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극온(鄭克溫)은 전주(全州) 상질현(尙質縣) 사람으로, 아버지 정원령(鄭元寧)은 대장군(大將軍)을 지냈다.
정극온은 처음 양온령동정(良醞令同正)에 임명되어 내시(內侍)로 들어갔는데 서경(西京)을 평정한 공로로 금오위산원(金吾衛散員)에 제수되었다. 그 후 여러 번 승진해 장군(將軍)이 되어서는 사졸(士卒)들의 마음을 얻었다. 당시 나라에서 남적(南賊)을 토벌하였는데 정극온이 지휘하는 부대도 출전하게 되었다. 〈사졸들을〉 잘 훈련시켰기 때문에 적들을 만나면 문득 격파해 패주시켰으며, 사로잡은 포로가 매우 많았다.
〈조정에〉 들어와서는 대장군이 되었고, 어사대부 지문하성사(御史大夫知門下省事)를 역임하고 참지정사(叅知政事)로 승진하였다. 고종(高宗) 2년(1215)에 죽으니 3일간 조회(朝會)를 멈추고, 시호(諡號)를 익렬(翼烈)이라 하였다. 성품이 온화 인자했으며, 신중하고 공손하여 모나게 굴지 않았고, 맡은 관직마다 위엄과 은혜를 적절히 베풀었다. 당시에는 혁혁한 이름은 없었지만, 죽으니 모두 〈그를〉 그리워하였다.
아들은 없었으며 강종(康宗)의 묘정(廟廷)에 배향(配享)되었다.
교서(敎書)에 이르기를,
“경(卿)은 묘성(昴星)의 정수가 어리었고, 숭악(崧嶽)의 정기를 받았다. 기상이 웅대하기가 한신(韓信)이 단(壇)에 올랐던 것과 같아 일찍이 장군의 인장(印章)을 늘어뜨렸고, 책략이 뛰어나기가 장량(張良)이 젓가락을 빌렸던 것과 같아 은밀히 군사작전[軍籌]을 조정하였다. 선왕께서 왕위에 올랐을 때에는 중추원(中樞院)을 맡아서 임금을 보좌하였으며, 대정(大政)에 참여하여 과인(寡人)까지 섬기게 되었다. 이런 연유로 그대의 평생을 살펴보면, 진실로 마음이 곧았던 옛사람의 유풍이 있는 정직한 사람[遺直]이라고 할 만하다. 짐이 앞서 선왕의 상[憂釁]을 당해 몹시 슬프고 가슴이 아팠다. 땅과 하늘이 아득히 떨어져 있으니 비록 신선의 수레[仙馭]를 타고 돌아오지는 못한다 해도 삼년상을 마쳤으니 이제 종묘(宗廟)로 받들어 모시고자 한다. 돌이켜보건대 배향의 자리를 비우기가 어려워 여러 신료들과 함께 의논을 해보니, 선왕을 보좌할만한 인물로 적합한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진실로 경을 대신할 사람이 없다는 것으로 중론(衆論)이 모아졌다. 이에 추숭(追崇)하는 의식을 거행하고 배향도 함께 올리고자 한다. 짐은 경의 큰 공적을 가상히 여겨 자손만대로 잊지 않을 것을 맹세하니, 경도 또한 우리 선왕을 보좌하여 삼한(三韓)이 길이 평온하도록 도우라.”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