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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DC 지역 한국불교의 희망이 될
연화정사 개원식
취재/ 김형근 편집인
사우스 켈로라이나 주 소재 코스탈 켈로라이나 대학교 교수 성원스님이 지도하는 연화정사가 미국의 수도인 워싱턴 DC 인접 지역인 버지니아주 페어팩스 연화정사 법당에서 4월 17일 개원식을 가졌다. 이날 행사에는 조계종 군종교구장이며 서울 강남 구룡사 회주이고 미국내 뉴욕 원각사를 비롯하여 아리조나 감로사 등 여러 사찰의 이사장을 겸하고 있는 정우스님을 비롯하여 주지 성원스님, 총무 여암스님, 뉴욕 원각사 주지인 지광스님, 필라 관음사 주지인 정수스님, 버지니아 법화사 주지인 월스님, 그리고 워싱턴 지역의 왓 타이 주지 타나트 스님, 국제중국불교문화교육센터 사무총장인 즈언구안스님, 티베트의 디쿵 다르마 수리야 사원 주지인 켄포 삼둡 스님, 추엔 암 사원 주지인 비엔 탐 스님, 인도 소재 팜암 불 사리탑 주지인 젠지 니오 스님, 조지 워싱턴 대학교 B. N. 헤바 교수, 아메리칸 대학교 박진영 교수, 마크 김 버지나아 주 하원의원, 김동기 워싱턴 총영사, 피섹 파나트 태국 영사, 가미니 케라웰라 스리랑카 부대사, 임소정 워싱턴 한인연합회장, 윤흥노 PNP포럼 회장, 황원균 워싱턴 평통회장, 은정기 전 호남향우회 회장, 김성한 조선일보 편집국장과 이종국 한국일보 편집국장을 비롯하여 워싱턴 DC, 버지니아주, 메릴랜드주, 뉴욕주, 펜실바니아주, 노스 켈로라이나주 등 미동부 지역의 스님, 불교신자, 정치인, 언론인, 한인사회 지도자와 인도, 티벳, 중국, 태국, 베트남, 스리랑카 불교계 인사 200여명이 참가하였다. 이날 행사에는 가정법회를 하면서 개원식 준비를 함께 해온 신도 40여명이 행사 자원봉사자로 나서서 행사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혼연일체로 시종일관 행사진행이 매끄럽게 진행되도록 노력을 하였는데 정우스님도 설법을 하면서 이러한 광경에 찬사를 보냈다.
뉴욕 원각사 지광스님
베트남의 비엔 탐 스님
봉불식 장면
행사는 1부 봉불식과 2부 개원법회 3부 점심공양으로 나누어 진행되었다.
봉불식은 아시아 여러 전통불교국가 스님들이 나와서 여러나라 전통 봉불식으로 약 1시간에 걸쳐 진행되었다. 뉴욕 원각사 주지 지광스님이 한국식 봉불식을 하였고 왓 타이 주지인 타나트스님이 상좌부식 봉불식을 그리고 국제중국불교문화교육센터 사무총장인 즈언구안스님이 중국식 봉불식을 선보였다. 이 밖에 디쿵 다르마 수리야 사원 주지인 켄포 삼둡 스님에 의해 티베트식 봉불식을 그리고 젠지 니오 스님에 의해 일본 정토진종식의 봉불식을 선보였고, 마지막으로 베트남 스님들에 의해 베트남식 봉불식이 있었다.
연화정사는 개원법회 보도문을 통하여“이번 개원법회는 한국, 상좌부, 티벳, 중국, 일본, 베트남 불교의 봉불의식이 같이 봉행된 독특한 형식으로 치뤄졌습니다. 이런 봉불의식은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형식으로 앞으로 연화정사가 추구하는 목표를 잘 보여주는 행사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연화정사는 종교간의 화합을 최우선 목표로 삼고서, 다민족과 다종교 사회인 미국에서 한국불교의 글로벌 모델이 되고자 하는 목표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번 개원법회는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한 첫걸음으로써 여러 국가의 봉불의식을 함께 치루게 된 것입니다. 앞으로 더 나아가서는 다른 종교의 지도자들과 많은 교류를 통해서 한국불교를 널리 전파할 예정에 있습니다.”라고 국제 봉불식을 한 이유를 설명하였다.
2부 개원법회는 장소를 옮겨 2층의 넓은 홀에서 진행되었다. 식순은 개회선언, 삼귀의, 내빈소개, 허노윤 신도대표에 의해 경과보고, 성원 주지스님의 인사말, 축사, 정우스님의 법문, 축하공연 순으로 진행되었다.
주지 성원스님은 인사말을 통해 미주한국불교의 역사를 개괄하여 설명하고 이 흐름속에서 연화정사의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였다.
축사는 필라 관음사 주지 정수스님, 김동기 워싱턴 총영사, 마크 김 버지니아 하원의원, 조지 워싱턴 대학의 헤버 교수 등 각계 각층에서 많은 분들이 하였다. 정수스님은 “20여년전 위스콘신대학에서 학업에 열중하고 있는 성원스님을 만났다. 성원스님은 은사 정우스님의 배려와 지원으로 학업에만 정진할 수 있다고 했다. 성원스님은 일본과 티벳에서 더 실력을 배양하고 학문적으로 큰 성과를 거두었다. 메릴랜드, 워싱턴DC, 버지니아를 아우르는 이곳 인연지에 법당을 내게 된 것을 축하한다”라고 했다. 김동기 총영사는 “한국불교는 우리 문화의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불교와 중도와 화쟁사상은 국민통합의 큰 가르침이라고 생각한다. 연화정사의 개원으로 이 지역 신자들이 보다 안정적인 종교생활을 할 수 있고 또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라고 했다. 마크 김 버지니아주 하원의원은 “한국에서 태어났는데 아버지가 장로교 목사였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불교를 잘 몰랐다. 미국에 이민와서 활동하면서 느낀 것은 미국이 종교의 자유가 있는 나라이다.”라는 것이다. 작년에 한국을 방문하여 강원도 월정사에서 템플스테이를 하면서 108배를 하고 염주를 만들었다고 체험을 이야기 하면서 그때 만들었던 염주를 보여주어서 참석자들의 박수를 받았다. 그는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미국의 헌법을 무시하고 미국의 종교는 하나뿐이다라고 주장하고 무슬림의 미국 입국을 금지시켜야 한다는 대통령 후보에 대해 여러분들이 선거로서 심판해야 하니까 꼭 선거를 하라고 호소하였다. 다음으로 조지 워싱턴 대학교의 인도인 헤버 교수가 아들과 함께 나와서 아들이 한국말로 “한국사찰의 개원을 축하합니다”라고 말하여 박수를 받았다.
이날 초청법사인 정우스님은 청법가가 끝난 후 연단에 올라 설법을 시작하였다.
“저는 지금으로부터 33년전인 1984년에 법주사 장보살 초청으로 워싱턴행 비자를 발급받았습니다. 미국에서 활동을 하려고 월하 어른 스님께 말씀을 드렸으나 흔쾌하게 허락하지 않으셨기 때문에 어른 스님의 뜻을 따라 미국포교의 뜻을 접었습니다. 이렇게 워싱턴과는 별 인연이 없었으나 뉴욕에는 작년에 6번을 왔고 올해는 3번 왔습니다.
저는 어린시절 꿈이 운전수였습니다. 그래서“내 어릴 적 꿈은 운전수였네”라는 수필집도 썼습니다. 그런 꿈을 가진 초등학교 4학년때 봄 소풍 갔다가 스님들의 이야기를 듣고 스님들처럼 도사가 되어야 겠다고 출가를 꿈 꾸었습니다. 지금 출가를 한지 50년이 되었습니다. 출가 초기 시절에 축사를 한 마크 김 버지니아 하원의원이 템플스테이 한 월정사에서 제가 1977년도에 탄허스님 모시고 화엄경 공부하면서 목탁치고 예불하고 그랬습니다. “저는 1987년 극단 ‘신시’를 설립했습니다. 여러분이 ‘신시’라는 극단은 모르겠지만 우리 극단에서 상영한 맘마미아, 시카고, 아이다, 산불, 갬블러라는 뮤지컬은 알 것으로 생각합니다.
제가 어느 덧 초로 인생이 되었습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들께 여러분 인생에서 자기가 서 있는 자리에서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그런 시간을 짧게라도 가져 그 시간의 연속성을 가질 수 있도록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저도 소년기가 있었습니다. 또 청년기도 있었고, 장년기도 있었는데 이제는 초로 인생으로 노년기에 접어들었습니다. 성원스님이 제가 강남 천막 법당에서 살고 있을 때 저를 찾아와 출가를 하였습니다. 그 당시에 10대 소년이 지금은 40대 중반이 되었고 지금은 구룡사 주지를 하고 있습니다. 30여년이 너무 빨리 흘렀습니다. 스님인 저도 세월의 빠름을 느끼고 있는데 돈 버느라고, 가족들 울타리 역할을 하느라 애쓴 여러분들은 어찌하겠습니까? 제 아는 뉴욕 사는 분은 아주 부자인데 나이가 80입니다. 이 분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이제 깨쳤습니다. 저 역시 서있는 자리에서 전후.좌우가 없고, 생멸이 없고, 증감이 없고, 미추가 없고, 대소가 없고, 장단이 없고 전후 좌우가 없는 내 자리에서 시간 공간을 바라볼 수 있는 내가 되었습니다. 초로의 인생에서 깨달은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살아온 시간보다 앞으로 살 날이 더 남았습니까? 요즈음 한국에서 뜬 노래가 있습니다.
‘못간다고 전해라’
우리가 100살까지 산다고 가정합시다. 지금까지 산 시간보다 앞으로 살 시간이 적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빠른 시간의 흐름에 우리가 노출되어 있습니다. 시간은 빨리 흐르는데 우리는 그것을 못느끼고 있습니다.
어느 스님의 시 한편을 소개하겠습니다.
내 나이 60 즈음에 70 먹은 이를 만나
죽을 일만 남았다고 어른 대접 해 주었다.
내 나이 80 즈음에 70 먹은 이 만나니
어리다. 버르장머리 없이 어리다.
봄. 여름. 가을. 겨울 24 절기 중에
나는 지금 어디에 서 있을까?
이 시를 잘 생각하면서 각자 머무는 곳에서 나를 돌아다 보기 바랍니다.
참석자들은 스님 설법중에 공감하거나 재미있다고 생각되는 이야기를 할 때는 박수를 쳐서 호응을 하였다. 여러 차례에 걸쳐 박수가 나왔다.
마지막으로 정우스님은 원효스님의 ‘기신론 소’ 서문에 있는 시를 소개하면서 설법을 마쳤다.
설법이 끝난 후에는 바이올린 연주, 플룻 연주, 피아노 연주, 살풀이 춤 공연으로 행사의 대미를 장식하였다.
연화정사 개원에 거는 기대
미국의 수도 워싱턴 DC는 세계 정치의 중심지역으로 연방정부의 많은 건물이 있고 연방공무원들이 많이 거주하기 때문에 미국에서 뉴욕, 로스 엔젤레스와 더불어 3개 중요 도시이다. 이 중요한 도시이기 때문에 아시안 전통 불교국가 대부분은 이곳에서 포교활동을 중요하게 생각하였다. 라오스, 캄보디아는 미국에서 이 지역에 가장 큰 사찰을 건립하였다. 한국불교계도 1969년에 서경보 스님을 시작으로 지금은 없어진 볼티모어의 성불사, 한국사, 법주사, 보림사, 세계사, 진각종 법광심인당 등 많은 사찰이 이 지역에 건립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법주사 외에는 대부분 이 지역 신도들에게 마음의 상처를 주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이 지역은 진작에 조계종 사고지역이 되었던 것이다. 미국의 수도라는 매우 중요한 지역에 한국불교계가 바람 앞의 등불처럼 아주 어려운 상황에 처해진 상황 속에서 2015년부터 성원스님이 이 지역과 인연이 되어 가정법회를 하면서 신도들의 큰 호응을 받고 개원에 이르게 되었다. 성원스님은 미국에 온 지가 20여년이 되었고 미국의 L.A. 서래대학, 하와이주립대학교, 코스탈 캘롤라이나 대학 등 여러 대학에서 교수로서 경험이 있어서 미국불교사에 전문적인 지식이 있다. 미국사회에서 사찰의 운영에 대한 확고한 철학이 있다. 사찰재정을 공개하겠다는 것은 미주한국불교계에서는 없던 일이다. 언어장애가 없다는 것도 또한 매우 큰 장점이다. 성원스님을 보좌할 총무 여암스님은 또한 아주 젊은 스님이고 포교 경험이 많다. 연화정사는 이러한 여러 가지 좋은 조건을 갖추었기 때문에 50여년의 미주한국불교계가 안고 있는 문제점에 매몰되지 않고 앞으로 5년 안에 전미주한국불교계를 대표하는 사찰중의 하나가 될 것으로 기대를 갖게 한다.
연화정사
3901 Fair Ridge Drive, Suite 119, Fairfax, VA 22033 연락처 : 703-302-0677
연화정사 개원하기까지 경과보고
2015년 1월 11일 성원스님을 모시고 임시 사찰 운영계획 의결
(부회장 및 임원 확정, 격주 가정법회를 하되 한 주는 성원스님,
다른 한 주는 지광스님이 집전하시기로 의결)
2015년 2월 8일 신도회의에서 새 사찰 건립 의결
2015년 3월 8일 신도회의에서 법회장소 확정
(6914 Vancouver Dr. Springfield, VA 22152)
2015년 6월 21일 신도회의 표결로 사찰 이름을 연화정사로 의결
2015년 7월 21일 버지니아 주정부에 정관 및 법인 등록
2015년 10월 23일 IRS로부터 Non-Profit Organization 승인
2015년 12월 30일 연화정사 총무스님 여암스님 뉴욕 도착
2016년 1월 3일 격주 법회에서 매주 법회로 정례화 시행
2016년 1월 17일 사찰 개원 및 불사 추진 공표
2016년 2월 16일 리스계약 체결 및 연화정사 웹페이지 등록 및 호스팅 구매
2016년 4월 9일 내부공사 완료
2016년 4월 17일 개원법회
(3901 Fair Ridge Dr., Suite 119, Fairfax, VA 22033)
연화정사 개원 인사말
성원스님 (연화정사 주지)
우리 한국불교가 미주에 사원을 세우고 본격적으로 포교활동을 시작한 지도 벌써 50여년이 되었습니다. 그 동안 미주포교에 문제점과 아쉬움도 많았지만, 우리 한국 불교 사원은 미주 동포들의 힘들고 고달픈 이민생활을 부처님의 자비로 감싸안아 위로하고 한민족의 문화적 정체성을 유지계승하는 데 큰 기여를 해왔습니다.
우리 동포들은 한국 불교 사원을 중심으로 고국을 향한 향수의 시름을 달랬고, 불법의 인연을 통해 상부상조하는 미풍을 발전시켰습니다. 미주 한인 사회에는 이민 1, 2세대를 지나, 3, 4세대가 이미 형성되어 가고 있고, 우리 한인들은 고립된 자급자족적인 공동체에서 벗어나 미국 사회의 구석구석에까지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고, 동포들의 위상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지고 그 역할과 책임 또한 커졌습니다.
미주 한국불교의 초기에는 동부와 서부에 하나 둘, 태평양 하와이에 하나 정도의 사원이 있었지만, 50여년의 세월이 지난 오늘날에는 100여 사원으로 늘어나게 되었고, 한국 불교 사원이 미주의 주요 도시 곳곳마다 설립되어 활발한 포교를 펼치고 있습니다. 따라서, 현재의 위상에 비추어 볼 때, 한국불교 사원은 미주의 한인사회와 주류사회 속에서 한 차원 발전된 역할을 요구받게 되었습니다.
한국불교의 사원은 1, 2 세대 동포들의 정신적 의지처로서의 역할에서 한걸음 나아가 미주 사회의 전반에까지 한국불교의 올바른 진수를 홍포함으로서 다종교, 다인종, 다문화의 사회인 미주 속에서 종교 본연의 역할을 다해야 하는 것입니다. 즉, 우리는 포교의 대상으로 동포 1, 2세대 뿐 만 아니라, 3, 4세대까지도 대비해야 하고, 궁극적으로는 미국 사회 전반에까지 확대해야 하는 것입니다.
한국 불교 사원은 50여년의 성공적인 포교활동을 한 단계 비약시켜 현대사회의 가치관을 구현하는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나야 할 것이다. 즉, 한국불교 사원의 새로운 역할이 미주 사회에서 매우 커진 만큼, 우리들이 그 기능과 역할을 보다 능률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민족사원 대가람을 워싱턴 DC 지역에 건립하여 이 시대가 요구하는 한국불교의 사명을 완수해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궁극적으로 워싱턴 DC 지역 한국 불교 민족사원 대가람으로 성장할 연화정사의 건립은 뜻있는 불자들의 원력과 지혜를 모아 반드시 이룩해야 할 불사로, 좁게는 미주 사회 그리고 넓게는 전세계에 한국불교의 역할을 자리매김하는 것이고, 이 일은 우리 한국 불자들의 힘으로 반드시 이룩해내야 할 시대적 소명입니다.
연화정사는 (1) 본국의 한국 불교계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2) 미주 지역 다른 한국 사원과의 유대를 강화하고, (3) 미주 지역의 한국불교의 포교의 모델이 되고, (4) 한국불교 문화의 전승과 향유를 담보하고, (5) 현지인 포교의 활성화 방안을 모색하고, (6) 미주 지역에 승가와 재가의 교육 기관을 설치하고, (7) 세계 불교학의 연구의 산실이 되고, (8) 정보와 인적 자원을 세계 불교계와 활발히 교류하고, (9) 남북한의 순수 종교 교류에 앞장서고, 그리고 (10) 다른 종교계와의 교류에도 힘쓸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들은 각자의 원력과 지혜를 모아 연화정사의 건립 불사를 성공적으로 이루어내고, 미주사회 속에서 한국불교를 보다 능동적이고 효과적으로 홍보하고, 부처님의 지혜와 자비 정신이 미주사회의 전 구성원이 지향하는 가치있는 삶의 바탕이 될 수 있도록 하고, 좁게는 개인의 내적 평화, 그리고 넓게는 세계 평화를 구현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발원하는 바입니다.
Why I dedicate the temple to world peace
Ven. Dr. Seongwon (Chanju Mun)
First of all, I want to extend my sincere appreciations to eminent venerables, diplomats, a local politician, greater DC area Korean-American community leaders, lay Buddhist leaders, scholars, and Buddhists for attending our temple’s opening ceremony today.
I will begin by questioning myself: what meaning could possibly be attached to the act of dedicating a temple to the cause of peace at a time when there seem to be a lot of other and perhaps more important things to be done to promote peace in this troubled world of ours? The world is beset by problems which call for our immediate attention and action: the nuclear threat, hunger, injustice, violence and conflicts of every magnitude. Addressing oneself to these problems would thus be of much greater priority than building and dedicating a temple to the cause of peace. If I am not deluded in thinking that dedicating a temple is an act even justifiable in terms of those problems, what significance can I find in the act?
The question is one of priority, but it is also a question of approach and a matter of defining the problem. As a Buddhist, both my way of defining a problem and my approach to a solution are naturally informed by my religious attitude and training. The religious way is to strike at the very root of the problem, which is to direct our questioning to ourselves and identify the root within us and in the human condition. This is the fundamental method, the method of the Buddha, and it reveals that it is we who are responsible for all the problems we face today.
My dedication of the temple is thus a way of sensitizing myself, my fellow Buddhists, and all others to those forces that threaten our living in the world. I think there is a great truth in saying that peace will not come unless the very structure of our historical world is changed. But who will make the change? Who alters the conditions of our existence if not we ourselves? Here the Buddha has shown us the direct and inseparable link between the task of becoming aware and our responsibility for working towards a just and peaceful world. I dedicate the temple in order to commit myself to the cause of, and actions for, peace. With this act, I humbly join my fellow Buddhists and all those who are already committed to the cause that was also the Buddha’s.
The Buddhist temple does not exist to glorify the Buddha. It comes into the world in order to be returned, with the Buddha’s light in it, to humankind and to the world. Let us think about the profound meaning and symbolism of this “returning”: Buddha did not ask that a temple be dedicated to him or anyone but asked that it be returned to all humanity. In other words, he taught us to dedicate it to those from whom it comes. The temple thus opens itself to the world, to sufferings, violence, and darkness, and in so doing it invites the world to open itself in turn to the teachings of Buddha. Such indeed is the whole meaning of the Buddhist temple. We thus dedicate our temple to world peace. It is what Buddha has taught us to do.
I will conclude my welcoming remarks by appreciating all of you for attending our temple’s inaugural ceremony again. Thank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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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축하합니다. 연설문이 멋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