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10. 23. 일. 맑음
이틀 전부터 줄기차게 내리는 가을비가 가을을 한결 여물게 하였는지 아침부터 환한 날씨에 눈이 빨리 떠진다.
창녕 영취산으로 향하는 발걸음도 가볍게 디디고 버스에 몸을 맡겨 아침 햇살을 가르고 달리었지만
기사님의 착각인지 화왕산과 관룡산 가는 길인 옥천리로 들렀다가 다시 급히 바퀴를 거꾸로 굴려
오늘 영취산 산행기점인 성내리 영명사 아래 향교 입구에서 내렸다.
산행식을 마치고 신씨 고가와 향교를 가볍게 들러 보고 본격적인 산행길을 따라 나선다.
문화재 자료이긴 하지만 본채도 빈약하고 아랫채의 지붕이 비닐로 씌워지고 타이어로 바람을 대비한 안타까운 모습이다.
어제 내린 비로 티끌 먼지는 씻겨 내려 갔지만 아침부터 안개는 산자락을 감돌고 젖은 낙엽이 발길 아래 깔린다.
아직은 단풍이 제철이 아닌지 산은 푸른빛을 잃지 않고 있지만 가끔은 붉게 또 노랗게 물들어 간다.
안개에 휩싸인 영명사에는 염불 소리조차 없고 고적감이 감돈다.
산새 소리 들리지 않는 산사에는 산을 찾는 나그네들의 발자국 소리가 저벅거리며 적막을 깨고 있다.
< 서서히 해가 뜨는지 안개 저 멀리 옅은 무지개빛이 영롱하게 펼쳐진다>
휴대가 불편한 DSLR은 배낭에 넣고 작은 컴팩트 카메라로 산행길에 보이는 이끼도 담아 보고 휴식하는 일행들도 담으며 좁은 오솔길을 재촉한다.
영축산성의 잔해를 넘고 갈림길에 와서 잠시 주변을 조망하다가 정상을 향해 올라 가는데 주변에서 탄성이 쏟아진다.
환하게 트인 조망이 나타나며 산자락을 감고 도는 운해가 그림처럼 펼쳐진다.
안개는 흩어졌다 모이며 동영상을 연출하고 있다.
일찍이 지리산의 운해를 바라 보며 일망무제의 운해라 하였지만 영취산에서 바라 보는 운해는 양떼가 몰려 다니는 목장의 모습이다.
몰려 왔다가는 다시 흩어지고 흩어졌다가는 뭉치기를 반복한다.
운해를 바라 보며 오르는 일행들도 일년에 한번 보기 힘든 기회이라며 즐거움이 넘친다.
갈림길에서 정상을 향해 오르는 길에는 밤나무가 많아서 곳곳에 빈 밤송이가 그득하고,
갈림길이 있는 능선에 도착하니 왼편으로 신선봉이 그림처럼 다가 온다.
정상은 오른쪽으로 가야 하기에 발길을 돌리니 억새도 우리를 맞이하며 가을의 전령사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곳곳에서 억새와 가을산, 그리고 운해를 배경으로 사진을 담느라 발길이 막힌다.
< 뒤돌아 본 신선봉>
정상이 바라 보이는 647 고지에 다가 오니 오른쪽으로 보이는 운무는 다시 한번 장관을 연출한다.
이곳에서 운무와 정상을 바라 보는 정취가 일품이지만 고지가 바로 저긴데 여기서 멈출 수가 없어 정상을 향해 다시 고된 길을 재촉한다.
정상에 가려면 또 험한 길을 내려가서 힘들게 또 올라 가야만 한다.
많은 사람들이 여기가 더 좋다고 하며 자리를 잡고 배낭을 풀지만 이왕 온 것 좀더 가 보고자 하였다.
정상으로 가다가 온 길을 뒤돌아 본다.
정상으로 가는 길은 엄청 길도 가파르고 힘들지만 거의 정상에 오니 오른쪽 아래로 건너편 구봉사가 보인다.
바로 눈앞에 정상을 앞두고 이상하게 구봉사의 모습이 눈에 와 박히고 정상에서 내려 오는 여자 세분이서 저리로 가자고 한다,
나 역시 정상에 갔다가 저쪽이 아닌 보림사로 내려 가고 싶은 마음이 출발부터 있었는지라 발길을 오른쪽으로 돌리고 말았다.
이정표 앞에서 지세를 관찰 할 것도 없이 왼편으로 가면 구봉사요, 오른쪽으로 가면 보림사이지만 보림사로 내려 가는 길을 찾을 수가 없다.
안 그래도 이곳에 여러 번 왔다는 어느 분에게서 보림사 내려 가는 길은 찾기가 어려울 껏이라고 얘기는 들었지만
어느 여자분은 전에 그 길로 내려 갔다며 그리로 가자고 한다.
나 역시 지도 보고 길 찾는 것은 자신이 있기에 일부러 개척산행 하는 셈 치고 그러자고 하였다.
보림사로 내려 가는 길은 오른쪽에 있지만 역시 찾기가 어렵고 그러다 보니 삼거리까지 오게 되었다.
오른쪽으로 병봉으로 가는 코스로 가자고 하지만 그리로 가면 도착 시간을 맞출 수 없다고 강조하며 다시 발길을 돌려
희미한 흔적을 찾아 보림사로 가는 길로 내려 서고 말았다.
< 정상에서 바라 본 갈림길이 있는 봉우리. 저 멀리 관룡산과 화왕산이희미하게 보인다>
희미한 발자국을 디디고 가시덤불도 헤치고 내려 오니 제법 흔적 많은 길도 만나고 산악회 리본도 접하고
계곡을 건너고, 대나무 숲길도 거닐은 후에 좋은 길을 만날 수 있었다.
나 혼자라면 이리로 오기도 힘들어서 포기했을 것이요, 여자분들도 내가 아니었으면 이 길로 오지는 않았을 것이라 한다.
서로가 힘이 되어 주기에 어려운 모험도 감행해 보았으니 협력의 의미가 소중함을 느낄 수 있다.
저수지에 오니 병풍처럼 두른 듯한 영취산의 자태가 우람하게 펼져져 있다.
단풍이 제대로 들었으면 참 좋으련만 아직은 푸른색이 압도하는 산세라서 조금은 아쉽다.
까마득한 암벽 아래 자그마한 암자가 날아 갈 듯 보인다.
망원으로 당겨 보니 한 채만 외롭게 떠 있다.
날아 가는 새도 쉬어 넘는 곳이요, 저곳 스님은 인적 끊긴 산사에서 자연에 물심일여로 동화된 삶을 살지 않을까 짐작해 본다.
어쩌다 찾는 운수행객의 발자국 소리에 방문을 열어 시간의 흐름을 깨달을 수 있겠지....
저수지 아래로 내려오니 아담한 정자가 보여 늦게나마 혼자 중식을 하였다.
적지 마을에 왔다가 다시 지름길인 산길로 내려 온다.
이윽고 포장 도로와 만나고 구계마을 이정표석이 우람한 곳에 정자가 이쁘게 서 있다.
자고로 충효의 고장이요, 유교가 깊게 자리 잡은 창녕인지라 아래 쪽에 비각이 서 있다.
열녀비일까, 효자비일까?
이윽고 향교 아래 마을에 오니 동행한 산악회의 일행을 만나고, 걱정한 일행들에게 안심을 시킬 수 있었다.
평소보다 푸짐하게 불고기 안주로 막걸리와 소주를 나누며 산행의 피로를 푼다.
남쪽 지방이라 다소 이른 단풍철이라 약간의 아쉬움은 있었지만
능선에서 바라 보는 운해와 정상 부근의 멋진 모습만으로도 조금도 모자람이 없는 즐거운 산행이었으며
거친 길을 마다 않고 무사히 둘러 본 추억이 기억에 오래 새겨질 뜻 깊은 산행이었다고 마음에 새겨 본다.
첫댓글 그동안 카페 주소를 잊고 있다가 이제사 오랜만에 다시 찾아 와서 글 하나 올립니다.
샘물선생님 참 오랫만이군요 반갑습니다. 역시 건강하게 등산하는 모습이 부러운맘입니다. 창녕영취산 산세가 좋군요
운해도 너무 멋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