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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 내려온다, 짐생이 내려온다...별의별 인간세상, 호랑이로 풍자한 유성안 작가
까치와 호랑이
우리나라 민화에 가장 많이 등장한 그림의 하나다.
이런 그림을‘호작도(虎鵲圖)’라한다. 까치는 반가운 소식을 전해주는 새로, 호랑이는 용맹(勇猛)과 기개(氣槪) 그리고 잡귀(雜鬼)를 몰아내고 재난(災難)을 막는 동물로서의 좋은 일이 많이 생기고 나쁜 기운을 막는다는 의미에서 많이 그려지고 있으며, 그 의미를 담아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나타내 보이고 있다.
호작도에 등장하는‘까치와 호랑이’와 관련에서는 여러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호랑이는 탐관오리(貪官汚吏)와 같이 힘과 권력이 있는 사람을 의미하고 까치는 평민을 대표한다는 의미로 호랑이는 바보스럽게 표현되고 까치는 당당하게 묘사하여 호랑이가 까치에게 쩔쩔매는 모습을 표현하여 조선사회를 해학적(諧謔的)으로 비판한다고 보는 견해가 있으며, 까치는 좋은 소식을 전해주는 길조(吉鳥)로 길흉화복(吉凶禍福)을 관장하는 서낭신이 미처 손길을 닿지 않은 곳은 까치를 시켜 호랑이에게 전달한다고 하여 호랑이, 까치, 소나무의 결합은 길상(吉祥)과 벽사(辟邪)의 기능을 가진다는 믿음이 있었다.
호작도는 정초에 액운(厄運)을 막고 좋은 일만 생길 것을 축수(祝壽)하는 의미로 조선시대에 신년을 맞이하여 붙이는 일종의 새해맞이 그림인 세화(歲畵)에도 많이 그려졌다고 한다.
부리부리한 눈으로 입을 벌리고 위협적인 자세를 한 호랑이와 여기에 대항하고 있는 까치 도상(圖像)을 그린 경우, 우스꽝스럽게 보이는 바보 호랑이와 영리하고 당당하게 묘사된 까치 도상이 대조된 경우도 있다.
우리 문화에서는 친근감 상징을 가지는‘까치와 호랑이’를 등장시켜 액(厄)막이, 길상(吉祥), 풍자(諷刺), 기복(祈福) 등 다양한 기능을 가진 시각문화로 자리 잡았다는 점에서 의의를 갖는다.
중국에서 호작도는 연초에 선물용으로 그려진 세화로 시작되었지만, 조선에 들어온 호작도는 조선 후기 민중들의 애환과 꿈을 담은 민화(民話)로 봉건사회를 비판적으로 다룬‘해학적 리얼리즘’이 되었다. 조선 후기는 외척 권세가들이 권력에 눈이 멀어 새로운 시대적 변화를 감지하지 못하고 낡은 지배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부정부패를 일삼고, 탐욕스런 탐관오리(貪官汚吏)들의 횡포가 심해졌다. 호작도는 이러한 사회상을 해학적으로 담아냈다.
부패한 양반을 상징하는 호랑이는 지상에서 아무리 힘이 세도 하늘을 날 수 없고, 서민을 상징하는 까치는 힘은 없지만 자유롭게 하늘을 날 수 있다. 연비어천 어약우연(鳶飛於天 魚躍于淵), 즉 저기 위의 하늘을 보면 솔개가 훨훨 날으고, 아래 연못을 들어보면 고기가 펄펄 뛰고 있지 않느냐는 뜻이다. 자연에서 이들은 우열의 관계가 아니라 차이의 관계이다. 현실에서 서민들은 당하는 입장이지만, 민화에서 가치는 호랑이보다 우월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것은 고통 받는 서민들의 상처에 대한 심리적 치유이자 양반들과 고관대작들에 대한 엄중한 경고였다.
조선시대 민화 호작도, 대부분의 호작도에 등장하는 호랑이는 부패한 양반계층을 풍자하여 우스꽝스럽게 그려지는 게 보통이다. 그러나 유성안 작가가 그려낸 호작도는 호랑이의 얼굴이 멋스럽고 잘 생겼으며, 호랑이 털까지도 무척 정성들여 그린 것이 마음에 든다.
조선시대의 풍속을 기록한 동국세기(東國世紀)에 의하면 새해에 복을 들어오게 하고 액운을 막는 그림을 주고받는 풍속이 나오는데 가장 보편적으로 퍼졌던 소재는 까치와 호랑이, 즉 호작도(虎鵲圖)였다. 민화 호작도는 보통 호랑이, 까치, 소나무로 구성된다. 유성안 작가는 현대적 감각으로 나름의 풍자했다.
사람들은 호랑이를 아주 무서운 동물로 생각했고, 그 외모에서 풍기는 위엄 때문에 신성한 동물로 여겼다. 까치는 대표적인 길조(吉鳥)이며, 아침에 울면 귀한 손님이 오거나 기쁜 소식이 오리라 믿었고, 소나무는 겨울에도 푸르고 그 기상이 살아있다 하여 예로부터 한겨울 정월(丁月)을 상징했다. 그러므로 이들이 모두 나오는 호작도는 나쁜 기운은 물러가고 기쁜 일만 가득하게 해달라는 의미로 대문에 붙였다.
까치와 호랑이, 이 두 등장인물을 뮤직페스티벌, 쿠카린, 게임, 힙합스타일에서 모티브를 얻어 현재적인 호작도를 현대적 감각으로 재탄생시킨 것처럼 유성안 작가의 호작도가 신선미를 던져주고 있다.
범 내려온다.
범이 내려온다.
송림 깊은 골로 한 짐생이 내려온다.
한때 온 나라를 들썩이게 했던‘범 내려온다’노래가 우리 국민을 웃게 울고 하게 했다. 국악그룹 아날치의 노래‘범 내려온다’중 한 대목이 임인년(壬寅年)을 맞아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그런데 이날치의 노래만 관심 끄는 것을 아니다. 유성안 작가의‘호랑이가 본 인간세상’주제 그려낸 작품 또한 흥미를 낳고 감성을 자극하고 있다.
어흥!
범 내려온다.
어흥!
흥 올라간다.
한쪽에서는 범(虎) 내려온다고 하니 또 한쪽에서는 흥(興) 올라간다고 맞장구를 치고 있다.
토끼의 간을 찾아 뭍으로 기어 나온 자라가 턱에 힘이 빠져‘토생원(兎生員)’을 찾는다는 것이 그만‘호생원(虎生員)’을 부르는 바람에 호랑이가 산 아래로 달려 내려온다는 판소리 수궁가(水宮歌)의 한 장면을 풀어냈듯이, 유성안 작가도 토생원을 찾는다는 것이 그만 호생원을 불러들이는 인간 세상에 호랑이를 등장시켜 해학적(諧謔的)으로 풍자(諷刺)했다.
수궁가에서 등장한 호랑이는 어리석게 희롱당하는 익살스러운 동물로 등장한다. 맹수 중 맹수로 여겨지는 호랑이는 용맹과 기개의 표상이면서 때론 이렇게 해학의 상징도 했다. 그렇듯 유 작가도 자신의 작품을 통해 호랑이를 다른 등장인물과 함께 해학적으로 풍자했다.
오랫동안 우리의 삶과 함께하며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대표 동물로 자리매김한 호랑이다. 신화, 전설, 민담 등에 많이 등장한 호랑이는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속에서 호랑이를 찾기란 어렵지 않았다. 십이지(十二支) 중 호랑이는 한국인에게 가장 친근한 동물로도 꼽힐 정도로 우리 삶에 자주 등장한다. 2022년은 검은 호랑이의 해, 임인년(壬寅年)이다.
호랑이를 통해 나쁜 잡귀를 몰아내고 각종 재난을 막으면서 삼재(三災)를 없애기 위해 10만전 이상 함께한, 매년 정월 초하루면 호랑이 그림을 대문에 붙였다. 액운(厄運)을 물리치고 복을 불러들이기를 소망하며 대문에 붙인 민간의 세시풍속(歲時風俗)으로서 호랑이를 그러냈고 대문 등에 붙여났다. 대궐과 가내 안녕 그리고 복(福) 받기를 기원하기 위해 호랑이 부적(符籍)을 썼다. 산신(山神), 산신령(山神靈), 산군(山君) 등으로 불리며 숭배의 대상이 됐던 호랑이는 민족의 든든한 수호신(守護神)으로 여겨졌다. 마을 뒷산을 지키는 산신(山神)에서부터 시공간을 지키는 십이지(十二支), 우주의 질서를 지키는 사신(邪神, 서쪽의 백호)으로까지 어우른다.
유성안 작가가 그린 호랑이와 인간들의 군상은 어떤 의미일까? 어떤 이야기들을 담아낸 것인가?
호랑은 한자의 호(虎)와 랑(狼), 즉 범과 이리가 합쳐진 이름이다. 무서운 동물을 뜻하는 일반적 단어였으나 점차 범이라는 특정 동물을 일컫는 명칭으로 굳어졌다.
한국호랑이
호랑이 담배 피던, 까치와 호랑이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등장한 호랑이의 그림은 예나 지금이나 그림 속에 등장한 소재들은 친근감을 갖게 한다.
호랑이의 모습과 성격은 다양하다. 영웅을 수호하는 신격화된 호랑이, 은혜를 갚을 줄 아는 신의의 호랑이, 포악하며 배은망덕한 호랑이, 어리석고 바보스러운 호랑이 등 여러모로 한국인에게 호랑이는 우리 민족의 정서와 문화를 간직한 동물이다.
유성안 작가가 그린‘호랑이가 본 인간세상’ 주제로 한 작품은 화투호상도(花鬪虎象圖), 인간호상도(人間虎象圖)를 그려냈다. 산신도(山神圖), 맹호도(猛虎圖), 용호도(龍虎圖), 월하송림호족도(月下松林虎族圖), 까치와 호랑이 같은 그림과는 전혀 다른 의미로 표현했다. 호작도(虎鵲圖)지만 기존의 호랑이와 까치 그림과는 다른 느낌이다. 까치와 호랑이의 호작도는 작가미상이 대부분이지만 유성안 작가는 자신의 이름을 밝히며 당당하게 사회적 세태를 반영하여 풍자(諷刺)했다.
익살스런 표정으로 친근감을 더 느끼게 한다.
어~~흥!
떡 하나주면 안 잡아먹~~~지
작품마다 하나 같이 재미있다.
범보다 무서운 곶감, 동화집에 나오는 호랑이 이야기 같은 호랑이 관련한 그림을 그려낸 유성안 작가의 작품은 어느 작가도 표현해내지 못한 독특한 발상과 구성으로 그려져 임인년 호랑이의 해를 맞아 이 작품에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다.
호랑이를 잡은 도둑 등으로 전하는 동물담(動物談), 조선동화집(朝鮮童話集)에는 어느 날 호랑이가 마을에 내려와 우는 아이를 달래는 어머나 소리를 엿듣는다. 어머니가 호랑이가 왔다. 울지 말아라 하는데도 아이가 계속 울지 호랑이는 내심 호랑이도 무서워하지 않는 아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어머니가 곶감 봐라, 울리 말아라 하니 아이가 울음을 그친다. 그러자 호랑이는 곶감이라는 놈이 자기보다 무서운 존재라고 생각하였다. 이때 소도둑이 들어왔다가 호랑이를 소로 착각하고 등에 올라탔다. 호랑이는 이놈이 틀림없는 곶감이라고 착각하고 죽을힘을 다하여 달아났다. 동이 트지 도둑은 호랑임을 알고 급히 뛰어내리고 호랑이도 이제 살았다하고 마구 뛰었다.
송하맹호도(松下猛虎圖), 월하송림호족도(月下松林虎族圖)만 걸작인줄 알았는데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유 작가의 작품을 보니 그런 생각이 들게 한다.
유성안 작가의 호랑이가 본 인간세상
화투장, 호랑이, 목어, 장승, 솟대, 사람, 개 등장
시사성 만평, 시대상황 비판과 안녕.평화.발전 기원
유 작가는 화투(花鬪)를 이용한 호작도 같은 그림은 두루미의 송광(일광)과 매조의 이단 십끗, 벚꽃의 삼광에 학과 함께 또는 벚꽃과 함께 또는 새와 함께 호랑이를 더 삽입시켰다.
송광은 동물로는 두루미, 식물로는 소나무, 사물로는 해다. 일본의 문화로 새해가 되면 카도마츠라고 해서 집 앞에 적당한 크기로 자른 소나무를 장식한다. 늘 푸른 소나와 장수를 의미하는 학과 밝은 태양을 함께 그린 것은 수복강녕(壽福康寧)의 의미를 담았으며, 송학을 1월의 화투로 삼았다.
송학의 화투에 호랑이를 등장시킨 것은 잘나가는 사람들은 놀고 지내는데, 그렇지 못하는 사람들은 힘들어하며 어렵게 살아가고 있어 자신의 건강이 위태롭고 삶이 불확실하다. 그래서 수복강녕의 의미가 담겨진 송학의 송광(松光)에 액운 막아주고 재운을 불어주는 호랑이를 등장시켜 백성들의‘수복강녕’에도 신경을 써달라는 경고카드를 내밀고 있다.
매조는 열끗에 그려진 동물은 휘파랑새, 식물은 매화, 사물은 구름이다. 이런 배치의 유래는 속후습유화가집(續後拾遺和歌集)에서 읊은 가노아소미 츠라유키의 시에서 비롯되었다. 시에서 눈이 내린다는 것을 반영해서인지 열끗에 구름을 그려 넣었다. 이는 매화와 휘파람새와 관련된 설화에서 유래됐다. 도자기를 만드는 도공이 있었는데 아내와 사별한 슬픔에 빠져 도자기를 만드는 일도 그만두었다. 아내가 죽은 무덤엔 매화가 피었는데, 어느 날 도공의 기척이 없어 마을사람들이 도공의 집에 가보니, 도공은 없고 아름다운 도자기 하나가 놓여있었다. 그 도자기 속에서 휘파람새가 나와 매회가지에 앉아 슬피 우니 아내를 그리워하던 도공의 넋이 휘파람새가 되었다는 전설이다. 매조는 2월에 해당된다.
여기에 매화나무에 휘파람새가 있는 그림에 호랑이를 등장시킨 것은 양반 등 고관대작들은 호의호식하며 지내지만, 백성들은 어렵게 살아 살려달라는 아우성이 대궐(大闕) 또는 궁궐(宮闕)을 에워싸며 원성을 높이고 있는, 백성들의 안타까운 현실을 보고도 못 보는 척, 못 듣는 척한 그들의 그릇된 행동을 고발하고자 새가 있는 화투에 그린 그림은 마치‘까치와 호랑이’를 연상케 한다. 마을 입구의 장승은 고을의 잡귀 침범을 막아내려고 서 있고, 한 노인이 이 고을에 들자 고을사람들의 통곡소리에 걸음을 멈추고 바라만 보고 있다. 도도체 무슨 일이 생기는 건지, 장승은 대답하지 않는다.
벚꽃은 광(光)에서 둘러싼 것은‘만막(幔幕)’이라 하여 식장.화장 따위의 주위에 치는 장막(파티션)이다. 식물은 벚꽃이고 사물은 만막인데 이 패에는 동물이 빠져있다. 만약 안에서 술을 마시고 노는 사람이 생략되었는데 이게 동물에 해당된다. 광에 그려져 있는 것은 흔히 일본 사극 등에서 볼 수 있는 가게 앞 등에 걸려있는 벚꽃 무늬 장막이다. 3월에 벚꽃이 개화해 세 번째로 삼았다.
유 작가가 삼광에 그린 화투 그림은 수많은 백성들이 대궐과 궁궐을 에워싸는 모습이다. 양반이나 고관대작은 벚꽃구경이나 즐기는 등의 꽃 속에서 유흥(遊興)과 향락(享樂)을 즐기고 있어 이 또한 범이 내려와 혼쭐을 내주겠다는 비판적 시각에서 양반과 고관대작들에게 경고카드를 보인 것이다. 호랑이는 "이래야 되겠습니까?" 하며 바로 잡아야 된다며 으르렁 거리는 표정이다. 그런 잘 못한 일에 대해 포박하겠다는 듯이 매서운 눈매를 한 채 날카로운 치아를 드러내고 있다.
이밖에도 여러 화투 그림을 이용해 호랑이와 함께 풍자적(諷刺的)으로 그려냈다.
또한 장기를 두고 놀고 있는 사람들과 구경하는 사람들과 함께 한 쪽에서는 흥겹게 춤을 추고 있는 장면에 호랑이와 목어(木魚)가 등장한다. 춤추는 남녀는 마치 장승을 보는 듯하다. 이러한 광경을 본 호랑이는 웃어야할지 울어야할지 심상이 궂은 얼굴을 하고 있다.
목탁이 된 물고기인 목어, 물고기가 눈을 뜨고 자기 때문에 스님들이 수행 정진할 때 졸지 말고 눈을 뜨고 열심히 공부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목어는 스님이 개으른 제자가 공부는 하지 않고 장난을 일삼자 스님은 여러 번 좋게 타일렀으나, 제자는 스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정진하려는 모습을 도무지 찾아볼 수 없어 할 수 없이 스님은 그 제자에게 벌을 주기로 하고, 신통력을 부려 그를 물고기로 만들어 호수 속에 던지고 말았다. 그리고 반성을 하면 다시 사람으로 되돌려 주겠으니 참회하고 근신하라고 타일렀다. 물고기가 된 제자는 반성은커녕 처음 보는 물속을 신기하게 구경하며 마음대로 헤엄쳐 다니면서 놀기만 할 뿐이었다.
목어는 절의 처마에 매달아 소리를 내게 한다. 목어는 소리를 듣고 깨달음을 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악행을 범한 승려가 그에 응당한 벌을 받는 것도 인간사이고, 그걸 용서하고 포용해주는 것도 인간사이다. 거기에 감복하여 깨달음을 얻는 것도 인간이사이다.
작품에서 등장한 목어는‘깨달음’의 의미를 담고 있으며, 잘못하고 있는 승려를 꾸짖는 스님처럼 호랑이는 교화(敎化)를 시키는 엄한 스승이다. 인간세상의 무질서와 문란함과 비정상적인 일들을 바로 잡는 일에 호랑이가 나서고 있다. 여기에 호랑이의 따끔한 충고와 조언을 듣고, 자신의 잘못을 깨우치고 참회(慙悔)하라는 뜻에서 목어도 함께 한다.
목어의 소리가 천등소리라고 할까, 천둥 번개 몰아치면 더욱 낮게 움츠린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믿는 건 피뢰침이 아니라 발바닥이다. 웃어야할 낮은 사람은 울고, 울어야할 높은 사람은 웃는다. 인과응보(因果應報)는 정의와 양심이 살아있는 곳에서만 숨을 쉰다. 그러므로 인과응보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사회라면 그 사회는 정의와 양심이 죽은 사회이다. 용서와 깨달음이 없이 오직 분노와 증오만이 소용돌이치는 탁류(濁流)이다. 독선과 편견의 나무를 등에 키우면 고통을 감내해야하는 고해(苦海)이다.
유 작가는 목어를 등장시킨 것은 물고기가 잠을 잘 때 눈을 감지 않고 하듯, 수행하는 사람이 졸거나 자지 말고 깨어서 밤낮없이 정진(呈進)하라는 뜻과 잘잘못을 범할 때는 바로 반성(反省)하는 자세를 취하도록 한, 이 목어소리를 듣고 깨우치라는 의미에서 목어를 그림에 등장시켰다. 귀 기울이고 눈을 크게 떠 보라며, 지금 누군가 목어를 두드리고 있다. 지금 목어가 누군가를 지켜보고 있다고, 유성안 작가는 작품으로 말해주고 있다.
요즘 돌아가는 사회가 엉망진창일 정도로 어지럽고, 세상은 힘들다고 하지만 고작들은 무사태평이요, 여유자적하며 지내는 사회적 불균형을 보고 호랑이는 어흥 한다. 사회적 실태를 반영한 작품이다. 유 작가는 호랑이와 목어를 등장시켜 자신들만 생각하며 즐기는 사람들에 대한 고발과 함께 각성하라며, 비리(非理)를 저지르거나, 향락(享樂)에 빠지거나, 권력(勸力)을 행세하거나, 잘 난체 하거나, 업신여기거나, 무시하거나, 자기만 살겠다고 호의호식하거나, 시대 상황을 깨닫지 못하고 제 멋대로 살거나, 남을 생각하지 않거나, 오로지 자신만을 생각하거나, 양심을 저버리거나, 무지하거나, 세상물정 모르거나, 인간의 도리를 저버리거나, 범죄를 저지르거나, 법을 어기거나, 예의가 없거나, 규칙을 어기거나, 공경심이 없거나, 가정을 소홀히 하거나, 게으르거나, 거만하거나, 사명감과 애국심이 부족하거나, 기본에 충실하지 않고 지내는 인간들의 작태를 꼬집는 비판적 시각으로 본 도형(圖形)이다.
또한 원두막 그림은 원두막에서 술판을 벌이거나 차로 여행이나 한가롭게 다니는 사람들에 대한, 현 시대가 코로나19 등으로 삶이 팍팍해지고 있는데도 가진 자, 권세를 누린 자, 여유로운 자들은 전혀 개의치 않고 남이야 어찌됐던 나만 재미나게 살겠다며, 오로지 즐기기 위한 인간들의 현실을 반영한 그림이다. 이런 작태에 범 내려온다는 표현을 한 것이며, 범은 사나운 표정으로 인간의 작태에 포효(咆哮)하고 있다.
이러한 술판, 놀 판의 작태에 엄한 호랑이가 나물하며 잡아가겠다는 표정이다.
그래도 범 내려온 줄도 모르고 술판을 벌이고 있고, 남녀가 춤을 추며 놀고 있고, 여행이나 즐기자며 떠나는 이 작태에 대해 호랑이는 더욱 무서운 얼굴을 한다. 호랑이의 따끔한 경고에 인간들은 그 자리에서 벗어나려고 서두르고 있고, 화려하게 치장하며 남은 남녀는 호랑이의 무서운 표정에 그만 움츠리며, 군중들이 보는 가운데 호랑이한테 혼쭐나고 있다. 그림에서 호랑이는 공직(公職)으로 보면 경찰, 감사원, 민정수석이다. 예로 말하면 암행어사다.
호랑이는 인간들이 현실을 파악하지 못하고 자신만의 삶을 즐기려는 것에 대해 그럴수록 무섭게 표정을 해된다.
한편 작품에 등장한‘장승과 솟대’는 위에는 장승을 향락(享樂)에 빠진 장승으로 서술했지만, 다른 의미에서는 남근숭배(男根崇拜)와 사찰의 토지경계 표시의 장생고표지설(長生庫標識說)과 벼농사 기원 등의 목적으로 세웠던 마을장승은 동제의 신으로 수호(守護)와 벽사(辟邪).축귀(逐鬼).방재(防災).진경(進慶)의 기능을 지닌다고 풀이하고 있다.
또한 비보(裨補) 장승은 풍수지리설에 의한 보허(補虛)와 진압(鎭壓)의 기능을 지닌다고 한다. 또는 남성 성기를 상징하여 잉태(孕胎)를 시켜주기도 하고, 반대로 코나 눈을 갉아서 감초와 섞어 삶아 낙태(落胎)의 비방약으로 사용되기도 한다고 밝히고 있다.
그밖에 소원에 따라 풍농(豐農).풍어(豊漁).건강(健康).소원성취(所願成就) 등의 신앙대상물이 되기도 한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마을에는 수호신을 모신 상당(上堂)으로서 산신당(山神堂).서낭당 등이 있고, 마을 입구에 하당(下堂)으로서 장승과 솟대와 돌무더기 서낭당이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솟대는 민강신앙의 목적 또는 경사가 있을 때 축하의 뜻으로 세웠다. 나무나 돌로 만든 새를 장대나 돌기둥 위에 앉혀 마을 수호신(守護神), 즉 액막이와 풍농.풍어 기원, 비보(裨補), 급제(及第) 기념 등으로 삼았다.
천하대장군(天下大將軍), 지하여장군(地下女將軍)으로 주로 세웠던 장승은 마을마다 직접 깎아 만들어 세웠다. 악귀ㅏ를 쫒는 영험함을 기대하며 형상 궂고 해학적인 얼굴로 조각해 세웠다.
장승은 이와 같이 세운 목적이나 위치에 따라 여러 기능을 지니고 있다. 장승은 단순한 경계표시나 이정표의 구실과 함께 잡귀와 질병으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해주는 수호신으로써, 때로는 개인의 소원성취를 기원하는 대상으로서의 신앙적인 성격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신앙의 대상이기 때문에 장승은 신성시하며 함부로 건드리거나 손대지 않았던 장승이다.
유성안 작가가 자신의 작품에 등장시킨 장승과 솟대는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을 할 수 있다. 하나는 경계표시와 잡귀.질병 보호의 수호신과 액막이.풍농.풍어.소원성취 등의 의미가 있으며, 또 하나는 퇴폐적인 향락에 빠진 인물로서의 다뤘다.
그래서 고관대작들이 놀판, 술판을 벌이거나 유희에만 빠져있는 것을 호랑이가 나물하고 목어가 깨우치라고 하고 있는 반면, 또 한편으로는 백성들이 굶주리고, 탐관오리들의 부정부패, 지주들의 수탈과 관직자들의 비리가 만연하여 나라가 파탄 지경에 이르자 백성들이 마을과 나라를 살려달라는 강력한 주문과 함께 백성들이 직접 지키고, 바로 잡고, 올바르게 세우기 위해서 나서는 데 혼을 내주는 호랑이와 보호해주는 장승과 솟대를 유 작가는 작품 소재로 다루기도 했다.
유 작가의 작품은 양면성을 엿볼 수 있다. 호랑이는 못된 인간들을 잡아먹거나 혼내주겠다며 무서운 존재로서 등장하기도 하고, 마을사람들과 친근감 있게 마을을 지키는, 영험한 상서로운 기운을 불어주는 착한 동물로 등장한다. 장승은 마을을 지켜주고 풍요를 기원하는 의미로 등장하지만, 장승은 타락(墮落)한 남녀로 변신되어진다. 솟대는 그저 마을과 고을, 고관대작과 백성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박수를 보내줄지 아니면“저 나쁜 것들”이라고 말해야할지, 솟대는 마을을 지켜주고 경축(慶祝) 소식을 알리는 역할이지만, 돌아가는 상황을 봐서는 고민스러울 밖에 없고 난처한 표정이다.
중요한 것은 유 작가가 호랑이.목어.장승.솟대.원두막.장기판.화투 등 전통문화 상징물들을 작품에 등장시켜 요즘 돌아가는 시대상황을 그려내면서 소재들을 통해 빗대, 은유(隱喩)하며 꼬집었다는 것이다. 장승은 좋은 의미로 사용되지만 여기 작품에서는 유흥(遊興)과 향락(享樂)에 젖은 도시, 타락(墮落)과 부패(腐敗)에 빠진 사람의 이런 부류로써 호화(豪華)스럽고, 사치(奢侈)스럽고, 허세(虛勢)부리고, 쾌락(快樂)생활하며 교만(驕慢) 하는 상류층 아저씨와 아줌마로 그려지고 있다.
유성안 작가 민화, 송하맹호도 못지 않다
유성안 작가가 그린 호랑이 그림은 세간에 호랑이 그림하면 떠올리게 되는 유명한 김홍도와 그의 스승인 강세황이 합작으로 기린 18세기 작(作)‘송하맹호도(松下猛虎圖)’에 버금가는 필력과 구도를 지닌 명작이다.
까치와 호랑이 민화
달라붙은 새끼들 앞에서 예민하고 피곤한 표정을 짓는 어미 호랑이, 선조들이 모두 호랑이로 통칭하는 점박이 표범과 줄무늬 범이 익살스런 모습으로 대화를 나누는 듯한 모습들이 웃음을 자아낸다.
민화의 가장 큰 장점은 민족공동체(民族共同體)에 바탕을 둔 그림이란 것인데, 신분(身分)이나 빈부(貧富), 사상(思想)의 격차(隔差)를 넘어 우리 민족 전체가 공감하고 좋아하며, 대량으로 소통시킨 그림이 바로‘까치와 호랑이’그림이다. 까치와 호랑이 그림은 모든 사람들이 부담 없이 수용할 수 있는‘액(厄)막이와 경사(慶事)’의 내용을 가진 세화(歲畵)이다. 세화는 신년을 축하하기 위해 왕과 신하들이 서로 주고받던 그림으로, 세화풍습의 존재와 십장생이라는 그림의 화제 그리고 왕으로부터 하사받은 송축용의 용도를 함축하고 있으며, 요즘으로 말하면 연하장이다.
까치와 호랑이 그림에는 양반들의 고급문화와 백성들의 민간신앙이 서로를 내치지 않으면서 자연스럽게 결합되어 있다. 이런 내용의 이중성과 복합성, 고급문화와 대중성의 결합이 까치와 호랑이 그림을 인기 반열에 올려놓은 원동력이었다. 까치와 호랑이 그림의 형식적 특징은 다양한 변주에 있다. 원래 인기(人氣)가 원본이고, 아류(亞流)가 판을 치기 마련이다. 하지만 어떤 것이 원본이고 아류인지 구분하기란 쉽지 않다.
까치와 호랑이의 호작도(虎鵲圖)는 까치는 등장하지 않지만 18세기 호랑이 그림의 특색을 볼 수 있는 예다. 호랑이의 표현이 매우 극적이고 사실적이다. 꼬리를 곧추세우고 등을 올리고 가만히 얼굴을 돌려 눈에 노란 불을 켜고 앞을 응시하며 여차하면 공격하기 일보 직전의 긴박한 순간을 표현했다. 김홍도 그림의 호랑이 터럭 표현은 모골(毛骨)이 송연한 긴장감이 감돈다.
19세기에 들어와 민화 호랑이 그림에서 까치가 등장하고 더욱이 까치가 단순한 배경으로 머문 것이 아니라 호랑이와 까치의 관계가 적극적으로 설정된다.
까치가 새 소식을 상징하며 복을 가져다는 주는 길상의 그림으로, 호랑이는 수호신으로 등장하는 데 이러한 상징과 더불어 당시 사회를 풍자하는 이야기로 다뤘다. 그렇기에 호랑이와 까치가 싸우거나 화해하는 인간적인 이야기로 그려지는 것이다. 악귀를 쫓는 벽사(辟邪)의 상징 호랑이가 바보 호랑이로 전략하고, 새 소식을 전해주는 까치는 더욱 당당해진다. 그것은 당시 사회의 부조리를 비판하는 풍자이다. 호랑이는 양반이나 권력(勸力)을 가진 관리를 상징하고, 까치는 서민(庶民)을 대표한다.
까치가 호랑이게 대드는 구성을 통해 서민들은 신분에 대한 불만을 해소하는 카타르시스(Katharsis, 무의식적으로 억압받고 있는 감정.갈등.욕구 등의 수용적, 공감적 환경에서 자유롭게 표출되는 것으로서 심적 긴장을 완화하는 방법, 즉 정화)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실제 서민들 사이에는 까치와 호랑이 설화가 유행했는데, 그 내용은 가치가 지혜로 힘센 호랑이를 골탕 먹임으로써 신분의 차이에서 빚어지는 억울함과 푸대접을 항변하는 것이다. 급격하게 나빠진 까치와 호랑이의 관계 속에서 유성안 작가의 사회의식이 날카롭게 번득인다.
까치와 호랑이 이야기를 동물이 아닌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의 이야기로 환원시킨 민화의 특유의‘스토리텔링적’속성에 기인한 바가 크다. 대립관계 또는 우호관계로 설정하면서 당시 사회를 풍자하는 도구로 삼았던 것이다. 그렇듯 모든 작가들도 동물의 왕인 호랑이를 거세(巨勢)시켜‘바보 호랑이’로 만든 것은 바로 그러한 사회적 풍자를 보여 주는 상징적 예이다. 해학을 통해 강자의 권위를 단숨에 끌어냄으로써 평등을 지향하는 서민의 세계관을 표출하고 있다.
한국인에게 호랑이는 사람을 해치고 잡아가는 두려운 존재이자, 산신 같은 신적인 존재이면서 반대로 쾌활하고 멍청하기도 한 인간적인 존재이기도 하다. 호랑이에 대한 존재가 무서우면 무서울수록 그것에 대한 반항도 클 수밖에 없다. 유 작가는 다른 작가들처럼 호랑이를 해학적 풍자를 통해서 은유적으로 나타내는 지혜를 발휘하기보다는 무서운 존재에 대한 반감을 직접 표출해 보이는 그림으로 표현했다.
유성안 작가가 그림 호랑이 그림은 가진 자, 배운 자, 권세를 누리고 있는 자인 양반(兩班)들이나 고관대작(高官大爵)들의 작태에 맞서는 데 호랑이를 등장시키며 현 사회를 비판하는 사회비판적 메시지를 담은 그림, 비판적 리얼리즘으로 분류되는 유 작가의 개념에 내재한 작가주의(作家主義), 지식인 예술가에 의한 창작(創作), 심지어 서민적 작업이란 문제제기로부터 벗어나 이러한 경향의 작품을 제작한 작가이다.
유성안 작가의 호랑이 그림, 그림으로 현실을 보여주는 비판적 리얼리즘은 시대를 대변한다. 사치와 향락에 고관대작이나 잘나간 분들의 귀족사회(貴族社會), 그리고 이들에게 수탈당하거나 무시당하는 민중들과 농노의 비참한 현실이라는 두 개의 사회가 존재하며 썩어가고 있다. 이러한 모순된 사회체제에 갈등하던 젊은이들은 새로운 나라를 만들기 위해 민주화운동이란 혁명을 일으켰고, 목숨을 바쳤으며 많은 예술인들은 민중의 정신적 기반이 되기 위해 문학.예술.사상 등 모든 분야에서 문화의 꽃을 피워낸다.
여기에 유성안 작가가 그 중의 한 사람으로서 백성들의 눈과 귀가 되어 대한민국의 아픈 시대상을 화폭(畵幅)에 고스란히 담았다. 그렇게 그림의 힘으로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이야기를 전하는‘스토리텔러(Storyteller)’가 되어 그는 그림을 통해 나라의 비참한 현실을 날카롭게 꼬집고 지적하여 비판하고 고발하며, 그릇된 사고와 양심, 비뚤어진 행동과 충정의 잘 못된 사회를 바로 잡고자한다. 그러면서 삶에 지친 마음들을 두루 어루만진다.
유성안 작가는 한국화를 그리는 화가이다. 이번 호랑이를 소재로 한 작품은‘시사성(時事性) 만평(漫評)’그림에 가깝다. 그 당시에 일어난 여러 가지 사회적 사건이 내포하고 있는 시대적 성격 및 사회적 성격을 말한 것으로 당대의 분위기를 반영해주고 있다. 그는 화투 등의 소재를 통해 호랑이와 함께 해학적으로 풍자했다.
범 내려온다.
범이 내려온다.
송림 깊은 골로 한 짐생이 내려온다.
국악그룹 아날치의 노래‘범 내려온다’가 유성안 작가의 그림 주제곡 같다.
김대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