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응의 건축-정기용의 무주 프로젝트
정기용 지음/ 현실문화/ \25,000원
[책 소개]
'공간의 시인' 건축가 정기용이 무주에서 펼쳐진 감응의 공공건축 프로젝트!
이 책은 건축가 정기용이 1996년부터 2006년까지, 만 10년 동안 무주에서 펼친 공공건축 프로젝트를 정리한 것이다. 마을회관, 면사무소, 공설운동장, 군청, 재래시장, 청소년수련관, 곤충박물관, 향토박물관, 천문과학관, 농민의 집, 된장공장, 보건의료원, 종합복지관, 노인전문요양권, 공설납골당, 버스정류장 등 무주에서 진행한 크고 작은 공공건축물 30여 개 프로젝트에 대한 체험을 글과 사진으로 생생히 풀어냈다.
무주 프로젝트의 핵심은 <공공건축을 통한 지역발전의 모색>이다. 정기용은 다양한 공공건축을 통해 시각적으로 척박했던 무주가 놀라운 건축문화와 공간문화를 간직한 지역으로 발전하는 데 이바지했다. 본문은 정기용이 무주 땅과 감응하게 된 사연과 각 건축물 탄생 과정이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있다.
설계하기 전의 스케치, 건축물 각각의 배치도, 조감도, 완공 전후의 사진, 현재 주민들이 건축물을 사용하는 모습도 제시하였다. 또한 지방자치단체라는 점을 부각시켜 지방에 사는 사람들의 삶의 질을 실질적으로 높이는 건축에 대해서도 논의한다. 뒷부분에는 무주 프로젝트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와 비평, 공공건축의 전망을 짚어보는 좌담회, 지역주민들이 무주 프로젝트에 대한 평가한 인터뷰를 소개한다.
☞ 이 책의 독서 포인트!
삶의 질을 중시하는 현대사회에서 '어떻게 건축을 해야 할 것인가'란 근본적 질문에 대한 기록이고 고백이다. '지역 주민에 의한, 지역 주민을 위한 공공건축물의 실현', '공공건축을 통한 지역 발전 모색'이라는 점에서 우리나라에서 공공건축 이론과 실천, 건축가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참조사례로 유용하다.
▶『서울이야기』『사람 건축 도시』에 이어 총 다섯 권으로 기획된 정기용 선생의 저작/작품집의 세 번째 책이다.
[저자 소개]
정기용
1971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및 서울대학교 대학원 공예과를 졸업했다. 1972년 프랑스 정부 초청 장학생으로 프랑스로 건너가 1975년 프랑스 파리장식미술학교(ENSAD) 실내건축과, 1978년 프랑스 파리 제6대학(UPA6) 건축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정부 공인 건축사 자격을 취득했으며 다시 1982년 프랑스 파리 제8대학 도시계획과를 졸업했다. 1975~85년 파리 소재 건축 및 인테리어 사무실을 운영했으며 1986년 기용건축을 설립했다.
한양대, 서울대, 성균관대, 한국예술종합학교 건축과에 출강했으며, 2004년 베니스비엔날레 국제건축전 한국관 커미셔너로 활동했다.
현재 성균관대 석좌교수, 문화연대 공동대표, 문화재위원으로 있으며, 한국예술종합학교 도시건축연구소(ua-sa), 도시건축집단 ubac에서 작업하고 있다. 주요 작품으로는 계원조형예술대학(1990), 효자동 사랑방(1993), 동숭동 무애빌딩(1993), 청계동주택(1995), 진주 동명중고등학교(1996), 서울예전 드라마센터 리노베이션(1996), 무주 공공프로젝트(무주군청, 공설운동장, 무주시장, 면사무소 4개소 등, 1999~2006), 영월 구인헌, 춘천 자두나무집(2000), 어린이도서관(순천, 제주, 서귀포, 진해, 정읍), 코리아나 뮤지엄 SPACE C(2003), 파주 은하출판사, 파주 열림원(2006), 김해주택(2006) 등이 있다.
[목차]
서문
들어가는 글
우연과 필연: 다섯 가지 만남의 풍경들
공공프로젝트 1. 전환기의 면사무소
1. 안성땅을 꿈꾸다
2. 진도리마을회관: 절반의 성공
3. 안성면 주민자치센터: 주민이 원하는 건축
4. 적상면 주민자치센터: 관계 맺기
5. 부남면 주민자치센터: 마을의 질서/하늘의 질서
6. 무풍면 주민자치센터: 벌판에 서 있는 풍경
공공프로젝트 2. 사람의 삶, 자연의 삶
1. 공설운동장: 감응
2. 무주군청과 뒷마당 리노베이션: 반복과 차이
3. 무주시장 현대화프로젝트: 새로운 호흡, 시대가 원하는 건축
공공프로젝트 3. 건축의 총체적 접근
1. 청소년수련관: 풍경과 집합
2. 청소년문화의집: 해를 좇는 새
3. 곤충박물관과 자연학교: 곤충과 공생
4. 향토박물관: 신성한 땅, 땅이 원하는 건축
5. 천문과학관: 백운산 줄기에 낀 반지
6. 버스정류장: 존재와 풍경
공공프로젝트 4. 농촌의 문제인가
1. 농민의집: 준비되지 않은 미래
2. 된장공장: 새로운 도전
3. 전통문화공예촌: 펼쳐진 속도
공공프로젝트 5. 지속 가능한 사회
1. 보건의료원 리노베이션: 이별의 공간에서 만나는 마지막 풍경
2. 종합복지관: 평등한 사회, 사회가 원하는 건축
3. 노인전문요양원: 따로 또 같이, 내집같은 공간에서
4. 무주 추모의 집(무주공설납골당): 영혼을 위한 밝은 집
나오는 글
1. 새로운 사회적 의제 : 성찰적 한국(meta. Korea)
2. '무주'를 말하다 1: 단순한 사례인가, 의미 있는 참조인가(좌담)
3. '무주'를 말하다 2: 주민과 주인 사이(군민들의 이야기)
《감응의 건축》 발간에 관해
[미디어 서평]
“공공건물 함부로 짓지 마라”
건축가 정기용. 그의 원래 전공은 미술이었다. 대학을 졸업한 뒤 프랑스로 건너가더니 건축사가 돼 돌아왔다. 미술하던 눈으로 건축을 해보니, 성냥갑처럼 무심한 건물들이 도심 하늘을 가리는 모양이 곱게 보일 리 없었다.
그래서 바꾸자고 했다. 대학 강단에서도, 문화연대 공동대표를 맡아서도 건축의 공공성과 예술성을 호소했다.
그러던 중 전북 무주에서 1996년부터 10년간 30여개의 크고 작은 공공건축물 설계작업에 매달렸다. 마을회관과 면사무소부터 납골당, 버스정류장에 이르기까지 스스로 건축계의 공익요원임을 자처했단다. 그 기록과 생각을 한 권의 책에 담았다. `감응의 건축-정기용의 무주 프로젝트’(현실문화). 책은 한마디로 “공공건물 함부로 짓지 마라”고 말한다.
이유는 그가 첩첩산중의 도시 무주와 만난 순간에서 비롯된다. 96년 강내희 교수 등과 함께 구미를 시작으로 `국토순례’를 시작했는데, 안동을 거쳐 무주의 안성면에 이르렀을 때 그 땅과 `감응’했단다.
그 때 안성면이 “난 한반도에 남은 마지막 땅인데 너 잘 만났다, 유일하게 남아 있는 나를 좀 잘 지켜다오!”라고 말을 걸어오는 것 같더란다. 그렇게 만난 무주에서 그가 벌인 일 중 하나가 `면사무소 프로젝트’였다.
면사무소에 어떤 기능을 넣을까 고민하다 주민들에게 물었다. 그런데 한결같은 답이 “면사무소는 뭐 하러 짓는가? 목욕탕이나 지어주지”라는 것이었다. 안성면 노인들이 왜 봉고차를 빌려 대전에 가서 목욕을 하고 오는지, 주민들에게는 면사무소보다 더 필요한 것이 면 단위의 공중목욕탕이라는 것을 소위 `전문갗라는 사람들만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주민들 요구에 건축가와 행정이 `감응’했다. 그렇게 안성면 주민자치센터엔 전국 처음으로 목욕탕이 들어섰다.
이밖에 무주의 버스정류장 의자를 `ㄿ자로 만들어 기다림에 지친 주민들이 자연스레 대화할 수 있게 한다거나, 하늘의 별과 마을을 연결해 지역의 정체성을 부여한 부남면의 `천문대’ 역시 그런 `감응’을 염두에 둔 작업들이었다.
저자는 말한다.
“이런 것이야말로 지방자치단체와 건축가들이 귀담아 들어야 하는 공공건축의 한 단면이다. 변화하는 시대에 적응할 뿐만 아니라 지역 주민들에게 실질적으로 필요한 공간을 마련해주고, 지역의 정체성을 찾아 지역에 거주하는 것에 대해 자긍심을 갖게 해주는 것이야말로 지역의 공공건축이 해야 할 일이다. 그럴 때만이 지속 가능한 도시가 실현될 것이다.”
저자 스스로 “행운이면서 고난의 행군이기도 했던 무주 프로젝트”는, 우리나라에서 공공건축 이론과 그 실천, 건축가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유용한 첫 참조사례로서 의미가 크다. 책은 그 의미에서 `감응’이라는 중심줄기를 일관되게 뽑아냈다.
때문에 이 책에서 건축과 농촌은 하나의 매개일뿐, 그 속에 행정과 문화와 건축과 지역민의 삶에 대한 성찰이 담겨 있다.
그래서 서점의 건축서적 코너보다 인문서적 코너에 더 어울리는 책이다. (광주드림/ 이광재 기자)
문제도 해법도 무주에
1996년부터 2006년까지 전북 무주에서는 공공 건축물들이 새로 지어지거나 단장을 했다. 마을회관, 면사무소, 공설운동장, 군청, 재래시장, 청소년수련관, 납골당, 요양원 등 30여 개 건축물이었다. 소문도 어지간히 나서 이들 공공 건축물은 건축학도의 순례지로 자리잡았다. 이 프로젝트를 담당한 이는 '건축계의 공익요원'이라 불리는 건축가 정기용. 이 유일무이한 도시 건축물의 증인인 그가 이 과정을 한 권의 책으로 꾸몄다. <감응의 건축>(현실문화 펴냄)이다.
무주 땅이여, 너 잘 만났다
1996년 무주는 꿈틀대고 있었다. 낙향의 꿈을 품은 사람들이 농촌을 점령하는 식으로 진군하는 한편으로 농촌에 새로운 공동체를 꾸리려는 사람들의 소망도 한데 모여들고 있었다. 무주 청년들은 무주리조트의 골프장 건설을 백지화하고 그 자리에 '예술인 마을'을 지으려고 했다. 이 프로젝트는 결국 실패했지만, 그 과정에서 많은 예술인들이 무주에 눈길을 주게 되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무주'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정기용과 무주의 찌릿한 만남에 있다.
첫 만남은 1996년 이루어졌다. 문화평론가 강내희, 지금은 작고한 문학평론가 이성욱 등과 함께 경북 구미∼안동∼무주를 거쳐 국토여행을 했다. 운명이란 그런 것이겠지. 무주행은 애초 창원에 가기로 한 길을 되짚어서 가자고 하면서 갑작스럽게 결정됐다. 무주 안성면에 도착한 정기용은 놀란다. 그만 털썩 주저앉을 뻔할 정도였다. "아니 한국 땅에 변치 않고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풍경이 아직 남아 있다니!" "땅을 교감하는 능력을 키워온 사람들"인 건축가에게 그 땅은 '나 안성면이 한반도에 남은 유일한 땅인데 너 잘 만났다' '유일하게 남은 나를 잘 키워다오'라고 말을 걸어오는 것 같았다고 한다.
큰 인연이 생기기까지는 우연이 더 쌓여야 했다. 서울에서 빈민을 위한 흙집 이야기를 함께 나눴던 허병섭 목사가 낙향한 도시가 무주였고 그는 우연히 만난 정기용에게 흙집을 여기 지을 수 없겠느냐고 했다. 그는 제안을 받아들여 안성면 진도리 마을회관을 흙집으로 짓는다. 상량식 날 김세웅 당시 무주군수가 왔는데 그는 이런 말을 건넨다. "선생님께서 무주같이 작은 지방자치단체의 건축 일도 하실 수 있겠습니까?" 김 군수는 안성면사무소 설계를 주문하면서 건축 프로그램 기획까지 제안한다.
큰일을 내려면 일을 맡은 사람들의 마음이 스며들어야 한다. 정기용은 공설운동장 프로젝트가 10년 동안 가장 인상 깊고 감동적이며 자신을 많이 가르쳤다고 한다. 1997년 김세웅 군수는 회의하러 내려온 정기용의 손을 잡고 공설운동장으로 이끈다. 그는 운동장 주변에 심어놓은 240여 그루의 등나무 앞으로 가서 사연을 이야기한다. 어느 날 군내 행사에 사람들이 안 오는 것이 마음에 걸려 한 노인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고 한다. 노인 왈. "군수만 본부석에서 비와 햇볕을 피해 앉아 있고 우린 땡볕에 서 있으라고 하는 게 대체 무슨 경우인가? 우리가 무슨 벌 받을 일 있나? 우린 안 가네." 기존 시설의 권위주의적 배치에 대한 문제제기였다. 군수는 관중석에 자연스러운 그늘을 만들 생각으로 등나무를 심었다. 1년도 안 돼 등나무는 얼른 등나무의 집을 세워줘야 할 만큼 자랐다. 군수의 아이디어는 놀라웠고 '군수가 건축을 다 해놓았다'는 겸손한 건축가의 손길은 섬세했다. "(등나무 지지대) 원호의 끝은 시선과 햇볕의 관계를 고려해 가장 적절한 위치에 꼭짓점을 정했다."
감응이 겹으로 작동하여
"이런 일을 그렇게 순식간에 집중해서 해결할 수 있었던 것은 두 가지 감응이 겹으로 작동해서가 아닌가 싶다. 하나는 무주군수가 주민들에게서 얻은 감응이고, 또 다른 하나는 내가 허공을 허우적대는 등나무 순에서 얻은 감응이다." 건축의 원칙은 '식물을 닮게 설계하자'였다. 그 뒤 건축물을 완성하는 것은 식물이었다. 10년이 흐른 뒤 늦은 봄 등나무 운동장은 무주의 새로운 명소로 떠올랐다.
부남면의 별 보는 집 또한 감응이 만들어낸 건축물이다. 기용설계소의 직원이 "예정에 없던 것을 만들려니 예산이 초과될 수밖에 없었던" 대표적인 건물로 꼽는, 첨성대를 닮은 천문대다. 면사무소 행정동과 복지관을 함께 개보수하자는 계약을 맺으러 현장에 간 정기용은 하늘에서 별들이 쏟아지는 장면을 보고 만다. '무진장'(무주·진안·장수군)으로 불리는 오지인 무주에서도 구석진 곳에 있는 부남면이다. 건축가는 이들에게 자부심을 선사해주고 싶었다. 건축가는 건물만 지어주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삶을 반영해 의미 있게 조직해주는 사람이라는 생각에서였다. 이 자부심에 답하게, 금강 상류에서 래프팅을 즐기는 사람들 정도가 가끔 찾던 이곳은 여름이면 학생들로 북적대곤 한다고 한다.
감응의 건축은 주민의 생활 속으로 파고든다. 안성면은 전국에서 유일하게 면사무소에 목욕탕이 있는 곳이다. 정기용은 노인들이 봉고차를 빌려서 대전까지 나가 목욕탕에 가는 것을 보았고, 면사무소를 설계하면서 목욕탕을 집어넣었다. 짝수 날은 여탕, 홀수 날은 남탕이 가동된다. 지금은 진안군이나 장수군에서 '출장 목욕'을 오는 사람들이 늘었다고 한다.
"(농촌의) 현실적인 문제를 사실은 주민들이 다 알고 있다. 전문가들만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이 문제다. …주민들에게는 면사무소보다 더 필요한 것이 면 단위의 공중목욕탕이라는 것을 이른바 '공간의 전문가'들이란 사람들만 알지 못한다." 그래서 문제는 간단하고 해법은 명료하다. "내가 배운 점은 문제도 무주에 있고, 해법도 무주에 있다는 것이었다. 모든 것이 무주 주민 속에서, 무주의 땅에서 나오는 것이다. 무주의 문제를 풀기 위한 해법이 일본이나 덴마크에 있는 게 아니다. 내가 무주에서 배운 게 그거다."
(한겨레/ 구둘래 기자)
[출판사 서평]
1. "마을회관, 면사무소부터 납골당, 버스정류장에 이르기까지
건축계의 공익요원 정기용이 무주에서 쓴 감응의 그림일기"
《감응의 건축: 정기용의 무주 프로젝트》는 '공간의 시인'이라는 수식어와 함께 '감응의 건축가', '건축계의 공익요원'이라 불리는 건축가 정기용이 1996년부터 2006년까지 만 10년 동안 무주에서 진행한 크고 작은 공공건축물 30여 개 프로젝트(건축, 리노베이션 등)에 대한 정리와 체험을 풀어낸 책이다.
책에는 건축물 각각의 배치도, 조감도, 완공 전후의 사진뿐만 아니라 현재 주민들이 건축물을 사용하는 모습, 건축가가 무주 땅과 '감응'하게 되는 사연에서부터 설계하기 전의 스케치까지 들어 있어 무주 프로젝트의 전 건축활동 과정을 온전하게 파악할 수 있다.
책 말미에는 강내희, 김봉렬, 조성룡, 박원순 등이 무주 프로젝트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와 비평, 공공건축의 전망을 짚어보는 좌담회를 실었다. 또한 지역주민들은 무주 프로젝트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으며, 낯설었던 '서울 건축가 정기용'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를 무주군민들의 인터뷰 형식을 통해 밝히는 글이 실렸다.
올 2월 출간된 《사람 건축 도시》《서울 이야기》에 이은 세 번째 정기용 저작/작품집인 《감응의 건축》은 '지역 주민에 의한, 지역 주민을 위한 공공건축물의 실현', '공공건축을 통한 지역 발전의 모색'이 라는 점에서 우리나라에서 공공건축 이론과 그 실천, 건축가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유용한 최초의 참조사례로 평가받을 만한 책이다.
2. "나 안성면이 한반도에 남은 마지막 땅인데 너 잘 만났다.
유일하게 남아 있는 나를 좀 잘 지켜다오!"
: 감응의 건축 / 감응의 풍경, 오래된 미래를 위하여
1996년 정기용은 강내희 교수 등과 함께 구미를 시작으로 '국토순례'를 시작했다. 이유는 "한국의 모든 지식인들이 농촌을 여행하면서 욕하고 비난하는 것은 왜 그런가? 그런데 그렇게 비난할 만큼 우리가 정말 우리 국토를 잘 알고 있나 싶어서"였다. 구미를 거쳐 안동을 지나 무주의 안성면에 이르렀을 때, 정기용은 안성땅과 '감응'을 하게 된다. 평생 잊지 못할 그 순간을 정기용은 "나 안성면이 한반도에 남은 마지막 땅인데 너 잘 만났다"라고, "유일하게 남아 있는 나를 좀 잘 지켜다오!"라고 말을 걸어오는 것 같았다고 회상한다.
"마치 한 남자가 평생 그리워하던 여인과 우연히 처음 만났을 때처럼 번갯불이 튀는 듯한 사건이라고 할까? 그런 정도의 열정적인 교감이 안성면과 나 사이에 이루어졌다고 기억한다. 바로 이것이 한 건축가를 10여 년 동안 무주에서 일하게 한 계기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등나무운동장: 사람과 사람, 건축가와 자연의 '감응'
"여보게 군수, 우리가 미쳤나! 군수만 본부석에서 비와 햇볕을 피해 앉아 있고 우린 땡볕에 서 있으라고 하는 게 대체 무슨 경우인가. 우리가 무슨 벌 받을 일 있나? 우린 안 가네."
공설운동장에서 군내 행사가 있을 때마다 초대한 주민들은 거의 오지 않고 공무원들만 참여하는 것이 늘 마음에 걸렸던 무주군수가 '왜 공설운동장에서 행사가 있을 때 참석하지 않으십니까'라고 물었을 때 어느 노인이 한 대답이다. 햇볕이나 비를 피하는 가림막은 중앙 본부석에만 있고, 운동장 주변의 스탠드는 따가운 햇볕에 완전히 노출되는 등 무주 공설운동장 역시 늘 거대하고 압도적이며 권위와 중심을 상징하는 장소로 군림해 왔던 것이다.
노인의 말에 '감응'한 군수는 공설운동장에 있는 권위주의의 실상을 변모시키고자 운동장 주변에 등나무 240여 그루를 심어서 스탠드에 자연스러운 그늘을 만들려 하고 있었다. 허공을 허우적대는 등나무 순에서 '감응'을 받은 건축가는 "식물이 초대되는 집이 아니라 '식물이 주인'이 되는 집이 되게끔 배려하는" 건축으로 화답한다. 사람과 사람(지역주민-군수, 군수-건축가)이 서로 '감응'하고, 사람과 식물(건축가-등나무)이 서로 '감응'해서, 흔치 않은 두 가지 '감응'이 합쳐져서 비로소 세상에 단 하나뿐인 등나무운동장의 실현을 본 것이다.
이 '꿈의 그림자 프로젝트'로 무주 공설운동장은 '등나무운동장'으로 재탄생해, 무주의 새로운 명소가 되었다. 본부석 상단에는 대형 스크린, 그 반대편에는 영사실까지 설치되어 무주군민들은 등나무운동장에서 영화도 보는 '호사'도 누린다.
이제 등나무운동장은 무주 군민들의 운동시설이고 집회시설인 동시에 야외영화관이고, 특별한 문화쉼터가 되었다.
"영혼을 위한 밝은 집", 무주 추모의집(무주 공설납골당): 인삼밭에서 '감응'을 받다
정기용은 "산 자가 죽은 자를 기억하는 장소"인 납골당을 건축하기 전 '죽음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 고민을 하게 된다. 건축가인 그에게 죽음에 대한 생각은 "한국인에게 죽음은 어떤 의미며, 죽음과 관련한 공간은 또한 어떻게 마련되고 우리들 삶의 환경이 되었는가?"라는 '죽음과 공간'에 대한 관계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고민 끝에 결국 그는 한 가지 결론에 이른다.
"한국의 근대사는 죽음의 역사, 아니 특별하게 '죽음을 죽인 역사'라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죽음을 학살한 역사가 한국의 근대사이기 때문이다."
"죽음은 옛날에는 삶의 한 부분이었다. 마을 뒷산에는 늘 할머니 할아버지의 묘가 있었고, 사람들은 매년 뒷동산에 올라 제를 올렸다. 죽음의 공간이 일상적 삶의 공간에 공존하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근대화의 여정 속에서 죽음을 처형해 버렸다. 한국 근대사는 죽음을 삶에서 제거한 역사이고 삶만을 중요한 것으로 만들어버렸다. 죽음을 삶의 한 부분으로 떠받들 줄 알고 죽음을 의미 깊게 생각할 때 남의 목숨을 함부로 다루지 않는 것이다."
그는 제주 4·3사건, 한국전쟁, 4·19민주화운동, 5·16군사쿠데타, 5·18광주민주항쟁 등을 거론하면서 "아마도 대한민국의 근대사가 그릇된 것은 이렇게 죽음을 책임지지 않고 살해한, 그리고 망각을 강요한 사회 분위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정기용은 "죽음을 죽인 사회에서 죽음을 현실의 공간으로 불러와 산 사람들과 마을과 주변의 경관과 일상적으로 관계 맺을 때, 죽음은 삶의 곁으로 돌아올 수 것"이라면서 "죽은 자를 위한 공간에서 가장 끔찍한 것은 주검을 어둡고 칙칙한 공간에 두는 것이다. 왜 죽은 자는 밝고 생기 있는 공간에 있어서는 안 되는가. 왜 납골당은 모든 것을 차단해서 내면화하는 공간이어야 하는가. 나는 그런 것에 반대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래서 정기용은 무주 공설납골당을 "영혼을 위한 밝은 집"으로 설계하기로 한다. 그러던 중, 무주 끝 동쪽 언덕에 있는 공동묘지 사이사이로 보이는 인삼밭에서 '감응'을 받은 정기용은 인삼밭이 자신이 설계하려는 납골당의 의미를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음을 발견한다. "인삼이 양지의 반대가 되는 그늘 속에서 자란다는 역설적인 사실 때문"이었다.
"모든 식물은 태양을 보며 자라지만 인삼은 그늘에서 자란다. 이것이 신비롭게 느껴지는 점은 인삼이 햇볕이 아닌 그늘에서 자라난다는 사실 때문인데, 그것을 환유하자면 '죽음이 자라난다'는 것과 상징적으로 연결될 수도 있다. 죽음은 일반적으로 어둡고 그늘진 것으로 상징되지만, 그런 속에서 인삼과 같은 생명이 자라난다는 역설을 바라볼 수 있다."
이렇게 해서 무주 공설납골당은 "때로는 죽은 영혼이 일어나 자신이 살던 땅 무주를 바라볼 수도 있는 장소, 그래서 옛날 뒷동산의 묘지들처럼 삶과 끈끈한 관계가 있는 납골당", "영혼을 위한 밝은 집"이 되었다.
그는 납골당과 인삼밭, 그 참으로 어우러질 수 없는 어우러짐을 가능케 한 감응의 건축가다.
이야기가 기다리는 버스정류장 : 존재의 힘, 풍경의 힘 그리고 그 둘의 '감응'
"건축가 동료들은 무주에서 진행한 내 여러 작업 중 버스정류장을 가장 좋아한다."
서울 등 도심의 버스정류장은 의자나 바람막이 없이 버스 노선이 빼곡히 적힌 썰렁한 철제물만이거나, 철제틀 유리창으로 바람막이를 하고 기다란 의자가 가로로 놓인 모양이 대부분이다.
그렇다면 험난한 산자락이 펼쳐진 무주 지방도로 변의 버스정류장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그에 대한 정기용의 고민은 "건축을 살아 있는 생명체라고 가정한다면, 그 존재에는 존재의 근거가 있어야 한다. 외롭게 홀로 떨어진 존재(버스정류장)이지만 거대한 풍경에 맞설 수 있는 힘을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가"로 모아진다.
"지방도로 변의 버스정류장은 기다림의 공간이며 동시에 작은 무대다. 무심한 산들과 들판 한가운데에서 우리는 버스만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세월을 기다리는 것이다. 기다리는 풍경은 버스에 탄 사람들에게 삶의 한 순간으로 다가온다. 버스정류장은 하찮은 기다림의 공간이 아니라 삶이 머무는 장소다. 그래서 작지만 주변의 풍경과 맞설 뿐만 아니라 공존하는 건축적 지혜가 요청된다."
정기용은 버스정류장을 힘 있게 존재하게 하면서도, 그 정류장을 주변과 관계(감응)를 맺게 해 당당하면서도 조화롭게 전체 풍경의 일원이 되도록 건축했다.
이와 함께, 도심의 버스정류장과 무주의 버스정류장의 가장 큰 차이는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서로 친밀하게 연결해 주는 '근접성'에 있다. 도심 버스정류장의 일자형 가로 의자와는 달리, 무주의 버스정류장은 의자가 'ㄱ'자여서 사람들이 나란히가 아니라 마주 앉게 되어 서로의 시선이 은근히 교차되고 낯선 사람끼리도 "어디까지 가십니까?"라고 묻지 않을 수 없는 '관계'를 만든다. 우연히 같은 공간에 있게 된 사람 간에 '관계'를 적절히 만들어 '감응'을 일으키게 하는 것이다.
무주의 버스정류장에서는 서로 아는 사람들은 물론 안면이 없는 사람들까지도 인사말을 나누고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게 된다.
"무주의 할아버지들은 버스정류장에서 편안히 앉아 있는 것으로 시간을 보낸다. 그렇게 앉아서 무주 풍경의 일부가 된다. 어떤 점에서 버스정류장은 버스가 아니라 기다림을 기다리는 곳일 수도 있다. 풍경을 초대하고 바람을 막아내고 시선을 움직이는 버스정류장은 농촌 속에 서 있는 도시다."
3. "면사무소는 뭐 하러 짓는가? 목욕탕이나 지어주지"
: 지역 주민을 위한, 지역 주민에 의한 공공건축, 그리고 지속 가능한 도시의 실현
면사무소의 종말: 주민자치센터 혹은 면민의 집의 탄생
"일제는 1914년 조선왕조 이래 형성되어 온 우리의 4,000여 개 공동체 구조를 해체하고 2,000여 개 단위로 재구성했는데, 이때에 면 단위의 행정조직이 탄생했다고 한다. 그 이후 면사무소는 농촌의 행정업무를 맡는 일선에 서게 된다. 지역사회에서 적어도 '면 서기'는 되어야 출세한 것으로 알았던 것은 해방 전이나 해방 후 40, 50여 년이 지나서나 변함이 없었다."
농촌지역의 면사무소는 주민들의 자율성과 지역성을 보장해 주는 행정기관이라기보다는 중앙정부의 시책을 하달하고 집행하는 국가의 수족에 불과했었다. 이러한 면사무소가 변화하기 시작한 것은 급격한 도시화로 인구가 도시로 빠져나가는 것이 한계점에 이르렀을 때 지방자치제가 실시되면서다.
무주의 면사무소(안성면, 적상면, 부남면, 무풍면) 프로젝트들은 바로 그런 시기, 즉 행정기구로서의 면사무소가 아니라 '지역 주민을 위한, 지역 주민에 의한 공간'으로 면사무소를 전환시켜야 할 시점에 시작되었다. 따라서 면사무소가 아니라 주민자치센터, 나아가 '면민의 집'이 되어야 하는 요구와 그에 따른 건축 프로그램이 개발되어야 했다. 공간은 재편되어야 했고, 일제시대의 면사무소는 종말을 고해야만 했다.
주민들에게 귀를 기울이다: 목욕탕이 딸린 주민자치센터_ 홀수날은 남탕, 짝수날은 여탕
면사무소 공간 재편의 대전제는 행정서비스의 충족과 지역주민을 위한 공공공간의 확보지만, 그 중요도와 우선순위에서는 결정된 게 없었다. 특히 인구구성비에서 노인층의 비율이 압도적인 지역의 경우, 실질적으로 이들에게 필요한 프로그램이 무엇인지 따져보아야 했다
정기용은 안성면사무소를 건축하기 전 우선 주민들이 절박한 것을 찾아나섰고 그중에 공중목욕탕 시설이 최우선임을 알게 되었다. 모든 안성면 주민들이 하나같이 "면사무소는 뭐 하러 짓는가? 목욕탕이나 지어주지" 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동안 어떻게 목욕을 했느냐는 정기용의 물음에, 주민들은 입을 모아 "봉고차를 빌려서 대전으로 간답니다"라고 말했다. "왜 집에 목욕탕이 없나요?"라는 물음에, 정기용은 "씻을 수는 있지만 목욕탕하고는 다르지요"라는 대답을 들었다.
"나는 그제야 농촌에 거주하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바로 우리나라의 산업사회를 일으킨 세대라는 사실을 떠올릴 수 있었고, 그들은 평생 농업노동으로 골병이 들어 모두 뼛골이 쑤시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안 아픈 데가 없는 육신이 편히 쉴 수 있는 최적의 공간은 몸을 물에 푹 담그고 쉴 수 있는 큰 욕조가 있는 공간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주민자치센터의 중요한 프로그램으로 목욕탕을 군수에게 제안하게 되었고, 주민들이 진료도 받을 수 있게 보건소 공간도 주민자치센터에 결합시켰다."
서로 알몸이 되어 물에 몸을 담근다는 것은 공동체 구성원들을 더 친밀하게끔 도와준다. 더불어 사는 친밀함을 나누고 느끼는 특별한 공간이 바로 공중목욕탕이다. 주민자치센터(면민의 집) 프로그램으로서 공중목욕탕은 주민들이 요청한 것이고, 건축가는 그에 따른 것이다. 이런 것이야말로 지방자치단체와 건축가들이 귀담아들어야 하는 공공건축의 한 단면이다.
"건축에서는 사람들이 원하고 사회가 원하는 삶의 형식을 실현시킬 수 있게 해주는 것이 먼저이고, 그 결과가 형태나 모양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이는 건축의 기능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면밀한 관찰을 통해 사람들의 삶을 보살펴주는 배려에 대한 문제다."
변화하는 시대에 적응할 뿐만 아니라 지역 주민들에게 실질적으로 필요한 공간을 마련해주고, 지역의 정체성을 찾아 지역에 거주하는 것에 대해 자긍심을 갖게 해주는 것이야말로 지역의 공공건축이 해야 할 일이다. 그럴 때만이 지속 가능한 도시가 실현될 것이다.
안성면의 목욕탕은 유지비 때문에 홀수날은 남탕, 짝수날은 여탕으로 운영된다. 무주 안성면에서는 할아버지들끼리 밭일을 끝내고 휴대전화로 연락해 집에 들어가기 전에 같이 목욕탕에 들러 욕조에 몸을 담그고 노동의 피로를 풀곤 한다. 이웃 장수군이나 진안군에서 '출장 목욕'을 오는 사람이 늘고 있다는 후문도 있다.
하늘의 별과 마을을 연결해 지역의 정체성을 짓다: 부남면의 '별 보는 집(천문대)'
부남면에서 정기용은 서로 떨어져 있는 면사무소와 복지회관을 기능적으로 연결하며, 두 건물뿐 아니라 부남면사무소의 장소성을 만들어내려고 '별 보는 집(천문대)'를 건축한다. 밤 깊은 시각에 하늘에서 쏟아지는 많은 별들을 보고 "나는 부남면에 온 게 아니라 별이 쏟아지는 땅에 온 것이다"라 느끼고, 부남면이 별을 볼 수 있는 장소임을 부각하고 싶었던 것이다.
외따로 떨어지고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던 오지 중의 오지 마을에 생겨난 '별을 보는 집' 천문대는 부남면 주민들에게 마을의 정체성을 갖게 해주었다.
"건축가는 건물만 지어주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들의 삶을 생생하게 반영하고 의미 있게 조직해 주는 사람인데, 부남면 같은 오지의 면사무소를 리노베이션 한다는 것이 바로 마을의 정체성을 찾아주는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정기용은 사람들의 발길이 드문 땅에 그 지역이 갖는 청정한 힘을 빌려 하늘의 별과 마을을 연결해 그 마을을 우주와 소통하게 했다. 부남면의 '별 보는 집(천문대)'은 지역주민을 위해 '하늘의 질서, 하늘의 빛이 지역 혹은 건물과 어떻게 관계 맺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정기용다운 고민에서 탄생했다고 할 수 있다.
"나는 부남면 프로젝트에서 주민들의 버려졌던 자존심이 살아나기를 바랐다. 부남면 사람들이 부남면에 사는 것에 자부심을 갖는다는 것은 얼마나 소중한가!"
그 밖의 공공건축 프로젝트: 무주 군청 리노베이션, 재래시장, 곤충박물관, 노인전문요양원..
정기용은 자동차로 즐비하던 무주군청 뒷마당에 상부는 마당이고 지하는 주차장을 만들어 넣었다. 이후 군청 뒷마당은 주차장으로부터 '주민이 주인 되는 공간'으로 전환되었고, 상부의 마당은 많은 이벤트를 가능케 하는 공간으로 변모했다. 군청 전체의 권위주의 이미지를 쇄신하고, 직원들의 근무 효율성을 높이며, 주민들이 군청에 편안하게 다가가는 공간을 실현해 낸 것이다.
무주 적상산 기슭의 서창 향토박물관은 무주인들의 삶과 생산물과 땅을 주인공으로 하여 향토지리지 같은 성격으로 지어졌다. 현재 박물관에는 무주에 있는 6개 면과 읍의 모습이 전시되어 있어 자연과 풍경, 그리고 무주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소박하게 보여주고 있다.
정기용은 곤충박물관을 설계 전에 동물행동학자 최재천 교수에게 '곤충은 식물이 없으면 홀로 살 수 없고, 식물 또한 마찬가지'라는 조언을 얻고는, 곤충을 열심히 관찰하고 그려보는 과정을 거친다. 그런 과정에서 그는 자신이 곤충박물관에서 다루어야 하는 것은 곤충 그 자체가 아니라 '곤충과 식물의 공생관계'라는 점을 깨닫는다. 이렇게 하여 무주곤충박물관은 곤충을 수집, 보존하고 전시하는 공간만이 아니라 곤충과 식물의 공생관계, 나아가 모든 생명체와 우주의 관계를 총체적으로 인지케 하는 특별한 장소로 탄생했다.
노인전문요양원은 복도 양쪽으로 입원실이 있는 병원이 아니라 마치 거실처럼 열린 공간에서 방으로 들어가는 '자기 집' 같은 공간으로 지어졌다. 또한 병실마다 '나의 창', '나의 공간'이라고 하는 공간의 개별성을 확실하게 짚어주었다. 아무리 노인들이라 하더라도 그들이 최상으로 원하는 곳은 자기가 살던 개인 공간, 즉 자신의 집이기 때문이다. '나의 집, 나의 방, 나의 창문' 같은, 개별공간에 대해 각별히 배려하면서 결국은 '따로 또 같이'의 공간이 생겨난 것이다.
무주 프로젝트의 기본 개념: 뜻있는 그림일기
건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속성의 문제다. 삶의 요구들을 공간적으로 다루는 일들, 무주 여기저기에 펼쳐진 건축물들은 마치 '산자락의 오솔길'처럼 사람들이 다니면서 지속될 것이다. 지속하는 것들이 그 지역의 역사가 되고 집단기억으로 남아 궁극적으로는 공유되는 문화가 될 때 가치 있는 일들로 평가될 것이다.
정기용은 자신에게 무주의 의미는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했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오래된 길처럼 남아서 의미 깊은 '그림일기'로 작동하는 데 있다고 밝힌다.
"내가 무주에서 쓴 그림일기들을 다른 이들도 향유하고, 무주에 대한 애정이 다음 세대로 면면히 이어질 수 있도록 배려한다면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그래서 나는 무주의 공공프로젝트를 생각할 때마다 작은 길을 떠올리게 된다. 산자락에 난 구불구불한 오솔길을. 내가 이룬 일이 마치 저 언덕의 길처럼 존재할 수 있으면 하는 염원에서 말이다."
4. "그런데 선생님께서 무주같이 작은 지방자치단체의 건축 일도 하실 수 있겠습니까?"
: 소셜 코디네이터(사회적 조정자)로서의 건축가
공공건축에서 첫째 문제가 되는 것은 건축의 본질인 '필요성'이 사회적으로 합의된 것인지 아닌지 묻는 점이며, 둘째는 어떻게 그 규모와 형식을 갖출 것인가 하는 점이다. 사적 건축은 자본주의체제 안에서 시장경쟁 시스템에 의해 생성하고, 그 기본 출발점은 '자본의 요구'에 의한 것이다. 하지만, 공공건축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주도하면서 '자본이 생산해 낼 수 없는 공간을 생산하는 것을 말한다. 공공학교나 사회복지시설, 공원, 공공기관들은 공적영역에 속하기 때문이다.
공공건축은 불특정 다수를 향해 설계되는 것이다. 이는 공공건축이 본질적으로 좀 더 높은 보편성을 요구함을 의미한다. '보편성'이란 특정 개인의 취향에 화답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 큰 다수가 누릴 수 있는 것을 배려함을 의미한다. 그러면서도 또한 어떻게 '지역성'을 반영하는가 하는 것도 중요하다.
"자본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공공이 해야 하는 것은 돈으로 생산할 수 없는 지역의 문화와 지역의 정체성을 부각시키는 일이다. 마뉴엘 카스텔이 주장하는 집합적 소비재들(병원, 학교, 공원, 복지시설 등)의 공공건축에서 건축행위의 '필요성'에 대한 검증과 지역의 정체성에 대한 검증이야말로 건축 이전에 철저하게 고민해야 하는 요체이기도 하다. 이런 뜻에 잘 회답할 때, 공공건축은 사람들의 의지에 의해 소통의 공간으로 이행될 것이다."
공공건축가란 무엇인가?: "여러 곳에 감응하는 열린 사람"
정기용은, 현대의 건축가는 '소셜 코디네이터(social coordinator, 사회적 조정자)'로 거듭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한다. 건축가는 단순히 집(건물)을 설계하고 짓는 사람이 아니라, 세상이, 땅이, 그리고 시대정신이 원하거나 거부하는 것을 찾아내 조화시키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기용은 위대한 건축가도 있지만 다원화하고 복잡해진 사회의 수많은 이슈와 문제점을 건축가의 상상력만으로 해석할 수 없기 때문에, 건축가가 세상을 읽고 땅을 읽고 진정 사회가 요청하는 것에 대해 답하려면 수많은 분야를 코디네이팅 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고 강조한다.
"무주에서 내가 한 일은 주민과 무주와 자연과 역사 등 모든 것을 코디네이팅 해서 번역한 일이다. 그래서 건축가는 설계가이기 이전에 세상에 대한 번역가이고, 세상을 읽어주는 사람이고, 사회를 제안하는 사람이다. 다른 나라의 사례에서 답을 찾을 게 아니라 해법은 이 땅에 있다는 점을 무주에서 가장 크게 느꼈다."
"건축가는 해결사가 아니라 변화하는 다양한 현재적 삶을 더 잘 조직하기 위해 여러 분야를 이해하고, 매개하고, 조절하고, 조합하고, 그러면서 판단하고, 번역하고, 해석하고, 형태화하는 사람이다. 즉, 끊임없이 자기 혼자만의 상상력에 의존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 자신 이외의 수많은 전문가, 수많은 사람, 기술, 경향을 조절할 줄 알아야 하는 독특한 전문가이고 조절자다. 한마디로, 건축가는 여러 곳에 감응하는 열린 사람인 것이다."
무주 공공건축 프로젝트, 1996~2006, 무주, 건축가 정기용: "행운이자 고난의 행군"
1996년 정기용이 '흙건축'으로 설계한 안성면 진도리마을회관의 상량식 날 무주군수는 훗날 '무주 프로젝트'로 불릴 일을 맡기면서 내려온 정기용에게 "그런데 선생님께서 무주같이 작은 지방자치단체의 건축 일도 하실 수 있겠습니까?"라고 말한다. '서울특별시'에서 큰 건물만 짓던 건축가가 과연 지역의 일을 맡아줄까 하는 우려 때문이었다.
정기용은 '공공건축가'로서 그런 첩첩산중, 내륙의 작은 도시에서 1996년부터 만 10년 동안 크고 작은 공공건축물 설계작업에 매달렸다. 그는 무주 프로젝트를 "행운이면서 동시에 고난의 행군"이었다고 회상한다.
행운이자 고난의 행군이기도 했던 무주 프로젝트는 우리나라에서 공공건축 이론과 그 실천, 건축가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유용한 첫 참조사례로서 의미가 크다. 《감응의 건축》은 공공건축을 향한 한 건축가의 고답적 작품집이 아닌 구체적인 실천을 위한 책으로 자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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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말처럼 사람이 건축을 만들고 건축이 사람을 만든다. 우리의 농촌과 지역의 변화와 현실, 그것을 정기용이 건축에 담았다. 그러므로 무주에서 실천한 그의 건축적 비전과 시도는 바로 그곳에서의 사람들의 삶과 감응한 결과이기도 하다. 《감응의 건축》이 척박하고 야비한 이 땅에 희망의 홀씨를 퍼뜨리기를 바란다." -박원순(희망제작소 상임이사, 변호사)
"정기용의 무주작업은 이 땅과 사람에 대한 끈적한 애정을 주제로 10년간 혼과 기를 다해 만들어온 대하드라마다. 이 경이로운 실험과 존경스러운 헌신 앞에서 우리의 무관심이 창피스럽고, 내 이기심이 부끄러워진다. 냉소는 가라, 건축은 실천이다." -김봉렬(한국예술종합학교 건축과 교수)
"공급자 중심의 공공건축물이 소비자 중심으로 재창조되었다. 그래서 면사무소엔 대중목욕탕이 만들어졌고, 군청은 '벽 없는 군청'으로 새롭게 탈바꿈되었다. 거기엔 주치의 같은 건축가와 관행을 깨는 단체장의 뚝심과 소통이 있었다." -김세웅(전 무주군수, 국회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