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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시대] 09 -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S#1. 하나카고 화장실(밤)
한남자가 볼일 보면서 가게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따라하고 있다.
‘사랑이 떠나간다네. 나홀로 남겨두고서.... 세월아 멈춰져 버려라’
비틀대며 밖으로 나간다.
S#2. 하나카고(밤)
은호의 테이블.
은호 : 나 이제 당신 안만날거야.
은호의 담담한 선언에 좌중은 조용해졌다.
준표는 자기 술잔을 내려다보고,
유리는 어이없고,
지호는 동진과 은호를 번갈아 살핀다.
동진은 뭐가 할말을 찾고 있다.
화장실에서 나오던 남자. 테이블 사이를 지나가면서 노래를 흥얼거린다.
‘이제 이별의 시간이 다가오네. 사랑이 떠나가네... 나는 죽어도 너를 잊을수는 없을거야’
남자가 비틀대다가 빈 테이블의 소주병을 떨어트린다.
취객 : 죄송합니다.
병 깨지는 소리에 정신이 든 네사람.
유리가 깨진 병조각을 치우기위해 일어선다.
지호 : 2006년 1월 12일. 이른바 112 선언에 대해 각계 각층의 반응을 들어보겠습니다.
지호, 들고있던 숟가락을 유리앞에 댄다.
유리 : (빗자락질 하다가) 이럴거면 그때 그 쇼를 내가 왜 한거야?
준표 : (지호가 내민 숟가락에다가) 할수 없지 뭐. 이제 난 두 사람 일에서 손 뗄거야.
두사람이 알아서 해.
동진 : (지호가 내민 숟가락에다가) 우리가 안보겠다는게 한두번도 아니고.
새출발하겠다는 축하할 일이지 뭐.
그치만, 뭐 100미터 달리기도 아니고 출발한다고 출발이 되나?
은호 : 맞아. 나도 내 결심에 자신이 없어서, 다른데 도움을 받을라고.
모두들 은호를 바라본다.
은호 : 결혼정보회사에 등록했어.
또다시 싸한 침묵,
지호 : 연거푸 터진 폭탄발언에 대한 각계 각층의 반응을 들어보겠습니다.
지호, 준표 앞에 숟가락을 내민다.
준표, 숟가락을 밀어버린다.
지호 : 각계각층은 반응을 자제하고 있습니다. 이상 현장에서.....
은호, 지호의 숟가락을 뺏어서 머리를 콩 때린다.
S#3. 호텔 커피숍-은호의 맞선 몽타쥬
은호가 커피숍 입구에 들어선다. 선을 보러왔다.
긴장된 모습이다.
호텔 종업원이 ‘유은호’라고 적힌 팻말을 들고 딸랑거리며 지나간다.
(점프)
40은 되보이는 남자가 인사한다.
남자1 : 안녕하세요.
(결혼정보회사플래너) : 재혼이시니만큼 안정적인 분을 원하신다기에....
은호가 감정을 숨긴채 마주 인사한다.
남자1, 웃다가 눈가의 주름이 신경쓰이는지 입을 고양이처럼 늘려 주름을 편다.
(점프)
호텔 종업원이 ‘유은호’라고 적힌 팻말을 들고 딸랑거리며 지나간다.
(점프)
남자 2가 냅킨에 메모까지 해가면서 은호에게 뭔가를 설명중이다.
남자2 : 이걸 은행에 MNF로 저금해놓고,
그때 그때 빼서 보통 통장으로 이체해놓으면, 한달 이자가 3.4퍼센트이니까....
(결혼정보회사플래너) : 재테크에 뛰어나신 분입니다.
은호, 알아듣지 못하고, 고개만 끄덕인다.
남자2 : (갑자기 지나가는 종업원을 부르더니) 여기 무료주차가 두시간이던가요?
(점프)
호텔 종업원이 ‘유은호’라고 적힌 팻말을 들고 딸랑거리며 지나간다.
(점프)
남자3이 원맨쇼중이다.
남자3 : (서영춘 흉내를 내며) 안녕하십니까? 서영춘입니다. 뿜빠라뿜빠 붐빠빠....
내가 이걸로 사단장님을 웃겨서 5박6일 포상휴가를 나왔다는거 아닙니까?
은호 : (재미하나도 없다) 아. 예....
(결혼 정보회사 플래너) : 유머있는 남성을 원하신다구요.
남자3 : (자기 개그에 자기가 취했다) 뿜빠라뿜빠 뿜빠빠 오랜만에 했더니 입에 쥐가났네요. 아이참.
그럴땐 은호씨가 야옹 해주셔야죠. 푸하하하.
혼자 웃다가 사레 들린 남자. 켁켁 대는걸 보며,
은호, 남몰래 한숨을 쉰다.
S#4. 서점안(낮)
동진이 ‘북마스터 추천 가판대-2006년 이책으로 시작하라’를 꾸미고 있다.
가판대를 보고 있지만 딴생각중이다.
(동진) : 그만 만나? 누가 들으면 내가 만나 달라고 애원한 것 같잖아.
새출발 해? 누가 말려. 나보다 먼저 행복해져주겠다?
좋아. 니가 그렇게 나오면 나도, 홀가분하게 싱글 라이프를 살아주지.
내가 맘 먹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맘만 먹으면...
동진이 서가를 천천히 이동하면서 여자들을 훔쳐본다.
여자들의 얼굴, 몸매, 읽고 있는 책, 악세사리등을 꼼꼼히 살펴본다.
어떤 여자는 시선을 느끼고 고개를 들지만,
‘북마스터’라는 이름표 때문에 별로 신경쓰지 않는다.
동진이 걸음을 멈추고 뒷걸음질쳐 고개를 빼본다.
20대 중후반의 여자가 책을 고르고 있다.
나무랄데 없는, 어딘지 은호와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지만 동진은 그 사실을 모른다.
책을 정리하는 척, 여자가 읽고 있는 책을 본다. ‘체사레 보르자, 혹은 우아한 냉혹’
동진. 마음에 들었다. 씨익 웃으며 여자 옆으로 다가간다.
책을 정리하는척 하면서
동진 : 체사레 보르자에 관심이 있다면, 다른 작가가 다른 관점으로 본 이 책도 읽어볼 것을 권합니다.
체사레 보르자는 보는 사람에 따라 평가가 극과 극을 달리는 인물인데요
흥미로운건, 여자작가들은 체사레 보르자에 대해 호의적이라는겁니다.
여자들이 나쁜 남자를 좋아한다란 말을 증명하는 것처럼요.
(멋지게 미소지으며 고개를 돌린다) 나쁜 남자 좋아하십니까?
여자가 책에서 눈을 들어 동진을 바라본다.
정면에서 본 여자의 모습은 더 매력적이다.
동진, 여자의 눈을 깊이있게 응시하면서 마지막 한마디를 더한다.
동진 : 나도 가끔은 나쁜 남자입니다마느....
그순간, 여자가 머리카락에 가려져있던 이어폰을 뺀다.
여자 : 예?
동진 : (아무렇지도 않게) 계산은 저쪽입니다. 손님.
동진. 아무일 없었다는 듯 미소지으며 여자를 지나쳐간다.
S#5. 서점 사무실(낮)
들어오자마자 안도의 숨을 쉬는 동진.
동진 : 아우....쪽.팔.려!!
동진. 고개를 돌리는데,
다정하게 앉아 커피를 마시던 재범과 정화가 동진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정화 : (커피잔을 들고 일어나며 재범에게) 휴게실로 갈까요?
재범, 눈치를 보며 동진 옆을 지나간다.
동진. 지나가는 정화와 재범을 고개를 돌려가며 쳐다보다가
동진 : (뒤늦게) 직장을 연애의 장으로 생각하냐. 일하러 왔으면 일만 해. 어?
동진, 툴툴대며 자리에 앉는다.
걱정스럽게 어딘가를 본다.
S#6. 호텔 커피숍(밤)
늦은 은호가 허둥지둥 들어온다.
‘이름표를 들고 딸랑’거리던 웨이터가 은호를 맞는다.
은호 : 저...
웨이터 : (말하기도 전에) 이쪽입니다.
은호, 좀 창피하다.
이제까지 만난 남자중에 가장 괜찮은 남자가 은호를 기다리고 있다.
은호, 남자의 첫인상이 마음에 들었다. 환하게 웃는다.
S#7. 아로마 테라피 가게(밤)
준표가 아로마향을 고르고 있다.
이런것엔 별 관심없는 지호가 준표를 쫓아다니며 이야기중이다.
지호 : 애프터 들어온거 다 만나주고, 새로 사람 만나고, 하루걸러 한번씩 남자를 만난다니까요.
방귀가 잦으면 똥 나온다!! 이러다가 일 난다구요.
준표 : (향기 맡으며) 이거 어떠냐?
지호 : (딴소리한다) 요즘은 도넛츠 가게도 안간대요. 진짜로 형부 안만날 생각인가봐요.
벌써 열흘째 안만났을걸요. 두사람 이렇게 길게 안만나거 처음이죠?
준표 : (향기를 맡으며) 이건 별로네.
지호, 준표를 쳐다본다.
준표 : (지호쪽은 쳐다보지도 않은채) 소용없다.... 말했잖아. 난 두사람 일에서 손 뗀다고,
올해 내 목표는 마음의 평화야. 산처럼 흔들리지 않는 마음의 고요, 정신적 평화
준표 자리를 옮기며, 여러 가지 향을 보다가 하나를 집어든다.
준표 : 이거 어떠냐...(지호가 없다)
둘러보는데,
저만큼 떨어진곳에서 지호가 다른 젊은 남자와 이야기중이다.
지호와 이야기하면서 웃던 젊은남자.
문득 시선을 느끼고 고개를 들면, 준표가 째려보고 있다.
젊은 남자. 자기가 뭘 잘못했나 주위를 둘러본다.
그래도 준표가 째려보자 시선을 피하듯 돌아선다.
지호, 남자가 갑자기 가버리자 이상해한다.
준표, 화난 얼굴 그대로 손으로 휘저어 향기를 맡는다. 마음의 고요! 물건너갔다.
S#8. 호텔 커피숍(밤. 6씬에 이은)
은호, 억지로 웃고 있다. 화를 참고 있는듯.
이번 남자는 생긴것만 괜찮은 남자다.
남자 : 지난번에 만나 여자는 에어로빅 강사였는데, 스포츠 에어로빅이었나봐요.
생각만큼 몸매가 별로더라구요. 팔 다리할 것 없이 근육때문에...
난 근육있는 여잔 싫어요. 슬림한 여자가 좋지.
은호 : 예...
남자 : 은호씨는 수영하셨다는데 어깨가 봐줄만하네요.
은호 : (어이없다) 그런가요.
남자 : 이거 클럽에 한번 가야겠는데... 은호씨 수영복 입은 모습이 기대됩니다.
(의미있게 은호를 스윽 훑는다)
은호, 물잔을 자기도 모르게 꽝 소리나게 내려놓는다.
남자 : 하하. 농담입니다. 농담.
은호 : 보기보다 저질이시군요.
남자 : ...
은호 : ‘하하. 농담입니다. 농담’
분위기 썰렁해졌다.
남자, 의자등받이에 깊숙이 앉는다.
은호도 버틴다는 심정으로 남자를 외면한채 앉아있다.
남자 : 전, 바쁜일이 있어서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더치하죠.
남자가 지갑에서 1만 2천원을 꺼내 테이블에 올려놓고 나간다.
은호, 남자의 뒤통수를 노려보다가, 다른 테이블의 시선을 느낀다.
자괴감이 든다.
S#9. 호텔 로비(밤)
은호가 커피솝에서 나온다.
‘자폐-근접적시기의 사회화, 세미나, 00홀’이라는 팻말옆을 지난다.
어쩐지 비참한 기분이 든다.
S#10. 호텔 앞(밤)
비가 온다.
은호가 우산을 편다.
호텔을 빠져나가는데,
은호 바로 옆을 지나가는 자동차. 일부러 물을 튀긴다.
은호의 하얀색 옷에 물방울이 튄다.
자동차안의 남자. 좀전 맞선자리에 있던 남자다.
은호 : (분노를 삭힌다) 그래. 내가 죄가 많다.
은호, 손수건으로 대충 털어내는데,
빵빵 경적소리.
또 뭐? 하는 심정으로 홱 돌아보는 은호,
차창 너머로 보이는 얼굴. 윤수다.
S#11. 윤수의 차안(밤)
은호가 조수석에 앉아있다.
은호 : 교수님 안 만났더라면, 오늘 진짜 비참할 뻔 했네요.
윤수, 다행이다 싶어 미소짓는다.
은호 : (가볍게) 호텔엔 무슨 일로... 선보러 오셨어요?
윤수 : 그냥 볼일이 있어서...
은호 : (농담이다) 호텔에 볼일이라...
윤수 : (진지하게) 아니 그게 아니라... 세미나때문예요.
자폐 인접적 시기에 대한 심리학 세미나가 있는데,
그게 뭐냐면... 자아와 세상을 아직 구분하지 못하는 유아기의....
(은호를 흘깃 보더니) 죄송합니다.
은호, 미소짓는다.
은호 : (담담하게) 난 선보러 갔었어요.
윤수 : (뜻밖이지만) 예...
은호 : 행복해지려고 노력중인데... 어렵네요. 행복해지는거.
윤수 : .....행복하다는게 어떤 느낌일까요?
은호 : (윤수를 본다)
윤수 : 유선생님한테 행복하다는건 어떤 느낌입니까?
은호 : 글세요.... 깔깔 웃는거?
윤수 : (운전하느라 전방을 보며) 난 행복이란 말을 들으면 생각나는 장면이 있어요.
시골출신인데다가 어려서 할아버지랑 같은 방을 썼거든요.
겨울엔 외풍이 심해서 장롱속에 넣어논 이불이 차갑잖아요.
할아버지가 잠자리 들기전에 내가 먼저 들어가서 이불을 몸으로 덮히는데....
난 그때 느낌이 좋더라구요. 이불의 차가운 느낌이 맨발에 느껴지는데...
몸을 축 펴면, 편하기도 하고, 안심되기도 하고, 살아있다란것도 느껴지고...
그땐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느낌이 행복하다....란거 같애요.
신호에 걸려 서는 윤수,
말을 끝내며 은호쪽을 보다가 눈이 마주치자 당황한다.
윤수 : 아니....그게....딱히.....정답이란건 아니구요. 감정이란건 사람마다 다르니까...
개인적인 역사가 쌓여서, 낱말의 정의도 달라지고...
은호가 슬쩍 웃자
윤수, 할말을 잃는다.
은호 : (지나가듯) 교수님은 좋은 사람 같아요.
윤수, 얼굴이 빨개진다.
신호가 바뀌고 차를 출발시킨다.
둘다 조용하다.
윤수 : (정면을 본채로) 유선생님은 그런 장면 없습니까? 행복하면 떠오르는거.
은호 : 글쎄요.
은호가 창밖을 본다.
비가 흘러내리는 유리창 너머, 불빛이 흩어지고 있다.
S#12. 탄천 조깅로(낮-과거, 가을)
동진과 은호가 자전거를 타고 있다.
자전거 앞 바구니에 피크닉 가방이 들어있고,
만삭의 은호가 동진 등에 등을 맞대고 뒷자리에 앉아있다.
바람이 은호의 머리를 거꾸로 날린다.
머리가 헝클어져도 신경쓰지 않는 은호, 눈부신 듯 하늘을 보며 미소짓는다.
행복에 가득찬 웃음이다.
S#13. 은호의 집 침실(아침)
잠든 은호, 미소짓고 있는데 눈물이 흘러나온다.
지호, 자기 침대에 앉아서 은호를 보고 있다. 놀라서 요구르트 떠먹는 것도 잊은채.
은호 눈에서 계속 눈물이 흘러내린다.
지호가 깨울려고 하는 순간.
자기 흐느끼는 소리에 눈을 뜨는 은호, 감정을 추스르듯 잠시 그렇게 누워서 지호의 무릎을 바라본다.
지호 : 꿈꿨어?
은호 : (심호흡하면서) 어.
은호, 눈물을 닦으며 일어나앉는다.
지호 : (조심스럽게) 엄청 슬픈 꿈인가봐,
은호 : (나가면서) 그렇지도 않어.
지호, 나가는 은호의 뒷모습을 보며 요구르트를 떠 먹는다.
S#14. 준표의 진료실(낮)
수술복 차림의 준표가 아로마 테라피를 위해 준비중이다.
지호, 의자에 책상다리로 앉아 심각하다.
지호 : 뭔가 잘못됐어....언니가 우는거 본적 있어요? (자기가 물어놓고) 있죠. 동이때...
그치만, 그후로 본적 있어요?
준표, 지호를 흘깃 본다.
지호 : 울 언니가 얼마나 독한데...
4천만을 울린 ‘장밋빛 인생’을 보면서도 눈물 한방울 안흘린 사람이라구요.
어렸을때 내가 목욕안한다고 그랬을때 울 언니가 어땠는줄 알아요. 바가지로 때렸어요.
그 어린 나를... 그런 자매님이 자면서 울다니.... 이건 정상이 아니예요.
지호, 불안한 듯 주위를 둘러본다.
준표 : 놀랐냐?
지호 : 당연하죠. 나도 사람인데.... 울언니 우는거 보면서 (심장을 가리키며) 여기가 막 욱씬거리는데....
준표, 향기를 맡기 시작한다.
지호 : 할수 없어요.
준표 : 뭐가?
지호 : 이렇게 되면 내 인생 노선을 바꾸는수밖에.
준표 : (향기를 맡으며) 니 노선이 뭔데
지호 : 무간섭주의.
준표, 향기를 맡으며 지호를 본다.
지호 : 언니가 이렇게 된건 형부랑 헤어지겠다고 선언하면서 부터라구요.
준표 : 두사람 인연은 거기까지야.
지호 : 인연은 만드는 겁니다.
준표 : 안된다니까...
지호 : 잘되면요?
준표 : (어린애보듯 픽 웃으며) 난 애 받으러 간다.
지호 : 내기해요.
준표 : (나가려다가 돌아본다)
지호 : 두사람 다시 잘되면,
준표 : 어.
지호 : 근사한 호텔 레스토랑에서 저녁 식사....
준표 : 그정도야...
지호 : 식사후에 그 호텔에서 하룻밤.
준표, 삐끗하며 쳐다본다.
지호 : (준표를 지나쳐가며) 농담입니다.
준표, 가슴이 벌렁벌렁하다.
얼른 다시 아로마 향을 맡는다.
S#15. 휴게실(낮)
남자회원들 서너명이 모여서 자기 근육을 자랑하고 있다.
은호가 근육을 만져보고 눌러가며 평가중이다.
‘이두박근은 좋은데 삼두박근이 약하다는둥, 숭모근을 너무 키웠다는둥’ 화기애애한 분위기
윤희 : (지나가며) 팀장님.....상담이요.
은호, 사무실로 향한다.
S#16. 사무실(낮)
은호가 들어온다.
창밖을 보고 있던 여자가 돌아선다.
전체적으로 검은색 계통의 옷을 입은 30대 초반의 여자.
쏘는 듯한 눈으로 은호를 바라본다.
은호, 자기도 모르게 움찔한다.
은호 : 이쪽으로 앉으세요.
은호와 여자가 마주앉는다.
은호 : (메모할 준비를 하면서) 상담을 원하셨다구요? 전에 운동을 하신 적이 있나요?
여자 : (여전히 은호를 쏘는 듯이 보면서) 유은호씨?
은호 : 네...
여자 : (웃음을 띤 채로) 미안합니다. 초면에... 사실은 궁금해서 왔어요. 내 남편이 반한 상대가 누군가.
무미건조하고 재미없는 사람이 연애감정을 느낀 여자가 누군지 궁금해서 참을수가 있어야죠.
은호, 몸을 뒤로 빼며 여자를 경계한다.
여자 : 걱정말아요. 그냥 궁금해서 온 것 뿐이니까.
아가씨를 어떻게 할만큼 그 남자에게 감정이 남은 것도 아니고,
(품평하듯) 의외라고 해야할지.... 그남자 답다고 해얄지.... 그럼....
여자, 나가려고 한다.
은호 : 저기요. 이런 거 실례잖아요?
여자 : 실렌줄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유부남을 사귀려면 이 정도는 각오했어야죠.
은호 : 사귀긴 누굴 사겨요. 사모님 남편이 누군데요?
여자. 의외라는 듯 은호를 빤히 바라보다가 깔깔깔 웃는다.
여자 : 바보같이.....그럼 짝사랑이란 말예요. 난또...
고등학생 같은 얼굴로 당장 이혼해달라고 하기에 뭔가 있는줄 알았는데.... 별걸 다하네.
(은호에게) 정말 미안해요. 이런 상황인줄은 몰랐어요. 미안합니다.
여자. 간단하게 인사하고 사무실을 나갈때까지 웃음을 그치지 않는다.
은호, 어이없고도 화가 난다.
S#17. 헬스룸(낮)
은호가 남자 회원들을 하나하나 쏘아본다.
자기한테 반한 유부남을 찾고 있다.
은호의 목덜미에 닿는 스포츠 음료,
은호가 흠칫 놀라 돌아보면,
40대의 남자가 음료를 은호에게 건넨다.
40대남자 : 내 마음이야. 유팀장.
은호, 혹시나 하면서 40대남자를 쳐다본다.
(부인) : 여보!!
40대남자 : (손을 흔들며) 시유 투마로우.
또래의 아내에게 잡혀가면서도 손을 흔드는 40대 남자.
은호, 잘못찍었다.
안도의 숨을 쉬는데 문득 등뒤에서 느껴지는 시선.
은호, 홱 돌아본다.
헬스중인 과묵한 남자가 은호쪽을 보고 있다.
은호, 저남잔가? 싶어, 쳐다보며 자리를 이동하는데,
남자의 눈빛은 여전히 그 자리다.
남자의 시선이 닿는곳,
헬스강사가 서 있다. 민소매티를 입은 울룩불룩한 근육들.
헬스강사를 바라보는 과묵한 남자의 얼굴에 배시시 웃음이 번진다.
S#18. 헬스룸 밖(낮)
은호, 지친 얼굴로 나온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30대의 바람돌이, 은호를 향해 손가락을 흔들어 반갑게 인사한다.
바람돌이 : (늘 하듯) 오늘도 눈부시게 아름다워요. 밥한번 먹자니까...
은호 : 매번 질리지도 않으세요
은호, 가볍게 무시하고 지나려다가 혹시.
은호 : 저기요?
바람돌이 : (헬스룸으로 들어가려다가) 에?
은호 : 저 잠깐 물어볼게 있는데....
바람돌이 : 거봐, 언젠가 나한테 넘어올거랬잖어.
은호, 바람돌이를 끌고 사람없는 쪽으로 간다.
바람돌이 : 자. 기탄없이 물어봐요. 나에 대해 뭐가 궁금해요?
은호 : (조심스럽게) 결혼했어요?
바람돌이 : 날 뭘로보고.... 우아한 싱글입니다.
은호 : (실망스러운) 아....예......운동하세요.
은호, 바람돌이를 놓아두고 간다.
바람돌이 : 유팀장. 유부남한테 관심있어요? 그럼 안돼.
은호, 쳐다보지도 않고 손을 흔든다.
S#19. 사무실(낮)
은호, 윤희 수영강사들. 헬스강사들이 배달시킨 점심을 먹고 있다.
은호, 나무젓가락으로 부벼 랩을 뜯어낸다.
S#20. 던킨 도넛츠(낮)
동진이 커피와 도넛츠를 먹으며 창밖을 보고 있다.
문소리가 날때마다 돌아본다.
은호는 오늘도 오지 않는다.
문득 시계를 보고, 서둘러 나간다.
S#21. 탄천 조깅로(새벽)
은호가 자전거를 타고 출근한다.
S#22. 스포츠 센타앞(새벽)
은호가 보관대에 자전거를 세워놓고 돌아서는데,
화단에 앉아있던 윤수가 일어난다.
늘 말쑥하던 윤수는 수염도 깍지 않고, 넥타이도 매지 않았다.
은호, 뜻밖이다.
은호 : .....왠일이세요. 이시간에?
윤수 : (큰 잘못을 저지른 사람같다).....사과하러 왔습니다.
은호 : .....?
윤수 : 제 아내 때문에... (말을 바꾼다) 저 때문에.... 겪으신 일, 사과드립니다. 죄송합니다.
윤수가 고개를 숙여 사과한다.
은호, ‘이 남자였나’ 뜻밖이다.
윤수, 뭔가 더 말을 하려다가 포기하고 돌아선다.
은호 : (윤수의 등에 대고) 정말이예요? 저 때문에 이혼할려고 한거.
윤수 : (단호히) 그건 아닙니다. 4년 전에 이혼할려고 했는데, 아내가 계속 무시했습니다.
별거하면서 얼굴 보고 살 일도 없고, 별로 불편한 것도 없어서 그냥 지내왔는데....
일이 이렇게 되버렸습니다.
윤수, 은호가 다음말이 없자 돌아서려는데....
은호 : 4년만에 다시 이혼해달라고 한거는 저때문인가요?
윤수가 은호를 본다. 대답하지 못하고 시선을 피한다.
은호가 스포츠 클럽 안으로 들어간다.
윤수, 은호의 질문을 생각해본다.
S#23. 스포츠 센타 엘리베이터 앞(새벽)
은호가 엘리베이터에 탄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힌다.
S#24. 스포츠 센타입구(새벽)
은호가 스포츠 센타의 비밀번호를 누른다. 문을 여는데,
비상계단 문이 열리고, 가쁜 숨을 쉬며 윤수가 올라온다.
윤수 : (필사적인 용기를 낸다) 맞습니다. 유선생님 때문입니다.
이혼을 하든 안하든 4년내내 불편한거 하나도 없었는데 유선생님 때문에 불편해졌습니다.
말을 마친 윤수, 막혔던 숨을 토해낸다.
은호는 윤수에게서 진심을 본다.
S#25. 할인마트(낮)
지호와 은호가 야채 코너에서 쇼핑중이다.
지호 : 원래 몸이 약한 여자랑 사랑에 빠졌다. 집안의 반대를 무릎쓰고 결혼했다.
결혼하자마자 아내가 죽었다. 죽은 아내를 못잊는다. 소문쪽이 더 어울리는데....
마누라가 있었구나.
은호 : 마누라도 보통 마누라가 아니야. 상공 높은 곳에서 사람을 깔보는듯한 분위긴데...
그 자리에선 반격도 못하겠더라구. 지나고 나야 아....기분나뻐 그거지.
지호 : 근데 교수님이 왜?
은호 : (토마토를 고르며) 데이트 하기로 했거든.
지호, 은호를 다시본다.
은호, 지호의 시선을 모르는 척, 흠집난 토마토를 내려놓고 다른걸 고른다.
지호 : 나 참 궁금하네. (토마토를 가리키며) 이런거는 꼼꼼히 따져가면서
남자는 왜 하자 있는 인생을 고르는건데?
은호 : 나도 하자있잖어.
지호 : 언닌 이혼했잖어.
은호 : (카트를 밀며 이동한다) 정신적으로 정리가 덜 됐잖어.
지호, 언니가 못마땅하다.
인상쓰면서 시식코너의 토마토를 집어먹는다.
S#26. 거리(저녁)
지호와 동진이 걸어온다.
지호 : (걸으면서) 진짜 우리 자매님 연애 솜씨는 두고 볼래야 볼수가 없어.
어째 고르는것마다 이모양인지.
동진 : (자기를 가리키며) 이 모양?
지호 : (무시하고) 중학교땐 어땠는줄 알아요?
엄마는 집나가고 아빠는 알콜 중독인 바람둥이 남자애한테 꽂혀갖고,
....동정하고 사랑을 구별을 못해요.
결국 내가 뒷조사 다해서, 그 남자애가 다른 여자애랑 양다리 문어다리 걸친거 폭로하고,
내가 가서 끝냈잖아요.
동진 : 그때 너 몇 살이었냐?
지호 : 초등학교 5학년.
동진 : (지호를 보며 감탄한다) 날 뭐하러 불렀냐? 그렇게 잘 하면서....
지호 : 그래도 은사님인테 내가 어떻게 막해요. 그러니까 형부가 잘해야 돼요?
동진 : 믿어라.
동진, 코너를 돌아간다.
S#27. 레스토랑 앞(저녁)
동진과 지호가 음식점앞에 선다.
동진, 손잡이를 잡은채
동진 : (각오를 다지듯) 자. 마지막으로 더 해줄말 없어? 누락된 정보나 이런거.
지호 : 어떤거요?
동진 : 연구비로 땅샀다더라, 여학생만 따로 불러 점수를 잘준다더라, 로비로 교수됐다더라 이런거...
지호 : 강의시간이 빡빡하다. 점수가 짜다. 실력은 있다더라. 이런 소문은 있었어요.
이런....동진, 문을 열고 들어간다.
28. 레스토랑(저녁)
윤수와 은호가 식사중이다.
둘다 말이 없다. 포크 부딪치는 소리만 가끔 날뿐.
윤수, 할말을 찾아야 하는데 부담스러워서 땀이 난다.
땀을 닦다가 은호와 시선이 마주친다.
윤수 : 재미없죠?
은호 : 강의는 어떻게 하세요?
윤수 : 강의실에 좋아하는 여자가 있는것도 아니구...
윤수, 불쑥 말했다가 얼굴이 빨개진다. 다시 땀을 닦는다.
윤수가 너무 긴장하자 은호도 따라서 긴장된다.
웨이터가 2층자리로 안내하려 하자, 두리번거리던 지호 윤수를 발견하고 그쪽을 가리킨다.
고개를 돌리던 윤수가 지호를 발견한다.
어?
은호가 돌아본다.
지호 : 어머 교수님.
지호가 윤수의 테이블쪽으로 간다.
동진. 어기적 어기적 따라간다. 윤수를 지긋히 노려보면서.
은호, 동진과 지호의 등장에 당황했다.
지호 : 어쩜 이런 우연이 있을까? 둘이 여기서 만나기로 했구나. 저언혀 몰랐어요.
형부랑 상담할일이 있어서 왔다가...
은호가 지호의 의도를 알아차리고 째려본다.
지호 : 전형부랑....
윤수가 지호 뒤에 서있는 동진을 본다.
동진. 거만하게 까딱 인사해보이는데,
윤수 :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내민다) 정윤수라고 합니다.
동진 : (손을 잡긴 한다) 이동진...이오
동진, 말끝을 애매하게 흐린다.
지호 : 예약을 안했더니 자리가...
빈자리가 더러 눈에 띈다.
윤수 : (안쪽으로 옮겨가며) 합석하시죠
지호. 냉큼 윤수 옆자리에 앉는다.
은호, 못마땅하지만 안쪽으로 자리를 옮겨준다.
동진. 은호 옆에 앉는다. 이상한 우월감을 느낀다.
(점프)
동진과 지호도 식사중이다.
윤수 : (아까와는 달리 활발하게 이야기한다) 지호군은 시각이 독특해서 리포트나 시험지 채점할 때
시간이 많이 걸리는 학생이었죠. 읽다보면 재밌더라구요.
화기애애하다.
동진 : (말을 받는척) 아. 예....... 근데 왜 이혼하셨어요?
생뚱맞은 화제 전환에 모두들 움찔한다.
은호 : (윽박지르듯) 실례잖어.
동진 : 확실히 해야지
은호 : 해도 내가 해. 당신이 자격으로...
동진 : 전 보호자! 3년전만해도 니가 병원에 입원하거나 큰일있을때 보호자란에 내 이름썼던 자격으로.
지호. 핸드폰이 울린다.
지호, 수신 보류버튼을 누른다.
윤수 : 아닙니다. 확실히 해야죠. 아내를 처음 만난건 미국에서 공부할때였는데,
동진. 윤수 안보이게 중얼거린다. ‘미국?’
은호 슬쩍 흘긴다.
윤수 : (말하는 내내 씁쓸하다) 유학생들 사이에서 유명한 여자였어요.
부유하고 당당하고, 뜻대로 안되는건 못참고, 여왕 같았습니다. 시골 촌뜨기가 반한거죠.
동진 : 돈때문은 아니구요?
은호 : (동진을 째려본다)
동진 : 확실히 하자구.
윤수 : 그럴지도 모르죠. 그렇게 말하는 사람도 많았고.
처음엔 절대 아니라고 부정했는데 나중엔 나도 헷갈리더라구요.
그래도 그 여자 때문에 가슴뛰던 때도 있었으니까, 아주 돈때문이라고.....그렇겐 생각 안합니다.
동진. 윤수의 솔직한 답변에 밀리는 느낌이다.
지호, 다시 핸드폰이 울리는데 수신보류한다.
진동으로 해놓는다.
동진 : (꿍시렁대듯) 이러나 저러나 결국은 마음이 변한거네.
(은호쪽을 턱으로 가리키며) 이 마음도 안변하리란 법은 없는거구.
은호 : (포크를 내려놓는다) 그만하지.
윤수 : 모르는 일이죠. 사랑도 사람의 일인데 어떻게 장담하겠습니까?
(은호를 슬쩍 보며) 알면서도 또 어쩔수 없으니까 그게 문제죠.
은호, 윤수의 진심에 얼굴을 붉힌다.
동진, 졌다고 생각한다.
지호, 핸드폰이 드르륵 거린다.
지호, 살짝 짜증내며 의자에서 일어난다.
S#29. 레스토랑 입구(밤)
지호가 전화를 건다.
통화음이 끊기자마자, 핸드폰 밖으로 들리는 목소리.
(준표) : (버럭) 왜 전화 안받어?
지호 : (움찔놀라자마자) 왜 자꾸 전화질이예요. 나 바뻐요.... 내 일 도와주지도 않으면서.....
왜요? 뭣 때문예요? 연거푸 전화하는거 보니까 몹시 중요한 일인가부죠. 안 중요하기만 해봐,
S#30. 준표의 진료실(밤)
준표, 지호와 통화중이다.
준표 : (당황했다) 아니 그게.... 내차에서 니 머리핀 나왔다고, 찾을까봐.
S#31. 레스토랑 입구(밤)
지호 : (단호히) 버려요.
그때 동진이 안에서 나온다.
지호 : 끊어요. (동진에게) 왜요? 가게요?
동진 : (침울하다) 어....나 서점에 들어가봐야 돼서...
동진. 지호를 지나간다.
지호 : (웅얼대는) 오전 근무 랬으면서...
동진. 못들은척 그냥 간다.
패배감과 불안을 느끼면서.
S#32. 레스토랑(밤)
윤수와 은호.
은호 : 죄송해요.
윤수 : 헤어진지 얼마나 됐어요?
은호 : 3년 지나가요.
윤수 : (일상적으로) 감정이 남아있군요. 두분 다.
은호 : .....정리중입니다.
윤수 : (딱히 은호에게라기보다는) 사람과 사람의 일이..... 참 어렵죠
윤수, 은호를 향해 처음으로 편안한 웃음을 웃는다.
S#33. 레스토랑 입구(밤)
지호, 나무 뒤에 숨어서 슬쩍 은호와 윤수 쪽을 본다.
은호, 윤수 처음보다는 화기애애하다.
지호, 다시 그 자리에 들어가자니 난감하다.
음식을 나르던 웨이터가 슬쩍 쳐다본다.
S#34. 준표의 진료실(밤)
준표, 손가락에 머리끈을 걸고 쳐다본다.
어쩔까.... 하다가 냄새 맡아본다.
준표 : 으이그.....냄새하고는....
그러면서도 다시 깊숙이 냄새맡는 준표. 흐뭇해진다.
문득, 창밖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고 자기가 놀란다.
S#35. 은호의 빌라 단지 입구(밤)
은호가 윤수의 차에서 내린다.
윤수의 차가 떠난다.
은호, 멀어지는 윤수의 차를 잠깐 바라본다.
어쩐지 큰일을 치룬 것 같다.
빌라단지안으로 들어가려는데, 핸드폰이 울린다.
은호 : (전화를 받는다) 유리씨?
S#36. 하나카고(밤)
여전히 나풀 나풀 소녀풍의 옷을 입은 유리가 테이블을 치우고 있다.
마감시간이다.
은호가 들어온다.
유리, 보시다시피라는 듯 비켜선다.
술에 취한 동진이 테이블에 엎어져 있다.
은호 : 언제부터?
유리 : 초저녁부터
은호 : 갖다 버리지 그랬어.
유리 : (행주를 주방에 던져놓으며) 정이 무서워...
은호 : (동진을 흔들어 깨운다) 오늘 하루종일 잘한다. 일어나. 이게 뭐야? 다 늙어서.
이동진. 일어나!!
동진. 부스스 일어나는가 싶더니, 은호를 향해 웃는듯,
벽에 기대어 눈을 감는다.
은호, 유리를 보며 난감해한다.
S#37. 거리(밤)
은호와 유리가 축 늘어진 동진을 택시에 밀어넣는다.
은호, 어떻게 할까, 택시문을 잡고 서성인다.
유리 : 근데 무슨.... 게임했어?
은호 : 응?
유리 : 자꾸 졌다고 그러더라고, 내가 졌다. 내가 졌다.
은호 : 글세
유리 : 알아서 해. 나 들어간다.
유리가 하나카고 안으로 들어간다.
은호, 택시안을 들여다본다.
축 늘어진 동진.
S#38. 택시안(밤)
은호가 술 취해 잠든 동진을 본다. 동진의 머리가 창쪽으로 기울어져 달달 떨린다.
은호가 머리를 똑바로 해준다.
동진의 머리가 은호의 어깨 위에 툭 떨어진다.
은호, 그대로 둔다.
S#39. 동진의 빌라 앞(밤)
은호가 동진을 끄집어낸다.
동진. 비틀거리면서 내린다.
은호가 택시기사에게 양해를 구하고, 동진을 데리고 빌라로 들어간다.
S#40. 동진의 빌라 현관앞(밤)
동진이 벽에 기대서 있다.
은호가 문을 연다.
은호 : 갈수록 왜 그래? 똑바로 좀 해. 이러면 내 결심이 뭐가 되냐구
동진 : (듣는지 마는지).....
은호 : (열쇠를 동진손에 쥐어주면서) 갈게.
돌아서는 은호의 손을 동진이 잡는다.
동진 : 가지 마라.
동진이 은호를 쳐다본다. 동진은 진심이다.
은호, 가슴에서 쿵 소리가 나는 것 같다.
S#41. 멀리서 본 빌라(밤)
빌라 복도에 선 은호와 동진.
동진이 은호의 손을 잡고 있다. 둘다 움직이지 못한다.
빵빵. 택시의 경적소리가 둘의 대치상태를 일깨운다.
S#42. 빌라복도(밤)
은호가 먼저 시선을 피한다.
은호 : 술 깨고 후회할 소리 하지 마.
은호, 동진의 손에서 손을 뺀다.
은호가 복도를 지나 사라지도록 동진이 문 손잡이를 잡은채 은호를 바라본다.
S#43. 택시안(밤)
은호가 조용히 앉아있다.
방금전 동진에게 잡혔던 손목을 쓰다듬어 본다.
몹시 흔들렸던 자신을 돌아본다.
(f.o)
S#44. 동진의 집 침실(아침)
동진이 침대에 누워있다.
(동진) : 가지마라.
동진. 뒤척인다.
(동진) : 가지마라.
동진, 엎드린다.
(동진) : 가지마라.
아으....동진이 베개에 얼굴을 묻으며 발광하다가 일어나 앉는다.
S#45. 동진의 거실(아침)
소파에 등을 기대고 앉은 동진이 보석상자를 연다.
결혼반지가 보인다.
반지를 손가락에 끼워본다.
다시 빼서 테이블위에 놓고 깔짝 깔짝 장난치다가 손가락을 튕겨 팽이를 돌린다.
반지가 팽그르르 돌다가 뭔가에 부딪쳐 거실 장식장 밑으로 들어간다.
(점프)
동진, 납작하게 엎드려 손을 넣어본다.
(점프)
옷걸이를 이용, 바닥을 긁어낸다. 먼지만 나온다.
(점프)
장식장을 통째로 들어내고, 반지를 찾는다.
장식장을 되돌려놓다가 장식장 위에 있던 편지 뭉치가 툭 떨어진다.
S#46. 동진의 서재(아침)
동진이 반지를 서랍속에 넣는다.
좀전에 장식장위에서 떨어진 편지들을 확인한다.
공과금. 공과금. ‘00중학교 동창회’
S#47. 거실(아침)
필요없는 공과금 영수증과, 동창회 고지서를 재활용 쓰레기 더미속으로 툭 던진다.
S#48. 병원 복도(아침)
준표가 걸어온다.
나름대로 비장하다.
준표 : (마인드 콘트롤중이다) 단순하게 가자. 단순하게.
도서관 앞에서 심호흡을 한다.
S#49. 도서관(아침)
지호가 컴퓨터앞에서 db작업중이다.
준표가 들어온다.
준표 : (비장하게) 요 며칠 생각해봤는데.
지호가 준표를 물끄러미 올려다본다.
준표, 어떻게 알았는지 지호의 귀에서 이어폰을 빼낸다.
준표 : (비장하다) 요 며칠 계속 생각해봤는데, 니가 더 이상 여동생으로 보이지 않는다.
지호, 움찔한다.
준표 : 나도 너 좋아하는 것 같다.
가슴의 말을 쏟아낸 준표. 콧김을 내뿜는다.
지호, 당황스러운듯, 머리를 긁적이며 책상밑을 본다.
책상옆, 바닥에 앉아서 책에 바코드를 붙이던 자원봉사 아줌마 세명이서 숨죽인채
준표와 지호를 올려다보고 있다.
뜨악한 준표.
휘청 휘청 밖으로 나간다.
S#50. 병원복도(아침)
준표. 걸어간다.
휘청한다.
S#51. 하나카고(밤)
바에 나란히 앉은 준표와 동진.
둘다 말이 없이 술잔만 기울인다.
준표는 가끔 배시시 웃는다. 사랑에 빠진 남자의 침묵이다.
동진, 우울하다. 실연에 빠진 남자의 침묵이다.
S#52. 서점(낮)
책상에 앉아 있는 동진. 눈이 가물가물하다. 잔다기보다는 비몽사몽이다.
진명 : (동진을 살짝 건드리며) 주임님
동진 : (정신이 든다) 어...
진명 : 저기.... 책 찾으시는 손님이 있는데요.
동진 : (스스로 파이팅하듯) 알았어.
동진. 꽤 이쁜 여자 손님에게 간다.
동진 : (담담하게) 어떤 책 찾으십니까?
-떨어진곳,
진명과 미화가 손님에게 책을 권하는 동진을 보고 있다.
진명 : 저게 아닌데?
미화 : 그러게 말야. 저쯤에서 한번 눈웃음치고, 슬쩍 훑어주고, 그게 이주임인데...
진명 : 이상하네. 정력이 감퇴했나. 매일 졸기나 하고
S#53. 동진의 침실(밤)
불꺼진 침실.
동진이 침대에 누워있다.
(동진) : 난 자는거야. 자고 있어. 깨있는 것 같지만, 이건 꿈이야. 난 잔다. 자고 있다.
....
동진, 한숨을 쉬며 돌아눕는다.
S#54. 거리(밤)
동진과 준표가 걸어간다.
동진 : 가고싶으면 너 혼자 가.
준표 : 아. 쫓아오면서 툴툴대긴. 집에 있어봤자 뭐하냐? 너 그거 오래두면 우울증 걸린다.
동진 : 동창회가면 더 우울해. 화장 떡칠한 아줌마들이 관심인척 이것저것 물어대고,
수입에 따라 헤쳐모이고.
준표 : (건물안으로 들어가며) 또 아냐? 괜찮은 솔로가 있을지.
동진 : (따라 들어가며) 그 나이엔 솔로가 더 무섭다. 자의식 과잉의 노처녀.
S#55. 호프집(밤)
‘00중학교 동창회’ 플랫카드가 걸려있다.
여자틈틈에서 깔깔 웃는 준표.
아줌마들 사이에 둘러쌓인 준표. 인기 최고다.
그중에 임신한 아줌마가 있다. 준표, 아줌마처럼 수다떤다.
준표 : 첫째야? 괜찮아. 요샌 서른 넷이면 초산축에도 못껴. 걱정할거 없어. 니 남편 머리 크니?
임산부 : 어.
준표 : 그건 좀 걱정이다. 애기 머리크기는 남편머리랑 비례하는데...
임산부 : 어머 그래.
아줌마1 : 난 애낳고 났더니 뱃가죽이 늘어졌는데 그건 어떻게 안되니?
까르르 웃는 아줌마들,
동진은 남자들 틈에 끼어있다.
그러나 적응 못한 얼굴이다.
남자1 : 나 주식해서 돈벌었다는 놈 첨보네. 한달에 2천이면, 회사 때려치고 그거나 해.
남자2 : 남말하네 넌, 판교 아파트 당첨됐다며?
남자1 : 운이 좋은거지.
그들, 주식이야기로 다시 넘어가는데
동진. 할 얘기가 없다. 머슥해진다.
조용히 뒤로 빠진다.
동진이 준표한테 간다.
준표를 잡아끈다.
아줌마1 : 너 이혼했다며?
동진 : (어색하다) 어
아줌마2 : 쯧쯧....어떡하다가...왜 헤어졌어?
동진 : 그게...
아줌마1 : 바람폈구나.
동진 : 아니야. 잠깐만.
준표를 잡아끈다.
아줌마들, 쯧쯧쯧, 노골적으로 불쌍한 얼굴로 동진 쪽을 본다.
동진, 준표를 끌고 구석으로 간다.
동진 : 입싼 자식.
준표 : 내가 말 안했어.
동진 : 가자.
준표 : 왜 재밌는데?
동진 : 재밌긴 뭐가 재밌어?
아줌마2 : 준표야. 일루와봐,
그새 아줌마 그룹에 새 얼굴이 들어왔다.
준표 : (동진에게) 잠깐만.
준표. 신났다.
동진 : 야. 나먼저....
준표. 듣지도 않는다.
동진, 문쪽으로 가는데,
그순간 문이 열리고, 여자가 들어온다.
동진의 눈에는 그모습이 슬로우로 보인다.
지적이고, 우아해 보이는, 기네스 펠트로 느낌의 여자가 주위를 둘러보다가 동진과 눈이 마주친다.
동진. 숨을 멈춘다.
S#56. 학교 운동장(낮-과거)
육상부 연습중이다.
단거리를 달리는 여자아이. 허들을 뛰어넘는 모습이 환상적이다.
곧게 뻗은 다리. 찰랑거리는 머리.
누군가의 시선이 그녀를 향하고 있다.
(동진) : 나이드는게 슬픈건 더 이상 꿈을 가질수 없기 때문이다.
내일이 기다려지지 않고, 1년뒤가 지금과 다르리라는 기대가 없을때.
S#57. 옥상(낮)
망원경으로 그녀를 바라보는 중학생 남자아이.
동진이다.
동진의 망원경 그녀를 쫓는다.
여자아이가 시선을 느끼고 동진쪽을 바라본다.
동진. 그대로 숨다가 망원경에 얼굴을 부딪친다.
(동진) : 우리는 하루를 살아가는게 아니라 하루를 견뎌낼뿐이다.
S#58. 호프집(밤)
마치 옛날처럼 여자아이가 동진을 쓰윽 돌아본다.
남자들의 시선도 새로 나타나는 여자에게 쏠렸다.
(동진) : 연애란 어른들의 장래희망 같은 것이다.
내일을 기대하게 하고 미래를 꿈꾸며 가슴 설레게 하는 것.
여자 : (동진에게 다가오며) 이동진?
동진 : .....어
여자 : 오랜만이네. 나 기억나?
동진 : (고개를 끄덕인다) 정유경.
유경이 동진을 향해 웃는다.
준표가 다가온다.
준표 : 어어...정유경.
유경 : (못알아본다) 어? 어....미안.
준표 : 공준표. 젤앞자리에 앉았었잖어.
유경 : (예의상) 아. 그래....
준표가 동진을 툭 친다.
준표 : 좋겠다.
동진 : (얼굴을 붉힌다) 뭐가?
유경이 준표와 동진을 번갈아본다.
준표 : 애가 너 좋아했었잖어.
동진 : (거짓말말라는투로) 아. 짜식은....
준표 : 연애편지 써갖고 나한테 검사받은 주제에...
동진 : (준표를 밀어낸다) 너 저기 가서 놀아. 너 부른다.
준표. 헤헤 웃으며 밀리는척 사라진다.
동진과 유경, 나란히 서서 잠깐의 침묵이 흐른다.
동진 : 나 좀 변했는데 어떻게 알아봤어.
유경 : (바에 등을 기대고 서서 아는 얼굴을 찾으며) 나도 너 좋아했었거든.
동진. 유경을 바라본다.
유경이 동진을 보며 슬며시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