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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태을궁 용봉서신(太乙宮 龍鳳書信) 원문보기 글쓴이: 디딤돌
증산상제님은 삼계대권을 갖고 삼계를 다스리시는 옥황상제이십니다. 증산상제님께서는 수제자 김형렬을 천상으로 불러 올려, 증산상제님께서 태을궁 요운전에 임어하시어 천조백관을 친람하여 삼계를 주재하시는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특히 당나라에 반역하여 쇠망의 원인을 제공한 안록산의 대역죄를 추궁하는 장면을 직접 목도하도록 하셨습니다.
@ 대선생께서 "형렬아, 평소에 너의 지극한 소원이 하늘에 올라가 천상의 조정를 구경하는 것이었나니, 오늘 너에게 이를 허락하리니 내 뒤를 따라 오거라." 말씀을 마치시니, 갑자기 하늘문이 넓게 열려 순식간에 날개가 달린 신선이 된 것처럼 가볍게 날아 뒤를 따라가게 되었더라.
천상에 다다르니 수많은 문무 관리가 질서정연하게 도열하여 명을 들을 새, 정제되고 밝으며 성대한 복장으로 앞뒤와 주변으로 도니 그 모습이 빛나고 질서정연하고, 선명한 옷차림은 오색이 서로 잘 어울려 세상에서는 보지 못한 것이고, 말하고 침묵하고 움직이고 그치는 것이 우아하고 화기로우며 기쁨에 넘쳐, 그윽하고 밝아 마치 어린아이와 같고, 여러 구부러진 난간마다 상서로운 봉황이 간간이 울음을 울어대고, 푸르고 누른 집 지붕에는 상서로운 용이 때때로 휘감아 돌고, 정원 앞에 있는 빛나고 향기로운 꽃과 나무는 좋은 냄새를 뿜어내나니, 아름다운 꽃과 보석같은 풀은 세상에서는 보기가 어려운 것이오, 진귀한 날짐승과 기이한 길짐승이 날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혹 노래도 부르고 혹 휘파람도 불며, 신선의 음악이 가지런하고 밝아 맑고 청명하고, 선녀가 신묘한 춤을 추어 가히 신의 경지에 오른 듯 아름답고 부드러우며, 층층의 누대마다 그림이 그려진 전각에는 나는 듯이 용마루가 하늘로 솟아 구름속을 꿰뚫은 듯 하야, 단청이 너무나 놀라웁고 티끌같은 먼지도 날지 않아 깨끗하고 청결하며 투명하여, 영롱하게 빛나는 빛깔이 완연 유리세계이더라. 한 큰 전각이 있어 현판을 살펴보니 황금으로 된 큰 글씨로 요운전이라고 쓰여있더라. 전각 안으로 들어가보니 용상이 있는데, 황금과 백옥으로 조각해놓은 용 봉황 거북 기린과 온갖 진귀한 길짐승과 날짐승이 참으로 아름답더라. 휘황찬란하여 가히 똑바로 바라볼 수 없더라.
대선생께서 용상에 앉으시니 만관이 다 절을 드리더라. 아 그런데 한 선관이 와서 별도로 마련된 의자에 앉으니, 백금조각들로 만들어진 상서로운 관모와 옷이 햇볕에 반사되어, 그 눈부심이 이루 말할 수 없이 황홀하고, 섬섬옥수는 하얗게 분칠한 것보다 더 순결하고, 곱고 단아한 얼굴은 눈보다도 더 맑더라. 글씨를 쓰는 모습이 참으로 놀라웁고, 안뜰 마당에는 한 큰 죄수가 있어 하늘에 생명을 구하며 그 고통을 호소하니, 신장이 여러 죄를 문책하니 심히 엄하더라.
조회가 파함에 대선생께서 형렬을 돌아보시며 "네가 여기에 왔는 데, 너의 아버지와 할아버지 만나보기를 원하느냐." 형렬이 말씀드리기를 "자손의 도리에 지극한 소원이 조상을 정성스레 만나는 것이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여러 층 아래 조금 떨어진 곳에서 문이 스스로 열리더니,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청수를 모시고 향을 피우며 주문을 읽는 공부를 하고 정성을 드리는 데, 그 얼굴이 화기롭고 기뻐하는 모습일 뿐이요, 다른 말은 한 마디도 하지 않더라.
형렬이 인간세상에 내려와서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대선생께 여쭙기를 "용상아래 별도로 마련된 자리에 앉아, 흰옷을 입고 글을 쓰고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대선생께서 이르시기를 "석가불(釋迦佛)이니라." 형렬이 여쭙기를 "석가불이 하늘의 조정에서 어떤 직위를 맡고 있나이까." 대선생께서 이르시기를 "대제군(大帝君)의 존경받는 자리요 서방칠성(西方七星)이니, 항상 내 옆에서 나를 모시면서 만상을 섭리하고 있느니라." 형렬이 여쭙기를 "동방칠성은 어찌 자리에 없나이까." 대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동방칠성은 신계의 주벽이니, 내 명을 받고 이미 세상에 태어났느니라." 형렬이 여쭙기를 "동방칠성이 인간세상에 태어났다고 하면, 가히 만나볼 수 있나이까." 대선생께서 이르시기를 "이제 초립동의 나이이니, 인연이 있으면 만날 것이니라. 장차 일을 같이하는 사람이 될 것이니라."
형렬이 여쭙기를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한 말씀도 하지 않으시니 무슨 연고이나이까." 대선생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지척지간에 있으니, 삼가하고 근신하는 모습이 그러하니라. 만약 말에 망령됨이 있어 천기를 누설하면 죄가 되느니라." 형렬이 여쭙기를 "죄수는 무슨 죄를 지었길래 그리 엄하게 다스리나이까." 대선생께서 이르시기를 "안록산이니라." 형렬이 아뢰기를 "안록산의 배은망덕은 이미 천 년이 지난 옛날의 일이거늘, 어찌 지금까지 미결수로 남아있나이까." 대선생께서 이르시기를 "나라를 잘못되게 큰 죄를 지은 자는 혹 백 년에 한 번씩 신문을 하나니, 이는 묵은 하늘이 나에게 폐해를 남긴 것이니라." (이중성의 천지개벽경 pp111-115)
안록산(安祿山, 705-757)은 돌궐족 출신의 장군으로서 당나라의 국방경비를 담당하는 절도사였습니다. 아버지는 이란계 소구드인이고 어머니는 돌궐인으로서 혼혈인이며, 중국식 표현으로 잡호(雜胡)인 한족의 이방인이었습니다. 록산(祿山)은 소구드어로 '로쿠산'으로 그 의미는 빛 광(光)의 뜻입니다. 안록산의 아버지가 일찍 죽자 어머니는 돌궐족 장수 안연언과 재혼하였는데, 생부와 더불어 의부는 돌궐족의 실력자였습니다. 안록산은 안연언의 의자(義子) 즉 양자가 된 것입니다. 안록산은 태생적 환경으로 인해 소수민족과 두루 사귀고 9개 언어를 구사할 줄 알았습니다. 유주(幽州)에서 무역 중개일을 하다가 유주자사 장수규의 눈에 들어 인생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합니다.
안록산은 장수규의 부관으로 출발하여 승진가도를 달리게 됩니다. 그러나 거란 토벌과정에서 자만과 방심으로 많은 병사를 잃어 즉석에서 죄를 문책 당하게 되었는데 ,장수규의 배려로 장안에 올라가 판결받을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당시 조정의 실력자인 장구령은 안록산의 상이 모반의 상이라 하여 참수할 것을 황제에게 건의하였으나, 현종은 오히려 안록산을 살려줬고 양귀비의 양자로 삼도록 하는 등 특별히 총애하게 됩니다. 특히 안록산은 200kg의 거구로서 호선무(胡旋舞)를 잘 추고 붙임성이 좋아 현종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습니다. 나중에 절도사와 더불어 부수상격인 어사대부까지 겸직하게 됩니다.
현종과 양귀비의 총애를 받는 안록산은 재상인 양국충과 생사를 건 싸움을 벌이게 됩니다. 처음에는 양귀비의 6촌 오빠인 양국총과 사이가 좋았으나, 현종의 총애를 독차지하기 위해 서로에 대한 모함으로 사이가 틀어지기 시작합니다. 양국충은 안록산이 모반을 꾀한다고 보고하여 현종으로 하여금 안록산의 충성심을 테스트하도록 하였으나, 감쪽같은 연기로 오히려 현종을 감동시켜 더욱 신뢰를 얻게 됩니다. 그러자 양국충은 안록산을 중앙정계의 재상으로 진출시켜 절도사의 병권을 빼앗으려 했으나, 사자를 뇌물로 매수하여 현종과 조정대신들을 속이고 절도사직을 유지합니다. 이렇게 양국충과 안록산의 갈등속에서 안록산은 가슴속에 깊이 품어온 모반을 행동에 옮기게 됩니다. 안록산은 애초부터 절도사의 병권을 장악하고 양귀비를 매수하여 현종이 죽으면 당을 멸망시켜 황제에 오를 치밀한 역모계획을 갖고 있었는데, 양국충의 심한 견제로 시기가 앞당겨지게 됩니다.
안록산은 현종의 신임하에 범양, 평로, 하동 절도사를 겸직하게 됩니다. 당시의 당나라 병권의 3분의 1이 그의 수중에 들어와 있었습니다. 드디너 755년 안록산은 양국충을 제거한다는 명분으로 그의 근거지인 범양(북경)에서 당나라에 반기를 듭니다. 반군의 핵심부대는 동라, 거란, 실위의 정예기병 8천이었는데 모두 안록산의 의자(義子)들로 구성되었고, 여기에 범양, 평로, 하동의 기병과 보병 15만~20만이 가세하게 됩니다. 안록산의 반란군에 대해 당나라 정부군은 거의 저항을 하지 못합니다. 당시 당나라 조정은 부패타락하여 안락한 세월에 안주했고 군대는 오랜 평화에 물들어 무력화되어 있었던 반해, 안록산의 반란군은 거란과 해족과의 전투를 통해 단련돼 있어 거병 1개월만에 부수도(副首都)인 낙양을 함락시키게 됩니다. 안록산이 의자들과 치밀하게 준비해온 반란계획이었기에 당나라 정부군은 속수무책으로 당하게 된 것입니다. 정부군은 고선지와 가서한 장군을 파견하여 반란군에 대항했지만, 고선지는 환관의 앙심으로 참소당해 참수되고 가서한은 양국충의 판단착오로 패전하게 됩니다.
안록산은 756년 1월 낙양에서 황제로 즉위합니다. 국명을 대연(大燕) 연호를 신무(神武)라 하였는데 낙양에 입성한 지 18일만입니다. 이제 당(唐)나라는 안록산이 건국한 대연(大燕)나라에 접수되는 일만 남았습니다. 그야말로 당나라 조정의 멸망은 불을 보듯 뻔했습니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에 안록산의 한계가 노출되기 시작했습니다. 안록산은 자신의 의자(義子)들과 더불어 키워온 원대한 대연황제의 꿈이 자신의 건강문제 때문에 결정적으로 무산되게 됩니다. 안록산은 모반을 준비하고 거병하는 과정에서 이미 병이 들어와 있었습니다. 반란이 완성되는 길목에 시력은 날로 희미해져 갔고 200kg의 몸은 질병으로 무너지고 있었습니다. 특히 대연황제로 즉위하면서 여러 무리한 행사를 기획하고 참여하다 보니 체력이 급속히 저하되었습니다. 안록산의 건강이상으로 수뇌부의 통제력이 상실되고 장병들은 낙양의 화려함에 정신이 팔려 기강이 무너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안록산의 반군은 장안을 점령하고 현종은 사천으로 피난을 가게 됩니다. 피난과정에서 호위 장병의 하극상이 발생하여 양국충과 양귀비의 언니가 참살당하고 양귀비도 비단끈으로 목졸려 살해당합니다. 현종은 어쩔 수 없이 황태자(숙종)에게 보위를 넘겨주게 됩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속에서 안록산은 악성종기로 정신착란에 빠져 결정적인 자중지란이 발생하게 됩니다. 안록산은 자신의 애첩의 아들을 자신의 후계자로 결정합니다. 이에 불만을 품은 그의 둘째 아들 안경서(安慶緖)가 침실에 들어가 안록산을 암살합니다. 후계자의 지위가 불안한 안경서가 아버지를 죽인 것입니다. 안록산의 나이 55세 거병한 지 14개월 만입니다. 안록산이 암살당하자 그의 오랜 동갑친구이자 제1의 장수인 사사명(史思明)이 안경서를 죽이고 안록산의 뒤를 이어 반군을 지휘하지만, 그도 또한 그의 아들 사조의(史朝義)에 의해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이로써 8년동안 당나라를 통째로 뒤흔든 안록산 사사명의 난은 끝나고 맙니다.
안록산의 난은 중국사를 뿌리째 뒤흔든 대사건이었습니다. 안록산 사사명의 8년 반란으로 당의 근간이 흔들렸습니다. 당시 세계에서 가장 번성했던 당나라가 쇠퇴기로 나아가는 역사적인 분기점이 되었습니다. 전란후 인구가 10분의 7이나 감소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반란으로 변경 수비가 허약해 지자 변경의 수비를 강화하기 위해 절도사의 수를 증가시켰으나, 그 부작용으로 절도사들의 힘이 커져 지방이 중앙에 모반하는 일이 자주 발생했습니다. 결국 안록산의 반란으로 당나라는 약체의 길을 걷게 되었고, 국토를 황폐화시켰고 백성들의 삶을 끝없는 절망과 쇠락으로 내몰고 말았습니다.
누구보다도 앞장서서 목숨을 받쳐 국방경비를 강화하여 국태민안(國泰民安)을 도모해야 할 절도사입니다. 그런 절도사의 칼날이 당나라와 백성들에게 향했습니다. 충신의 길을 걸어야 할 절도사가 역신의 길을 걸은 것입니다. 안록산이 나라를 배신하고 주군을 몰아내고 백성을 도탄에 빠지게 했으니, 안록산이 비록 아들의 손에 암살당했을 지라도 증산상제님께서 반역죄를 묻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증산상제님께서는 '천지의 혼란한 시국을 광정하려고 당태종을 내고 다시 이십사절을 응하여 이십사장을 내어 천하를 평정하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안록산은 증산상제님의 명을 정면으로 거슬려 당나라를 대혼란에 빠뜨린 것입니다.
증산상제님은 급살병에서 천하창생을 구원하기 위해 남조선 대한민국의 땅으로 오셨습니다. 대한민국은 증산상제님이 반공주의를 국시로 하여 이승만을 내서 건국한 나라요, 박정희를 내서 부흥시키고 지켜낸 나라입니다. 간태합덕의 천리를 따라 미국이 대한민국을 돕도록 하셨습니다. 한미동맹을 굳건히 하고 안보를 강화하여, 금강산 겁기를 붙인 북한 공산주의로부터 대한민국을 잘 수호하도록 엄명하셨습니다. 대한민국이 공산주의에 물들어 적화되면, 공산주의는 종교를 부정하기 때문에, 증산상제님이 설 자리가 없어지고, 또한 급살병에서 세계인류를 구원해야 할 의통성업의 기지가 사라집니다.
김일성은 대남적화 야욕을 한시도 버린 적이 없습니다. 그의 대남적화는 김정일 김정은으로 이어져 삼대세습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를 공산주의로부터 지켜내는 것은 투철한 반공의식입니다. 증산신앙인들은 증산상제님께서 반공주의자 이승만과 박정희를 통해 대한민국을 지켜내고 부흥시키셨다는 사실을 가슴깊이 새겨야 합니다. '급살병이 돌 때까지 대한민국을 공산주으로부터 잘 지켜내라'는 증산상제님의 엄중한 명령입니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반공을 국시로 대한민국을 수호해야 할 역사적인 의무와 책임이 있습니다. 김대중은 김정일과 6.15 남북공동선언이라는 남북연방제합의로 대남적화의 길을 열었습니다. 참으로 대범하고 교묘한 방법으로 대한민국에 공산주의를 공식적으로 용인하는 출발점이 되게 하였습니다.
6.15선언을 계기로 남한 김일성주의자들은 대한민국을 지키는 국가보안법의 무력화를 시도하였고, 반미를 주창하며 주한미군 철수를 외쳐대고, 김일성을 찬양하며 연방제 통일을 부르짖게 만들었습니다. 노무현은 10.4 남북공동선언으로 김대중의 6.15공동선언을 뒷받침했습니다. 김대중과 노무현을 앞세운 김일성주의자들의 선전선동에 속아넘어가는 일반국민들이 점차 늘어가게 되었습니다. 공산주의에 붙여놓은 금강산의 겁기가 종북좌파의 선전선동을 타고 대한민국을 덮어, 사회 구석구석에 갈등과 투쟁이 만연하고 있습니다. 제자가 스승을 우습게 생각하고, 근로자가 회사를 분탕질하고, 시민단체가 사회의 혼란을 부채질하고, 정치인이 정부와 국회를 무력화시키고 있습니다. 6.15선언과 10.4선언은 반(反) 대한민국을 도모한 대역죄입니다. 이는 명백히 대한민국에 김정일 공산정권을 초대한 김대중과 노무현의 반란입니다.
김대중의 햇볕정책으로 김정일은 핵무기와 미사일을 만들었습니다. 김대중의 햇볕정책을 계승한 노무현은 대북퍼주기를 본격화했습니다. 김대중 노무현정권 10년동안 남한은 종복좌파의 큰 흐름이 만들어졌고, 북한은 대한민국 적화를 위한 직간접적인 침략무기를 완성시켰습니다. '북한 공산주의에 대항하여 대한민국의 안보를 튼튼히 하라'는 증산상제님의 명령에 정면도전한 김대중 노무현정권의 10년 세월이 끝났습니다.
하루빨리 그들이 남기고 간 반(反) 대한민국의 바이러스를 치료하여 대한민국의 건강성을 되찾아야 합니다. 대통령을 비롯한 위정자들은 그 일에 앞장서야 합니다. 하늘이 남북연방제를 통한 대한민국 적화를 더이상 허락할 수 없기에 그들의 명을 거뒀고, 이제 급살병을 앞두고 반(反) 대한민국의 길을 걸은 대역죄의 심판만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들이 급살병에서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무엇보다도 먼저 증산상제님께 자신들이 범한 반 대한민국의 대역죄를 깊이 반성하고 참회해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들을 추종하여 따르는 집단을 대한민국의 건강한 사람으로 되돌려 놓아야 합니다.
증산상제님께서 의통성업을 집행할 수 있도록 대한민국를 건국하도록 하셨고, 태을도의 생명길을 여셨습니다. 지금은 태을도를 만나 태을도인으로 포태되는 후천개벽기입니다. 김일성주의자들은 금강산 겁기가 마음속에 가득찬 사람들입니다. 독기가 계급투쟁의 분노가 되었고, 살기가 계급투쟁의 증오가 되었습니다. 그들이 갖고 있는 독기와 살기의 근원이 금강산 1만2천봉에 휘감긴 겁기입니다. 그들은 공산주의에 편승한 독기와 살기로 계급투쟁을 벌려 공산주의 민중혁명을 도모하려고 합니다.
증산상제님께서는 대한민국에서 금강산 1만2천봉에 응기한 생기를 받은 1만2천 혈식천추도덕군자가 출세하도록 천지공사를 보셨습니다. 김대중과 노무현의 6.15와 10.4선언을 앞세워 대남적화를 이룩하려는 김일성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어리석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공산주의사상에 매몰된 1만2천의 김일성주의자가 되지 말고, 의통성업을 집행할 1만2천의 혈식천추도덕군자가 되어야 합니다. 진정한 민주화 운동과 인권운동, 환경운동과 통일운동은 증산상제님의 가르침을 올바로 따르는 것입니다. 태을도를 만나 마음닦고 태을주를 읽어 금강산 겁기를 풀어없애야 목숨을 부지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