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마음 호수요 그대 노 저어 오~~~~~
내 마음은 호수요 그대 노 저어 오, 나는 그대의 흰 그린자를 안고 , 옥같이
그대의 뱃전에 부서지리다, 내마음은 촛불이요 그대 저 문을 닫아 주오
나는 그대의 비단 옷자리에 떨며 고요히 최후의 한 방울도 남김없이 타오리다.
내마음은 나그네요 그대 피리를 불어주오. 나는 달 아래 귀를 기울이어
호젓이 나의 맘을 새이오리다, 내마음은 낙엽이요 그대의 뜰에 머무르게 하오.
이제 바람이 일면 또 나그네 같이 외로이 그대를 떠나 가리다.
"김동명시.. 김동진 작곡 " 이다. 고등학교 때 음악 선생님을 잘 만나 "고" 1 학년
때 배운 가곡이다. " 김동진 "은 1913년 평안남도 " 안주 " 에서 태어났다.
숭실전문학교를 졸업한뒤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고등음악학교에 입학후 1938년 졸업했다.
당시 조선인 음악가가 많이 활약하고 있던 만주의 신경[지금의장춘(長春) ]으로 가서
교향악단 바이올린 주자가 되었다. " 가고파 "를 작곡 하기에앞서 숭실중학 3 학년 때
"봄이오면 "을 작곡 했는데 이 곡도 지금까지 애창되고 있다.
"내마음"은 김동진의 고향인 안주에서 소학교 교원을 한 김동명이 쓴 시다. 김동진은 이 시를
매우 좋아해 늘 애송 하고 신경에서 음악 활동을 하면서 그 추억은 더 깊어졌다.
만주는 독립 투쟁의 본거지이며 가슴에 복바쳐 오르는 울분과 저항의 누를 길이 없었다고 했다
그런 심경을 음악으로 달래고 있던 김동진은 (내마음) 작곡에 몰두했다,
김동진은 매일 호수가를 산책하면서 곡상을 역어나갔다.그러나 좀처럼 이미지가 떠 오르지 않았다.
그러던 1944 년 어느날 신경 번화가를 걸어가다가 멜로디가 떠올라 필기구를 가지고 있지
않었으므로 흥얼거리며 거처로 돌아왔다.
멜로디릉 오선지 위에 옮겨놓고 그날 밤 창가에 귀뚜라미 소리를 들으며 잠을 한숨도 자지를 못했다고
한다.마침 그곳에와 순회 공연을 하고있던 " 김천애 " 와 "이인범 "그에게 악보를 받아 자신의 레퍼토리
에 넣었다,그 곡은 서구적인 기교를 구사한" 내마음은" 부르기가 몹시 어려웠다.
처음에는 별로 많이 보급되지 않았지만 이윽고 학생층을 중심으로애창되게 되었다.
"가고파"는 숭실전문학교 2학년 재학중 1932 년. 19 세 에 작곡한 곡이며. "수선화 " "파초"도 작곡 했으며
해방을 갈망하고 있던 민족의 비원이 수선화에 담겨 있다,
해방후 오페라 "춘향전"을 작곡했으며,그 오페라 나도 관람을 했다, 김동진은 주로 "이은상"의 시를
작곡했다, 가고파는 오느날 한국 사람이 애창하는 가곡이며 이은상의 고향에는 가고파의 노래비가 있다
해방전 시인들 작곡가는 민족의 울분을. 표현한 시 이고. 이 시에 곡을 부쳐 보급한 작곡가이자 애국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