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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화려한 외출에 반한 무박2일의 에세이-
장면1, 서커스 매직 유랑단의 출발
콧날이 얼얼하니 시린 아침이다. 나는 어딘가 모를 4차원의 세계에서 갑자기 태원아빠의 버스로 공간이동을 한 기분이다. 여기가 어디지.. 발걸음은 허허롭고 속은 깍은 얼음이 들어있는 듯 평소보다 더 머리칼을 흩날리며 간신히 버스 자리에 앉았다. 빈 자리없이 꽉 찬 버스 안은 매직 유랑단의 열기로 후끈후끈하다.
우리는 달려간다. ~전주의 한옥 마을로~ 동장님과 기타 공무원의 배웅을 받으며 유랑 식객들은 가슴도 당당히 힘차게 경적을 울리며 출발, 이 때 내 옆자리에 앉은 눈동자가 유리알처럼 맑은 그녀(윤수희)는 너무도 친절하게 술 깨는 물약과 검은 비닐 봉다리를 챙겨주며 말없이 날 바라보았다. 조금은 시크하게~
그래 이까짓 구토의 괴로움이 나의 전주행을 막을 순 없으리라. 얼마나 가보고 싶었던 전주인가. 내 오래된 정인( 민양제공)과 한여름 땡볕 아래 거닐던 덕진공원도 떠오르고 유기 그릇에 담긴 전주 비빔밥도 생각나고 그 유명하다던 막걸리 골목의 떡 벌어진 주안상이 아른거린다. 무엇보다 마을 가꾸기 대회에서 입상한 상금턱을 내는 기회가 아니던가. 자칭 호모루덴스(놀이하는 인간)가 어찌 이 로또당첨 같은 날을 놓칠쏘냐<<<<<<<
장면2. 버스자리의 규칙(거기에 숨은 뜻은?)
34명- 무엇이 떠오르는가? 이미 바늘과 실처럼 앉은 율이엄마, 율이아빠, 검은 눈망울이 차창을 향해 있는 은하씨와 광용씨, 타칭 삐삐롱스타킹이라 불리는 원종엄마와 건우엄마, 마치 오누이처럼 닮은 얼짱 부부 다빈이 아빠와 엄마, 곱슬머리를 분위기 있게 늘어뜨린 우리의 호프 찬슬아빠, 그리고 주황색파카가 돋보이는 깔끔남 다은아빠와 다은엄마, 긴 다리가 부러운 동안의 시은엄마와 시은이, 시종일관 나를 외면하는 양제공과 청춘불패의 강기욱선생님!! 그리고 유랑단의 똘똘이 군단들(포비 태언, 썩던 콩 석인, 해리포터같은 건우, 스키니진의 현규와 해람이, 긴 머리칼의 록커같은 태원)이 맨 뒷 좌석을 점령했다. 특이한 건 내 짝꿍은 이틀간의 여행 내내 단 한 번도 같이 앉지 않았다는 점이다. 우린 늘 따로 국밥처럼 각자의 무드를 즐겼다고나 할까.
장면3, 비에 젖은 한옥마을, 눈물 삼킨 칼국수집
전주시내를 통과할 즈음 12시가 지났다. 한옥마을은 이제 전주의 트렌드이자 전국구 관광명소가 된 곳이다. 바닥에 깔린 보도 블록도 광주보다 훨씬 운치가 있다. 이 블럭이 몇 백년은 버틸만큼 단단하다고 강기욱 선생님이 일러주신다.
이 날 오후 내내 유랑단 식객들은 가는 여우비에 젖어있었다. 부슬부슬 내린 빗속을 나는 우산도 없이 거리 거리를 쏘다닌다. 사춘기적 비만 오면 대뜸 수업을 박차고 달려나가던 때 나에게 비는 영혼의 음료수와 같았다. 그런데 술로 망가진 뒷 날 이렇게 받쳐주는 보디가드도 없이 먹장하늘 아래 골목을 걷는 오늘은 참으로 아니올시다이다.
오늘 화이트 크리스마스라면 얼마나 환상적일까 아쉬운 마음에 명품관의 아기자기한 기념품도 눈에 들지 않는다. 나는 추적추적 내리는 비와 칼국수의 궁합을 떠올리며 베테랑이란 국수집에 들어섰다. 수 백명의 사람이 포진해서 누구랄 것 없이 뜨건 김을 뱉으며 국수를 들이키고 있었다. 내 쓰린 가슴을 이 미칠 듯한 냄새를 풍기는 국물로 달래고 싶었는데 그저 눈물을 삼키며 돌아서야 했으니 어찌 그 심정을 말로 다하겠는가.
강기욱 선생님 얘기론 이 곳이 오래 전에 형성된 양반가 마을로 현재도 주인들이 한옥을 지키며 살고 있다고 한다. 그래 폼만 잡은 민속촌이었다면 얼마나 실망스러웠을까.. 사람이 거처하지 않는 집은 박제된 공간일 뿐 살가움이 느껴지지 않기에 될수록 피해 다녔었다. 그런데 너른 인도 사이로 담장도 사이좋게 붙어있는 이 집들은 굴뚝도 보이고 중간 중간 동네 슈퍼와 카페도 만날 수 있다. 얼마나 앙징맞고 아기자기 귀여운지 여기저기 다 들어가고 싶어진다. 한옥의 정취가 가장 매력적인 곳은 학인당이란 집이었다. 건평이 60평인 내노라하는 명문가로 높은 솟을 대문부터 분위기를 잡는다. 가장 큰 안채 건물 앞에서 나는 삐삐, 이쁜이, 깡순이, 아이비, 봄비등과 우산을 받쳐든 채 사진 몇 장을 남겼다. 안채 문을 드르륵 열고 저 반질반질한 대청 마루에 앉아 연못의 오리를 바라보는 상상을 해본다. 누군가 곁에서 던진 말“ 이런 곳에서 하룻밤 자면 참 좋겠다.”설명은 필요치 않다. 똘똘이 군단은 알아서 두 마리 견공과 놀고 솔레솔레와 그 부인은 멋진 사진의 한 컷을 위해 장소물색중이다.
사실 한옥마을은 반나절에 돌 수 없을 만큼 꽤 넓은 동네다. 갈 곳은 많지만 딸린 식솔이 많은 처지라 결국 두 시간 만에 숙소로 옮기기로 결정했다. 베테랑이란 유명한 칼국수 집은 눈요기로 감탄만 하고 나와야 했고, 커피 향기도 뒤로 한 채 지효엄마와 아빠, 민수는 아예 고아가 된 듯 제대로 돌지도 못한 여정이 조금은 아까웠다.
장면4, 전주 향교에서 매긴 급수
참, 이 날 나의 기억중 가장 필이 꽂힌 곳은 바로 전주 향교였다. 광주 서동의 향교 분위기를 먼저 떠올렸는데 이는 크나 큰 오류임이 밝혀졌으니 그 면적과 온갖 풍상을 겪은 은행나무의 자태에서도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600년이란 나이를 온 몸으로 보여주는 이 거대한 생명체를 만져보았다. 조심스레 쓰다듬고 껴안고도 싶다. 어쩌면 나보다 더 붉은 피가 흐르고 있을 지도 모른다.
모든 남겨진 것들은 급수가 있다. 나무에도 급이 있다. 1품에서 9품까지~ 20대에 강기욱 선생님께서 해주신 말씀이 불현 듯 떠오른다. 가을색이 물씬 배어나오는 샛노란 은행잎이 무지막지하게 깔려있는 이 향교마당을 배회하노라니 사람인 나의 급수는 어느 정도일까 가늠해보고 싶어졌다.
인내심과 배려, 교통질서 지키기, 정신적인 폭력과 가학성, 물질의 낭비와 절제정도, 성실, 진취성, 목표달성, 인류의 헌신정도, 쓰레기배출량 등 일정한 항목으로 사람을 평가해본다면 어떨까.
아마도 2009년도 지렁이기르기 사업으로 생태주의적 삶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실천중에 있는 지렁이아빠( 찬슬아빠)는 2품 정도로 치고, 풍류 음주를 삶의 지침으로 여기는 양제공과 놀이의 달인을 꿈꾸는 자칭 호모 루덴스(我)는 4품으로 쳐보자. 사랑이 풍성한 차경희씨(다빈엄마)는 떨어진 쓰레기도 먼저 주울 사람이고 위로와 격려가 넘치니 그 품이 높을 터이고, 어떤 약속이든 한 번 내뱉은 말은 반드시 지키는 대쪽 같은 건우엄마도 마찬가지다.
이따금 터져 나오는 “멋져부러”의 대명사격인 삐삐롱스타킹(원종엄마)은 내빼지 않은 진취성과 호연지기를 고려해 3품으로 가정. 이른바 각을 잡는 男子 율이아빠와 格을 논하는 여자 이쁜이(율이엄마)는 상품으로 대입해본다. 불의와 부정을 보면 의분이 절로 생기는 지효아빠, 그러고 보니 유랑단 동무들은 모두 인생의 품격을 논할 자격이 충분하다. 왜냐고? 그들이 올 해 꾸려낸 유랑단 역사가 이미 선모델이 돼가는 중이기 때문이다.
장면5. 크리스마스엔 선물을 전해요..
흡사 007 첩보 작전이다, 태원엄마의 지휘 아래 아이들이 각자 준비한 선물을 모아놓고 드디어 이긴 순서 대로 뽑기를 한다. 운에 따르는 뽑기야말로 운명의 장난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이것이냐 저것이냐 그 사이에서 나는 얼마나 살 떨려 했던가. 저 아이들도 간절히 원할 것이다. 포장을 뜯기 전의 그 설레임...
마침내 지효의 눈에 이슬이 맺히다 뚝 떨어지고야 말았다. 검은 색 두 켤레 양말이 바로 범인, 딸이 우는 걸 알면서도 지효엄마는 정말 태연하다. 그녀의 숨은 내공이 이런 걸까. 그 비결 좀 배우고 싶다. 종류도 가지가지다. 스파이더 장갑에서 분홍색 필통, 반짝이 풀, 직접 만든 인형, 일기장등 신기하게도 자기가 준비한 건 누구도 뽑히지 않았다. 지효는 두툼한 다이어리로 바꿔서야 기분이 풀렸고, 태언이는 그 끈질긴 집념으로 여기저기를 오가며 자기의 분홍색 필통을 기어이 반짝이풀로 바꾸고야 만다.
이어지는 유랑단 남성, 여성 동무들의 선물뽑기는 시종일관 웃음꽃이 가득하였다. 자기가 찍은 화장품을 뽑은 시은엄마의 생글생글한 미소, 남성용 양말을 뽑아든채 눈웃음 짓는 건우엄마의 유머러스한 모습, 여성용 털모자를 뽑고 머쓱해하는 찬슬아빠, 태원아빠가 비장의 카드로 내놓은 양은냄비를 뽑아든 지효아빠의 호탕한 목소리, 가죽 양장본의 근사한 다이어리에 반한 태원엄마, 풀 세트로 라면에 닥스 손수건까지 건진 태원아빠, 무엇에라도 감사해 하는 다은엄마, 그녀와 잘 어울리는 보라색 손수건을 집어든 지효엄마
가장 놀라운 선물은 바로 양제공(석인아빠)에게 돌아갔으니 바로 유랑단 엄마들이 십시일반 모아서 마련한 콤비재킷과 체크무늬 와이셔츠, 율이엄마가 손바느질로 수놓은 넥타이가 바로 그것이다. 그 기막힌 스타일에 양제의 나이가 십년은 줄어보였음을 이제야 밝힌다. 역시나 옷이 날개라던가.
이럴 땐 프랑스제 영화의 주인공처럼 찐한 포옹을 해야 하는데 양제는 계면쩍음에 그만 몸둘 바를 모른다. 입어봐 입어봐를 외치는 여성동무들의 함성이 울리고 우리는 서로를 향해 박수를 쳤다. 당신과 함께 한 2009년이 너무나도 행복했기에^^ 나는 지금 이리도 감격, 또 감격 합니다.
장면6. 아줌마 일곱이 뭉치면 그 무엇도 두렵지 않아
2010년도의 새로운 일꾼들을 자의 반, 추첨 반으로 순식간에 통과 시킨 후, 즐거운 막걸리 잔치가 벌어졌다. 태원아빠와 율이아빠의 족발 썰기는 재미난 눈요기로 우리의 이목을 끌었다. 섬세하게 각을 잡아 뼈를 발라내고 얇게 슬라이스하는 가제트(율이아빠)와 장터의 인심좋은 주인처럼 푸짐하게 써는 장고(태원아빠)의 노력에 힘입어 무려 7킬로그램의 족발이 게 눈 감추듯 사라졌으니 역시 유랑은 뱃심에 있음이 분명하다. (유랑 걸식단은 절대 아님)
이제 올빼미파와 까치파가 나뉘는 때가 도래했으니 한 쪽에선 비좁은 바닥에 이불을 펴고 어쩔 수 없는 혼숙을 준비중이다. 이 때 아주 강력히 또한 진지하게 방 배정과 숫자 나눔을 놓고 고심하던 다은아빠는 어떻게든 혼숙을 막기 위해 사력을 다하고자 노력하였다.
다은이와 지효, 시은이, 다빈이, 세영이, 율이등 여학생파들은 진작 옆방으로 사라지고, 몇 몇은 막걸리에 토의를 진행중, 석인이와 건우, 태원이는 새벽4시 까지 점토놀이를 했고, 나를 비롯한 6명의 여성들은 낮에 못다 본 한옥 마을을 다시 가보기로 결의했다.
시각은 밤 12시가 지났건만 마을은 골목 곳곳에서 영롱한 불빛이 반짝이고 내 귀엔 가수 wham의 라스트 크리스마스가 울려퍼진다. 와, 죽여주는 이 분위기! 솔레솔레 선생님의 부인 채명화 쌤의 안내 해설이 곁들어진 이 날의 산책은 우리의 가슴을 들뜨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삶의 다양한 프리즘이 이 마을에서 풍겨나왔다. 네모난 서랍같은 아파트 단지와 구획된 도시에선 건질 수 없는 오래 묵은 한지와 같은 냄새가 난다. 아롱지는 빛과 어둠에 잠긴 한옥의 실루엣이 밤거리를 빛내고 마침내 도착한 곳은 전주 전동성당 앞,
아기예수와 마굿간이 계단참에 불을 밝히고 어둔 하늘 속에 성당은 성스럽게만 보인다. 우리 일곱 동무들은 지금 이 순간에 만족하고 환호성을 지르며 자기만의 무대로 만들었다. 아베 마리아가 흘러 나올 것 같은 분위기에 우리는 칠남매처럼 붙어서 사진을 찍었다. 찍고 또 찍고, 영준엄마의 붉은 코트가 휘날리고 채명화 쌤의 수면바지도 펄럭이고, 다은엄마는 깜찍한 표정으로 곰돌이 가게에서 모델을 섰고, 다빈이 엄마 또한 그 백설같이 뽀얀 피부를 드러내며 가지런히 웃었다. 영하 7~8도의 추위 속 연신 사진을 찍어주던 건우엄마의 그 깡과 끈기가 시린 가슴까지 따숩게 지펴주었고, 알록달록 수면바지에 귀여운 무드파 채명화씨의 찬탄이 우리를 붕붕 띄워주기에 충분했다. 이로써 2009년도 유랑이 끝났다. 이제 각자의 자리에서 이따금 추억의 장면을 꺼내 삶의 조각보를 짜맞춰가리라. ~ 아듀`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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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으미..댓글 달다가 사라졌네...첨 부터 다시로
그나저나 울 정아는 참 글도 맛깔나게 자알 쓰네...........부러움이 쓰나미가되어 밀려드는군
다들 가서 정말 재밌게 잘 놀다왔나봐...가슴속에 이런 맛난 추억들로 가득 채워왔으니
내가 안가면 다들 더 재미있게 노는것 같아
담에는 꼭 가야지. 하필 25,26 모두 약속이 있어가지고 ....담에는 꼭 나 약속없는 날로 정해서 가기
얼마나 오랜만인지,,, 반가워요, 하늘과 우주님~실은 나도 그대의 하이얀 이가 드러나는 엣지있는 미소가 그리웠답니다. 전주의 밤을 확실히 찢기에 충분한 끼와 로맨스가 세포 곳곳에서 넘쳐나는 우주님, 다음엔 유랑단 일정에 꼭 맞춰주시길 간곡히 엎드려 부탁하나이다. 참 국밥 쏠테니 다음주에 올라오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