 게다가 이 세 곳은 너무 유명해 사람에 치이고 차에 시달리는 결정적 결함을 안고 있다.
바다가 가까이 있으면서도 사람이 많지 않고 바위에 걸터앉아 회 한접시에 소주 한잔 기울일 수 있는 곳. 아이들과 함께 파도를 좇다 때로는 바짓단을 걷고 말미잘을 희롱할 수 있는 곳. 그것도 시들해지면 연인과 나란히 해변가 꽃길을 걸으며 소곤소곤 이야기도 나눌 수 있는 그런 낭만이 넘치는 곳.
명물 영도다리를 지나면
오른쪽에 화사한 봄바다…
벚꽃 길·노천회집 노닐다
어느새 황홀한 석양이…
부산역에서 출발하자. 택시를 타고 ‘함지골’로 향한다. 버스를 타려면 영도경찰서 지나 갈아타야 한다. 부산의 어느 정치인이 선거서 지면 모두 빠져 죽자고 외쳤던, ‘난간위에 초생달만 외로이 섰다’는 ‘굳세어라 금순아’에 나오는 그 유명한 영도다리를 지나고 10여 분간 영도 시내를 통과하면 오른쪽으로 바다가 시원스럽게 펼쳐진다. 수천 톤급에 이르는 상선(商船), 화물선들 사이로 작은 고깃배가 오가고 왼쪽 봉래산에는 백운암 등 작은 사찰이 줄지어 서있다. 함지골 초입에 들어섰다. 함지박을 엎어놓은 것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사격장 앞에서 내린다. 사격장 뒤편에 바다를 바라보고 서있는 4층 건물이 내원정사서 운영하는 함지골 청소년 수련원이다. 청소년 수련원서 바라보는 바다도 일품. 단체 50명 이상이면 일반인도 숙박시설을 이용할수있다. (051)405-5223.
수련원을 나와 50미터 가량 해변길을 걷다보면 왼편에 서양식 대형 식당이 나온다. 부산에서는 이름이 꽤 알려진 ‘목장원’이다. 1960년대 진주에서 젖소 10마리를 끌고와서 이곳에 방목했다. 지금은 목장은 없고 고깃집과 피자 찻집으로 변했다. 80년대 초반 부산 사람들 조차 함지골을 모를 때 집주인은 택시기사들에게 한가지 제안을 했다. 부산서 갈곳 몰라 헤매는 관광객을 모시고 오면 1000원씩 주겠노라고. 그같은 사업수완과 한번 다녀간 사람들의 입소문이 합쳐 명소가 되었다. 80년대 까지만 해도 함지골은 ‘시골’이었다. 아파트 촌이 들어선 곳은 깊은 산이었으며, 우리나라 최초의 ‘조개패총’이 발견되었다고 고등학교 국사책에 기록되어있는 ‘동삼중리’는 소로 논을 갈던 ‘빈촌’(貧村) 이었다.
90년대 들어 수려한 산을 깎아 아파트 촌이 들어서고 관광객들로 주말이면 해안도로가 몸살을 앓지만 그래도 손이 덜 탄 곳이다. 목장원에서 봄이면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해안도로를 따라 20여 분 걷다보면 파도에 씻겨가는 자갈 소리가 요란한 바닷가에 다다른다. 간혹 아이들 데리고 나온 부모나, 공부하다 머리 식히러 나옴직한 교복차림의 학생 한두 명이 보일 뿐 한산하기 그지 없다. 바닷가 왼쪽은 회집 코너. 하지만 예사 회집과 다르다. 바위 위에 간이 의자 몇 개 갖다놓고 해삼 멍게 낙지 홍합이 담긴 고무통이 전부다. 파도는 발밑에서 출렁이고 햇살은 볼을 그대로 적시고 바람은 옷속을 파고드는 노천(露天) 회집이다. 이 회집의 주인들은 모두 제주도에서 건너온 해녀(海女)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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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함지골 노천 회집의 어느 해녀 할머니. | 일반직장으로 치면 정년퇴직도 훨씬 넘겼을 노파들이 용돈벌이겸 나와있다. 이제야 한숨 돌렸지만 80년대 초반부터 이곳에 좌판을 튼 이들은 함지골 앞바다에서 물질하며 자식들 대학까지 보냈다. 멈칫거리다가는 할머니들끼리 싸움붙이기 십상이다. 눈에 띄는대로 아무곳이나 앉든지 아예 단골이 있다며 구석을 찾아가는 것이 비법. 잘못하다가는 기대만 안겼던 할머니에게 자리를 뜰 때까지 ‘구박’ 받을지 모른다.
과음(過飮)은 금물. 파도소리 갈매기 소리에다 바닷바람을 안고 한두 잔씩 기울이다 보면 붉게 물든 볼이 저녁놀 탓인지 술기운 탓인지 그도저도 아니면 주선(酒仙) 이백이 몸에 들어왔는지 분간조차 안된다. 그 지경에 이르면 더 이상 여행은 끝. 견디기 힘들지만 꾹 참아야한다. 아이들을 데리고 왔다면 회집은 눈길만 주고 자갈밭 오른쪽 큰 바위사이로 넘어가면 최고의 엄마 아빠 소리듣는 것은 ‘따놓은 당상’. 아슬아슬 바위사이로 넘어가다 말미잘을 찾아 자갈을 뒤지다 보면 시간이 금새 흘러간다. 자연공부가 따로 없다.
점심 무렵 왔다면 어느새 저녁놀이 바다를 붉게 물들이고 배위에는 불이 한등 두등 켜질 때다. 벚꽃이 흐드러진 목장원은 퇴근후 들른 가족들로 붐빌 시간이다.
함지골로 떠나기전 명심해야 할 점 한가지. 시간이 가면 갈수록 점점이 떠있는 배들과 저녁노을, 찬바람 안고 소주잔 기울이던 회집 풍경은 사무치는 그리움이 돼 괴롭힐 것이다. 그 못말릴 ‘향수병’을 견뎌낼 자신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해운대 여행을 권한다.
부산=박부영 기자 chisan@ibulgyo.com
사진 김형주 기자 cooljoo@ibulgyo.com
사찰도 보고 싶다면…
바다를 보며 부처님께 삼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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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신선동의 고려시대 절 복천사. | 영도 한가운데 우뚝 솟아있는 봉래산에는 바다를 향해 백운암 보원사 복천사 송남원 영광사 영화사 해암사 홍법사 영선사 등이 이곳 주민들의 귀의처이자 정신적 안식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60년 이 지역의 한 보살이 창건하고 지역주민들이 나서 대웅전 천불전 산신각 용왕당 요사채 등을 건립해 가람의 면모를 가꾼 영선사에는 태평양에 빠졌다가 거북 등에 업혀 살아난 한 신도의 전설같은 영험담이 서려있다. 늘 죽음을 안고 살아야했던 바닷가 주민들의 애환을 달래야 했던 사찰은 아직도 관음신앙이 강하다. 규모는 모두 고만고만하지만 바다를 보며 부처님께 삼배를 올리는 경험도 괜찮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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