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 작가의 솔직한 귀촌 보고서 | 밀리의서재
저번 주에 이어 '밀리의 서재 연재 시즌2 - 산골작가의 솔직한 귀촌보고서'를 포스팅합니다.
이 어세이는 부산 국제신문, 경남신문, 서부경남신문, 경남공감 그리고 시민시대 등 여러 매체에
기고한 것을 바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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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표 어세이
제7화. 햇살, 노래 그리고 이야기
시골의 겨울은 솔직히 무척이나 춥고 어둡다.
게다가 집 앞의 도로 확장공사가 얼마 전에 시작되어 컴컴한 밤에 마을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걸어가야 하는 바람에 나는 요 며칠 무척 힘이 들었다. 사실, 도로라고 할 것도 없이 좁은 농로를 넓히는 공사라 내심 반가웠지만, 집까지 걸어 올라가는 동안 견뎌야 할 칼바람과 시커먼 어둠은 버겁기만 하다. 그런 와중에 최근에 지인이 건네준 ‘프레더릭’이란 그림책을 읽게 되었다. 이미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이 책은 들쥐 가족들의 겨울나기를 통해 다양한 소수의 차이를 인정하는 이야기였는데 잠깐 소개하면 이러하다.
어떤 시골 마을에 들쥐들은 겨울을 대비하기 위해 모두가 옥수수, 나무 열매, 밀, 짚을 모으느라 밤낮없이 열심히 일하는데 유독 프레더릭, 이란 이름을 가진 들쥐는 다른 것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는 춥고 어두운 겨울날을 위해 햇살을 모으고, 온통 잿빛인 겨울을 나기 위해 색깔을 모으고, 기나긴 겨울을 보낼 얘깃거리를 준비하느라 이야기를 모았다. 그래도 다른 들쥐들은 그를 나무라거나 면박을 주지 않고 각자 자기 일을 할 뿐이었다.
드디어 겨울이 되어 모아 둔 열매와 곡식이 다 떨어지자 돌담 사이로 찬바람이 스며들고 침묵이 이어졌다. 들쥐들은 프레더릭이 모아놓은 햇살과 색깔과 이야기를 기억해내었다. 그러자 그는 들쥐들의 눈을 감기고 찬란한 금빛 햇살과 아름다운 색깔을 마음속에 떠올리게 하며 그동안 모은 멋진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들쥐들은 이런 프레더릭을 ‘시인’이라고 손뼉을 치며 감탄했다.
아름답지 않은가? 아니면 나 같은 사람만 공감하는 이야기일까.
물질과 자본(돈)이 개인의 삶과 사회를 풍요롭게 한다고 의심 없이 믿었던 우리에게 경종을 울리는 이 이야기 때문에 나는 한동안 가슴이 먹먹했고 눈가에 설핏 눈물이 고였다. 그건 시골에 들어와서도 고단하고 허기진 삶을 살고 있다는 방증이었고 그렇게 살지 못한 회한이었다. 언제쯤이나 프레더릭처럼 살며 또한 그를 인정해주는 사회에 살게 될 것인가, 하고 내게 되묻자 아직도 아니다, 는 답변이 나의 내면 깊숙한 곳에서 울림으로 들려왔다.
정확히 한 달 전이었다. 미국에서 그가 왔다.
그는 오래전 도시에서 같은 직장에 다녔던 직장 후배이자 음악친구였다. 그는 직장인 밴드의 리더였고 훌륭한 기타리스트였다. 그 당시에 나는 그만큼 현란하고 화려하게 기타를 친 이를 본 적이 없다. 같은 예술을 하는 처지여서인지 나는 그와 금방 친해졌다. 이틀이 멀다, 하고 함께 술을 마시고 음악 이야기를 하느라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조차 몰랐다. 대학 시절부터 통기타를 치던 내게 그는 훌륭한 스승이었다. 자연스럽게 그의 직장인 밴드 공연이 있으면 나는 우정 출연을 해 함께 공연했다.
하지만 그는 세 번째 공연이 끝나자 돌연, 획일적이고 타자 주도적인 조직에 실망하여 직장을 떠났다. 그런데도 우리의 만남은 계속 이어져 나는 사십이 훌쩍 넘은 나이에 첫 소설집 발간과 때맞춰 창작곡 음반을 내게 되었는데, 그때 그가 무려 여덟 곡이나 되는 내 곡의 편곡 및 반주를 대가 없이 도맡아주었다. 바쁜 직장생활이었음에도 우리는 매주 주말에 모여 연습했고 결국, 그해 겨울에 나의 첫 음반, ‘보헤미안 영혼을 위한 여덟 곡의 랩소디’가 나왔다. 내 삶에서 가장 프레더릭처럼 행복하고 즐거운 순간이었지만 그는 음악만으로 이 땅에서 살 수가 없어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다.
광안리 바닷가의 횟집이었다.
시차 적응이 덜 된 그는 몹시 피곤해 보였다. 칠 년만의 재회였지만 그간의 스산한 삶 때문이었는지 그는 좀처럼 말문을 열지 않았다. 우리는 말없이 꽤 많은 술을 마셨다. 술에 취하자 그는 내게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서 음악을 하고 싶다고 넌지시 말했다. 물론 그곳에 적응이 된 그의 처와 아이들은 남겨두고 혼자라고 했다. 그 말에 나는 오랜만에 눈이 번뜩 뜨였다. 아직도 먹고 사는 문제에 전전긍긍하며 지내온 나였지만 그와 함께라면 두렵지 않을 것 같았다. 그와 헤어져 산청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이상하게 그날은 시골 밤이 무척 정겹게 느껴졌다. 나는 그를 위해 영혼의 허기와 갈증을 면해주는 노래와 이야기를 미리 준비해둬야겠다고 작정했다.
햇살과 노래와 이야기를 모으는 프레더릭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