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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전쟁 21 - 아프리카 동부의 케냐, 영국 식민지에서 독립하다!
if you want to go quickly, go alone, if you want to go far, go together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 는 유명한 말의 원전은 스와힐리어
이며 아프리카 속담으로 알려져 있는데 즉 케냐의 한 부족인 루오족의 전승이라고 합니다.
저 말은 2008년에 엘 고어가 강연에서 아프리카 속담으로 소개해 유명해 졌는데 1996년
에 힐러리 클린턴은 It takes a village 라는 책에서 It takes a village to raise a child
라는 아프리카 속담을 인용했으니, 케냐의 스와힐리어에도 비슷한게 있고 남쪽
킬리만자로산 너머 탄자니아 Jita 족의 속담 Omwana niwa bhone 가 원전이라고 합니다.
케냐는 아프리카 동부에 적도상에 있는 국가로 '케냐' 라는 국명은 아프리카에서 킬리만자로에
이어 두번째로 높은 케냐 산(Mlima Kenya) 에서 따온 것이며 수도는 나이로비(Nairobi) 로,
아프리카에서 가장 활발한 대도시로 면적은 남한의 6배인 58만 ㎢에 인구는 5,500만명 입니다.
케냐인 루오족 중에 버락 오바마 시니어(Barack Obama, Sr.) 는 빅토리아 호수 라쿠온요
구역의 칸야드히앙 마을에서 태어났는데 경제학자이며..... 전 미국 대통령인 버락
오바마의 친아버지 이니, 그는 아들이 쓴 회고록인 《내 아버지로 부터의 꿈》 에서
주요한 인물로 등장하지만 1982년 케냐 나이로비에서 47세에 교통사고로 죽었습니다.
케냐인 마라톤 선수 "윌슨 로야나에 에루페(Wilson Loyanae Erupe)" 는 한국으로 귀화해서 이름을
"오주한(吳走韓)" 으로 지었는데 성(性)은, 본인을 발굴하고 지도한 오창석 코치를 따라 붙였으며
이름의 한자도 '달릴 주' 에 '한국 한' 을 사용해 '오직 한국을 위하여 달린다' 라는 뜻을 가지는데
2011년 경주 국제마라톤에서 우승했고 2012년 동아 마라톤에서 2시간 5분 기록으로 우승했습니다.
미국 교포 한국인 릴리는 <릴리가족 Lily Petals> 이라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콘텐츠 크리에이터로,
케냐인 제임스와의 사이에 난 딸 유리와 다솜이는 릴리 유튜브 영상의 등장 인물인데 영어로 말하지만
한국어와 영어 자막을 달아주며 13년간 남편인 제임스가 늘 함께 출연했으나 작년에 이혼했다고 합니다.
아프리카 동부의 케냐는 1884년 베를린 회담으로 영국의 소유로 결정(?) 되었으며 1895년 7월 1일
우간다와 함께 영국령 동아프리카에 속하게 되고 1920년 6월 11일 케냐 식민지로 분리됐으며
1963년 12월 12일 영국에서 독립해 다음해인 1964년 12월 12일 케냐 공화국 정부가 수립됩니다.
1963년말 독립할 때 1인당 국민소득은 한국이 100$ 인데 비해 케냐는 50$ 정도였는데 한국은
1965년 한일국교정상화 이후 청구권자금으로 당시 일본 외환보유고의 3분지 1에
달하는 6억달러 돈을 들여오니 와세다대에 다녔던 박태준이 이나야마 요시히로 신일본제철
회장을 설득해 1억달러로 일본 기술자들이 신일본제철의 기계설비를 뜯어와 포항에서
재 조립하고 한국인들을 기술자로 훈련시켜서는 1973년네 첫 쇳물을 뽑으니 "포항제철" 입니다.
5억달러 중 절반으로 경부고속도로, 소양강댐, 울산공업단지 및 부두시설등을 건설하고 나머지
절반으로는 석유, 철광석, 고무, 나프타, 나무등을 수입해 공업입국에 성공하면서
현재 한국은 35,000$ 인데 비해 농업국이자 관광산업을 발전 시킨 케냐는 2,000 $ 로
격차가 크게 벌어졌는데...... 1965년 당시 6억달러는 현재 가치로 치면 60억 달러 정도 됩니다.
철강은 산업의 쌀이니 이승만 정부, 민주당 정부, 공화당 정부가 3차례나 안간힘을 썼으나 미국
과 영국이 거부해 실패하였으니.... 우리에게 돈과 기술을 줄 나라는 오직 철천지 원수놈인
일본뿐이었는데, 포철로 인해 철강, 기계, 건설, 조선소, 자동차공업이 일어서는데 외국에서
철강을 수입하면 금액도 비싸고 시간도 걸리니 제품 가격이 비싸져 우리 수출은 불가능
하고 더욱 중국이 1979년 미국과 수교해 세계시장에 진출하니 그 후라면 중국에 잡혀버립니다.
케냐는 영어와 스와힐리어를 사용하는데 스와힐리어로 된 “잠보 브와나” 라는 노래가
케냐를 상징하는 노래로 유명하며 1952년 2월 6일 아버지이자 선왕인 조지 6세
가 사망함에 따라 25세의 엘리자베스 2세는 당시 방문중이던 케냐에서 영국왕
이 되었는데 당시 엘리자베스 2세가 묵었던 트리탑 호텔은 유명 관광지가 되었습니다.
“잠보 브와나”는 케냐의 밴드인 뎀 머쉬룸스(Them Mushrooms)가 작곡한 팝송으로 1982년
에 발표되었으니 가사는 케냐를 소개하고 있으며 스와힐리어로 되어있는데 ‘잠보
브와나’는 한국어로는 "안녕하세요, 손님." 이라고 의역되니 Bwana 는 Mister 라는 뜻입니다.
뎀 머쉬룸스가 몸바사 일대의 호텔을 돌아다니며 가수활동을 했을때 작곡된 곡
이라고 하는데.... 가사도 접객하는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곡이나 그렇지만
토속적인 리듬과 경쾌한 리듬이 잘 어울려져서는 엄청난 히트를 치게 됩니다.
한국에서도 바바 예투와 더불어 유명한 스와힐리어 노래니 저 노래가 유명한 이유는 초등학교 6학년 음악
교과서의 수록곡이기 때문인데 2015개 정이 도입된 2019년 부터는 초등학교 5학년에서도 가르치기
시작했으며 야구의 응원가로도 자주 쓰이니 KIA 타이거즈 류승현과 한화 이글스의 안타송으로 쓰입니다.
Jambo, Jambo bwana 잠보, 잠보 브와나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손님
Habari gani, Mzuri sana 하바리 가니, 음주리 사나 잘 지내세요, 아주 좋아요
Wageni, mwakaribishwa 와게니, 므와카리비슈와 외국에서 오신 분들, 반가워요
Kenya yetu Hakuna matata 케냐 예투 하쿠나 마타타 케냐는 아무 문제 없어요
Kenya nchizuri 케냐 은치주리 케냐는 아름다운 나라
Nchi ya maajabu 은치 야 마아자부 신비로운 나라
Nchi ya kupendeza 은치 야 쿠펜데사 어여쁜 나라
케냐의 스와힐리어는 아프리카 최대의 언어 중에 하나이자 소말리어, 암하라어, 하우사어, 줄루어,
코사어와 더불어 가장 대중적으로 알려진 토착로 명칭의 유래는 케냐, 탄자니아, 모잠비크
북부 해안 지역의 이름인 스와힐리이며 남아프리카의 에스와티니에서 쓰는 언어는 스와티어 입니다.
원래는 동아프리카의 스와힐리 지역에 사는 스와힐리족의 언어이지만, 동아프리카 지역의 공통어
구실을 하며 사용 국가는 탄자니아와 케냐로 스와힐리어를 국어로 지정했으며 그 밖에
우간다, 콩고민주공화국, 르완다, 부룬디, 말라위, 마다가스카르 등지에서도 교역어로 사용됩니다.
르완다와 부룬디는 동아프리카 공동체의 회원국들이기 때문에 케냐, 탄자니아와 교류, 교역을
위해 스와힐리어 교육을 의무적으로 실시하며, 모잠비크 내에도 스와힐리어 화자가 소수
존재하고 음와니어라는 스와힐리어의 방언도 쓰이며 남아공과 보츠와나에선 스와힐리어
가 주요 외국어이고 에티오피아의 아디스아바바 대학에 스와힐리어 과정이 설치돼 있습니다.
스와힐리어는 아프리카 연합의 공용어로도 지정되었고 동아프리카 공동체에선 스와힐리어
가 영어와 함께 공용어로 지정되었으며 오만에도 일부 사용자가 거주하고 코모로는
스와힐리어와 가까운 계통인 코모로어가 아랍어, 프랑스어와 함께 공용어로 지정
되었으니스와힐리족은 70만명뿐이지만 스와힐리어를 쓰는 화자는 3,000만명 이상 됩니다.
스와힐리어는 아프리카 최대 어족인 반투어족에 속하는 언어이지만.... 아랍어의 영향을
상당히 받았는데, 동아프리카 지역에서 일찍이 아랍 상인들이 진출하고 교역하는
과정에서 문자를 포함한 어휘적 영향이 컸기 때문이며 또 스와힐리족 본인
들이 교역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이었기에 이들의 언어가 동아프리카 각지에 퍼졌습니다.
이 과정에서 특정 종족의 민족어 보다는 서로 다른 여러부족 사이의 통용어 구실을 하면서 발전해 왔으며
영어나 프랑스어, 포르투갈어 등 옛 식민지 종주국의 언어를 여러가지 사정상 물려받아 공용어로
사용하는 다른 아프리카 국가와 달리 탄자니아는 스와힐리어를 유일한 국어(national language) 로
지정했으며, 케냐에서 스와힐리어는 공용어 영어와는 별도로 국어(National language) 로 지정했습니다.
스와힐리어는 과거에는 아랍 문자를 사용했지만 현재에는 로마자를 사용하는데 언어적으로
가장 큰 특징은 명사 중심이니, 명사가 주격이냐, 목적격이냐, 형용사격이냐,
소유격이냐, 관계격이냐에 따라 전부 다른 접사를 쓰니 즉 최소한 외워야 할 접사는
56개(!)이며 이걸 완벽하게 구사하지 못하면 최소한의 문장 구성 자체가 안 된다고 합니다.
고대에 케냐에는 코이산족 계열의 수렵채집민 부족들이 거주하였으나 기원전
1000년경 북부의 아프리카아시아어족 쿠시어파 부족들에 의해 목축과
농경을 도입한 반투족 민족들이 이들을 몰아내고 케냐 전역에 정착하였습니다.
기원전 700년경에는 북아프리카 사막화의 영향으로 나일사하라어족 나일로트계 민족들도 남하하였는데
이들은 마사이족의 조상이 되었으니.... 마사이족은 아프리카 동부 케냐와 탄자니아에 거주하는 유목
민족으로 마사이어를 사용하며 남성과 여성을 합친(19세~65세) 평균 키는 177㎝ 로 장신을 자랑합니다.
원래 나일사하라어족의 샤리나일어군에 속하는 동수단어를 쓰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언어학
용어를 나타내는 말인데...... 이것이 부족명으로 굳혀진 경우이니 좁게는 케냐와
탄자니아에 걸쳐있는 그레이트리프트밸리 지역에 사는 유목 마사이족을 뜻하나 넓게는
케냐의 삼부루족, 탄자니아에서 반유목생활을 하는 아루샤족과 바라구유족도 포함 합니다.
몇몇 부족들이 뭉쳐서 1개의 집단을 이루는데 소똥으로 만든 반원형의 지붕이 낮은 집을 짓고 가시나무로
만든 울타리를 치니, 그레이트리프트밸리 지역에는 가시나무가 많아 구하기 쉽고 가시가 동물을 방어
하기 유용하기 때문인데 잠시 머무는 의미가 강해 규모가 조그마한 창고 같은 느낌을 주니 이 집에
4~5가구가 같이 생활하며 우기에는 진흙이 무너지는 걸 방지하기 위해 동물 가죽을 지붕 위에 씌웁니다.
남자는 송아지나 염소가죽으로 된 케이프를 걸치고, 여자는 케이프나 스커트를 착용하며,
머리는 붉은 흙으로 굳힌 특이한 모양의 헤어 스타일로 꾸미는데, 남성 중심의
사회이며 모든 씨족은 남자들이 우선권, 결정권을 가지고 또한 일부다처제로써 씨족
외혼이 이루어지며 같은 연령 집단에 속한 남자들끼리 아내를 빌려주는 풍습이 있습니다.
또한 마사이족의 계급사회는 10년을 단위로 하는 연령 집단인데, 같은 연령대끼리 같은 계급의
구성원이 되니 50년생(50-59), 60년생(60-69)등으로 같은 연령대에서는 서로 동등하며
아내를 빌려주는 것은 동기 간에만 한정되고 여성과 남성의 역할이 두드러지게
다르며, 성별과 나이에 따라 정해진 역할이 확실하게 정해져 있으며 평등해서 노예가 없습니다.
게다가 자존심이 강해서 노예가 되는 것을 매우 싫어해 자살하면 했지, 노예로 잡혀가 굴욕적으로 살아
가는 걸 혐오해서 마사이족은 노예로 끌려간 적이 없으며 백인이나 아랍인등 다른 부족들의 노예
사냥에도 죽어라 덤벼들어 침략자들도 장사나 하려다가 엄청난 사상자를 내고, 그나마 잡은 마사이
족은 반란을 일으키고 분하면 자살하니 손해만 봤고 결국 백인들은 학을 떼며 물러서야 했다고 합니다.
남녀 모두 성인이 되면 유대인이나 과거 아랍인들 처럼 할례(여성할례)를 하는데 그 방식이 특이하며,
성인식은 사자 사냥(!)인데 사자의 꼬리를 잡는 자가 성인식 최고의 남자로 꼽힌다고 하며
나이를 먹어가면서 위계가 높아지는데 한 등급은 대략 15년간 유지되니 상하급 전사,
상하급 연장자 등으로 등급이 나뉘며 상급 연장자는 부족 안에서 중요한 일을 결정할 권한을 가집니다.
마사이족은 유목민족답게 1년 내내 초지를 찾아 떠돌아 다니니 주로 먹는 것은 고기와 우유,
그리고 동물의 피로 전 인류적으로 봐도 키가 크고 또 뼈나 치아가 튼튼한 편이라
우유 섭취가 많은 북유럽과 우유 섭취가 적은 아프리카의 골다공증 비율을
예시로 우유 섭취가 많을수록 골다공증을 유발할수 있다는 주장에 반박 예시로 등장합니다.
또한 사자 사냥을 하니 마사이족이 마음만 먹으면 인근 사자의 씨를 말려버릴 수도 있다는데
실제로 2005년에 케냐 측이 마사이족 일부가 사자 서식처에 산다고 강제 이주를
시키려고 하자 분노한 마사이족이 사자들을 찾아가 닥치는 대로 창과 활만으로 숫사자
5마리, 암사자 3마리를 죽여버렸고 활과 창에 부상당한 사자가 모두 30마리가 넘었습니다.
결국 국제적인 비난은 케냐 정부가 다 얻어 먹었는데..... 하긴 무턱대고 나가라고 하니 대대로 살던
이들이 열받아 그렇게 사자가 중요하다면 사자를 다 죽이겠다고 나선 것이니, 결국 케냐
정부가 상당한 돈을 보상금으로 내주고 합의했다는데... 외국 기자들이 취재한 걸 보면
마사이족이 오면 사자들은 그야말로 달아나기 바빴다고 하니 맹수의 왕이 체면이 말이 아닙니다?
사실 동물들이 먹다 남긴 고기를 주워다가 식량으로 삼는 일은 유목/수렵 부족들에게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일이니 동물들이 적당히 배가 불렀을 때 쫒아내는 것으로 직접 사냥을 하는 것에
비해서 덜 위험하기 때문인데 다만 마사이족 특유의 위엄(?)때문에 특이하게 보이는 것입니다.
유일하게 키우는 가축이 소 인데, 마사이족의 설화에 따르면 소는 마사이족만 가질 수 있는
독점적 가축이라 하여 다른 부족의 소를 약탈해 와서 키우거나 먹으며 사냥해온 짐승의
피를 우유에 섞은 것이 주식인 만큼 소는 마사이족에게 있어 최고의 재산이며 가축이
아니라 거의 가족 수준으로 굉장히 잘 대해주니 마사이족의 전통 설화와 관련이 있습니다.
옛적 태고시절 하늘나라에 마사이족이 살고 있었으니 아버지는 곧 하느님이요, 그들의 말로
'은가이(Ngai)' 즉, 신(神)이라고 불렀는데 어느날 아이들이 하늘나라에서 지상을
내려다 보니 그들은 조선의 환웅 처럼 지상의 세계가 매우 아름다워 가보고 싶은
충동을 느꼈으니 지상을 동경한 나머지 아이들은 아버지 은가이 신에게 허가를 얻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한 집단이 환웅은 구름을 타고 내려온데 비해 이들은 밧줄을 타고 천국에서 지상으로 내려
왔으니 은가이신은 아이들에게 명령하기를 "너희가 지상에 내려가되 결코 다른 동물을 죽이거나 잡아
먹어서는 안된다. 그래서 나는 너희들과 함께 하늘나라에서 소와 양과 염소를 내려 내니 이 짐승
들을 길러 그 젖을 먹고 살아야 하며 내 명령을 거역하고 다른 동물을 해치거나 잡아 먹어서는 안된다."
아이들은 아버지의 명령에 '예, 잘 알겠습니다' 라 대답하고 밧줄을 타고 지상으로 내려왔는데
그러나 며칠이 안 되어 아이들은 은가이 신의 명령을 어기고 어느날 그만 사슴 한 마리를
잡아먹고 말았으니 하늘나라에서 이를 지켜보던 아버지 은가이 신은 격분했다.
"저놈들이 내 말을 거역하다니…" 하면서 하늘나라에서 타고 내려간 밧줄을 잘라버렸습니다.
"너희놈들은 아버지와 약속을 어겼다. 너희는 사슴을 해친 죄로서 하늘나라로 다시 돌아올 수 없는 벌을
받을지어다." 이에 놀란 아이들은 은가이 신에게 용서를 빌었다. "아버님, 제발 한 번만 용서해 주십시요.
우리가 잘못했습니다. 다시는 다른 짐승을 잡지 않겠으니 하늘나라로 돌아갈수 있도록 밧줄을 내려주소서."
그럼에도 은가이 신의 분노는 가라앉지 않았다. "너희는 이대로 하늘에 되돌아올수 없다. 다만 내가 함께
내려보낸 소와 양과 염소를 너희가 지상에서 열심히 길러 내가 만족할 만큼 그 숫자가 증가했을 때,
나는 너희들이 하늘나라로 되돌아올수 있도록 밧줄을 내려줄 것이니라." 『아프리카 부족과 문화』. 유종현
19세기에 이들을 관찰한 백인들은 두툼한 입술이 많은 보통 흑인과 다른 외모, 유독 큰
키와 호리호리한 몸매 등을 가진 이들이 미개한 흑인일리 없다며 고대 로마병사
들의 후예가 아프리카에서 떠돌다가 남은 것 아니냐는 엉터리 주장을 하기도 했습니다.
니제르콩고어족과 나일사하라어족의 차이에 대한 무지에 의한 것으로 주로 서아프리카의 정글 지역에서
살아온 니제르콩고어족은 비교적 키가 작고 코가 납작한 반면, 마사이족을 비롯한 나일사하라어족은
대개 아프리카의 뿔 지역 등 건조지역에 거주하는 민족으로 생활 환경에 맞게 키가 커진 것이며 의식은
올로이보니라는 제의 담당자가 맡는데 정치적인 권력이 주어지지 않는 종교지도자이니 고대 제사장입니다.
맨발로 걷는다고 알려진 마사이족의 워킹이 디스크를 예방하는등 몸에 좋다고 해서 이를 재현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자세교정 기능성 신발의 일종인 마사이워킹 슈즈가 2000년대에 한동안
유행한 적이 있는데.... 하지만 마사이족들은 맨발로 걷지 않고 대부분 폐타이어로 만든
슬리퍼나 조리를 신으며 마사이워킹 슈즈라 알고 있는 신발은 스위스 기업에서 만든 것입니다.
케냐 정부와 탄자니아 정부에서 농경 정착을 지원해줘서 유목생활을 하는 마사이족들의
수가 급격히 줄고 있다고 하며 그 밖에도 관광객들에게 관광용품을 팔거나 사진을
찍혀주고 돈을 받는 이들도 많으니 이 때문에 가짜 마사이 마을도 있는데
관광객이 찾아오는 곳은 민속촌 같은 테마파크 이고, 실제 마사이 마을은 따로 있습니다.
관광객을 상대로 돈을 만진 마사이들은 차도 굴리고 집도 잘 지어놓고 살며.... 딱히 잘 살지는
않더라도 휴대전화를 가지면서 통화를 한다든가 모바일 뱅킹을 하는 경우도 많기도 한데
물론 전기가 보급되어있지 않은 경우가 많기 때문에 충전을 태양광으로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모든 마사이족들이 전통적인 생활을 유지하거나 관광업으로 살고있는 것도 아니라
상당수의 마사이족들이 돈을 벌려거나 기회를 찾아서 도시로 떠나기도 하며, 일부
잘 사는 마사이족들은 정계에 진출하기도 하는데 마사이족 가운데서 가장 출세한
인물로는 에드워드 로와사 라는 인물로 2005년 부터 2008년 까지 총리를 지냈습니다.
마사이족은 한국 만화에 이우정의 갈기없는 검은 사자, 허영만의 잠비지강의 달무리에 나온 바
있으며 2005년 발매된 가수 렉시 2집의 타이틀곡 '눈물씻고 화장하고' 뮤직
비디오에서 마사이족 주민들이 특별 출연해 제자리 뛰기 등 전통의식을 선보이기도 했는데....
엠넷 비틀즈코드에서 렉시가 밝히기를 뮤직 비디오 촬영 당시 진짜 호랑이와 뱀을
가져다 놓고 촬영해서 정말 무서웠다고 하며 체체 파리가 유행했던 해에
가축이고 사람이고 모두 '수면병' 에 걸려서 거의 멸족 위기에 처한 적도 있었습니다.
사냥할 때 창과 방패, 활을 주로 쓰지만 실제 다른 부족과 싸울 때는 총을 사용하기도
하는데 아프리카의 치안이 시원치 않아 잘못하면 무장반군이나 강도에게 당할수
있고, 사자나 하마 등 맹수들도 널린 아프리카 초원인지라 총을 안 쓸수가 없습니다.
아직 발견조차 못한 극오지의 원주민이 아닌 이상 원주민들이 원시적으로 생활하는 것은 대부분
관광 서비스지 절대 다수는 문명생활을 누리고 있으며 원주민 관광지에서 원주민들이
자기 것보다 훨씬 최신형의 전자기기를 쓰고 있었다는 관광객의 증언이 자주 나오기도 합니다.
1950년대 케냐에 키쿠유족이 중심이 된 마우마우단의 반란이 일어났을 때, 키쿠유족과 사이가 좋지 않던
마사이족은 영국 식민정부 편에 서 있었으니 한 영국군 장교가 마사이족들에게 "키쿠유족이 가진
무기(arm) 를 모두 수거해 오라"고 하자, 즐겁게 출동한 마사이들은 커다란 바구니에 피가 흥건한
"키쿠유족의 팔(arm)" 을 가득 담아다가 자랑스럽게 내놓아 그 장교를 기겁하게 만들었다고 합니다.
weapon(武器 무기) 을 가져오라고 했으면 별 일 없었을 텐데.... 영국의 작가 이블린 워가 1959년 3월에
동아프리카에서 직접 겪은 일을 기록한 편지에 나오는데, 팔 로도 사람을 해칠 수 있어서 팔도 무기라고
하면 무기라고 할 수는 있겠는데 마사이족이 오해한 게 아니라 '고의' 로 팔을 가져왔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해안 지역에서는 고대 부터 인도양을 건너온 인도 상인들과 상아와 노예무역을 했으며 서기
900년 이후에는 아랍인들과 페르시아인들이 해안 지방에 정착하여 몸바사가 세워집니다.
이 과정에서 교역 언어로 니제르콩고어족 반투어군 바탕에 아랍어 어휘와 문자를 받아들인 스와힐리어
가 발전하게 되는데..... 조선시대 초에 제작된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에 킬리만자로 산이 묘사되는
것을 보면 케냐에 대한 정보가 아랍인, 페르시아인 상인들을 통해 원나라로도 전파되었던 듯 합니다.
1488년 포르투갈 항해사 바르톨로뮤 디아스는 희망봉(喜望峰) 을 발견하고는... '카부 다 보아
에스페란사(Cabo da Boa Esperança)' 라고 한 것을 영어로 번역한 '케이프 오브 굿 호프
(Cape of Good Hope)' 가 근대에 일본어로 번되었다가 다시 한국어에 수입된 것인데,
중국에서는 일본인들이 부르는 희망봉이 아닌 '호망각(好望角; Hǎowàngjiǎo)' 이라고 부릅니다.
9년 후인 1497년, 바스쿠 다 가마는 4척의 범선과 170여명 선원으로 이루어진 함대를 이끌고 아프리카
대륙의 남쪽 희망봉을 돌아, 아프리카 동해안을 따라 북상해 1498년 오늘날 케냐의 몸바사와 말린디
에 기항한후 길잡이로 인도 구자라트 출신 무슬림들을 고용해서 뱃길 안내를 받아 인도양을 건넙니다.
1498년 5월 인도 캘리컷항에 도착하면서 유럽에서 인도로 가는 동쪽항로를 개척하게 된 것인데 인도
도착때 그들을 처음 반겨준 것은 현장에 있던 튀니지 출신 아랍인 상인 둘이었으니 이들은
유럽인이 온 것을 보고 한 말은 "망할 놈들, 어떻게 여기까지 왔어?" 였다고 그의 여행기에 적었습니다.
첫번째 항해때 인도에 3개월간 머물렀지만, 코지코드 왕국의 군주이자 캘리컷항의 통치자 자모린은 유럽인
들과 그들의 상품에 대해서 별 관심이 없었으니 인도인이나 아랍상인들이 보기엔 탐험대의 무역상품이
한심할 정도로 저품질이었고 메리트가 없었기 때문이니 자모린은 바스쿠 다 가마가 진상한 외투나
모자, 설탕을 보고 비웃으면서 향신료를 사고 싶으면 이따위 것은 집어치우고 금이나 가져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까 1498년 무렵 케냐의 항구 몸바사와 말린디에서는 아랍의 상인에다가 인도인 상인들까지 무역을
위해 거주했던 국제무역항이었다는 얘기인데..... 1528년 포르투갈이 잠시 케냐 해안 지대를 정복
했다가 1585년 오스만 제국 지원을 받은 북쪽의 소말리인들이 포르투갈인들을 상당 부분 축출하였습니다.
그래도 인도로 가는 중요한 항로인지라 케냐의 일부 포르투갈 거점은 170년을 더 버티며
유지하다가 1698년에 마지막 포르투갈 식민기지는 함락당해 오만 제국의
산하로 들어갔고 이후 1884년 베를린 회담으로 인해 영국의 보호령이 되었습니다.
다른 말로 콩고 회담(영어: Congo Conference)은 1884년 독일 재상 비스마르크의 중재로 베를린에서 개최
된 아프리카 분할에 관한 회담으로 주최국인 독일 제국은 카메룬과 탄자니아, 나미비아 등을 얻었고 영국
은 케냐와 우간다를 얻었으니 유럽 제국주의자들이 자기들 마음대로 아프리카 나라들을 찢어 먹은 것입니다.
저 베를린 회담은 1878년에 체결된 산스테파노 조약 개정을 위해 열렸으니....
산스테파노 조약은 1878년 3월 3일 러시아 제국과 오스만 투르크(터키)
제국 양국이 산스테파노(이스탄불 서쪽 예실키) 에서 체결한 평화 조약입니다.
1876년 불가리아에서 터키 유혈 반란진압, 또한 세르비아인들을 향한 보스니아 폭도들의 대우에 관한 호소
후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는 오스만 제국에 전쟁을 선포하자 러시아는 슬라브 민족들을 지지했지만,
그전에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중립성이 있었으니 부다페스트 협약에서 러시아는 발칸에서 단 하나의
슬라브 국가도 건설하지 않으며 보스니아는 오스트리아 영향권에 있다는 것을 인정하기로 약속했었습니다.
후에 러시아-터키 전쟁에서 러시아는 오스만 제국의 유럽 부분을 대부분 획득했고, 단지 콘스탄티노플만은
서방 국가의 간섭으로 얻지못했는데 러시아의 괄목할만한 확장 속에서 대영제국과 프랑스는 자신들의
이익이 줄어들었고, 존재를 보이기 위해 지중해 주변의 함대를 해협으로 보냈으니 러시아는 터키와의
산스테파노 조약에서 달성될 성취를 규정하려고 하자 터키는 러시아의 요구를 수용할수 밖에 없었습니다.
1878년 3월 16일 산스테파노에서 비준서 교환이 이루어졌으며 조약은 효력을 발생했으니 러시아에서는
콘스탄티노플 주재 대사였던 백작 니콜라이 이그나티예프와 발칸에 있는 러시아 육군 총사령관 외교
서기 책임자와 다음 대사 넬리도프가 조약에 서명했으며 터키 측은 외교부 장관 사브페트 파샤였습니다.
산스테파노 조약은 세르비아, 몬테네그로와 루마니아의 독립을 인정했고, 그들의 영토는
늘어났으며 보스니아와 헤르체고비나는 자치주를 구성했고 발칸에서는 모이시아,
트라키아와 마케도니아에서 인종상 불가리아의 영토로 된 불가리아 새 자치
슬라브 공국이 생겨났으니....... 불가리아는 두나야에서 부터 에게해 까지 늘어났습니다.
터키는 배상금 14억 1000만 루블을 지불해야 했고, 그 중 아시아의 아르다칸, 카르스, 바투미,
비야지드, 도브루자, 델타의 섬 두나야, 유럽에 있는 뱀 섬들의 영토 양도를 희생으로
11억을 갚았으며.... 베사라비아의 남부를 보상으로써 러시아에 돌려주는 대신, 터키
사람들에 의해 양도된 유럽에 있는 영토는 뱀 섬을 제외하고는 루마니아가 얻었습니다.
터키는 크레타섬과의 관계에서 정확하게 제한된 법규를 지키는 것, 테살리아와 알바니아에서 유사한
법칙에 따른 통치, 아르메니아에서 개혁을 실시해야 하는 의무를 지게 되었는데 하지만 유럽의
강대국들은 이런 조건들에 동의하기를 원치 않았으니 영국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러시아가 자신의 위성국 불가리아를 통해 지중해로 가는 출구를 손에 넣는 것을 막고 싶어 했습니다.
키프로스를 차지하는 조건으로 대영제국은 터키에 대해 보호를 보장했으며 러시아, 불가리아와
몬테네그로와 관련된 산스테파노 조약의 결과가 완전히 재검토되었던 베를린 회의의
소집으로 바야흐로 일어나게 될 새로운 전쟁의 긴장은 완화되었으니 산스테파노 조약
을 서명한 날은 불가리아 정부의 해방과 부흥의 날로 등록된 불가리아의 국가 공휴일 입니다.
이후 별로 이득을 챙기지 못했다고 생각한 나라들은 저 산스테파노 조약개정을 위한 베를린
회담을 열었으니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프랑스, 독일, 영국, 이탈리아, 러시아,
미국, 스페인, 포르투갈, 스웨덴-노르웨이, 덴마크, 벨기에, 네덜란드, 터키
등의 대표들이 참석했으며...... 독일의 총리인 오토 폰 비스마르크가 회담을 주재했습니다.
이 회담은 유럽 발칸반도 문제가 아닌 전혀 엉뚱한 콩고 강 어귀를 지배할 특별권을 주장한 포르투갈
의 제안으로 열렸는데.... 유럽 열강들이 아프리카에서 식민지를 넓히려고각축하는 가운데
포르투칼은 영국의 지지를 얻어 콩고 영유권을 주장했으나 독일과 프랑스의 지지을
얻은 벨기에가 콩고를 차지하는 걸로 결정이 났으니 파트너로는 더 힘센 놈을 택했어야 한다는.....
베를린 회담은 모든 나라에 교역과 선박 운송의 자유를 보장했고, 노예무역을 금지했으며 또한 포르투갈
의 주장을 물리침으로써 이곳에 영국과 프랑스 및 독일이 원칙적으로 동의한 콩고 자유국이라는
독립국가가 탄생하게 되었는데.... 베를린 회담에서 독일과 프랑스는 손을 잡고 아프리카 문제에서
영국을 고립시켰으며 이에따라 비스마르크는 독자적인 독일 식민지정책을 추진할수 있게 되었습니다.
청일전쟁 때 승리한 일본은 대만과 요동반도를 중국에서 빼앗았는데, 심술이 난 러시아가 프랑스와 독일을
끌어들여 3국이 일본에 저 요동반도를 내놓으라고 협박하니 이른바 3국 간섭으로.... 일본은 엄청난 돈과
장병들의 희생으로 얻은 땅을 토해 내놓는 굴욕을 당했으니 이를 갈며 훗날 러시아와의 결전을 준비합니다.
구한말 대신이나 신분높은 지사들을 보면 자주파는 별로 보이지 않고 김옥균이나 박영효등 소수의 친일파
외에는 이완용등 대부분은 친청파였는데..... 청일전쟁에서 청나라가 패하자 이완용은 친미파로 변신
했으며 이후 러시아 주도로 3국 간섭이 이루어지자 친러파로 변했고 러일전쟁 후에는 친일파로 변신합니다.
베를린회담에서는 독일과 프랑스 연합이 더 큰 힘을 과시한 것인데.... 콩고를 포르투갈에게 주지 못하고
벨기에가 차지하니 영국은 체면에 금이가긴 했지만 그 댓가로 케냐와 우간다등 알토란 같은
땅을 챙겼으니... 이후 케냐는 영국령 동아프리카로 전환되어 우간다, 위투와 함께 식민지배를 받았습니다.
영국은 케냐를 식민지 지배를 하면서 아프리카 원주민을 수탈하니.... 황금 작물인 차와 커피를 재배하기
위해 사나운 원주민 대신에 부리기 쉬운 수많은 인도인 노동자들을 정착시켰으니, 오늘날 케냐는
영국의 지배와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식민지 시절 현지인은 여느 식민지가 다 그러하듯 탄압받았습니다.
케냐는 40개의 부족(민족)이 있으니 구성은 키쿠유족 22%, 루히야족 14%, 루오족 13%, 칼레진족 12%,
캄바족 11%, 카시족 6%, 메루족 6%, 기타 30여개 흑인 부족들이 15%를 차지하는데 반투족
민족에 속한 키쿠유족이 정권을 확실히 잡고 있는지라 다른 나라들과는 달리 독립후 내란이 없었습니다.
키쿠유족은 농경민족인데 차와 커피를 경작하려는 영국인들에게 농경지를 뺏기고는 영국인들의 하인이
되거나 도시로 나가 일거리를 찾다보니 일찍 자본주의에 눈을 뜨게 되어 케냐의 상권을 장악하게
되었으며... 이에 나일계 흑인으로 마사이족과 같은 종족인 루오족이 칼레진족과 함께 맞서는 형국입니다.
케냐인들은 독립전쟁이라고 불릴만한 큰 전투는 없었지만 키쿠유족을 중심으로 꾸준한 독립운동
을 한 결과 크게 피를 흘리지 않고 1963년 12월 12일 영국에게서 독립했으며 식민지 시대
말기엔 마우마우 부족의 독립운동 진압 과정에서 영국은 식민지 독립운동가들을 학살했습니다.
키쿠유족 Kikuyu 族 (스와힐리어: Kĩkũyũ tribe 키쿠유 트리베) 은 케냐 공화국의 다수 민족이며
2002년까지 KANU 당을 이끌던 집단으로 케냐 인구의 22%에 해당하는 600만 가량이며
초대 대통령 조모 케냐타(스와힐리어: Jomo Kenyatta) 가 속한 반투족 계열의 농경 부족입니다.
마우마우단 Mau Mau團 은 아프리카 케냐 원주민인 키쿠유족이 1952년에 조직한 반백인(反白人)
비밀 테러(독립운동?) 집단으로 영국령이었던 케냐 민족 운동의 총본산인데, 1952년 반란을
시작하였고 1957년 영국이 많은 군인을 투입하여 진압하였으나 이것을 계기로 케냐
독립 운동이 더욱 고조되었으니..... 독립전쟁의 선구자들로 영국에서는 테러리스트로 불립니다.
20세기 중반 아프리카에 있는 프랑스령 지역과 영국령 지역들에서 독립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졌으며,
포르투갈령 식민지들은 치열한 독립전쟁을 통해 지배에서 벗어났으니 자연히 케냐 지역에서도
독립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졌고 결국 케냐는 20세기 중반 이후에 영국의 지배에서 벗어난 것 입니다.
1차대전중 영국은 인도인들에게 전쟁을 도와주면 전후 독립을 시켜주겠다는 약속을 하니 수십만명의
인도인들이 이라크로 진격해 오스만 투르크군과 싸우다가 전사했지만 영국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으며 윌슨의 민족자결주의 제창에도 불구하고 오스만 투르크 식민지를 프랑스와 갈라 먹었습니다.
프랑스는 중동에서 레바논과 시리아를 새로 차지한 것으로도 모자라 터키 남부로 진격해 이번에 지진이
난 가지엔테프에서 터키군과 피터지는 전쟁을 했으며(터키가 패했으면 터키 영토는 프랑스, 영국,
그리스 및 아르메니아에 상당 부분 뺏겼을 것입니다?).... 영국은 이라크와 요르단에 팔레스타인을
새로 식민지로 얻었으며 일본도 승전국이니 산동반도 칭따오와 태평양 섬들을 독일에게서 빼앗았습니다.
2차 대전후 제국주의 국가들 중에 포르투갈과 프랑스, 벨기에 및 네델란드는 식민지를 놓치지
않겠다며 군대를 다시 파병해 식민지 독립군과 오래토록 처절한 전쟁을 치뤘는데... 미국과
영국은 이제 분위기가 바뀌었고 식민지가 경제적으로 더 이상 수탈하기가 어려운
지라 몇년 더 유지하다가 결국 독립을 시켜주는데 그렇다고 독립전쟁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켸냐는 영국의 배려로 독립을 했으니 영연방 회원국이며 영국 지배와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특히 영어가
스와힐리어와 함께 공용어로 지정되었으며 런던 켄트 동물원이 전시된 코끼리들을 케냐로 보낸다고
밝히듯 관계는 좋은 편이고 초대 대통령 조모 케냐타의 집권하에 안정과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누렸습니다.
1978년 조모 케냐타가 죽자 대니얼 아랍 모이가 대통령이 되었는데 그는 독재체제를 구축하고 부정부패와
인권탄압으로 국제사회에 악명을 쌓았으며 2002년 음와이 키바키가 새로운 대통령이 되면서 독재체제
를 끝냈는데 2007년 케냐 대선 이후 폭력사태가 일어난 적이 있으며 그후 대통령은 우후루 케냐타 입니다.
2022년 8월 케냐 대통령 선거에서 부통령인 루토가 당선되었는데 불과 1.64% 차이로 5번째로
도전한 선거에서 패배한 루오족의 라일라 오딩가는 이 결과를 불복하고 불법 투쟁을
선언했으며 현재 케냐는 기후변화로 인해 최악의 가뭄에 직면해 있으니 켸냐족은
초지를 찾아 북상하는 과정에서 오모 계곡에 사는 이디오피아인들과 현재에도 충돌중 입니다.
킬리만자로산 (Mount Kilimanjaro) 은 탄자니아 북동부에 있는 성층 화산으로 정상인 우후루
피크의 높이는 5,895m 로 아프리카 대륙에서 가장 높으며, 지형학에서는 세계에서
네번째로 돌출된 산으로 킬리만자로의 뜻은 스와힐리어로 빛나는 산 혹은 하얀 산이라고 합니다.
킬리만자로는 또 케냐 남쪽 국경 가까이에 있으며, 키보 화산(5,895m)은 아프리카에서 가장 높은데
신생대 제3기 때 일어난 단층운동과 연관이 있는 이 산은 동아프리카 지구대 남쪽 160km 에
있으며 산괴의 동서간 거리는 80km 이고 3개의 주 화산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만년설을 이고 있습니다.
종교는 영국 지배를 받은지라 기독교가 80%(개신교 29.3%, 가톨릭 23.3%, 정교회 2.2%, 기타
종파 기독교 13%) 이며 이슬람이 11.1%, 토착 신앙이 1.6% 정도라고 하는데 특히 90%
이상의 무슬림이 라무섬- 말린디 그리고 몸바사를 잇는 동부 쪽에 집중적으로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2010년 헌법 개정을 통해 다수를 차지하는 기독교계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샤리아를 포함한 헌법
개정안이 통과되었으니 이슬람 지역에서는 쿠란의 고유 경전에 기초한 독자적인 재판을 시행할수 있는
합법적인 권한을 획득했는데 이로 인해 발생할 문제점이 우려되는 상황이며 특히 케냐에 대한 소말리아
알샤바브 이슬람 근본주의 집단의 공격과 더불어 케냐의 국내 정정에 중대한 영향을 끼치게 될 것입니다.
케냐는 알샤바브 같은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활개치는 막장 국가가 된 이웃나라 소말리아에 군사 개입을
했고, 이 때문에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에게 원한을 사게 되어 종교 갈등과 테러들이 일어나기도
하는데 알샤바브는 소말리아와 케냐 이슬람계 사이비 종교이자 이슬람 극단주의 성향의 무장단체 입니다.
옛 이슬람 법정 연맹(ICU)이 2006년 조직이 붕괴되자 이 중에서 극단적인 세력이 떨어져나와 세워
졌으며, 소말리아 남부를 점령하고 샤리아 법에 근거한 극단적인 통치를 하고 있으니 AMISOM
(아프리카 연합) 이 수복한 지역 외에 알샤바브 점령지에서는 샤리아를 어긴 사람들이나
비무슬림에 대한 무차별적인 처형, 간통자에 대한 투석형 등 끔찍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