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2015-06-11
< 밀밭 결혼식 >
- 文霞 鄭永仁 -
한국의 유명 배우 원빈과 이나영이 신랑의 고향인 정선의 밀밭에서 결혼을 했다고 하여 야단법석이다.
이즈음 이야기하는 ‘작은 결혼식’, 하객 40여명, 주례나 축가도 없는 단출한 결혼식이었다고 한다. 비슷한 시기에 어느 유명한 탤런트의 결혼식에는 700여명의 하객이 북적거렸다고 한다.
이즈음 결혼식 풍경은 한마디로 도떼기시장을 방불케 한다. 무슨 결혼식이라는 자판기에 1시간 꼴로 복잡하고 어수선하게 기획 상품처럼 버턴을 누르면 나오는 것과 엇비슷하다. 수천만원이나 하는 드레스에 그것도 협찬을 받아서 하는 유명 탤런트의 결혼식과 대조되어 마치 보리밭처럼 풋풋하기까지 하다.
더구나 하객 대접도 양가 부모와 친척 등이 만든 잔치 음식이었다니. 어렸을 적 우리 고향 잔치는 온 동네가 지지고 볶고 하는 결혼식이었다. 결혼 부조도 막걸리 몇 동이, 국수 몇 관, 감주 한 방구리, 계란 서너 줄, 심지어는 닭 한 마리가 고작이었다. 그것도 오랜 전통의 품앗이이었다.
소당뚜껑 엎어 걸고 두툼하게 들기름으로 부쳐진 지짐개와 설설 끓는 가마솥에서 토렴하여 주는 잔치국수는 생각만 해도 구수한 침이 절로 고인다.
더구나 예로부터 회자되어온 보리밭·밀밭에서 하는 사랑의 결혼식이었다니 보리물결이 출렁거리는 것 같다. 시골의 보리밭은 전설의 낭만이 숨겨진 보릿골이 물결치는 곳이다. 밖에서는 은근히 가려진 종달새 둥지처럼 은근슬쩍 풋사랑이 보리처럼 익는 곳이기도 하다. 푸르른 물결과 넘기 힘든 보릿고개가 전설처럼 익어가던 그곳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도시의 공원에는 으레 몇 이랑의 보리밭과 밀밭이 심겨져 엣 향수를 자극한다. 그 옆에는 짙 노란 유채꽃밭까지…….
양력 6월 6일은 절기상 ‘망종(芒種“이다. 망종은 까끄라기가 있는 보리와 밀을 베고, 논에서는 까끄라기가 있는 벼의 모심기를 하는 철이다. 보리는 밭의 대표적인 곡식이고 벼는 논을 대표하는 곡물이다. 보리는 추운 겨울을 나는 곡식이고, 벼는 뜨거운 여름을 견디는 곡식이다. 그래서 허준의 동의보감에 보면 더운 여름에는 춥게 자란 보리밥이나 밀가루 음식을 먹어 더위를 이겨내고, 추운 겨울에는 뜨거운 여름을 견디어낸 쌀밥을 먹어야 음양오행의 이치에 부합한다는 것이다. 그런 것을 보면 보리는 찬 음식이고 쌀은 더운 음식이가 보다. 뜨거운 여름에는 찬물에 꽁보리밥을 말아먹지만 겨울에는 쌀밥에 뜨거운 숭늉을 훌훌 마신다.
사실 낭만적인 추억은 벼가 자란 논보다는 보리가 자란 보리밭이 더 추억거리가 서린다. 보리밭의 푸르른 물결과 그 위의 노고지리 소리, 보릿고개처럼 똥끝이 메지던 가난, 그 속에 젊은 낭만이 눕기까지 한다. 논의 추억이란 고작해야 벼메뚜기 후두둑거리는 가을 정서가 아닐까?
우리네 민족의 땀과 눈물과 배고픔과 한숨이 꽁보리밥에 열무김치처럼 버무려지던 곳이 보리밭이 아닌가 한다. 학교 갔다 오는 허기진 시절, 노릇노릇 익어가던 밀이삭을 서리하여 구워먹던 그때 그 시절, 서로 아궁이처럼 새까매진 주둥이를 보고 오리는 서로를 가리키며 배꼽이 빠지도록 눈물 나도록 웃었다.
박목월 시인의 ‘나그네’의 ‘술 익는 마을’이 아니더라도 보리 익는 마을 풍경처럼 보리술처럼 구수하게 감돌기까지 한다. 엄마는 쉬어빠진 찬보리밥덩이로 밀기울 누룩을 넣어 임시로 보리술을 담갔다. 보리술이 부뚜막에서 부글부글 괼 무렵 엄마는 거기다가 사카린이나 당원을 넣고 우리들의 주전부리를 만들어 주셨다. 시금털털하고 달착지근한 그것을 허겁지겁 먹었다.
어떤 때는 대낮에 얼굴이 벌개가지고 어른들에게 야단을 맞던 그 시절이 나에게도 또 당신이게도 있었다. 혹자는 낭만에 초 쳐 먹는 소리라고 하겠지만, 우리 7080의 유년시절은 그렇게 흘러만 갔다. 하기야 보리술을 그대로 쉬어터지게 두면 초파리가 득시글득시글 빠져 죽은 식초가 되었다.
지금은 전설이 되어버린 보릿고개가 누렇게 얼굴들을 부황(浮黃)들게 할 무렵이면 아직 덜 익은 보리를 풋바심하여 풋보리죽을 쑤어 먹었다. 그 지겹던 보리죽이나 꽁당보리밥이 웰빙식이라 야단이니 격세지감이 따로 없다. 거기다가 보리밭의 힐링까지 더해가니……. 보릿골이나 보리밭 가든이다 하여 보리밥 전문점이 성황하고 있다니 세상은 변하고 변한다.
푸룻푸룻, 노릇노릇 보리밭·밀밭 사이의 결혼식이라니……. 그것이 낭만에 초 쳐 먹는 소리인가? 더우기 그들의 밀밭 결혼식이 미더운 것은 “태어나고 자란 땅 위에 뿌리내린 경건한 약속을 기억하며 굳건한 나무처럼 살겠다.” 고 다짐했단다. 그곳은 신랑이 스물 살까지 자란 곳이었다.
나무처럼 살겠단다. 그 말이 그저 듣기 좋은 소리일지라도 얼마나 보리밭이나 밀밭처럼 풋풋하고 구수한가. 고운 쌀겨는 못 먹지만 고운 보릿겨는 강낭콩 듬성듬성 넣고 소다와 당원을 넣어 찐 까끌까끌한 그것이 개떡이었다는 것을 이제는 몇이나 알랑가? 그게 우리들에겐 한 여름철의 유일한 주전부리였다.
그렇게 보리밭의 전설은 개똥벌레처럼 내 유년시절에 바다에서 자맥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