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를 찾아서] 천년 비자나무… 백두대간 숲에서의 하룻밤에 초대합니다
천년 원시림에 다녀왔습니다. 대략 한 해에 한 번은 찾아가는 숲. 〈제주 평대리 비자나무 숲〉입니다. 이틀에 걸친 제주 답사 일정은 지난 해에도 《나무편지》에서 소개한 〈제주 산천단 곰솔군〉에서 하루, 그리고 둘째 날에는 이른 아침부터 해거름까지 꼬박 〈제주 평대리 비자나무 숲〉에서 천년의 생명력을 실컷 느낄 수 있었던 넉넉한 일정이었습니다. 이미 말씀드렸듯이 새로 개국하는 방송국의 프로그램 촬영을 위한 답사여서, 적이 고단하기는 했지만, 긴 시간 동안 여유있게 숲의 기운을 온전히 들이마실 수 있는 좋은 일정이었습니다. 오늘 《나무편지》에서는 이 봄에 답사한 제주의 숲과 나무 가운데에 〈제주 평대리 비자나무 숲〉 이야기를 전해드리겠습니다.
○ 백두대간수목원에서의 하룻밤에 초대합니다 ○
천년 비자나무 숲 이야기에 앞서 한 가지 알려드립니다. 오늘 《나무편지》의 제목에 썼듯이 백두대간수목원 숲에서의 하룻밤 프로그램 이야기입니다. 지난 해에 ‘북스테이’라는 이름으로 진행했던 프로그램에 이어지는 프로그램입니다. 올에는 그 프로그램을 네 차례로 이어서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그 첫째가 5월 11,12일(토,일요일), 1박2일에 걸쳐 이뤄집니다. 〈봄에 피는 나무 이야기〉를 주제로, 토요일 오후에는 우선 특강부터 하나 합니다. 저녁 식사 후에는 주제정원에서 해설사와 함께 저녁노을 산책을 합니다. 둘째 날에는 수목원 인근의 550년 수령의 철쭉을 보러 갑니다. 이 즈음이면 철쭉 꽃 피어날 때여서 기분 좋은 관찰이 되지 싶습니다. 국립수목원의 프로그램이어서 참가비가 적다는 것도 이 프로그램의 장점일 겁니다. 성원과 참여 부탁드립니다.
http://bit.ly/2FRnvpS <== 백두대간 나무기행 참가 신청 페이지
이제 〈제주 평대리 비자나무 숲〉 이야기입니다. 세상의 모든 나무와 숲이 그렇지만, 보고 또 보아도 언제나 새롭고, 볼수록 그 신비로운 생명력의 깊이에 빠져드는 나무, 혹은 숲이 〈제주 평대리 비자나무 숲〉입니다. 개인적인 생각이겠지만, 이 숲만큼 오묘하고 깊은 느낌을 주는 곳은 이 땅에 없습니다. 천년에 걸쳐 지켜온 아름다운 숲이라는 걸 숲 안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부터 여실히 느낄 수 있습니다. 한번 들어서면 끼니를 거르면서라도 숲 바깥으로 나오기 싫어지는 것도 하릴없습니다. 제게만 그런 건 아닐 겁니다. 천 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켜켜이 쌓으며 이뤄온 생명의 깊이를 느낀다는 게 그러할 수밖에 없는 건 아닐까요.
○ 천년의 세월을 한결같이 살아온 원시림의 비자나무 ○
이 숲을 처음 찾은 건 이십 년 전, 나무를 찾아 길 위에 오르기 시작하던 그때였습니다. 그 뒤로 몇 번이나 찾았는지 헤아리기가 쉽지 않을 만큼 자주 찾았지요. 그 사이에 풍경도 분위기도 많이 바뀌었습니다. 십 년 쯤 전만 해도 숲은 한가로웠습니다. 답사객도 많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틈엔가 숲을 찾는 관광객이 부쩍 늘었습니다. 월요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관광버스가 줄을 이어 주차장에 당도하고, 버스에서 우르르 내려 숲으로 밀려들어서는 관광객의 왁자함으로 숲은 번거롭다 할 만큼 복잡해졌습니다. 관람로도 바뀌었어요. 조붓했던 오솔길을 조금 넓히기도 했고, 어떤 구간에는 나무데크를 설치하기도 했으며, 관람 구간을 조금 늘리기도 했습니다. 분위기에 적지 않은 변화가 있었지만, 나무와 숲은 한결같습니다. 그래서 더 좋습니다.
관람이 가능한 구간은 고작해야 1킬로미터 남짓, 2킬로미터가 채 안 되는 짧은 구간입니다. 욕심 같아서는 비자나무가 살아 숨쉬는 숲 안으로 하염없이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지만, 꼭 그러지 않아도 숲의 생명력을 너끈히 느낄 수 있습니다. 평범한 걸음걸이로 30분이면 충분히 걸을 수 있는 길이 고작이지만, 하루 종일 걷고 또 걸어도 결코 지루하지 않고, 바라보면 바라볼수록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무리 지어 서 있는 크고 오래 된 비자나무, 그리고 그들과 어울려 살아가는 다양한 크고 작은 나무들이 그야말로 장관입니다. 천 년이라는 헤아리기 어려운 긴 세월을 지나오면서 어찌 이토록 아름다운 자태를 간직할 수 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
○ 나이 들수록 더 아름다워지는 유일한 생명 ○
천 년이라는 긴 시간을 버텨온 생명이기에 더 아름답고, 더 신비로운 것이겠지요. 자주 올리는 말씀입니다만, 참으로 “나무야말로 나이 들며 점점 더 아름다워지는 생명”이라는 게 분명합니다. 예전에 제주 사람들은 이 숲의 비자나무를 지키기 위해 숲 안에 사람들이 들어가는 걸 엄격히 금지했다고 합니다. ‘이 숲 안에 들어가기만 해도 천벌을 받는다’는 전설은 그래서 만들어지고, 사람들 사이에서 철저한 믿음으로 지켜졌습니다. 사람들은 그 금기를 잘 지켰지요. 그러나 한 해에 한번은 숲에 들어갔습니다. 지역의 평화와 안녕을 비는 당산제를 지내기 위해서였지요. 신의 땅에 들어서는 성스러운 날, 성스러운 행사였습니다.
당산제를 지내던 그 나무가 아직 있습니다. 이 숲에서 가장 크고 가장 오래 된 나무입니다. 관람이 허용된 짧은 산책길을 걷다보면 그 끝자락에서 만날 수 있는 매우 큰 비자나무가 바로 그 나무입니다. 이 숲에서 가장 오래 된 나무라서 ‘비조목(鼻祖木)’이라고 불리는 나무입니다. 바로 위와 아래로 이어지는 두 장의 사진이 그 어마어마한 나무입니다. 제가 나무를 처음 찾아다니던 즈음인 1999년에는 새 천년인 2000년대를 맞이한다는 뜻에서 ‘새천년비자나무’라는 별명을 붙이기도 한 나무입니다. 나무는 팔백 년 쯤 된 나무로 여겨집니다. 나이에 비해 높이가 그리 큰 편이라 할 수 없지만, 굵은 그의 줄기에서는 세월의 연륜이 저절로 느껴집니다. 고개가 숙여질 수밖에요.
○ 두 그루가 한몸을 이뤄 자라는 연리목도 놓칠 수 없어 ○
제가 처음에 이 숲을 찾았을 때에는 나무 바로 곁까지 다가설 수 있었는데, 최근에는 나무를 찾아오는 많은 분들로부터 나무를 보호하기 위해 나무를 빙 둘러서 나무 그늘 아래로 나무 데크를 설치했습니다. 데크 위, 나무 가장 가까운 자리에는 긴 의자도 놓았습니다. 이 숲을 찾는 누구라도 이 긴 의자 위에 앉아 기념촬영을 하는 자리입니다. 찾아오는 분들이 워낙 많아서, 이 긴 의자에 한번 앉아 사진 한 컷 찍으려면 적잖은 시간을 기다려야 합니다. 순서대로 기다리고, 처음 만나는 사람들끼리 서로 사진을 찍어주는 여느 관광지의 왁자함이 떠나지 않는 자리입니다. 오랫동안 적막의 숲 한가운데에 서 있던 나무에게는 여간 성가신 일이 아닐 수도 있겠지만, 나무는 여전히 사람과 더불어 잘 살아갑니다.
이 숲에는 ‘사랑나무’라는 흥미로운 이름을 붙인 나무도 있습니다. 위의 사진과 아래로 이어지는 두 장의 사진이 그 나무입니다. ‘새천년비자나무’에서 조금 떨어진 자리에 서 있는 ‘비자나무 연리목’입니다. 연리목과 비슷한 현상으로 연리근, 연리지가 있습니다. 모두 두 그루의 나무가 바짝 붙어서 자랄 경우에 생기는 특별한 현상이지요. 말 그대로 연리근은 뿌리 부분이 붙어서 두 그루가 한 그루처럼 자라는 경우이고, 연리지는 두 그루가 잘 자라다가 두 그루에서 뻗어나온 가지가 서로 만나서 하나로 붙는 경우이며, 연리목은 땅 위로 나온 줄기 아랫 부분이 붙어서 한몸을 이룬 경우를 말합니다. 이 숲의 연리목이 바로 그런 경우입니다.
○ 다시 앞으로 다가오는 천년의 세월을 기다리며 ○
두 그루가 이룬 한몸이니, 당연히 여느 나무보다는 그 규모가 클 수밖에 없습니다. 줄기 아랫부분, 그러니까, 한몸을 이룬 부분은 얄궂습니다. 연리목을 이룬 건 아주 오래 전으로 보입니다. 그렇게 둘이 하나 되어 오랜 세월을 자랐습니다. 그러던 중에 나무 줄기의 안쪽은 여느 나무들처럼 바람만바람만 썩어들어갔습니다. 줄기 안쪽에 만들어진 텅빈 공간은 마침내 줄기 껍질, 즉 변재의 얇은 부분을 깨뜨리고 뻥 뚫렸습니다. 한쪽에서 반대 쪽이 고스란히 내다보일 만큼 큰 구멍이 났습니다. 나무를 귀하게 여긴 사람들은 이 부분이 더 썩어들지 않도록 외과수술로 메워주었습니다. 세월의 풍진이 안타깝게 생각되기도 하지만, 여전히 싱그러운 푸른 잎을 달고 서 있는 두 그루이며 한 그루인 연리목의 생김새는 그냥 바라보기만 해도 즐겁습니다.
〈제주 평대리 비자나무 숲〉 이야기는 끝이 없습니다. 이 숲을 찾는 분들이 놓쳐서는 안 될 나무로 꼽는 앞의 두 그루의 특별한 나무가 아니라 해도 숲 안의 나무 한 그루 한 그루가 모두 소중하고, 나름의 따스하고 신비로운 생명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이 깊은 숲 안의 산책할 수 있는 짧은 길, 그 길은 두고두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걸으며, 아직 채 알지 못하는 나무만의 오묘한 생명의 이야기를 가만가만 귀기울여야 합니다. 그게 우리가 천년의 원시림을 오래오래 지켜서, 다시 천년 뒤의 우리 아들과 딸과 그 아들의 아들, 딸의 딸에게 건네 줄 수 있는 지상 최고의 선물이 될 겁니다.
- 천년의 생명력의 기운을 일으키며 4월 22일 아침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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